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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3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나를 따라 아케포라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페르제스에게 부복한다.

        이 세상의 필멸자로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주신에게 예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페르제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로서는 신들이 내놓은 답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럼 답을 들려줄 수 있겠나?”

       

        “알겠소.”

       

        나에게 답한 페르제스가 뒤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그를 따라온 다른 신들 사이로, 한 암컷이 다른 신들에게 포박된 채 끌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흠…….”

       

        비록 힘이 봉인되었으나, 저 암컷이 이 일을 일으킨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라는 것은 확실하겠지.

        그런 내 짐작이 맞았다는 듯, 내 옆에서 부복하고 있던 아케포라스에게서 분노의 감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신이기에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쌓아둔 분노와 불만 정도는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

       

        털썩!

       

        “큭!”

       

        힘과 손발이 묶인 채 내 앞에 내동댕이쳐진 칼리파.

        그런 그녀가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페르제스시여! 부디 저를 풀어 주세요!”

       

        “…….”

       

        페르제스가 한숨을 내쉰다.

        아주 작게 내쉰 한숨이었기에, 그의 바로 앞에 있는 나 정도만이 그의 한숨을 볼 수 있었다.

       

        “닥쳐라.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빌어먹을!”

       

        “저년 때문에 우리가 이 고생을…….”

       

        칼리파를 잡아 온 다른 신들이 화를 낸다.

        페르제스를 바라보자,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본래는 좀 더 빨리 오려고 했소. 죄인이 도망가지 않았다면 말이오.”

       

        “아아…….”

       

        흔한 이야기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나는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에게 소리치던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의 시선이 뾰족해졌다.

       

        “무엄하다! 감히 나를 내려보다니! 당장 무릎 꿇지 못할까!”

       

        “…….”

       

        나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을 이용해 나에게 해를 끼치려 한 존재가 있었기에 상당히 강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약할 줄이야?

       

        물론 지금은 그녀의 힘이 봉인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 하더라도, 그녀의 힘은 내 생각보다 약했다.

        겨우 이 정도의 힘을 가졌으면서, 어째서 가만히 있던 나를 건드린 것일까?

       

        나는 잠시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를 관찰하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를 무시한 채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에게 물었다.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여. 이젠 자네들이 가져온 보상을 들어봐도 되겠는가?”

       

        “그래.”

       

        나의 말에 페르제스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와 내가 작성했던 ‘계약’이 나타난다.

       

        = 우리는 계약을 지키지 못했다. 허나 그대의 자비로 계약이 파기되지 않았으니, 우리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지급할 것을 약속한다.

       

        스스슥!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의 선언에 따라 계약의 위로 새로운 계약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계약의 저울’이 나타나며, 저울의 한쪽 접시에 우리의 ‘계약’이 얹어진다.

        이제 저 반대쪽에 나에게 지급될 보상을 얹는 것으로, 저울의 수평을 맞추면 된다.

        몇몇 초월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계약의 공평성을 확인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해 보는 것은 처음이다.

       

        “원하는 것이라도 있나?”

       

        “흠…….”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의 말에 잠시 고민에 들어갔다.

        우선은…….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여. 우선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지?”

       

        “이 인간.”

       

        움찔!

       

        내가 지목한 인간 아케포라스가 몸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를 지목한 채 물었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에겐 여전히 ‘내 뿔을 가져오라’라는 시련이 내려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

       

        “즉, 나는 여전히 이 인간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뜻이지.”

       

        내 말에 다른 신들이 황당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월자가 겨우 필멸자에게 위협을 느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구했다.

       

        “내 첫 번째 요구는 간단하다. 이 인간에게 내려진 마지막 시련을 철회하는 것이다.”

       

        “멸천룡이시여…….”

       

        “…….”

       

        내 말에 신들 사이로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 ㅋㅋㅋㅋㅋ

        – 처음부터 세게 나가시네욬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엌ㅋㅋㅋ

        – 차도녀 라나님! 최고!

        – ㅋㅋㅋ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간다.

        언뜻 감탄의 보이기는 하지만 왜 여기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뭔가가 있나 보다.

       

        – 그 인간을 위해서 그런 건가요?

        – 역시 착하신 라나님!

        – 천사 라나님!

        – 인간을 도와주는 천사님!

       

        “음?”

       

        그런데 가만히 채팅창을 바라보니, 이상한 오해를 하는 이들이 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시청자들의 오해를 정정해 주기로 했다.

       

        “나는 딱히 인간을 위해 그런 요구를 한 것이 아니란다.”

       

        – ?

        – ?

        – ??

        – 엥?

        – ?

        – 네?

       

        내 말에 시청자들이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당황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것은 아주 당연한 요구란다. 애초에 상대방이 인간을 이용해 나에게 해를 끼치려 했고, 그것으로 인해 보상을 받게 된 상황이지. 그렇다면 당연히 그 원인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 일리가 있어?!

        – 어라?

        – 그러네?

        – ㄹㅇㅋㅋ

        – 아닠ㅋㅋㅋㅋ

        – 맞는 말이야!

        – 맞는 말이긴 함.

       

        그제야 시청자들도 납득했다.

        애초에 이것은 이쪽 세상의 인간들에게도 당연한 일이지 않나?

