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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5

       엔리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카레에 들어갈 양파를 휘젓고 있었다. 게임 속이라 단축이 되었음에도 20분 정도를 휘저어야 완성되는 카라멜라이즈 어니언은 보통 무척이나 고된 작업이지만 지금의 엔리에겐 아니었다.

       

       방금 전 아라가 수인들이 사는 세계에 떨어지면서 그녀의 승리가 확정되어버렸으니.

       

       그 달콤함에 비하면 이 정도 일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라 씨가 지금의 저보다 요리를 잘 하는 건 사실이에요.

       

       초월적인 존재답게 순식간에 성장을 한 아라 씨는 이미 한 사람의 요리사라 불러도 무방할 지경일 테니까.

       

       그렇지만 5장은 그것만으로는 안 돼요.

       

       이 곳은 단순히 요리를 잘 하는 것만으로 통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장사를 잘해야 하는 곳!

       

       사람들을 끌어 들여서 일정 시간 내에 목표매출을 달성해야 하는 5장은 요리실력보다는 그 환경에 맞출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해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아라 씨가 떨어진 수인의 세상은 그 분께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환경에 맞출 수 없는 곳인데 말이죠.

       

       엔리는 과거 아라와 함께 애견 카페에 갔을 때를 기억했다.

       

       동물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일념으로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 끝에 처참한 실패만을 마주했던 아라를 알고 있기에 엔리는 결코 아라가 그 곳에서 5장을 클리어하지 못할 것임을 확신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기겁을 하던 것 좀 봐요.

       

       아라 씨가 어찌저찌 가게를 차린다 하더라도 거기에 사람이 오겠어요?

       

       나 같으면 승산이 없어 보인다 판단한 순간 바로 리트를 했겠지만 아라씨는 그러지도 않을 거에요.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게 그 분이니까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게 분명.

       

       그럼 저는 아라 씨가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느긋하게 장사를 해서 5장을 클리어하고 회장님한테 도네이션 받고 아라 씨한테 무슨 벌칙 시킬 지나 생각하면 되는 거죠.

       

       흐흥. 지금 미리 시청자분들한테 뭘 시킬지나 물어볼까요?

       

       – 두꺼어업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엔리야… 조때써…]

       

       “…네? 큰 일이 났다뇨?”

       

       무슨 문제가 생길 게 있나? 아라 씨가 리트를 하지 않고 수인들 세계에 머무르는 한 내 승리는 확정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당황을 했던 엔리지만 그건 그 당황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장난을 치려면 좀 제대로 된 걸로 해주세요. 제 방송 경력이 얼마인데 그런 거에 속을까.”

       

       – 진짠데.

       – 아니 진짜 큰일 났다고!

       – ㄴㄴ. 아무 일 없음.

       – 호들갑 겁나 심하네.

       – 아 ㅋㅋ 설마 화령이 음식으로 수인을 유혹하겠냐고.

       

       …어라? 반응이 좀 이상한데?

       

       왜 다들 믿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챈 엔리는 다급히 게임을 일시중지하고서 아라의 방송을 켰다.

       

       아닐 거야. 아라 씨가 수인 분들을 상대로 음식을 대접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다고.

       

       동물을 상대로 애정을 받는 게 그리 쉬운 일이었다면 아라 씨가 애견 카페에서 그런 굴욕을 겪었을 리가 있나!

       

       “…말도 안 돼.”

       

       허나 아라의 방송 안에 비치는 광경은 엔리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가게의 테이블 위에 손님이 몇 명 들어서 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병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애써 주방 쪽을 외면하는 걸 보면 아라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지 않은 거겠지.

       

       허나 그들은 꼬리를 바닥에 축 내리고 있으면서도 테이블 위를 지켰다.

       

       심지어 아라가 음식을 들고서 옆에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부들부들 떨며 끼깅대는 소리를 낼 뿐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래서야 꼭 아라에 대한 두려움보다 음식을 향한 열망이 더 큰 것처럼 보이지 않나.

       

       ‘흑. 음식이 조금만 맛없었어도 여기에 안 왔을 텐데!’

       ‘처음부터 먹지 말 걸 그랬어.’

       ‘맞아. 차라리 이런 음식이 있다는 걸 몰랐더라면 이렇게 고민할 일도 없었을 텐데.’

       

       게걸스레 음식을 취하는 병사들을 살피던 엔리는 눈을 끔뻑이다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화령 씨가 음식에 약이라도 탔어요?”

       

       그게 아니고서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풍경에 엔리가 새된 목소리를 냈지만 놀랍게도 아라는 그 어떤 일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 차라리 약을 썼으면 이해라도 하지.

       – 분명 뭔가 음흉한 게 있을 거야.

       – 신교의 비술이라도 있는 건가.

       – 화령이라면 그래도 안 이상하긴 해.

       – 그냥 요리를 잘 하는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안 함?

       – 저게 음식 먹고 나올 표정임?! 미드에 나오는 약쟁이 얼굴이잖아!

       

       “으아. 또 손님이 왔어.”

       

       계속 끊이지 않고 손님이 들어오는 데 그 손님들 하나하나가 시키는 음식의 양도 상당하다니.

       

       그 광경을 살피던 엔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아라의 방송을 껐다.

       

       아라가 무언가 이상한 수를 쓴 건지 아닌지를 모른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아라가 저대로 장사를 이어나간다면 머지않아서 목표를 달성할 것이란 사실 말이다.

       

       “화령 씨가 부정을 쓴 건지 아닌 지는 나중에 물어봐도 괜찮아요.”

       

       지금 중요한 것은 승부에서 이기느냐 마느냐의 관한 것.

