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11

        새로운 날이 밝았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방송을 켜…… 기 전에, 먼저 매니저들과 대화를 나눈다.

       

        – 말씀하신 거 준비했습니다!

       

        – 수고 많았다.

       

        조금 급하게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다행히 제시간에 맞춰 완성된 모양이다.

        나는 흡족하게 미소를 지으며 방송을 켰다.

       

        – 라하

        – 용하

        – 용하용하

        – 하이용

        – 라하

       

        “반갑구나 아이들아.”

       

        언제 나와 같이 활기찬 시청자들.

        그들을 맞이하며 오늘의 방송을 준비했다.

       

        –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주실까?

        – ㄷㄱㄷㄱ

        – 새로운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이야!

        – 캬아아아아!! 기대기대

        – 분명히 존나 쩌는 이야기를 해주시겠지?

        – 지금 알바중인데, 라나님 이야기 시각은 못 참지!

       

        “……시청자들도 적당이 모인 듯싶으니, 이제 이걸 보여 줄 시간이로구나.”

       

        방송을 시작하기 전, 매니저들에게 받은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 뭔가요?

        – ?

        – ?

        – ?

        – 뭐에용?

        – ??

        – ?

       

        “뽑기 프로그램이란다.”

       

        다만, 이것은 일반적인 뽑기 프로그램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임의의 단어’를 집어넣고, 그중에서 하나를 뽑는 방식의 ‘기존의 뽑기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 안에는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장르’가 들어 있단다.”

       

        이 프로그램의 안에는 ‘판타지’, ‘무협’과 같은 ‘장르’에 관련된 단어가 미리 입력되어 있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를 뽑는 방식의 간단한 프로그램이다.

       

        “이걸 이용해, 오늘 해 줄 이야기의 주제를 결정해 보겠다.”

       

        – 오

        – 최신식 라나님!

        – 사실 원래도 최신식이긴 하셨음

        – SF도 다녀오셨는뎈ㅋㅋㅋㅋ

        – 이상하게 아날로그처럼 보이는 라나님이였다

        – ㅋㅋㅋㅋㅋ

        – 오. 뭐가 나오려나?

       

        다행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를 가지는 이들도 보일 정도였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할 때마다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지?’라는 고민을 매번 하고는 했는데…… 이제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 고민을 덜어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러면 뽑아볼까?”

       

        – ㄱㄱㄱㄱ

        – 가즈아!!

        – 이젠 무협 좀 나올 때 되었다!

        – 로봇!!

        – 이예이이이이!!

       

        띠리리리릭!!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작동하기 시작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키워드’는…….

       

        “사이버 펑크로구나.”

       

        – 오

        – 사펑좋지

        – 사펑 처음 아님?

        – 이야아아… 이것도 좋은데?

        – 오히려 좋음?

        – ㅋㅋㅋㅋㅋㅋㅋㅋ

        – 라나님의 사펑 이야기? 이건 못 참지!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다만, 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음…… 사이버 펑크라…….”

       

        – 설마 사펑은 경험이 없으신가요?

        – ㄹㅇ?

        – ?

        – 진짜 없으신가?

        – 왜 고민하세요?

       

        “너희들이 말하는 사이버 펑크 비슷한 곳을 여러 번 경험했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단다.”

       

        –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야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섴ㅋㅋㅋㅋ

       

        그렇다.

        인간들이 사이버 펑크라 부르는 차원은, 내 기억만 하더라도 20곳 이상이나 방문했다.

        그중에서 이야깃거리가 될 경험담이 없는 곳을 제외하더라도, 적어도 8개 이상의 이야기가 남는 것이다.

       

        “……한 번 더 뽑아보자꾸나.”

       

        – ㅇㅇㅇㅇ

        – 뽑기 가즈아!

        – 이번에는 액션으로!!

        – 사펑에는 역시 느와르!

       

        주요 키워드 옆에 존재하는 ‘세부 키워드 뽑기’ 버튼을 클릭한다.

        그러자 다시 한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새로운 키워드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유유자적’이 떴구나.”

       

        – ㅋㅋㅋㅋㅋ

        – 와. 지금 사펑에 유유자적이 뜬거임?

        – 진짜 안 어울린닼ㅋㅋㅋ

        – 부자는 부자대로 유유자적이 안 되는 세계관인뎈ㅋㅋㅋ

        –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국룰 아님?

       

        채팅창이 ‘ㅋㅋㅋ’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대부분 시청자들은 ‘사이버 펑크’와 ‘유유자적’이라는 키워드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마침 적당한 이야기가 있구나.”

