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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바루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옆에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저기.”

       “그래. 말해 보거라.”

       “복원 작업에 따로 필요한 물건이 있을까요?”

       “그런 건 없다. 다만…”

       

       어디 뉴스에서 인터뷰라도 하는 것처럼 근엄하게 질문을 받는 바루를 보고 있자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소란이 이는 것보단 훨씬 낫지만 무어라 해야 할까.

       

       시청자들이 흔히 말하는 인지부조화라는 게 온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좀 더 근엄하고 긴장감 있게 문파의 개선식을 거행할 생각이었거늘 이래서야.

       

       “화산의 부지가 완벽히 복원될 때 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내 그날 몸상태에 따라 다르다만 길어도 2주 내엔 복원되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팔짱을 낀 채 생각보다 제대로 된 문답을 주고받는 바루를 보고 있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옆에 서 있는 무림최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해야.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물론입니다.”

       “그대들은 내가 오기 전에 이미 그대들 끼리 논의를 마친 상태였을 것이다. 맞느냐?”

       “그렇습니다.”

       

       무림최강은 당연하다는 듯 고갤 끄덕였고 나도 별 일 아니라는 듯 그에 수긍했다.

       

       한 치 동요 없이 내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대충 예상을 하고 있던 일이었기에.

       

       “다음이다. 본인이 화산파의 문주가 되는 것에 이의가 있는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죠.”

       

       내가 여러모로 고민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솔직히 말을 해서 본인은 화산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이다.

       

       바루의 부탁을 들어 화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해결해 매화검법을 보상으로 받기는 했으나 그 뿐.

       

       화산이란 문파의 장이 되기 위한 자격이 있는가 하면 무어라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문파의 장이라는 것은 그 문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단순히 얼굴마담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 문파의 방향성과 문파가 지닌 무공을 상징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화산파의 장이 되기엔 부족함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반발이 나오면 자하신공과 매화검법을 이용해 협박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력시위까지 벌일 생각이었거늘 생각보다 일이 쉬이 풀렸구나.

       

       “반발은 없었나?”

       “없다곤 못 하겠지만 화령님께서 저희에게 베푸는 것이지 않습니까. 당연히 양보를 해드려야죠.”

       

       내 물음에 무림최강이 웃으며 답을 했다. 반발이 있었지만 잘 해결했다고.

       

       그러고 보면 지난번에 이 자가 자신을 소개할 때 화산의 유저들을 이끄는 역할을 맡고 있다 했던가.

       

       즉, 이 놈이야 말로 멸문해버린 화산의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하겠군.

       

       흐음. 이건 곤란하구나. 실로 곤란해.

       

       본인은 나를 대신하야 귀찮은 일을 처리해 줄 이를 바라기는 한다만 본인을 바지사장으로 만들어 버릴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

       

       얼굴마담을 하는 것은 이전 천마신교의 머무를 적의 경험이면 충분하다.

       

       이 이상 그 짓거리를 하고 싶진 않다. 그건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 하여 이 놈을 쫓아낼 수도 없다.

       

       이 놈이 화산의 구심점이 된 이상 억지로 물러나게 했다가는 내가 세우려는 화산 자체가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야.

       

       하아. 어째 단체를 이룰 때에는 언제나 이 놈의 정치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일까.

       

       어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갈등이 생겼을 때에 무력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담 내 멋대로 하고 살아도 상관이 없을 텐데.

       

       “더 이상 질문은 없나?”

       ““없습니다!””

       

       화산 유저들의 우렁찬 고함소리에 생각이 끊어졌다.

       

       바루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란 듯이 두 팔을 걷어 붙였다.

       

       “그럼 어디 한 번 힘을 써볼까.”

       

       그리고 그녀는 나의 곁으로 돌아와서는 내 소매를 꾹꾹 집어 당겼다.

       

       “그래서 어디부터 재건하면 좋겠느냐?”

       “따라오거라.”

       

       생각해둔 자리는 있다.

       

       나는 바루를 데리고서 화산의 한 가운데에 해당하는 장소로 발을 옮겼다.

       

       “저어. 화령님. 여기는.”

       

       내가 발을 멈추기 무섭게 화산의 유저 중 하나가 나를 만류했다.

       

       “왜 그러느냐?”

       “…이 곳은 화산문주와 화산의 장로들이 머무르던 곳이었습니다.”

       

       내가 물음을 꺼내기 무섭게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답을 내놓았다.

       

       답을 한 자의 목소리는 분노 탓인지 떨리고 있었다.

       

       그래. 배신을 당하고서 아직 하루라는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으니 그대들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상태겠지.

       

       화산문주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만 보아도 열불이 차오를 것이야.

       

       그걸 다 알고서 이것을 지정한 것이니 그래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렇담 이 곳이 화산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는 소리일 터인데 어째서 복원을 해선 안 되는가.”

       

       이번엔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해한다.

       

       화산문주가 있던 곳만 보아도 화가 차오른다고 답을 하기엔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

       

       기다려도 대답이 들릴 것 같지 않았기에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곳이 화산문주를 떠오르게 하는가?”

       

       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도 무거운 침묵이었다.

       

       나의 말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구나.

       

       저들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게 훤히 보였지만 나는 느긋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것처럼.

       

       꽤 오래 기다렸음에도 대답이 나오지 않기에 다시 목소리를 냈다.

       

       “이 곳을 화산문주와 장로들이 사용했던 이유는 오롯이 그들이 화산의 대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같다. 이제부터 이 건물을 이용할 이들은 화산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 대표자는 그대들이 될 것이다.

       한 때 다른 이들이 서 있던 걸 지켜봤던 자리에 그대들이 서게 되는 것이다.

