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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6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밖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찰리.”

       

        “네.”

       

        그에게 ‘빌려준 밭’에서 농사를 짓던 찰리가 내 부름에 빠르게 달려온다.

        그러고는 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

       

        인간들에게 이런 예절도 있었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전 차원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찰리의 ‘예절’이 조금 부담스럽다.

       

        나는 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망친 인간들이 있다.”

       

        “아, 그렇습니까?”

       

        내 말에, 찰리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안타깝다는 감정’은 빠르게 사라졌다.

       

        “도망친 인간은 두 명. 그중엔…… 네 친구였던 이도 있다.”

       

        “…….”

       

        내 말에 찰리가 침묵한다.

        그의 얼굴에 어려 감정이 보였으나, 나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본래라면 그냥 처리했을 것이나, 그래도 네 친우였던 이가 아니었더냐?”

       

        “……이미 저희는 그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찰리가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찰리의 반응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팟! 팟!

       

        내 영토를 벗어나 도망치던 두 명의 인간들이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이 차원의 인간들이 신체를 기계로 치환할 수 있는 기술이 있더라도, 몸에서 목을 분리하고서도 살아날 수는 없을 것이다.

        뇌는 손상이 빠르게 일어나는 기관이니까.

       

        ‘탈주 노예’의 처리를 끝낸 후, 나의 시선이 주위로 향했다.

        그러자 각자 밭에서 농사일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보였다.

       

        “끄응!”

       

        “차, 착하지? 히이익?!”

       

        내가 만들어 준 농기구로 밭을 파헤치는 이들도 있었고, 가축화된 동물에게 쫓기는 인간 노예들도 보였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누구냐 하면, 지난번에 내 영토를 습격했던 ‘무법자 인간’들이다.

       

        처음에는 그냥 처리하려 했었던 이들이었으나, 찰리는 그런 나에게 한 가지 제안했다.

        이들을 ‘노예’로 삼아, 일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찰리의 제안에 의문을 품었다.

        왜냐하면 나는 굳이 인간들을 노예로 부릴 필요가 없었으니까.

       

        일손이 필요하다면 용금으로 인형을 만들면 된다.

        오히려 딴생각하는 인간보다는 내 명령에만 복종하는 인형이 훨씬 더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다지 필요 없다고 생각했건만…….”

       

        하지만 놀랍게도, 찰리가 노예로 삼으라 권유한 ‘무법자’들에겐 ‘농사’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환경이 오염되며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지 오래였으나, ‘무법 지대’에서 살아가는 무법자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염된 땅에서도 그럭저럭 소출을 얻을 수 있는 작물을 조금이나마 키우고 있었다.

       

        “확실히. 네 말대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유용하구나.”

       

        “과찬이십니다.”

       

        내 농장에서 기르고 있는 작물들은, 사실 인간들이 말하는 ‘농사’보다는 ‘생장’에 더 가까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농사’라고 한 일은 땅에 씨앗을 뿌린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농사와 축산에 대한 지식이 없다.

        인간들이 하는 것들을 지켜본 경험은 많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관찰한 경험’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나는 어설프게 인간들의 농사를 따라 하기보단, 그냥 땅과 물에 용금의 에너지를 흘려 넣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어쨌든 잘 자라면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농사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은 확실히 달랐다.

        나 스스로는 농장이라고 지칭하지만…… 사실 그냥 ‘야생’의 모습에 가까웠던 나의 농장(?)이, 인간들의 손길을 타며 내가 알고 있던 ‘인간의 농장’으로 변화하고 있었으니까.

       

        “……오록스의 개체 수가 늘었군.”

       

        “그렇습니다.”

       

        찰리와 함께 변화한 내 농장을 둘러보던 중, ‘오록스’라는 ‘우제류’에 속한 가축의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한 것이 보였다.

        오염이 없고, 영향이 풍부한 먹이가 가득하고, 천적마저 없는 나의 농장.

        그곳에서 가축이 된 ‘오록스’라는 짐승들이 빠르게 개체 수를 불린 것이다.

       

        “저게 저렇게 빠르게 번식하는 놈들이 아닌데?”

       

        “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찰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잠시 찰리를 바라보다, 다시 오록스 무리가 풀을 질겅질겅 씹는 목초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턱을 문지르다…… 찰리에게 말했다.

       

        “찰리.”

       

        “네.”

       

        “오늘은 저 오록스를 맛보자꾸나.”

       

        개체 수가 늘었으니, 드디어 가축화된 짐승을 잡아먹을 시간이다.

       

       

        *            *            *

       

       

        – ㅋㅋㅋㅋㅋㅋ

        – 이럴 것 같았엌ㅋ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

        – 오! 고기 파티다!

        – 아…. 갑자기 고기 먹고 싶어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ㄹㅇㅋㅋ

        – 재미있게 지내셨넼ㅋㅋㅋㅋ

       

        “세세한 부분은 다르지만, 대충 이런 패턴의 생활이 계속 이어졌단다.”