       

        – ??

        – 있어?

        – 아니, 이게 있다고?!

        – 허미….

        – 외모, 돈, 힘, 이야기까지… 라나님은 없는 게 뭡니까!!

        – 헐?

       

        시청자들의 놀람을 배경 삼아.

        나는 천천히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            *            *

       

       

        “이곳입니다.”

       

        “흠…….”

       

        나는 눈앞에 펼쳐진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먼지가 가득 섞인 바람이 휘몰아치는 평원.

        생명의 기척은커녕, 잡초조차 보이지 않는 메마른 땅이다.

       

        천천히 드넓은 땅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를 이곳으로 안내해 준 ‘부동산 중개업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기계로 교체한 왼쪽 눈을 쓱쓱 문지르더니, 조금 다급하게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계약하시겠습니까?”

       

        “그래. 만족스러운 장소로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가방을 중개업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에스덤 컴퍼니’라는 회사에 소속된 ‘전투 사원’ 한 명이 가방을 받더니, 중개업자의 옆에서 가방을 열었다.

       

        번쩍번쩍!

       

        “오오오-!!”

       

        가방 안에서 번쩍번쩍 빛을 내뿜는 ‘순금’ 덩어리들을 바라보던 중개업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이것으로 이 근처의 땅은, 전부 손님의 것입니다.”

       

        띠링!

       

        성공적으로 땅문서가 다운로드 되었음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계약이 끝나자, 중개업자와 그를 호위하러 따라온 전투 사원들이 재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거리가 좀 떨어진 그들이 속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뭐가?”

       

        “아니…… 이곳은 무법지대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긴 중금속으로 오염된 땅이고요. 무법자들이 막 돌아다니는 곳의 땅을…….”

       

        “신경 쓰지 마. 우린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하고, 크레딧이나 벌면 되는 거야.”

       

        “…….”

       

        평균적인 인간에겐 저들의 속삭임이 들리지 않았겠으나,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갖춘 아바타의 귀에는 그들의 속삭임이 잘 들렸다.

        그리고 나는 걱정을 표한 인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괜한 걱정을 하는군.’

       

        비록 나의 정체를 알지 못했기에 나온 걱정이었으나, 그것은 분명 순수한 호의였다.

        이 세상에서 생존한 인간들에게서 보기 힘든 ‘호의’ 말이다.

       

        [마스터 라그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렇구나.”

       

        때마침 에코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제야 나는 인간에게서 관심을 떼어내고, 나의 소유가 된 드넓은 땅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의 치안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무법지대’에 존재하며.

        중금속에 오염되어 생명체가 살아남기 힘들며.

        또 다른 자원이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곳.

        인간들이 말하길, 쓸모없는 땅.

       

        “그럼, 내 둥지를 짓도록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나의 명령과 함께, 나와 에코는 내 땅을 꾸미기 시작했다.

       

       

        *            *            *

       

       

        – 뭐임?

        – 갑자기 무슨 일인가요?

        – 라나님이 땅을 샀다고?!

        – ㅎㄷㄷ

        – 사펑인가요?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사전 설명도 없이 이야기를 시작한 탓으로 보였다.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처음부터 설명하기로 결심했다.

        다만, 이 결정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그 이전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아서 말이다. 조금 두루뭉술한 설명이 될 텐데…… 괜찮겠느냐?”

       

        – 넹

        – ㅇㅇㅇㅇ

        – 괜찮아요

        – ㄱㅊㄱㅊ

       

        괜찮은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달의 근처에서 튀어나온 나는, 오염된 지구를 보았단다.”

       

        그 세계는 인간들이 과학 기술을 크게 진보시킨 차원이었다.

        마법이나 인간 이외의 종족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이 오로지 과학 기술만을 발전시킨 세상이랄까?

        다만 과학 기술만을 발전시킨 탓에, 환경 오염이나 동족을 위하는 ‘선함’의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진 세계였다.

       

        – 와

        – 진짜 전형적인 사펑 세계관이네

        – 그렇지. 사펑은 디스토피아가 디폴트긴 해

        – ㅋㅋㅋㅋㅋㅋ

        – 이번엔 전통 사펑 드가나요?

       

        “어쨌든, 오염된 지구를 바라보던 나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단다.”

       

        그냥 달에서 코즈믹 에너지를 모으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든가.

        아니면 오염된 지구에 내려가든가.

