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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1

        아케포라스의 인생은 평범했다(라고 스스로는 주장했다).

        그는 심판의 태양신 테페이스의 아들이자, 요르의 공주인 헤미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초월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강건한 육체.

        잘생긴 외모.

        지혜로운 두뇌.

        용맹한 성격까지.

       

        5살 때 그는 날뛰는 황소를 죽였고, 10살에는 코부스(들어 보니, 고양잇과 동물의 일종으로 보이는 생물인 것 같았다)를 사냥했다.

        일반적인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업적과, 한 부족 국가의 왕자라는 신분.

        더군다나 아버지는 신이고, 어머니는 공주이자 태양신의 신녀이기까지 한 상황!

       

        그는 어느새 테이토(이 세상을 지칭하는 이름)에서 이름을 날리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 흠? 들어 보면, 내 뿔을 원하는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물론 여기까지라면, 제가 신수님의 뿔을 원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케포라스가 16살의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그때 그는 자기 이름을 더욱 알리고, 자기 명성을 테이토에 떨치기 위한 방법을 고심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케포라스를 노리는 존재가 있었다.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님이었습니다.”

       

        심판의 태양신 테페이스를 짝사랑하는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

        하지만 테페이스는 칼리파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싫어했다.

        결국 테페이스의 사랑을 얻지 못한 칼리파는 그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그 집착은 태양신만이 아니라 그의 연인들까지 번져갔다.

       

        빛이 비추는 곳에는 그림자가 존재하듯,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는 테페이스의 연인들을 질투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테페이스는 상당한 난봉꾼이기까지 해서, 칼리파의 질투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 음…… 그래서 그것이 왜 나와 연관되는 것이냐?

       

        “영웅으로서의 유명세를 원하던 저에게, 칼리파님의 손길이 미쳤습니다.”

       

        한참 철이 없었을 시기.

        일반적인 예언가로 변한 칼리파는 어렸던 아케포라스에게 바람을 넣었다.

       

        – 먼 곳에 아름다운 은빛의 새가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을 사냥해 그 깃털과 고기를 아버지인 태양신에게 바친다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아케포라스는 곧바로 짐을 챙겨 은빛의 새를 찾아 나섰다.

        그러고는 태양신의 아들답게, 빠른 발을 놀려 순식간에 은빛의 새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알고 봤더니, 그 은빛의 새는 페르제스님께 바쳐진 새였습니다.”

       

        하늘의 주신인 페르제스가 애지중지하던 새를, 한낱 필멸자가 죽여 버렸으니 어찌 되겠는가?

        아케포라스의 부족 국가인 요르는 신의 분노를 받았다.

       

        가축은 병들고, 비는 내리지 않았으며, 사냥감들은 떠나갔다.

        아버지인 테페이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무리 태양신이라고 하더라도 주신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어머니인 헤미나마저 쓰러졌을 때, 그는 짐을 싸 들고 홀로 대륙으로 나아갔다.

        자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저는 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륙을 떠돌며 페르제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대륙을 어지럽히는 괴물들을 물리치고, 페르제스의 이름을 칭송하고, 그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 정성이 페르제스에게 닿은 것일까? 결국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는 조건을 걸었다.

       

        “저에게 8개의 시련을 내리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감히 해낼 수 없을 8개의 시련을 모두 완료했을 때, 페르제스는 자신의 분노를 거둘 것을 그에게 약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련을 내리는 존재로서, 페르제스는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를 선택했다.

       

        = 흠…….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상황이었으나, 나는 일단 아케포라스의 이야기를 계속 듣기로 했다.

       

        어쨌든 아케포라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권한을 얻은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은 시련을 그에게 내렸고, 실제로 아케포라스는 몇 번이고 죽을 뻔했다.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가능할 과제를 내리는 칼리파의 술수를 정면으로 깨부수며, 마침내 페르제스의 분노를 풀기까지 한 가지 과제만이 남게 되었다.

       

        “칼리파님은 저에게 신탁을 내리셨습니다. 세상의 끝, 미지의 위험과 신비가 도사리는 도룬타의 바다 너머. 그곳에서 황금의 짐승이 가지고 있는 뿔을 가져오라고 말입니다.”

