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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드래곤은 전설 속 존재였다.

       

       태초에 만들어진 여신과 마신의 공동 피조물.

       

       두 신이 서로의 일부를 조금씩 떼어 세상의 질서를 조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명체였다.

       

       그만큼 드래곤은 무척이나 강했고, 또한 세계를 평화로히 지켜나갔다.

       

       하나, 그것은 세대를 거쳐나가며 점점 악해졌다.

       

       최초의 드래곤은 두 마리.

       

       악룡과 신룡.

       그 두 마리는 살아가며, 스스로의 존재를 분열하여 새끼를 낳았다.

       

       자신들을 이해해 줄 가족을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스스로를 분열하여 낳은 새끼는 분명 강했지만, 두 신의 축복을 이어 받을 수는 없었다.

       

       세계를 조율할 수 있는 권능.

       그 권능이 부여되지 않은 드래곤은 세월을 살아가고 세대를 거듭해가며 점점 사악해졌다.

       

       드래곤의 본질은 탐욕이었으니까.

       

       세계의 조율자라는 칭호가 가지고 있던 억제가 사라지자, 점점 그 본질을 드러낸 것이다.

       

       드래곤들은 점점 선을 넘었다.

       물질과 필멸계를 넘어 필멸자들에게 해악을 입히고, 그들을 핍박하며 제물을 받았다.

       

       뒤늦게 여신이 그 사태를 파악하여 드래곤들을 봉인하였으나, 이미 때는 너무나도 늦어버린 후였다.

       

       더 이상 드래곤은 세계를 조율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사악한 독재자이자 괴물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신화의 내용.

       

       레스벨리고는 왕실의 서고 가장 깊숙이 숨겨진 책을 읽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드래곤이라니.”

       

       그저 그런 신화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나타났단다.

       심지어 그의 영토 중 하나인 산에서.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야 드래곤은 왕실에서도 헛소문으로 치부하는 신화 속 존재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여신의 맹세.”

       

       용사가 여신에게 심장을 바쳐 이루어내는 진실된 맹약이자 약속.

       

       한스는 스스로의 심장을 바치면서까지 왕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내가 본 것은 드래곤이다.

       이 왕국이 그 드래곤에게 멸망하지 않으려면, 산제물을 바쳐야 한다——

       

       ——라고.

       

       “빌어먹을.”

       

       왕은 입술을 짓씹으며 시름을 앓았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으나 그런 거에 신경 쓸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무려 용사였다.

       그가 심장을 바쳐 행한 맹세였다.

       

       그 맹세에 거짓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더군다나 한스는 트렐리니아 왕국에 무척이나 헌신적인 용사였다.

       

       그가 왕국을 구해낸 것만 하더라도 수 차례.

       

       그러니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설령 그것이 터무니 없는 말이더라도.

       

       “가신을 데려와라.”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왕국의 안위와, 산제물 중에서.

       

       “소 50마리와 돼지 50마리, 그리고 닭 300마리를 준비하거라.”

       

       부디 이 정도에서 드래곤이 만족해주길.

       

       레스벨리고는 간절히 빌었다.

       

       신화 속 드래곤이 요구한 ‘산제물’에서는, 가장 고귀하고 순결한 처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면서.

       

       

       * * *

       

       

       판타지 세계에 오면서.

       참으로 많은 불만이 있었다.

       

       우선 이족 보행을 하지 못하는 탓에 가장 먼저 땅이 보이는 육체와, 더러운 바닥에 몸을 대며 기어다니는 점이 있었다.

       

       인간과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점도 그에 속했다.

       

       내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인간은 커녕 대부분의 인간은 나를 보면 겁에 질려 온몸이 굳어버릴 테니까.

       

       다만 가장 불만인 점은….

       

       ‘맛없군.’

       

       밥이 맛이 없었다.

       내 미각이 이상한 게 아니다.

       

       그야 이곳에 와서 먹은 것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것들이었으니까.

       

       불을 내뿜는 도마뱀과 개, 그리고 대지를 움직이는 거대 지렁이와 물을 얼리는 개구리.

       

       하나같이 거대하고 신묘한 힘을 다루고 있었지만, 하나 같이 무언가에 타락하여 인간을 해하고 잡아먹는 마물들이었다.

       

       특히 온몸에 시커먼 기운을 풀풀 풍기는 게, 딱 봐도 먹기 좋게 생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생김새대로 하나같이 바싹 태워먹은 음식처럼 쓰디 쓴 맛이 났다.

       

       살기 위해, 또 인간을 해치는 것이 괘씸해서 잡아먹었으나 그렇다고 이런 맛 없는 것들만 먹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사슴을 잡아먹은 적이 있었다.

       분명 무척이나 맛있었던 거 같은데… 너무나 작아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는 육체를 작게 만드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때이기도 하였고, 아직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시절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잡아먹는 건 어떠하느냐 묻는다면, 불가하다.

       

       문제는 역시나 덩치였다.

       육체 크기를 조절하는 법을 알았다고는 하나, 제일 작게 만드는 것은 지금이 최대였다.

       

       자그마치 300m에 달하는 덩치.

       

       이 거대한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과연 얼마나 되는 선량한 동물들을 잡아먹어야 할까?

       

       어지간해서는 성에도 차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고 배를 채울 때까지 먹자니 어지간한 산 속 생물들은 모조리 멸종할 때까지 먹을 게 분명하니, 딱히 동물들을 잡아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언제나 미식에 굶주려있었다.

       

       ‘한우가 그립군.’

       

       불판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한우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실 때였다.

