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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6

        싸움의 날이 밝았다.

        이번 싸움을 위해서, 페르제스는 신계의 한쪽을 사용하기로 했다.

       

        “여전히 다른 신들은 보이지 않는구나.”

       

        = 밝혀서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나를 이곳까지 안내해 준 푸푸르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이번 일 역시 신들 사이에서 나에게 잘못한 일이었다.

        그림자의 여신 칼리파 사건 때도 페르제스가 자기 신앙을 깎아내기까지 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다른 신들이 알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지.

       

        = 뭐, 알만한 이들은 다 알겠지만 말이죠.

       

        “음…….”

       

        푸푸르마의 자조적인 말에, 나는 그냥 침묵했다.

        그저 힘내라는 말 외에는 해 줄 말이 없군.

       

        어쨌든 최대한 다른 신들이 알지 못하게, 하지만 알만한 이들은 전부 알고 있을 싸움이 벌어질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지난번 재판에 참석했던 이들 이외에도 다른 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지?

       

        = 10계 상위신들입니다.

       

        “아아…….”

       

        푸푸르마의 귓속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푸푸르마가 말한 ‘알만한 이들’이 바로 저들이었으리라.

       

        꾸벅 인사를 함으로써 안내를 끝마친 푸푸르마가 물러섰다.

        나를 기다리는 10계 상위신들과, 나를 노려보는 엔델로가 있는 그곳으로 걸어가자, 페르제스가 나를 맞이했다.

       

        = 왔군.

       

        “그래.”

       

        아무렴. 와야지.

        페르제스와 인사를 나누는데, 갑자기 다른 이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 반갑습니다 멸천룡이시여. 제 이름은…….

       

        = 그만! 경거망동은 허락하지 않겠다!

       

        나와 엔델로의 싸움 소식을 알고 끼어든 다른 10계 상위신 중 하나가 나에게 인사하려다 페르제스에게 제지당했다.

        무시무시한 분노로 다른 10계 상위신들을 제압한 페르제스가 그들에게 일갈했다.

       

        = 나는 너희의 참관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러니 너희들도 함부로 행동하지 마라! 알겠느냐?!

       

        = 네!

       

        = 알겠습니다.

       

        = 주신의 말씀을 따릅니다.

       

        그렇게 10계 상위신들을 제압한 페르제스의 시선이 다시 한번 나에게 향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옆으로 시선을 돌려 엔델로를 바라보았다.

        주신의 시선을 받게 된 엔델로가 몸을 움찔거렸다.

       

        = ……시작하지.

       

        페르제스의 말과 함께 공간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주신의 ‘언령’.

        이 세상의 ‘관리자 권한’을 가진 이의 명령에, 세상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르륵!

       

        “흠.”

       

        순식간에 나와 엔델로가 마음껏 싸울 수 있는 공간이 생성되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난리를 피운다고 하더라도, 바깥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페르제스 이상의 힘을 가지지 않은 이상 말이다.

       

        = ……하! 드디어 이 시간이 왔군!

       

        “음?”

       

        분리된 공간의 환경을 살피던 중, 하급신 엔델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하급신 엔델로의 모습이 보였다.

        ……저 표정, ‘자신만만한 표정’이 맞겠지?

       

        = 네 녀석의 거짓을 밝혀주마!

       

        “…….”

       

        투기를 숨기지 않는 하급신 엔델로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한 번 나에게 당했으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그러는 것이냐?”

       

        = 그, 그건 그냥 방심했을 뿐이야!

       

        하급신 엔델로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러고는 금세 얼굴을 굳히더니, 힘차게 선언했다.

       

        =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다르다!

       

        “몸에 두른 신기들을 믿고 있는 것이냐?”

       

        = 큭?!

       

        내 말에 하급신 엔델로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챘는지 의아해하는 기색이다.

       

        “그렇게 다른 신격들이 보이는데, 당연히 눈치채지 않느냐?”

       

        다른 신들의 초월과 신격, 그리고 신앙이 담긴 도구는 본래 그 주인이 사용하는 것을 가정해 만들어진다.

        즉, ‘신기’의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주인이 사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주인이 정해진 도구라도, 도구는 도구다.

        비록 주인 만큼의 위력을 낼 수는 없더라도, 다른 이들도 최소한의 자격만 맞는다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여신 네페테르의 노력이겠군.’

       

        나의 시선이 페르제스를 비롯한 10계 상위신이 있을 곳으로 향했다.

        현재 하급신 엔델로가 가지고 있는 신기는 대부분이 저 10계 상위신이라는 이들로부터 빌린 것들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기로부터 흘러나오는 초월이 10계 상위신이라는 이들과 같은 초월이라면 뻔하지…….

       

        겨우 하급신에 불과한 아이가 빌릴 수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니, 아마도 그의 어머니 되는 여신 네페테르의 노력이 들어간 것이리라.