       

        = ???

       

        인간 아케포라스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림자의 여신이라는 존재가 인간 아케포라스에게 내린 과제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인간 아케포라스여. 지금 네가 한 말이 사실인가?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가 내린 마지막 과제 말이다.

       

        “물론입니다. 제 말이 거짓이라면, 제 아버지이자 심판의 태양신이신 테페이스께서 제 심장에 화살을 쏘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 흠…….

       

        그래. 내 천룡안에도 인간 아케포라스는 ‘진실’을 말했다는 것이 보였다.

        그렇기에 그의 말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뜻은…….

       

        ‘그 그림자의 여신이 직접 나를 이 일에 끌어들였다는 뜻인데?’

       

        먼저 말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손님’의 자격으로 머무는 상황이다.

        그리고 내가 손님으로써 이 세상의 일에 끼어들지 않고 있다면, 신들은 주인으로서 내가 귀찮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 아케포라스의 말에 따르면, 그 신이 직접 이 인간을 나에게 보낸 것이다.

        딱히 그러면 안 된다고 계약하지는 않았지만…….

       

        ‘예의에 관련된 문제지.’

       

        이건 내 선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판단을 내리자마자 나는 인간 아케포라스에게 말했다.

       

        = 그래. 사정은 알겠다.

       

        “그, 그럼…….”

       

        = 허나,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해야 할 일이 있구나.

       

        “?!”

       

        의아함을 드러내는 인간 아케포라스를 뒤로한 채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근처에 있을 텐데…….

       

        = 아, 저기 있군.

       

        나는 근처 바닷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존재’들을 향해 걸어갔다.

        푸푸르마가 이 섬에서 살아가는 ‘정령’들이라고 소개했던 존재들인데, 이 섬이 내 용금에 의해 침식되는 바람에 바닷속으로 쫓겨난 것 같았다.

        저들을 이용한다면, 푸푸르마나 다른 신들을 부를 수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 정령들이여.

       

        = 꺄악!

       

        = 괴물이야!

       

        = 힝! 무서워!

       

        내 말에 정령들이 오들오들 떠는 것이 보인다.

        뭐…… 그들 처지에서는 살던 곳을 이상한 황금색으로 침식시켜 버린 원흉이니까.

        그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된다.

       

        하지만 이해는 이해고, 사정은 사정.

        나는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 신계의 파수꾼, 푸푸르마에게 전하라. 나, 멸천룡 그랑 라그나가 찾고 있다고.

       

        = 꺄악! 너무 무서워!

       

        = 전해야 해!

       

        = 같이 가!

       

        내 말에 정령들이 사라진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곧 누군가가 찾아오겠지.

       

        다시 몸을 돌려 본래의 공터로 돌아간다.

        그러자 신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인간 아케포라스.

        그리고 그의 뒤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죽이고 있는 신계의 파수꾼, 푸푸르마가 있었다.

       

        = 빨리 왔군.

       

        = 이래 봬도 눈이 좋아서 말입니다.

       

        “헉?!”

       

        뒤늦게 푸푸르마를 발견한 인간 아케포라스가 넙죽 엎드렸다.

       

        “신계의 파수꾼이신 푸푸르마님께, 저 아케포라스가 인사 올립니다.”

       

        = 흠. 네가 왜 여기에 있지?

       

        = 그건 내가 설명하마.

       

        신의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인간 아케포라스를 대신해, 나는 그에게 들은 내용을 푸푸르마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내 설명을 들은 푸푸르마는 얼굴을 찌푸렸다.

       

        = 칼리파……! 또 네년이!

       

        = …….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칼리파라는 그 여신이 독단적으로 일으킨 사고인 모양이다.

        나는 화를 내는 푸푸르마에게 물었다.

       

        = 푸푸르마여. 이것은 명백하게 그쪽의 실책으로 보이는데?

       

        = 그……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작게 한숨을 내쉰 푸푸르마는 이렇게 된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 와씨.