       

        1. 내 영토의 소문을 들은 인간들이 내 영토에 침범한다.

        2. 내가 그들을 붙잡는다.

        3. 찰리의 관리하에, 그들을 노예로 부린다.

        4. 내 농장이 점점 크기를 불리기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 내 노예들도 전부 인간으로 돌아왔지.”

       

        – 인간이 인간으로 돌아옴?

        – 아, 찰리처럼 기계 부분이 사람 몸으로 돌아왔다고요?

        – ㅋㅋㅋㅋㅋㅋ

        – 아닠ㅋㅋㅋ 무슨 신화냐고욬ㅋㅋㅋ

        – 와! 신체 재생!

       

        내 농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당연히 매끼마다 내 농장에서 수확한 작물을 먹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계로 이루어져 있었던 그들의 신체가 점점 인간의 신체로 다시 바뀌었던 것이다.

        마치 찰리처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찰리처럼 나를 경배하는 인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단다.”

       

        물론 여전히 나를 끔찍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나를 두려워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몇몇은 찰리처럼 나를 경배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질색했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한 마을의 인간들이 내 영토에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고, 찰리가 다른 인간들과 함께 내 농장에서 수확한 수확물을 바깥에 판매하고 돌아오기도 했었지.”

       

        다양한 이야기가 있으나, 이번에는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 왜요?

        – 크아아악!

        – 그냥 들어도 개꿀잼으로 보이는데!

        – 갸아아아악!!

        – 라나님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도 보여주세요!

        – ㅠㅠㅠㅠㅠㅠㅠㅠ

        – 그럴 거면 설명하지도 마시지….

        – 힝…

       

        “듣고 싶다면 해 줄 수는 있지만…… 전부 들으려면 적어도 한 달은 필요할 텐데?”

       

        한 달 내내 같은 이야기만을 들을 자신이 있느냐?

        모두가 그럴 자신이 있다면, 나와 약속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해 줄 수 있다.

       

        – 아.

        – 그건 무리

        – 라나님과의 약속은 좀 무서워요

        – 죄송합니다

        – 우린 아직 라나님의 첫 등장을 잊지 못함.ㅋㅋㅋㅋㅋ

        – 무슨 일 있나요?

        – 나만 이해 못함?

        – 홍대 거리 공약 사건 검색해 보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 계속 이야기 해주마.”

       

        나는 음료수로 목을 축인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영주님. 이번 달 매상입니다.”

       

        “음…….”

       

        나는 농장의 총관인 찰리가 내미는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그가 내민 ‘단말기’의 화면이 휙휙 바뀌고, 그 위로 숫자가 적혔다.

       

        “각 도시에 들어간 ‘식당’의 운영은 순조롭습니다. 진짜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를 적절한 가격에 판매하는 전략이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습격도 많았던 것 같은데?”

       

        “하하하. 영주님의 병사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지요.”

       

        찰리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활짝 미소 지었다.

        세월이 흐르며 늘어난 주름살이, 그의 얼굴에 가득하다.

        육체는 내 영토에서 자란 작물을 섭취하며 강건해졌으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간 것이다.

       

        나는 손에 든 단말기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영주 저택’이라 불리는 내 집의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서는 내 영토에서 살아가는 ‘영주민’들이 큰 도시를 이룬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            *            *

       

       

        – 아니. 잠깐만요

        – 영주? 영주?!!

        – 아닠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게 무슨 일이얔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진짜 개 뜬금없넼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이 ‘ㅋㅋㅋ’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내가 이야기를 너무 뒤로 건너뛴 모양이다.

        그렇기에 나는 시청자들에게 간단하게나마 설명하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 어쩌다 보닠ㅋㅋㅋㅋ

        – 어쩌다 보니라니욬ㅋㅋㅋ

        – ㅋㅋㅋㅋ

        – 너무 무책임한 것 같은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영주가 어쩌다 될 수 있는 거였냨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웃는다.

        하지만 정말로 저 ‘어쩌다’라는 표현 이외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그저 인간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농장을 경영한 것이 전부였단다.”

       

        그런데 나와 계약해 농장을 경영하던 인간들이 하나씩 의견을 내놓았고, 그것들을 반영할 때마다 내 농장은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늦어서, 나는 어느새 인간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우두머리 될 생각 없으시다면서욬ㅋㅋ

        – ㅋㅋㅋㅋ

       

        “그래. 난 우두머리가 될 생각 따위는 없었지.”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난 인간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원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 이후로, 인간들의 말은 한 번씩 의심해 보는 습관이 생겼지.”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아닠ㅋㅋㅋㅋㅋㅋㅋ

        – 앜ㅋㅋ 몰래 방송 보다가 터짐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뭐, 그럼 이야기를 계속 하마.”

       

        대충 궁금증이 풀린 것 같았기에, 나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쩌다보니 인간들의 영주가 되어버린 드래곤님.

    그리고 식량으로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하는데…. (진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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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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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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