       

        – 그런데 인간은 솔직히 별 위협이 안 되지 않나요?

        – 그러니까 모르죸ㅋㅋㅋ

        – 상대가 상대여야죸ㅋㅋㅋ

        – 라나님이면, 상대가 SCP여도 안심됨ㅋㅋㅋㅋ

        – ㅋㅋㅋㅋ

       

        “그래. 확실히 필멸자가 나에게 위협이 될 수는 없지.”

       

        전에도 말했지만, 필멸자는 초월자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다.

        무슨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애초에 그런 ‘법칙’인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보자면 시청자들의 말이 맞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거고, 이건 이거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인간이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그 인간을 이용해 나에게 피해를 줄 의도가 있었다는 부분이 중요하단다.”

       

        즉, 그것을 먼저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더냐?”

       

        – 그게 이럴 때 쓰는 말이던갘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그게 그럴 때 쓰는 말은 아니에욬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아닠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웃기 시작했다.

       

       

        *            *            *

       

       

        나의 말에 페르제스가 난색을 표했다.

        그는 찌푸린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것은 조금 힘든 요구다.”

       

        “어째서지?”

       

        “그 시련은 나의 이름으로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아케포라스에게 내려진 8개의 시련.

        그것은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가 자기 ‘이름’을 걸고 한, 일종의 ‘계약’이었다.

        그렇기에 시련의 조건을 만족한다면 페르제스는 그 약속을 반드시 이행해야 했다.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페르제스 본인의 이름과 명예를 담보로 잡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계약’이라는 것.

        즉, 이 계약을 내건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순간, 이 계약에 건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의 이름과 명예에 흠집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냐?”

       

        “그렇더라도, 주신으로서의 내 이름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비록 페르제스 본인이 한 것은 아니나, 그가 자기 대리인으로서 내건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가 낸 시련이다.

        이제 와서 그 시련을 아예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

        만약 그랬다가는 하늘의 주신에게 향하는 지성체들의 ‘신앙’에 큰 타격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니 이해해 주면 안 되겠나?”

       

        “……하늘의 주신이여.”

       

        나는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너희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피해자다.”

       

        “…….”

       

        “그리고 방금 너의 말은, 피해자인 내가 손해를 감수해 달라는 것이다.”

       

        이번 일에서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그들과의 계약대로 엘렘케라는 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마그마 안에 몸을 담근 채 푹 쉬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내 뿔을 노리는 인간에게 위협(?)을 당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분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진정으로 피해자라면, 이것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요구일 터.

       

        “……혹시 너희들은 피해자도 손해를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냐?”

       

        “…….”

       

        “만약 너희의 문화가 그렇다면, 그 정도는 고려해 줄 수 있다.”

       

        “……후우. 그것은 아니오.”

       

        내 말에 페르제스는 난감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딘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난감해하는 것 같기도 한 모습이다.

       

        그렇게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한 페르제스.

        그러고는 이내 결론을 내린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다. 그대의 요구대로, 이번 시련은 철회하도록 하지.”

       

        투우우우웅-!

       

        페르제스의 선언과 함께 이 세상에 커다란 울림이 퍼져나갔다.

        인간 아케포라스에게 묶여 있던 계약이 깨져나가는 소리였으며, 동시에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그의 ‘신앙’에 균열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초월자 본연의 힘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으나, 당분간 이 차원에서 ‘신’으로 활동하기엔 여러모로 제약이 따르겠지.

       

        “주신님!”

       

        “이럴 수가!”

       

        “페르제스시여!”

       

        그동안 쌓아왔던 견고한 신앙에 균열을 일으키는 선택을 한 페르제스의 행동에, 그를 따라온 신들이 기겁한다.

        그리고 하늘의 주신 페르제스는 그런 이들을 돌아보며 크게 소리쳤다.

       

        “조용!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네.”

       

        “알겠습니다.”

       

        주신의 서슬 퍼런 명령에 다른 신들이 고개를 숙인다.

        방금 자기 신앙을 스스로 깎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정도의 신앙이라니.

        역시 한 세상의 ‘주신’이라는 것일까?

       

        철컥!

       

        그 순간 ‘계약의 저울’이 기울었다.

        나의 요청이 받아들여지며, 그만큼 내 몫의 보상이 깎여나갔다는 뜻이리라.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를 대가로 받아 가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저 저울의 기울기는 이번 요청의 몫까지 계산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일반적으로는, 지금의 기울기가 이번 사태로 내가 받을 수 있는 대가의 양이라는 뜻이다.

       

        “흠…….”

       

        저울의 기울기를 가늠해 보며, 나는 다음엔 무슨 대가를 요구할지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            *            *

       

       

        “주인님. 간식입니다.”

       

        “고맙구나.”

       

        때마침 도화가 오늘의 간식을 가져왔다.

        이것은…… 만두라는 인간의 음식인가?

       

        – 갸아아아악!!

        – 절단마공 뭔데에에에!!

        – 그런데 갑자기 만두 먹고 싶어짐.

        – 아… 딤섬 생각나네….

        – ㅋㅋㅋㅋㅋㅋ

        – 드래곤님의 절단마공! 효과는 대단했다!!

       

        “옴뇸뇸.”

       

        나는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이것만 먹고 이야기해 주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두 점심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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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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