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두 분! 화령이라고 합니다!’
영상 후원 속에 나오는 화령의 모습을 본 엔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평상시 언제나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세상을 다 산 듯한 표정을 짓고 다니던 아라가 통통 튀는 목소리와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현실의 아라와 방송인으로써의 아라 양 쪽 모두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엔리이기에 영상 속 모습이 가져다 준 충격은 아라와 단순히 알고 지낼 뿐인 사람보다도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저런 걸 하시게 된 거에요? 무슨 벌칙?”
– ㄴㄴ. 갑자기 저랬음.
– 빠르게 배우는 법을 보여주겠다더니 갑자기 저러던데.
– 약간 커엽지 않음?
“약간이 아니라 많이 귀여운데요.”
아라 본인이 들으면 정색을 할 법한 이야기이지만 엔리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활기를 잔뜩 담은 아라의 모습은 엔리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단 것 자체에 놀랐을 정도로 귀여웠으니까.
평소 무심한 표정과 꾹 다문 입술. 그리고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에 가려져서 그렇지 아라라는 사람은 웃음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오죽 했으면 가끔 아라가 방송에서 보여주는 웃음만을 모으는 팬튜브가 있겠는가.
딱딱한 미인이 슬쩍 보여주는 웃음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 지언데 지금 아라는 아예 웃음을 만개하며 끼를 부리기까지 했으니.
그 누가 저를 보고서 귀엽다는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평소에 화령 씨가 저랬다면 진짜 인형마냥 끼고 다녔을 텐데.”
현실의 아라는 차갑고 딱딱한데다가 접촉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어려운 사람이니까요.
그런 건 상상도 못… 아니. 잠시. 내기에서 이기고 나서 아라 씨한테 그걸 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저런 식으로 붙임성 넘치는 모습으로 하루 종일 같이 지내주는 걸로 하면 완전 재밌을 것 같은데. 거기에 더해 언니라고 부르게까지 하면.
“저 갑자기 의욕이 확 생겨났어요.”
중동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어떤 핑계로 리세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엔리는 마음가짐을 다잡고 한 번 한 번의 기회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래서 여러분. 저거 누구 흉내 낸 거에요?”
– ???
– 딱 보면 알지 않음?
– 너잖아.
– 누가봐도 엔리인데.
– ㄹㅇ. 엔리 그자체잖아.
“…네? 이게 저라고요?”
서로 이야기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엔리와 시청자들이 서로 물음표를 띄운다.
“제가 이렇게 활발한 어투를 사용했던가요?”
– 농담하는 거임?
– 찐으로 자기 맞냐고 물어보는 거 아니지?
– 영상도네 다시 열어봐. 비슷한 거 다시 보내줌.
“에이. 제가 좀 활발한 어투를 사용하는 건 맞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라고요.”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냐면서 어깨를 으쓱이던 엔리였지만 그 자신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님이 3800원을 영상 후원하셨습니다.]
<엔리의 흉내를 내는 화령과 폴짝거리면서 뛰어오는 엔리의 모습.>
영상후원이 열리자마자 날아든 영상이 시청자들의 말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엔리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두 분! 화령입니다!’
통통 튀는 몸짓. 활기찬 목소리. 방긋거리는 웃음.
약간의 오차를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일치하는 영상 속 두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린 엔리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살짝 벌게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제가 평소에 이러고 다녔군요?”
– 엌ㅋㅋㅋ.
– 화령이 파이스 흉내 내는 거 볼 때는 좋았지?
– 수치사하는 중.
– 엔리간신1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근데 부끄러워 할 필요가 있음? 귀엽잖아?]
“…그. 그렇기는 한데요.”
결국 화면에 나온 것은 활기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를 한 것 뿐이지 않은가.
행동만 따지고 본다면 조금도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는 것이 맞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리가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는 것은 방금 전 저게 스스로의 행동임을 자각하지 못했을 때 진심으로 자신의 행동을 귀엽다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알고서 귀엽다 그랬던 것이라면 귀여운 제가 귀여운 행동을 한 게 뭐가 잘못이냐며 억지를 부려봤겠지만 자각하지 못한 채 내뱉은 말에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게임 진행하죠?! 그래도 내기인데 언제까지 다른 이야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말을 바꾸는 것으로 상황을 돌파하려한 엔리였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녀가 바라는 쪽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언제나 엔리를 놀릴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시청자들이 이 재밌는 상황을 놓칠 리가 없지 않은가.
– ㄱㅇㅇ
– 기여어.
– 엔리라고 합니다!(방긋방긋)
– 엔리 기여어
– ㄱㅇㅇㄱ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캬! 역시 귀여움으로 백만 마이튜버가 된 엔리님답네요!]
젠장. 이래서 건수를 주면 안 되는 건데!