        그리고 10계 상위신들이 이곳으로 찾아온 이유도 대략 짐작이 되었다.

        아마도 네페테르에게 대강의 사정을 듣고 찾아온 것이겠지.

       

        = 흥!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스륵!

       

        하급신 엔델로의 손에 활이 들렸다.

        그리고 반대편 손에는 은빛의 화살이 들렸다.

        저 활은 본인이 사용하던 것이지만, 화살은 아니었다.

       

        ‘화살이 신기인 것인가?’

       

        피이잉!

       

        하급신 엔델로의 활에서 쏘아진 은빛 화살이 그 기척을 죽였다.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고, 어떠한 모습도 드러내지 않으며, 허공에서 휘어진 화살이 나의 심장 어림에 박혀 들었다.

       

        파악!

       

        = 사냥과 달의 여신님의 은화살이다! 어떠냐!

       

        “그렇구나.”

       

        내 심장에 박힌 은빛 화살을 뽑아 들었다.

        화살을 뽑아 든 심장에서 피가 울컥울컥 솟아오른다.

       

        ‘상처가 낫지 않는군.’

       

        화살에 깃든 신격 때문일까?

        용금을 이용해 상처를 회복하려 하지만 상처는 조금도 재생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예 심장을 뽑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심장을 만들었다.

       

        내가 그러는 사이, 하급신 엔델로는 재빠르게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런 그의 등에선 새의 날개가 파닥거리고 있었다.

        저 날개 역시 다른 10계 상위신의 신기 중 하나로 보였다.

       

        피이잉! 피이잉!

       

        슉! 슉!

       

        하급신 엔델로가 계속해서 은화살을 날린다.

        그렇게 쏘아진 화살들은 모습을 숨긴 채 나의 몸에 박혀 들었다.

        내가 피하더라도 말이다.

       

        ‘사냥의 신격이 담긴 것인가? 성가시군.’

       

        피할 수 없는 화살이기에, 용금을 뽑아내 격추시킨다.

        그렇게 내가 화살을 전부 격추시켰을 때, 이번에는 사슬이 날아와 나의 몸을 휘감았다.

       

        = 이건 어떠냐!

       

        쿠구구구구-!!

       

        이어서 내 위로 커다란 바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포박한 사슬도, 저 바위도 신기였다.

        참으로 많은 신기를 빌렸군…….

       

        콰아아아앙!!

       

        내 위로 바위가 떨어졌다.

       

       

        *            *            *

       

       

        – 헉헉헉!

        –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 결국 진 건가요?

        – 에이~ 더 있죠?

        – 이거 딱 봐도 봐주는 느낌인데?

        – ㅋㅋㅋㅋㅋ

        – ㅋㅋㅋ

        – 아, 빨리 뒷부분 이야기해주세요!

       

        채팅창이 떠들썩하다.

        나는 채팅창을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뭐, 어느 정도 예상한 이들도 있는 모양이구나.”

       

        실제로 그때까지는 내가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맞았다.

        다만 시청자들이 말한 대로 ‘봐준 것’은 아니었다.

       

        “적이 어떤 수를 가졌는지 파악부터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지.”

       

        – 아하

        – 그러니까 탐색전?

        – 일부러 봐주는 척하면서 탐색한 건가요?

        – ㅇㅇㅇ

        – ㄹㅇㅋㅋ

       

        “그래. 탐색했다고 할 수 있단다.”

       

        그리고 바위가 떨어진 순간, 나는 상대의 수를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            *            *

       

       

        “미숙하구나.”

       

        = 헉?!

       

        나의 목소리에, 하급신 엔델로가 화들짝 놀란다.

        그런 하급신의 모습을 ‘감지’하다, 감지의 범위를 나에게로 옮겼다.

       

        나의 아바타는 전신이 망가진 상태였다.

        크고 무거운 바위에 깔린 탓에, 전신이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뭐…… 그렇다고 죽은 것은 또 아니지만 말이다.

       

        주르륵!

       

        나의 의지에 따라 아바타의 형태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살과 뼈, 피로 흩어졌던 신체가 녹으며 용금으로 바뀌고, 이어서 나의 의지에 따라 바위의 아래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든 용금은 다시 아바타의 형상을 이루었다.

       

        = 큭?! 이 괴물이……!!

       

        멀쩡하게 나타난 나를 향해, 하급신 엔델로가 다시금 화살을 시위에 매긴다.

        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네 수준을 파악했으니, 이제 끝내자꾸나.”

       

        = 흥! 그게 될 것 같으냐!

       

        크와앙!

       

        또다시 빌려온 신기인 듯, 하급신 엔델로의 그림자에서부터 맹수의 형상을 한 것들이 솟아올라 나를 노린다.

