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란 무엇인가.
누가 정의하고, 누가 판단하는가.
자유가 약속된 곳에서 모두 함께 웃고 떠들던 시절의 추억을 뒤늦게 범죄라 낙인찍을 수 있는 것인가.
50년 전 다 함께 수박밭을 서리하고 주인 아저씨에게 쫓기며 깔깔거리던 꼬맹이들이, 뒤늦게 그 중 한 명만을 콕 집어서 절도범이라 매도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그것도, 단순히 룰렛에 의해서 주목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법정에서 판사님께도 당당히 말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여긴 법정이 아니고, 내 죄는 판사님이 판단해주지 않는다.
이건 한 명의 원님이 마음대로 처분을 정하는 원님재판이자,
구경꾼들이 마음껏 돌을 던지며 여론을 조성하는 마녀재판이다.
변호사의 도움조차 없이 이 가시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주장하면 안 받아주겠지?
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뒤로 한 채, 원님에게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이디 너무 긴데 줄여 불러도 될까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네]
《어떻게 줄이면 될까요? 따뜻한님? 괜찮나요?》
잠시 망설였다.
왠지 따뜻하게 작별할 것 같잖아. 저렇게 부르면.
하지만 난 지금 이미 처형대에 목까지 올려놓고 있는 잠재적 죄인이다.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그 정도 사리분별은 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네.]
《일단 룰렛의 결과는 준엄한 거니까 시참 초대는 드리기는 할 건데…… 하실 건가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제가 급한 일정이 있어서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혹시 사면권으로 트레이드 가능할까요]
일단 준비한 변호 전략을 꺼내들었다.
도댓 방송의 컨텐츠 중 하나, 사면권.
죄질이 매우 나쁜,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자가 아니라면 영구밴조차도 해제받을 수 있는 권리다.
사면권은 룰렛으로 얻는 것이고, 내 시참권도 룰렛으로 얻은 것이니, 응당 1:1 교환이 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내 기발한 전략에 대한 채팅창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사면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댓쌤 방에 사면권이 있었어?』
『진짜 가끔 밴 풀어달라고 도게자한 놈들 한 번에 모아다가 룰렛 돌려서 1명 풀어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도 밴 당할 건 이미 알고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절대! 안 바꿔준다! 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되겠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롱하거나,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선생님 저 놈 아크방에서 급한 일정 있다고 튀고는 여기서 방송 보고 있던 놈입니다 속지 마세요】
고자질하거나,
『그놈의 급한 일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면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넌 나가라~』
비웃었다.
……억울하다.
그 때는 정말 급한 일정이었다. 지금은 아니긴 한데, 아무튼.
도댓의 도적 1패쫑 방송은 중대사항이다.
유일하게 도적을 최대 12판까지 연속으로 하는 컨텐츠인데, 부캐를 소모하는 컨텐츠다보니 자주 하지도 못한다고.
그런 의미에서는 사전에 공지도 안 해줬으면서 갑자기 도적 1패쫑을 선언한 도댓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차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고보니…… 아크한테는 치킨을 다 먹고 나서 인증샷을 보내며 사과 문자를 보내려 했는데, 언니가 집에 오면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순간적으로 잊어버렸다.
머리 한 켠의 ‘사과할 일 목록’에 아크를 적어 두고 있는 사이, 도댓의 방송에서는 또다시 억울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아크님? 따뜻한님, 아크님 방에서도 또 뭐 하셨어요?》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뭘 안 했는지 묻는게 더 빠릅니다 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건 그래』
『ㄹㅇ 안 한게 뭐냐』
『ㄹㅇ 진짜 안 한게 뭐지……?』
『안 한 게 없 어……!』
아닌데. 안 한 거 많은데.
생각만 하고 차마 못한 것도 많고.
진짜 많은데.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억울해요]
《음……일단 알겠습니다. 아크님 방에서 있었던 일은 아크님이 판단하실 문제니까요.》
《그래도 사면권 트레이드는 안 되고요. 보니까 전과도 있으시네요……어디보자. 마지막에 도적 얼굴 단검 아스키아트 번갈아 보내신 걸로…… 7일 차단.》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사연이 있었어요]
『사연 없는 범죄 없다』
『범죄자들 레퍼토리는 어떻게 항상 똑같냐』
『도적 얼굴이랑 단검을 도배하게 되는 사연은 대체 무슨 사연임……?』
『도적이 집에 침입해서 목에 단검을 대고 협박했나?』
『 ㅇㅎ 구조신호였구나』
『구조신호였으면 인정이지』
《음……》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민에 빠지는 듯하던 도댓이, 이내 기기를 조작하여 음원재생 사이트로 들어갔다.
안 돼.
저거-
《안타깝지만 죄는 죄니까요. 시참 한 번 하시고, 깔끔하게 졸업하시죠. 가시는 길 적적하지 않게 노래 한 곡 틀어드릴게요.》
–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도댓이 시청자를 졸업 시킬때마다 트는 음악이 들려왔다.
