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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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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란스럽다.

       

       분명 나는 잠을 자고 있었을 텐데, 온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를 앵앵 울려와 신경이 거슬렸다.

       

       어느날 뱀이 되었다.

       그것도 조금 커다란 신화 속 뱀이.

       

       이상한 판타지 세계 속에서 말이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내가 도대체 왜 판타지 세계에 있지? 그것도 이상하고 커다란 뱀이 되어서?

       

       딱히 생각나는 소설도 없었고, 작가와의 원한 관계도 없었다.

       

       그야 나는 소설을 보더라도 댓글은 달지 않고, 좋아요랑 선작만 하는 과묵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교통사고 직전 한 아이를 구하고 눈을 떠보니, 이상한 뱀이 되어 있더라.

       

       처음에는 참 다사다난했다.

       이족보행을 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사족보행은 커녕 무족 보행을 하고 다니니 말이다.

       

       난생처음 동물을 산채로 잡아먹는 것도 어색했고, 지나가는 마물마다 못볼 걸 봤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소리지르는 모습도 어색했다.

       

       하지만 그렇게 어영부영 순탄하게 지내기를 1,000년.

       

       어느덧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위치에 올라섰다.

       

       ‘여기가… 레스베레트 산맥이었나?’

       

       그야말로 상식을 초월하는 크기의 거대한 산맥.

       그 산맥을 기둥 삼아 오랜 잠을 잤을 터였다.

       

       ‘흐음….’

       

       몸이 찌뿌둥하다.

       거대한 산맥을 그대로 감싸는 육체의 감각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나의 몸 위에 올라와있는 자그마한 인간들과 도마뱀이 보였다.

       

       그들은 온갖 마법과 오러를 써대며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초월적인 시력이 그들의 반응을 살핀다. 하던 행동을 그대로 멈추고 딱딱하게 얼어붙은 근육, 파르르 떨리는 동공. 마치 거대한 자연재해를 마주한 듯한 반응.

       

       그 반응들을 지켜보다가, 이내 도마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새카만 몸체에 시뻘건 마그마가 흐르는 도마뱀.

       

       분명 위압적인 모습이었지만——

       

       ——꼬르륵.

       

       ‘배고프구나.’

       

       오랜 수면 끝에 일어난 참이라 그럴까?

       

       용암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도마뱀이 맛있는 도마뱀 구이로 보였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겠지.

       

       아가리를 쩍 벌린다.

       그리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콰드득.

       

       도마뱀을 삼켰다.

       적당히 뜨거운 목넘김이 마음에 들어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뱀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지는 둘째 치고.

       

       ‘그 다음은….’

       

       아직도 얼어붙은 채 가만히 있는 인간들.

       

       잠시 고민하다, 시선을 거두었다.

       

       ‘인간을 먹는 취미는 없으니까.’

       

       비록 뱀이 되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인간이었다.

       

       사람된 도리로써, 같은 인간이었던 이들을 잡아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침 도마뱀을 잡아먹어 배가 차기도 했고.

       

       ‘잠이나 자야겠군.’

       

       그대로 천천히 몸을 뉘인다.

       거대한 산맥을 침대 삼아, 다시금 눈을 감았다.

       

       

       * * *

       

       

       “헬라!!”

       

       용사, 레벨리스.

       수많은 용사들 중 으뜸에 선 용사이자, 마왕 토벌에 가장 근접한 사내로 불리는 인물.

       

       그는 현재 악룡을 상대하고 있었다.

       

       [크롸라라라라——!!]

       

       악룡이 울부짖자, 천지가 울린다.

       

       지축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산맥에 잠들어있던 용암이 터져나오며 천지를 새빨갛게 물들인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레벨리스는 검에 오러를 담아 휘둘렀다.

       

       솨아아아악——!

       

       금빛 오러가 떨어지는 용암을 베어가르며 그 안에 있는 여인을 구해냈다.

       

       새빨간 머리칼을 지닌 마법사, 헬라.

       

       “고마워!”

       

       “천만에 말씀.”

       

       그녀는 레벨리스에게 감사인사를 건네며 곧바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푸르른 마법진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그 안에서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내린다.

       

       메테오.

       9써클의 마법사만이 배울 수 있는 마법이 악룡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후웅.

       

       자그마치 수백 미터에 다다르는 악룡의 발길질 하나로 운석이 산산조각나 흩뿌려진다.

       

       “아이시스!”

       

       “네!”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는 하늘에 그려진 거대한 금빛 베리어에 막혔다.

       

       신성제국 유일의 성녀, 아이시스.

       그녀의 신성력이 베리어를 만들어 모두를 지키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수만 명을 집어삼킨 악룡 ‘켈리악시스’를 사슬 형태로 속박한다.

       

       이어지는 협공.

       

       하지만….

       

       [크롸라라라라——.]

       

       낮게 울리는 피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종족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섬뜩한 피어가 그들의 움직임을 멈춰세웠다.

       

       “큭…!”

       

       재빠른 아이시스의 대처로 몸이 굳는 건 피했지만, 상황은 좋지 못했다.

       

       수많은 공격을 퍼부어도 악룡에겐 단 한 치의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전멸한다. 지금은 아이시스가 버텨주고 있다고는 하나, 그녀의 신성력도 결국 한계를 맞이할 터였기에.