        머리 위에서는 다른 바위가 떨어져 내렸고, 나의 발목에서부터 다시금 사슬이 휘감아 올라온다.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쏘아지는 은화살.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들어 올렸던 손바닥을 아래로 휘둘렀다.

       

        “휩쓸어라.”

       

        촤아아아아악!!

       

        휘둘러진 나의 손바닥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용금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싸움을 위해서, 나는 나의 본체에게 향했다.

        그리고 황금의 영역에 보관 중이던 여분의 용금을, 아바타가 몸에 품을 수 있는 한계까지 가져왔었다.

        그렇게 가져온 용금이 일시에 풀려나며, 이 일대를 순식간에 뒤덮어 버리기 시작했다.

       

        = 으아아악?!!

       

        철썩!

       

        콰과과과광!!

       

        그것은 마치 용금으로 만들어진 바다와 같았다.

        파도가 치고, 회오리가 휘몰아치며, 이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물’로 이루어진 바다와는 그 결이 달랐다.

        왜냐하면 이것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바다였고,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가가가가가갉!!

       

        용금의 바다에 휩쓸린 모든 것들이 갈려 나간다.

        하급신 엔델로에게 빌려주었던 신기는 물론이고, 그들의 사용자인 엔델로도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했으나, 그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액체는 매우 무거웠고, 나의 의지에 따라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아아악! 사, 살려 줘!!!

       

        콰드득! 콰득!

       

        하급신 엔델로가 신격을 발현하며 어떻게든 용금의 바다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나의 용금은 내 ‘멸천의 초월’조차 흡수하는 특이한 금속이다.

        신기의 주인인 10계 상위신 정도라면 모를까, 저 하급신의 힘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 아아악!! 어머니…….

       

        마침내 하급신의 비명이 잦아들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신격도 사라지고, 거칠게 휘몰아치던 용금의 회오리도 멈췄다.

       

        잔잔하게 멈춘 용금의 바다, 그 수면 위에서 하급신 엔델로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손짓했다.

        그러자 나의 손짓에 따라 용금의 바다가 갈라졌고, 이어서 용금이 움직이며, 그곳에 남은 나의 마지막 자비를 가지고 올라왔다.

       

        “끝났군.”

       

        하급신 엔델로의 머리를 바라보며,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            *            *

       

       

        “그렇게, 나와 하급신의 싸움은 끝났단다.”

       

        – ㅗㅜㅑ

        – 허미

        – 그냥 순살이시네.

        – ㅋㅋㅋㅋㅋ

        – 앜ㅋㅋㅋ

        – 대단하심!

        – 짝짝짝

        – ㅋㅋㅋㅋㅋㅋㅋㅋ

        – 라나님 대단해!

        – 드래곤의 강함은 우주 제이이일!!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재미있게 즐긴 것 같았다.

       

        – 그래서요? 다음은?

        – 다음은요?!

        – 빨리빨리!

        – 피폐! 유혈! 캬하하하하!!

        – ㅋㅋㅋㅋㅋ

        – 어머니 오열!

        – ㅋㅋㅋ

       

        다음 이야기를 요구하는 시청자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끝인데?”

       

        – ?!

        – 헉!

        – ???

        – 앙대!

        – ㅠㅠ

        – 아 왜요!

        – ㅠㅠㅠㅠ

        – 아…. 익숙한 맛이다.

       

        채팅창이 다시금 떠들썩해진다.

        화를 내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나는 방송 화면 위로 시계를 띄웠다.

       

        “보다시피. 이제 곧 방송 종료 시간이기 때문이란다.”

       

        – 앗아아…

        – ㅋㅋㅋ

        – 그럴 것 같드라.

        – ㅋㅋㅋㅋㅋ

        – 그래도 왠지 오래 이야기 들은 기분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내일도 오실거죠?

        – 괜찮아!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자기들끼리 떠드는 채팅창을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나는 딱히 생각해 두지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내일의 내 계획을 단정하다니…….

       

        ‘인간들은 이걸 김칫국 마신다고 하던가?’

       

        대충 그런 속담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다 내일의 일정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내일이라면…….

       

        ‘벨제투스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지?’

       

        슈르네에게 붙잡혀 있을 테니, 내일 하루 정도는 더 시간이 날 것이다.

        어쩌면 이틀은 더 걸릴 수도 있고.

       

        “흠. 그러면 내일 다른 이야기를 더 해 줄까?”

       

        – 오?

        – 오오오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예이!

        – 사랑해요!!

       

        내 말에 시청자들이 좋아한다.

        시청자들의 귀여운 반응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에…… 귀여운 녀석들 같으니.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다. 내일 보자꾸나.”

       

        – 라바

        – 라바

        – 용바

        – 빠빠이

        – 잘 가영

        – 내일 봐요

        – 라바

        – 용바바

        – 빠이

       

        그렇게 오늘의 방송은 끝이 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옛날 이야기는 조금 짧은 것으로 준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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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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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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