오랜 방송경험을 통해 이 이야기가 쉬이 그치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엔리는 시청자들의 채팅과 후원을 애써 무시하면서 게임을 진행했다.
저기에 일일이 대응을 해봐야 끝이 없어. 그러니 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보다는 게임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의 채팅으로 다른 채팅을 묻어버리는 게 나아.
“일단은 거리를 둘러보면서 이 곳에서 먹힐 음식이 뭔지 알아보도록 할까요?”
– 진짜몰름?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엔리님의 귀여움이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슬로우쿡은 요리의 실력만을 평가하거든요.”
냉정한 곳이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으쓱인 엔리는 주접을 떠는 여러 채팅을 외면하면서 말을 이었다.
“슬로우 쿡이 유행한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니 이 게임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거에요. 그러니 미리 몇 가지 설명을 해두고 시작을 할게요.”
슬로우 쿡.
아피스를 만들어 낸 회사에서 야심차게 만들어낸 이 게임은 출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그 후에 나온 수많은 요리게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갓겜이다.
이 게임이 고평가를 받는 부분은 주방의 현실도. 맛의 현실성. 요리의 세밀함. NPC들의 생동감 등 여러 부분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 한 것은 경이에 가까운 볼륨이었다.
한 식당의 직원에서 시작해 먼 타지에서 자신만의 식당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이 게임 특유의 볼륨은 슬로우 쿡 하나를 사면 다른 요리 게임은 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나오게 만들 정도였지.
물론 이 극찬이 마냥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장을 넘어갈수록 커져가는 볼륨만큼이나 높아지는 난이도는 이 게임을 구매한 수많은 사람 중 단 0.1%만이 엔딩을 보게 만든 요소였으니까.
“마지막 장이 극악무도하단 이야기를 듣게 된 이유가 뭐지 알아요? 바로 공략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거에요.”
슬로우 쿡의 4장까지는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내용이기에 공략이 존재할 수 있다.
현직 요리사들이 알려준 것을 그대로 따라가면 어찌저찌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으니까.
허나 5장은 그렇지 않다. 연고도 뭣도 없는 곳에 대뜸 던져져서 한정된 예산 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이 나오는 가게를 만들어야 하는 5장은 유저에게 스스로 공략을 개척하길 강제했다.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공략이 없는 게 말이 됨?]
설명이 진행되던 중 누군가가 보낸 후원에 엔리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방금 전의 이야기를 묻을 수 있을 거야.
“물론 공략 비스무리한 게 없지는 않아요.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게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 대한 조언일 뿐. 게임의 공략이라고 하긴 어렵죠.”
이 게임 안에 프로그래밍 된 패턴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유저 각자가 떨어지는 곳은 얼핏 비슷해 보일지라도 결코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문화권. 인종.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 그 쪽에서 잘 먹히는 음식. 상권. 월세. 종업원들의 태도 등등.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모든 변수가 존재하는 5장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단순히 요리 실력이 좋은 게 아니라 한 가게를 만들어서 운영할 수 있는 실력이 필수적이었다.
오죽했으면 슬로우쿡 클리어 해봤으면 그냥 다른 거 다 때려 치고 장사하는 게 제일 좋다는 이야기가 여러 요리사들의 입에서 튀어나올까.
“그나마 있는 꼼수라면 리트 정도죠?”
과거 슬로우쿡을 클리어하기 위해 발악하던 엔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이 잘하는 음식이 유행하는 문화권이 나올 때까지. 장사가 잘 되는 상권 근처
에 도착할 때까지. 좋은 종업원을 뽑을 때까지.
리트에 리트를 반복해서 최대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낸 후 도전하는 것이 그나마 꼼수라면 꼼수일 것이다.
예전의 엔리가 클리어에 실패했던 걸 보면 알겠지만 리트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기본적인 실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져도 성공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 ㅁㅊ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딴 걸 어떻게 클리어 함?]
– ㄹㅇ
– 그래서 다들 보통 4장까지 즐기고 빤스런치지.
– 5장 난이도가 너무 괴악하긴 해.
– 슬로우쿡 전문으로 하는 고인물 요리사도 5장에서 실패하는 경우 흔하더라.
시청자들이 슬로우쿡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을 확인한 엔리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메뉴창을 자신의 앞에 띄웠다.
“이쯤 했으면 설명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 리트 좀 할게요.”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뭐임? 빤스런임?]
“어쩔 수 없잖아요! 저 중동 쪽 요리에 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요!”
이 쪽에 먹히는 요리를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클리어를 하냐고!
그렇게 소리를 치며 재시도 버튼을 누른 엔리는.
뜨거운 때양볕 아래에서 일을 하고 있는 오크들의 모습을 보곤 어색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건 억까잖아!”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화권의 차이(세계관이 다름)
인종의 차이(종족이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