        – 진짜 개막장이넼ㅋㅋ

        – 푸푸르마 억장 와르릌ㅋㅋ

        – ㅋㅋㅋㅋㅋ

        – 후임이 사고 칠 때마다 짜증 나긴 함.

        – ㅋㅋㅋㅋㅋㅋㅋ

        – 아닠ㅋㅋㅋㅋㅋㅋ

        – 그래서 그쪽 사정은 뭐였는데요?

       

        시청자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시끄러운 채팅창을 바라보며 음료수를 마셨다.

        이게 망고 주스라는 것이었지? 맛있다.

       

        “신계의 파수꾼, 푸푸르마는 나에게 사죄를 한 후, 그렇게 된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단다.”

       

        기본적으로 그 세계에는 수많은 초월자들이 신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신을 포함한 10명의 신들을 중심으로, 다른 신들과 권속들이 함께하는 모양새라고 했다.

       

        – 진짜 그리스 신화인데?

        – 그리스 신화도 12신 체재이지 않나?

        – 아닠ㅋㅋㅋㅋ

        – 진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가져오시면 어떻게 해욬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그냥 그리스 신화라고 생각해도 될 듯ㅋㅋㅋㅋ

       

        “어쨌든 계급으로 보자면, 주인인 페르제스가 가장 높고, 그 아래엔 9명의 신들이 존재하지.”

       

        참고로 인간 아케포라스의 아버지인 심판의 태양신, 테페이스가 이곳에 속한다.

        중간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가장 믿고 따르는 10명의 신들인 셈이다.

       

        “그리고 10명의 신 아래에는 그들을 따르는 하급신들이 존재한단다.”

       

        신들의 파수꾼 푸푸르마가 이쪽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푸푸르마의 경우엔 주신인 페르제스의 직속 하급신이었던가?

       

        “그리고 그림자의 여신인 칼리파 역시 하급신이었지.”

       

        내 기억이 맞다면, 그림자의 여신인 칼리파는 심판의 태양신 테페이스의 직속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면 말고.

       

        – 아닠ㅋㅋㅋ

        – 그럼 하급자가 상사 스토킹 하는 거임?

        – 집착 에반데

        –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본격적인 사정은 이렇단다.”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에게 바쳐진 은빛의 새를 죽인 인간 아케포라스.

        페르제스는 인간 아케포라스의 나라인 요르에 신벌을 내렸다.

       

        하지만 아케포라스는 최선을 다해 페르제스의 분노를 씻어내렸다.

        결국 그의 노력에 마음이 누그러진 페르제스는, 인간 영웅인 아케포라스에게 8개의 시련을 내리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인간 영웅인 아케포라스가 그 모든 과제 겸 시련을 완료한 순간, 그들에게 내린 신벌을 거두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그 세상에서 심판과 판결과 같은 부분은 모두 심판의 태양신인 테페이스가 맡고 있다는 부분이었단다.”

       

        그리고 인간 아케포라스는 심판의 태양신인 테페이스의 아들.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는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테페이스가 부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선 것이 바로…….

       

        “그림자의 여신인 칼리파였다고 했지.”

       

        – 와씨.

        – 완전 지능캐였네.

        – ㅎㄷㄷ

        – 사패아님?

        – 허미미

        – 헐

        – 저게 얀데레지

       

        내 말에 시청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칼리파는, 인간 영웅인 아케포라스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시련들을 내리기 시작했단다.”

       

        요르의 공주인 헤미나의 아들을 죽이기 위한, 악의 가득한 시련들.

        이렇게 인간 영웅 아케포라스가 죽게 된다면, 심판의 태양신인 테페이스를 유혹한(?) 헤미나와 그녀의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다만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인간 영웅인 아케포라스가 그녀의 예상보다 더욱 뛰어난 영웅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시련들을 차례대로 격파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8번째 차례가 되었을 때, 초조해진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는 한 가지 무리수를 던지고 만다.

       

        – 아.

        – 설마 그게?

        – 아닠ㅋㅋ

        – 엌ㅋㅋㅋㅋ

       

        “그래. 내 뿔을 가져오라는 시련이었지.”

       

        내 앞에 채팅창이 ‘ㅋㅋㅋ’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렇게 된 일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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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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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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