       

       ‘음?’

       

       무언가 동굴에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땅이 울리는 것이 마수인 줄 알았으나, 그건 아니었다. 수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에 기감을 더욱 넓혀 신경을 집중하자….

       

       수백 명에 달하는 기사가 있었다.

       

       나를 토벌하러 온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왕국에서 파견된 기사들이, 괴물을 토벌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동물?’

       

       하나, 아니었다.

       그 기사들은 동물을 끌고오고 있었다.

       

       돼지, 소, 닭.

       판타지 세계라기엔 무척이나 익숙한 동물들.

       

       기사들은 동물들을 끌고 오더니, 조심스레 동굴 안에 밀어넣었다.

       

       …뭐지?

       먹으라는 건가?

       

       잠시 의도를 파악해보려 했으나, 가능할 리가 있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참기에는 너무나 매혹적인 먹잇감들이었다.

       

       수가 무척이나 적긴 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소 한 무리를 덥썩 삼켰다.

       

       ‘!!’

       

       맛있다.

       

       미친 듯이 맛있다.

       

       소가 입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씹을 때마다 부드럽게 짓물리는 육질, 열심히 길렀는 지 육즙이 가득한 게 최고였다.

       

       감동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 입에 끝날 정도로 간단한 식사였지만, 최대한 그 맛을 음미하고 싶어 천천히 삼켰다.

       

       뒤이어 돼지, 닭들도.

       먹을 때마다 과거가 떠오를 정도로 무척이나 맛있었다.

       

       이 동물들을 데리고 온 인간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들에게 간단한 감사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기사들에게 향했는데.

       

       “아, 아아아!! 드래곤이 진노했다!!”

       

       “저, 전대원! 모두 후퇴에에에엑!!”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어째서?

       

       

       * * *

       

       

       생존의 용사, 한스의 증언이 있었다.

       

       드래곤이 있었다고.

       그 드래곤에게 산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헛소리를.’

       

       트렐리니아 왕국의 기사단장, 켈레스는 코웃음을 쳤다.

       

       드래곤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가?

       

       보나마나 어중간한 도마뱀을 보고 호들갑을 떤 거겠지.

       

       기사단장은 가축들을 끌고가며 한스에게 욕을 한 바가지 쏟았다.

       

       ‘그 녀석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인지.’

       

       이 더운 날에 갑옷을 풀무장하고 가축을 끌고 산을 올라가고 있다. 그 찜통 같은 더위에 화가 팍팍 치솟았으나, 애써 억누르며 동굴을 찾았다.

       

       “전원, 정지.”

       

       동굴의 입구는 정말 거대했다.

       커다란 입구가 마치 아가리를 쩍 벌린 괴물처럼 보일 정도로.

       

       그는 무심코 침을 꿀꺽 삼켰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동굴에 동물들을 집어넣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기껏해야 한스가 봤다던 드래곤처럼 생긴 도마뱀이 움직이는 정도?

       

       그러나, 이변이 벌어졌다.

       

       쿠구구궁——.

       

       대지가, 뒤흔들린다.

       

       “다, 단장님!”

       

       “이게 무슨…!”

       

       압도적인 진동이었다.

       안에서 한스가 봤다던 괴물이 날뛰고 있는 것일까?

       

       콰드득.

       

       근처의 거대한 나무들이 대지의 진동에 우지끈 부러지고, 때마침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천지가 격동한다.

       

       

       그것은 마치.

       

       

       한없이 거대한 존재가 진노하는 것만 같았다.

       

       

       “설마 용사의 말이 사실인 건…?!”

       

       “헛소리 하지마! 드래곤이 실존할 리가…!”

       

       기사단원이 중얼거린 소리에 켈레스가 신경질 적으로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 드래곤이 실존한다니. 그렇다면 자신들은, 어떻게 생존하란 말인가?

       

       쿠구구구——.

       

       지금 이 순간에도 격동은 계속 되고 있었다.

       

       서있기 힘들 정도로 대지가 격동하고, 새들이 하늘을 비상하며 도망치며, 하늘에선 번개와 비가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켈레스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이런 광경을 들어본 적이 있다.

       천지가 격동하고, 세계가 진노를 품은 채 격변하는 상황을.

       

       신화 속.

       그가 감히 헤아리기 조차 힘든 신적 존재들이 화가 났을 때.

       

       세계는 격변했다.

       

       켈레스는 그가 지금 그 격변의 순간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아니, 그는 숨 조차 쉬지 못했다.

       

       천지를 압박하는 거대한 위압감에 숨 조차 쉬기 버거웠다.

       

       “……어째서.”

       

       제물이 부족했던 것일까?

       

       혹은 툴툴 거리던 그의 행동에 대한 죗값일까?

       

       켈레스는 부디 이 상황이 끝나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런 그를 딱하게 여긴 것일까?

       

       격변하던 천지는 곧 잠잠해지더니,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완전히 돌아왔다.

       

       “끝…난 건가?”

       

       한 기사가 그리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거대한, 존재가, 다가온다.

       

       

       칠흑처럼 새카만 비늘, 세로로 갈라진 푸른 눈동자.

       

       도저히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거대한 크기.

       

       그 존재를 마주한 순간.

       

       켈레스의 머리 속에는 오직 죽음만이 가득했다.

       

       “저게… 무슨.”

       

       이윽고.

       그 푸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아, 아아아!! 드래곤이 진노했다!!”

       

       “저, 전대원! 모두 후퇴에에에엑!!”

       

       켈레스는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살기 위한 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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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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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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