『오랫동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한 명 이렇게 졸업하는구나』
『멀리 안 나갈게 잘가~』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잘~ 가시오 잘~ 있으오~ 축배를 든 손에~』
『처형 노래 ON』
『졸업 노래입니다~ 처형 아니에요~』
『졸업(퇴학)』
아이피 밴을 포함한 영구밴 처분이다.
언젠가 우연에 기대어 사면권을 얻어내기 전까지는 절대로 해제되지 않는다.
한 번 영구밴을 당한 시청자는, 부캐로 찾아와서 돈을 내며 풀어달라고 해도 그 아이디까지 밴을 당할 뿐이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오나 스트리머는 하루에도 한 명씩 생겨나니 거의 무한하고,
챌린저 스트리머도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도적으로 예능하는 스트리머도 있기는 있지만,
마스터에서 챌린저 사이 구간에서도 도적을 써주는 스트리머는 없다.
도댓 하나다.
정확히는, 전세계를 기준으로 도댓 외에 러시아 여자 스트리머가 한 명, 폴란드 남자 스트리머가 한 명 있다.
그런데 얘네는 심지어 영어도 안 쓴다.
채팅마저 다 러시아어 혹은 폴란드어다.
그러니까,
만약 도댓 방송에서 아이피 밴을 당하면, 나는 앞으로 도댓 방송에서 채팅을 치기 위해 이사를 가서라도 아이피를 바꿔야한다.
아니면 러시아어나 폴란드어를 배우거나.
아니, 그럴 순 없다. 그럴 리 없다.
그렇게 되면 나, E사 혹은 N사의 VPN을 사버릴지도?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지불한 값의 효용을 누리고자 최대한 노력하겠지.
그러니 바라건대, 그대 역시 현명한 판단을 하기를.
라는 말을 요약해서 하려고 하던 순간.
벼락이 치듯 불현듯 떠올랐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ㅏㅈㅁ깐]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잠깐만요]
《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재판]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신청합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결투재판]
아무도 신청을 안 해서 잊혀져가고 있는, 도댓의 방송 규칙 중 하나.
결투재판.
3개월 이상 방송을 팔로우한 자는, 그 어떤 죄를 지어도 단 한번 도댓과 직접 결투해서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
본인도 잊고 있던 규칙이었는지, 흠칫 놀란 표정의 도댓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던 노래를 꺼버리고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결투재판이요.》
『???』
『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걸 진짜 신청하는 사람이 있네』
『결투(처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도댓쌤한테 결투재판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임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규칙이었다.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아따먹아……어차피 졸업할 거 회초리라도 안 맞고 가는게 낫지 않겠냐…?】
『ㄹ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졸업식에 굳이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는ㅋㅋㅋㅋ』
《결투재판 패소는 아이디, 아이피, 주민등록번호 영구밴이고, 특별사면 및 사면권 대상에서 제외되는 거 아시죠?》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네]
《아이디 보내세요.》
강한 자가 옳다.
상식이잖아?
* * * *
[작성자:ㅇㅇ]
[제목: 도댓쌤 vs 아따먹 결투재판 ON ]
[빨리 보러가라 선 1킬이라 금방 끝날거같음]
– ?? 누가 또 자살신청함?
– 저번에 광질 턴 도적충
– ㄴㅋㅋㅋㅋ광질을 털었단다 ㅋㅋㅋㅋㅋ 1킬도 못 따고 버그인지 핵인지 써서 겨우 이겼는데 ㅋㅋㅋㅋㅋ
– ㄴ 응~ 느그 광질 개 털렸어~
– ㄴ 그것도 도적한테 털렸어~
– ㄴ 광전사로 도적한테 털리기 vs 알몸 도게자하기 뭐가 낳냐?
– ㄴ 둘 다 싫은데요
– ㄴ 착하구나 광질아 두 개 다 주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씹
[작성자: ㅇㅇ]
[제목: 그러고보니 광질 알몸 도게자 왜 안 함?]
[은근슬쩍 요즘 걍 안 보이네
탈갤할 때 하더라도 알몸 도게자는 하고 가자 ~ 광하다 추질아~]
– 너라면 하겠냐
– 아따먹 눈나가 시키는 건데 포상이지 ㅋㅋㅋ 왜 안 함?
– ㄴ ㄹㅇ 나라면 지하빵 안 져도 함
– ㄴ 찾아가서 함
– ㄴ 앞에서 360도로 돌며 여러 각도의 도게자를 보여줄 수도 있음
– 경찰에서 연락오면 그러려니 해라 니네는
Acedia님, 1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가슴을 울리는 사연에 부득이하게 다음편을 앞당겨드렸습니다….만, 이번만입니다?
* 도댓이 튼 노래는 이선희, 석별의 정입니다. 노래 취향도 그의 액면가와 비슷합니다.
** 이예나는 ip주소를 변경하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ip 밴을 피할 수 있다는 걸 모릅니다. 여태까진 밴당하면 쿨하게 다른 방에 둥지를 텄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