       

       용사는 선택했다.

       

       ‘지금 저 악룡을 내버려두기엔, 너무나 위험부담이 크다.’

       

       저 악룡은 아직 성체가 아니다.

       지금도 주변의 대기 속 열기를 끌어모아 점점 더 강해지고 거대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거대한 재앙으로 다시금 재탄생해 인류에 큰 피해를 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인다.

       

       용사는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바라보았다.

       

       황금빛 검이 새겨진 문양.

       여신에게 선택받은 이들의 몸에 새겨지는 ‘성흔’.

       

       모든 성흔은 그에 걸맞는 권능을 가진다.

       

       그의 성흔이 발휘하는 힘은 순간적으로 신체 능력을 10배 올려주는 것.

       

       왜 그걸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신체가 버틸 수 없어.’

       

       성흔은 어디까지나 신체능력을 강화해주는 것.

       

       그 힘에 걸맞는 육체를 내려주지 않는다.

       그 말은 즉슨, 갑작스레 신체능력이 10배나 증가한 상태에서 움직인다면 온몸이 터져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성녀조차 살릴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하아, 하아….”

       

       “레벨리스… 선택을….”

       

       모두가 지쳤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는, 선택했다.

       

       사용하자.

       그리 생각하며 눈을 번쩍 뜬 순간.

       

       

       

       

       

       

       

       

       

       

       세상이 멈췄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던 그 악룡도.

       

       용암이 비처럼 내리던 하늘도.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지진도.

       

       그 모든 게 일순간 멈추었다.

       

       용사는 순간, 자신의 시간이 멈춘 건 아닐까 생각했으나 이내 그 생각은 새하얗게 표백되었다.

       

       눈이, 마주, 친다.

       한없이 거대하고, 한없이 위대한.

       

       거대한 신을.

       

       고작 머리 하나였을 뿐일 지언데.

       그의 머리는 하늘로 부족하여, 온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거대한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그것만으로 용사는 숨을 쉬는 걸 잊어버렸다.

       

       그 차분한 눈동자가 그에게 닿는 순간, 그는 수백, 수천 번 상상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저건, 생물이 아니었다.

       자연 조차 뛰어넘은 거대한 재앙.

       

       그 거대하던 악룡을 한낱 도마뱀으로 만들 정도로 거대한 위압감이 천지를 감싼다.

       

       [크롸라라라라——!]

       

       악룡이 피어를 내지른다.

       하나, 그것은 그 전의 위압감을 지닌 울음이 아닌 공포에 질린 먹잇감의 비명일 뿐이었다.

       

       켈리악시스가 몸을 비튼다.

       본능적으로 지금 이 자리를 피해야 함을 느끼고 날개를 펄럭인다.

       

       자그마한 산의 크기에 다다른 거체가 떠오르려는 찰나였다.

       

       용사는, 그 광경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0.1초.

       그 찰나의 순간.

       

       눈을 감았다 뜬 그가 마주한 것은.

       

       날아오르던 악룡을 그대로 짓씹어 삼킨 거대한 존재였다.

       

       ‘인지조차… 하지 못했어….’

       

       그 어떤 공격도 놓치지 않던 기감이.

       지금 이 순간은 숨이 막히게 고요했다.

       

       마치, 어차피 알아도 소용 없다는 듯.

       

       사냥 조차 아니었다.

       곱게 차려진 식사를 먹는 것처럼 한 순간에 악룡은 목숨을 잃었다.

       

       왕국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킨 악룡의 최후는, 싸움 조차 되지 못한 포식자의 한 끼 식사였을 뿐이었다.

       

       [……….]

       

       느릿하게, 그 존재의 시선이 그들을 향한다.

       

       용사는 숨을 삼켰으나,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그냥… 저 존재가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그 존재는 이내 시선을 거두더니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

       

       쿠구구구궁——!

       

       천지가 울린다.

       그것은 악룡이 일으키던 것과 비슷했으나, 근본적으로 달랐다.

       

       ‘아….’

       

       용사는 주변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시야의 끝에서 끝, 거대한 산맥으로 이루어진 수평선.

       

       ‘그 모든 게…….’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에 소름이 끼쳤다.

       

       이내, 천지가 가라앉는다.

       거대한 진동도 사라진 고요한 산맥엔, 숨 막히는 정적만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1분, 10분, 1시간.

       

       어쩌면 하루.

       그 시간 동안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던 레벨리스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내었다.

       

       “…돌아가자.”

       

       “…….”

       

       “…네.”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두의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는 한 가지 의문.

       

       그러나 억지로 집어삼켰다.

       다만 그 존재를 잊지 않고, 그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경계를 주고자.

       

       용사는 그 존재에게 감히 이름을 붙였다.

       

       ‘레스베레트.’

       

       원래 레스베레트 산맥이었던, 그 산맥의 주인이자 산맥 그 자체인 그에게 경외를 담아 붙인 이름.

       

       용사와 그의 파티원들은.

       한동안 멍하니 그 거대한 산맥을 바라만 보다가.

       

       악룡을 처치해주었다는 사실에 감사를 남기며 자리를 떠났다.

       

       

       후일, 그의 위용담을 들은 이들이 그곳에 자그마한 종교를 세운 것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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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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