       이 건물의 상징성을 그대들이 가져가게 되는 것이야!

       그런데도 이 건물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 밉더냐?!

       그 미움 때문에 그들이 가졌던 영광을 빼앗을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야?!”

       

       내가 일갈하자 화산유저들의 표정이 하나 둘 바뀌기 시작했다.

       

       “다시 묻겠다. 이 곳을 복원해서는 안 되는가?”

       “아닙니다!”

       “그대들은 그대들을 배신한 화산의 문주와 장로를 뛰어넘을 자신이 없는가?”

       “아닙니다!”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겠군!”

       “그렇습니다!”

       

       방금 전까지 슬픔과 기대가 공존하던 얼굴들이 서서히 의욕에 찬 얼굴로 바뀐다.

       

       하나의 문파를 재건하겠다는 데 그 곳의 구성원이라는 이들이 기가 죽어 있어서야 쓰겠나.

       

       먼저 치부를 건드려 분노를 하게 만든 다음 그 분노를 의욕으로 바꾸는 방법.

       

       예전에 천마신교에 있을 적에 써먹던 기술이다만 지금도 잘 먹히는 구나.

       

       이 곳부터 복원을 해달라 부탁하기 위해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무슨 위험한 사람 쳐다보듯 나를 노려보는 바루의 눈이 있었다.

       

       “왜 그런 눈을 하고 있느냐?”

       “민가. 그대는 꽤 위험한 자로구나.”

       “…허? 뭐?”

       “그래서 이 건물부터 복원하면 되겠느냐?”

       “어어. 그래.”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지금 내가 한 일은 그저 저들의 기운을 복 돋아 준 것 밖에 없지 않으냐.

       

       겸사겸사 나에 대한 지지도 좀 끌어올릴 생각이긴 했다만 어디까지나 그 뿐이었다. 진지하게 선동을 하려 하진 않았단 말이다.

       

       이 정도로 위험하다니. 바루 그대는 아직 정말로 위험한 걸 보지 못했구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신교의 광기를 한 번 경험시켜 주어야겠어.

       

       그 곳의 풍경을 보면 기겁을 할 게다.

       

       *

       

       이전 화산 문주. 현 시점에서 유저들에게 쓰레기, 개새끼, 혹은 그보다 더한 멸칭으로 불리는 그 자가 머무르던 건물 부지 앞에 화령이 멈췄을 때 무림최강 한민준은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다.

       

       저 건물은 지금 화산 유저들에게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화산이 멸문하던 그 날 이 건물의 앞에서 항의를 하다 화산의 장로들에게 당한 이들이다.

       

       그런 이들의 앞에서 화산 문주가 있던 건물부터 복원하겠다 했으니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밖에.

       

       화령이 화산에 대해 잘 모르는 유저이니 언젠가 문제가 터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시작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침묵 속에서 한 화산의 유저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이 곳이 화산문주와 화산의 장로들이 머무르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화산의 유저는 화령의 눈치 없는 행동에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일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녀가 베푼 것이 워낙에 많았기에 이 정도는 가벼운 실수라 생각하고 넘어간 것이다.

       

       허나 그 설명을 듣고도 화령은 자신의 의견을 물리지 않았다.

       

       “이곳이 화산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는 소리일 터인데 어째서 복원을 하면 안 되는가?”

       

       화산 유저들의 울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한 태도에 유저들의 눈에 날이 섰다.

       

       저 사람 도대체 왜 저래? 화산문주가 되겠다면서 이렇게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침묵을 견디다 못한 한민준이 앞으로 나서 화령을 막으려던 순간 화령이 웃음을 지으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이 곳이 화산문주를 떠오르게 하는가?”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다 알면서 도발을 한 거였다고?

       

       왜?

       

       화산파를 재건하겠다는 사람이 화산의 유저들에게 왜 미움을 사려 하는 거지?

       

       화산 유저들의 분위기가 더 살벌해졌다.

       

       화령이 매화검법과 자하신공을 그들에게 전해주는 입장이었기에 다들 참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더라면 험한 말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화령은 태연히 좌중을 둘러보았다.

       

       저 사람 담력이 얼마나 강한 거야. 수십 명의 적의 앞에서도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지?

       

       침묵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화령은 콧소리를 내더니 뒷짐을 지면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말했다.

       

       과거 화산의 NPC들이 이 건물을 사용했던 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화산의 대표였기 때문이라고.

       

       그들이 과거에 저물었으니 이제 이 곳에 있는 유저들이 화산을 대표하게 될 것이라고.

       

       화산의 NPC들이 가졌던 것이 이제 유저들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될 거라고.

       

       그런데도 이 건물이 밉냐고.

       

       점차 고조되어 가는 화령의 목소리에 유저들의 눈동자가 그녀에게로 몰려든다.

       

       화산의 유저들 앞에 서서 당당히 말을 이어나가는 화령을 보며 한민준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도발을 한 것도 다 계산된 행동이었구나.

       

       침착을 되찾고 나니 많은 것들이 보였다.

       

       시선 처리. 움직임. 발성. 어투. 어느 것 하나 서투르게 사용되는 부분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좌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저런 기술은 배우고자 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경험이 뒤따라야 겨우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한 명의 숙련된 연설가였다.

       

       화령의 말이 끝났을 때 가장 먼저 복원되어야 할 장소가 이 곳이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민가. 그대는 위험한 자로구나.”

       

       바루가 그 말을 했을 때 한민준은 자기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한 순간의 사람들의 의견을 뒤집으면서 자신에 대한 호감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선동가 정도면 위험한 사람이 맞지.

       

       저 사람 대체 현실에서 뭘 하는 사람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마신교에 머무르던 시절 다져진 연설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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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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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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