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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동안 아나티샤가 한 것은 ‘사냥’이었다.

       

        “사냥 아니거든요!”

       

        “…….”

       

        그렇게 외친 아나티샤의 주먹에, 또 다른 귀족 가문의 대전사가 뭉개졌다.

       

        그렇다.

        원대한 포부를 밝힌 후, 아나티샤는 우선 루이 볼레스토 공작의 편에 선 귀족 가문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명분은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설득’한다는 것이었지만…….

       

        ‘전부 주먹으로 때려 부수는 것은 사냥이 아닐까?’

       

        드래곤으로서 말하자면,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사냥처럼 보인다.

        나는 그런 의미를 담아 아나티샤를 바라보았고, 아나티샤는 굳건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 어디까지나 ‘설득’하러 온 거라고요.”

       

        털썩!

       

        “…….”

       

        “…….”

       

        나와 루이 볼레스토 공작은 쌍코피를 줄줄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쩍 벌어진 그의 입에서, 텅 빈 앞니의 공간이 보였다.

       

        “오…… 신이시여.”

       

        “…….”

       

        신을 찾는 루이 볼레스토 공작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            *            *

       

       

        4달.

        아나티샤가 ‘주먹’으로 ‘귀족파’를 휘어잡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황녀님께 충성을!”

       

        “충성을!”

       

        공작가의 연병장에서, 각 귀족가를 대표해 모인 사병들이 아나티샤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나 같이 얼굴에 크고 작은 멍 자국을 단 이들이 말이다.

       

        “흐흠!”

       

        그들 앞에서, 근육 압축으로 힘을 제한한 아나티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우쭐거렸다.

        한평생 구박받고 살아왔기에,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자신에게 복종하는 모습이 좋을 만도 했다.

        귀엽군.

       

        물론 아나티샤가 저들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지금 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귀족들의 심정이 대충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아나티샤가 지난 4달간 한 일은 간단했다.

       

        1. 굴복하라고 한다.

        2. 거절한 이들을 찾아가서 전부 쥐어팬다.

        3. 1의 과정을 되풀이한다.

       

        솔직히 드래곤인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드래곤인 내가 봐도 상당히 무식한 방법이었다.

        드래곤도 저렇게 무식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나티샤는 해냈다.

        저 무식한 방법으로, 약 20여 개에 달하는 모든 귀족 가문들을 자기 앞에 무릎 꿇린 것이었다.

       

        “저분이 우리의 레이디……?”

       

        “동경하는 최고의 전사!”

       

        “패왕!”

       

        “저분과 함께 전장에서 죽으리!”

       

        특히 수상할 정도로 근육에 진심인 몇몇 기사와 병사들의 감정 상태가 이상했다.

        뭐지? 저 엄청난 ‘동경’, ‘존경’, ‘감탄’의 감정들은?

        내가 오랫동안 지성체들의 감정들을 보아왔지만, 저렇게 순수한 감정들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짝을 찾는 수컷의 감정은 아니고…….’

       

        그보다는 뛰어난 우두머리를 발견한 무리 구성원의 감정?

        인간들은 이것을 ‘충성심’이라고 하던가?

        대충 그런 감정으로 보였다.

       

        ‘아나티샤도 슬슬 짝을 찾아야 할 텐데…….’

       

        그런 걱정을 하며 아나티샤를 바라볼 때, 아나티샤는 작게 헛기침했다.

        그러고는 압축시켰던 근육을 해방!

       

        불룩! 불룩!

       

        “큼큼! 모두는 들어라!!”

       

        ~어라-!! ~어라-!!

       

        외부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기 성량만으로 이 넓은 공간에 목소리를 전달한 아나티샤.

        그런 아나티샤의 모습에, 이곳에 모인 인간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 황녀가 아니다!”

       

        “?!!”

       

        “!!”

       

        아나티샤의 말에 인간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하지만 아나티샤는 경악하는 인간들의 앞에서, 천천히 자기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알겠지. 난 황녀가 아니다. 그저 농민의 딸이다!”

       

        조금의 과장도, 숨김도 없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아나티샤.

        하지만 말을 이어 나갈 때마다 불끈거리는 아나티샤의 근육들은, 그녀의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난 이곳에 섰다. 왜냐고?”

       

        울끈! 불끈!

       

        “이 나라의 머리에는 썩어 버린 정신을 가진 이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꿈틀꿈틀!

       

        아나티샤가 양팔을 접을 때마다, 그녀의 근육들이 춤을 춘다.

        어지간한 오러조차 튕겨 내는 근육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인간들의 시선이, 천천히 ‘미소’를 지은 ‘거인티샤’의 얼굴로 향한다.

        나한테는 뒷모습만 보이지만, 인간들의 표정을 보아선 아나티샤의 미소가 퍽 귀여운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선언한다!”

       

        쿵!

       

        후우우웅!

       

        아나티샤가 발을 굴렀다.

        그리고 그녀의 발 구름을 중심으로, 돌풍이 휘몰아친다.

       

        “나 아나티샤는, 백성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전장에 나설 것을!”

       

        퍼어어엉!!

       

        힘차게 치켜올린 아나티샤의 주먹 끝에서 소닉붐이 터져 나왔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휘몰아치고, 이어서 소닉붐에 의해 응결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인간들은, 천천히 손뼉을 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 와아아아아아아!!”

       

        “만세!!”

       

        “황녀님 만세!”

       

        와아아아아아아아-!!

       

        아나티샤의 연설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던 것일까?

        인간들은 열렬하게 아나티샤의 이름을 연호했다.

       

        딱!

       

        “신이시여…….”