       

        그리고 나는 지구로 내려가기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잔잔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 ?

        – ??

        – 자극이 왜요?

        – ???

        – ?

       

        “바로 이전의 차원이…… 전에 이야기했던 ‘외신들과 싸웠던 차원’이었기 때문이란다.”

       

        – 앗

        – Aㅏ….

        – 아하. 힐링하시려고 그러셨구나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시청자들 중 한 명이 딱 맞는 단어를 언급했다.

        그래. ‘힐링’이 맞는 단어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힐링이 필요했던 것 같구나.”

       

        초월자들과 싸우고, 인간들은 나를 신으로 추앙하는 차원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렀었다.

        그리고 남편의 일 때문에, 나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내색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오랜 시간을 ‘신’으로 추앙받는 경험은, 알게 모르게 나를 지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나를 신으로 추앙하지 않는 인간들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이해될 것 같기도 함

        – ㅋㅋㅋㅋㅋㅋㅋㅋ

        – 힘내세여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나는 ‘인간’인 척을 하며 그쪽 인간들의 사회를 둘러보았다.

        그들의 생활상과 상식, 규칙 등을 관찰했다.

       

        그렇게 인간들을 관찰한 지 1년 정도 되었나?

        결국,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쪽 세상의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그럴 것 같음

        – ㄹㅇㅋㅋ

        – ㅋㅋㅋ

        – ㄹㅇㅋㅋ

       

        그 세계의 인간들은 몸의 절반을 기계로 교체했으면서, 나를 보면 ‘천연’이라고 외치며 끊임없이 나를 납치하려 했다.

        심지어 나를 습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공격하고는 했다.

        그것도 ‘인간들의 사회 안’에서 말이다.

       

        “무리 동물의 사회 안에서 야생을 겪는 경험이란…… 참으로 기가 막혔지.”

       

        그곳이 야생이었다면 나 역시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성체의 사회’란, 야생과는 전혀 다른 환경을 구축해 지성체들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자신들의 법과 사회 안에서 별다른 걱정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1년간 인간들의 사회 안에서 살아가며 느낀 것은, 그곳이 ‘인간 사회’의 탈을 쓴 또 다른 ‘야생’이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짐승들이었고, 그곳에선 내가 원하는 ‘힐링’을 느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이미 몸의 절반 이상을 기계로 바꾼 시점에서 인간이 아니지 않을까 싶구나.”

       

        – ㅋㅋㅋㅋㅋㅋ

        – 생각해 보면 그렇긴 함ㅋㅋㅋ

        – 테세우스의 배도 아니곸ㅋㅋㅋㅋ

        – 순수 인간은 아니긴 하죠

        – ㅋㅋㅋ

        – ㄹㅇㅋㅋ

        – 고생하셨네요.

       

        “뭐, 그렇게 되어서 나는 그냥 인간들의 사회를 떠나기로 했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드래곤으로서 인간들의 눈을 피해 숨어 있긴 싫었다.

        나는 조금 더 ‘나를 신으로 보지 않는 인간들’ 사이에 머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약간의 꾀를 내었다.

       

        인간들의 사회에서 거리가 있으나, 완전히 동떨어진 곳은 아닌 곳에 드넓은 영역을 구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들에게 ‘가치’가 있는 자원을 만들어, 그것으로 인간들과의 연결을 유지한다.

       

        – 오오

        – 황금이라도 만드셨나요?

        – 아, 금광 만드셨구나

        – ㅋㅋㅋㅋㅋ

        – 사펑에서 귀농을 하시는 라나님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역시 황금인가요?

       

        “황금도 분명 가치가 있는 물건이겠으나…… 나는 조금 더 가치가 있는 자원을 만들기로 했단다.”

       

        오염된 지구 환경.

        대부분의 식량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세상의 한복판.

        그곳에서 가장 가치가 있을 자원 중 하나.

       

        “나는 농장을 만들기로 결심했지.”

       

        – 아닠ㅋㅋㅋㅋㅋ

        – 진짜 귀농이었엌ㅋㅋㅋㅋㅋ

        – 사펑에서 전원생활 실화냐곸ㅋㅋㅋㅋ

        – 앜ㅋㅋㅋㅋㅋ

       

        채팅창이 ‘ㅋㅋㅋ’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래 단독 소설로 써볼까 생각하던 아이디어입니다.

    사이버 펑크 세계관에서는 신선한 채소와 고기, 곡류를 비싸게 취급하죠?

    이제는 아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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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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