       

       당장에 앞서 있는 쪽은 엔리다.

       

       아라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녀보다 먼저 5장을 클리어하기만 하면 그 모든 건 해프닝이 될 터이니.

       

       엔리가 해야 하는 일은 쉬지 않고 장사에 매진하는 것 뿐.

       

       “남은 시간 동안 수명을 태워가면서 달려 보자고요!”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승부에서 이기고 말 거야!

       

       *

       

       “곤란하군.”

       

       사만과의 내기에서 승리한 후 장사를 시작하게 된 나이지만 하루에 벌어들인 금액은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은 이 가게에 들리는 것이 지난 번 내 음식을 먹어 보았던 병사와 영주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

       

       이외의 사람들은 본인과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 자체를 꺼려하기에 이 가게에 방문하지 않는다. 그러니 손님의 수가 한정될 수밖에 없지.

       

       하나 더 고민을 해보자면 요리를 하기 위한 재료를 구하는 것자체가 힘들다는 것이겠지.

       

       고기야 본인이 적당한 녀석을 잡아 도축하면 그만이다만 다른 채소나 향신료 같은 것은 거리에서 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

       

       헌데 본인이 직접 거리에 나서면 최초 이 거리에 방문했을 때와 같은 소동이 일어나버리니 원.

       

       일단은 적당한 병사에게 대리를 시키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만 병사 녀석이 요리에 대해서 무얼 알겠느냐.

       

       흥정이고 나발이고 적당히 보이는 것을 구해 올 뿐일 테니 이 부분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뭣보다 가장 큰 것은 이윤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본인이 하는 요리는 각 개인에 맞추어서 만들어내는 까탈스러운 요리다.

       

       당연하게도 많고 다양한 재료를 요구하고 이 때문에 한 요리를 만들어 낼 때마다 상당한 돈이 들어가지.

       

       새삼 요리사들이 왜 대중의 입맛을 추구하는 지를 이해하게 되는 구나.

       

       손님들이 음식이 없어 못 살면 무얼 하느냐.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해선 돈이 안 되는 데.

       

       물론 작금의 본인은 대중의 입맛에 맞춰진 음식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지금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맛있다 생각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말이다.

       

       허나 그런 음식을 만들어선 이 가게에서 손님을 받을 수가 없다.

       

       본인의 두려움을 음식의 맛으로 억누르지 못하는 순간 이 가게는 유령들조차 들리지 않는 곳이 될 테니까.

       

       “결국 수인들이 본인을 두려워하는 것이 문제구나.”

       

       저들이 본인을 두려워하는 것만 아니었더라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야.

       

       – 리트ㄱㄱ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냥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게 빠르지 않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시청자 중 하나가 쉬운 답을 내놓았다.

       

       그렇지. 본인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허나 본인은 이 세상이 마음에 든단 말이지.”

       

       여러 수인들이 본인을 혐오하거나 말거나 하는 것은 상관없다.

       

       보들보들 부슬부슬한 동물을 좋아하는 본인에게 그들이 모여서 살아 움직이는 이 세상은 그 자체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곳이라 말이다.

       

       이런 세계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찌 본인이 이 곳을 쉬이 포기하고 떠나겠느냐.

       

       – 퍼리퍼리야…

       – 내기보다 중요한 개인적인 욕망.

       – 수상할 정도로 동물을 좋아하는.

       

       “어허. 본인의 순수한 애정을 자꾸 왜곡하려 들면 목이 잘리는 수가 있어.”

       

       – 헉.

       – 다들 키보드에서 손 떼!

       –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 충성충성^^7

       

       …뭐어. 헛소리를 많이 하긴 했다만 그래도 내기가 본인에게 중한 것은 사실이니. 아예 답이 안 나온다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옳겠지.

       

       마지막으로 하나만 시도를 해보고 이것이 실패하면 아쉬움을 견디며 자리를 뜨자꾸나.

       

       그리 생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가게에서 빠져 나와 조용해진 밤의 거리를 걸었다.

       

       지난 번 반그로우와 대화를 하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한 것이 있다.

       

       지금 본인이 지닌 경지라는 것은 어지간한 이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파이스 정도 되는 이조차 본인이 지닌 경지의 끝을 살피지 못할 지경이니. 그보다 못한 대부분의 이들은 어떠하겠는가.

       

       내 단언컨대 대개의 사람들은 본인의 본모습을 보고도 무어가 잘못되는 지 인지하지 못할 것이야.

       

       이러한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다만 과거 여기저기에서 도주를 할 때에 기운을 감추던 게 버릇이 되어버린지라 본인은 여태까지 항상 기운을 감추고 살았다.

       

       누가 보더라도 본인을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위하여.

       

       이 가장은 대개의 존재들에게 효과가 있었지만 여러 짐승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본능으로 가장 속에 감춰진 본인의 비틀림을 느낄 수 있었으니 겉의 가장을 어떤 식으로 바꾸더라도 의미가 없었지.

       

       그래서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가장으로 비틀림을 가릴 수 없다면 애초에 비틀림을 볼 수 없게 만들자고.

       

       그림자의 존재를 알지 못하도록 대지를 검은 색으로 물들이자고.

       

       드높은 경지에 가려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게 하자고.

       

       내 살면서 처음으로 시도를 해보는 것이라 이게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만.

       

       아무 도전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해보고 실패를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벌써 도착했군.”

       

       거리의 영주.

       

       멍멍이가 사는 저택 앞에 도착한 나는 가뿐히 벽을 넘어 그 안에 발을 들였다.

       

       부디 이것이 성공한다면 좋으련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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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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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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