       

        “…….”

       

        그리고 내 옆에서 함께 아나티샤의 연설을 지켜보던 루이 볼레스토 공작은 이마를 ‘탁’ 치며 다시 한번 신을 찾았다.

        이 세상에는 ‘신’이라는 존재가 없는데…… 말해줘야 하나?

       

       

        *            *            *

       

       

        –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아닠ㅋㅋㅋㅋ

        – 아! 근육 보여 주면서 말하는데 당연히 설득력이 있짘ㅋㅋㅋㅋ

        – 앜ㅋㅋㅋㅋ

        – 그 ‘설득’력이 그 ‘설득’력이었곸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하하하하핰ㅋㅋㅋㅋ 나 좋앜ㅋㅋㅋㅋ 이런 것도 좋앜ㅋㅋㅋㅋㅋㅋㅋ 아하핰ㅋㅋㅋㅋ!!!”

       

        짝짝짝짝!!

       

        스피커를 통해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돌순이가 손뼉을 치는 소리였다.

        웃음소리가 큰 것을 보아하니, 그녀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 이딴게 후피집?

        – 후피집은 맞을 듯?

        – 앜ㅋㅋㅋㅋ

        – 아! 근육이 눈앞에 들어오면 일단 후회는 존나게 될 듯.

        – ㅋㅋㅋㅋ

        – 개 재미있넼ㅋㅋㅋㅋ

        – 이거 사실은 코미디였죠?

        – ㅋㅋㅋㅋㅋ

       

        = “아. 너무 좋아! 라나님 최고!”

       

        “네가 원하는 이야기가 아닐 텐데도 좋아하느냐?”

       

        = “아무튼 재미있으면 장땡이죠.”

       

        그런가?

        본인이 좋다면야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 앞에서 황금으로 만든 미니어처들을 치웠다.

        설명하던 중간에 누군가가 ‘시청각 자료가 필요합니다!’라고 해서 만들어줬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 저게 무슨 황녀얔ㅋㅋㅋ

        – 미녀는 무슨ㅋㅋㅋㅋㅋ

        – 역변 전에는 미녀인데, 역변하니까 슈퍼맨이넼ㅋㅋㅋ

        – 카툰에서 튀어나온 줄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울트라 펀치!

       

        “…….”

       

        그냥 아나티샤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건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아나티샤의 모습에 호감을 가지는 인간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아나티샤의 강한 모습이 인간으로서 호감을 일으키는 요소인 것일까?

       

        =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나요?”

       

        “그다음이라…….”

       

        그래. 지금은 이야기 중이었지?

        이다음에 어떻게 되었더라…….

       

        “배신자의 이야기나, 암살자의 이야기. 그 외에도 여러 사건이 있었지.”

       

        하지만 이런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 낸다.

        아무리 내가 입담에 대한 재능이 없더라도, 이런 부분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아니까.

       

        “그러니 핵심만 말하자면…….”

       

        – 헉!

        – 그것도 좀…….

        – 궁금한데용.

        – 진짜 이야기보따리가 어디 있으신 건가?

        – 헥헥헥헥!

       

        = “좀 궁금하기는 한데, 나중에 해주실 거죠?”

       

        “기회가 된다면?”

       

        일단은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꾸나.

       

       

        *            *            *

       

       

        전쟁이 시작되었다.

        귀족파와 황제파의 전면전.

       

        “이번 전쟁의 통솔을 맡은 루이 볼레스토 공작이오.”

       

        끄덕!

       

        끄덕!

       

        아나티샤는 전쟁과 통솔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다.

        그렇기에 전쟁에 대한 통솔 권한은 루이 볼레스토 공작에게 주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고, 다른 이들 역시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보니, 그는 전쟁 영웅이라고 불릴 정도로 군략에 밝은 이라고 했다.

       

        ‘실력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던데.’

       

        가끔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인간들 중에서도 강한 축에 들어가는 인간으로 보였다.

        물론 아나티샤 만큼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나티샤의 품 안에서 그런 생각하는 사이, 루이 볼레스토 공작이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적들의 숫자는 총 500명. 그 숫자가 두 무리로 갈라져 각각 요충지의 요새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은 귀족파에서 황제파를 공격하는 형태였다.

        그리고 인간들은 ‘성’과 ‘요새’라는 둥지를 짓는 이들.

       

        “이 두 요새를 넘는다면, 우리를 막을 수 있는 요충지는 더 이상 없습니다.”

       

        즉, 이번 전쟁은 ‘공성전’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전쟁이라고 한다.

        그렇게 설명을 잇는 루이 볼레스토 공작을 바라보며, 나는 기대했다.

       

        드래곤들은 기본적으로 무리를 짓지 않는다.

        게다가 무리를 짓는 드래곤종이라고 하더라도, 지성체만큼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힘’과 ‘꾀’를 사용해 먹잇감을 사냥하는 것은 잘 알지만, 무리와 무리가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런데 지금.

        그 ‘무리와 무리가 싸우는 방법’을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과연 인간들은 어떤 꾀를 낼까? 무리를 나눌까? 아니면 속임수?’

       

        “작전은 간단합니다. 아나티샤 황녀님이 성벽을 부수고, 그곳으로 쳐들어가면 됩니다.”

       

        “……응?”

       

        양 주먹을 꼭 쥐고 기대를 하던 내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인간의 지혜는? 전략은? 계략은??

       

        ‘그냥 힘으로 해결하면…… 드래곤하고 다를 것이 뭐지?’

       

        나는 실망감에 어께를 축 늘어뜨렸다.

        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압도적인 힘이 있는데, 왜 머리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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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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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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