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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커다랗기 짝이 없는 동굴 속.

       그 거대한 동굴 만큼이나 거대한 육체를 지닌 뱀, 요르문간드는 동굴에 있는 자그마한 호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인간을 마주한 적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다.

       

       처음 내가 이 세계에 눈을 떴을 땐, 인간이 올 수 없는 위험한 마수들이 가득한 인외마경이었으니까.

       

       그곳에서 마수들을 꺾고 점차 탈피를 하며 성장한 후에, 잠에 들었다.

       

       그러다 소란스러워 잠시 깨어 이상한 불타는 도마뱀을 잡아먹고, 또 다시 수 천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마주친 인간이라 해봐야 고작 4번에 불과했다.

       

       인외마경에서 한 번, 도마뱀 잡아먹을 때 한 번, 그리고 방금 전에 두 번.

       

       그 중에서 내게 호의를 보인, 아니, 적어도 겁에 질려 도망치지 않은 인간은 오직 인외마경에서 만난 인간 한 명 뿐이었다.

       

       사실… 인외마경에서 만난 인간도 폴리모프한 존재에 불과했지만.

       

       어라?

       

       그럼 나랑 마주친 인간들은 다 도망간 거야?

       

       그것도 아니면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

       

       수면이 일렁이며 거대한 뱀의 모습이 보인다.

       

       칠흑처럼 새카만 비늘과,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푸른빛 눈동자.

       

       솔직히, 멋지게 생겼다.

       은은하게 빛을 내는 묵빛의 비늘 하며, 어떤 마수도 눈빛 하나로 제압할 듯한 신묘한 눈동자.

       

       이 외견에서 겁을 먹을 이유가 있는 걸까?

       

       물론… 조금 커다랗긴 하지만.

       내 모습이 일명 ‘마수’라 불리는 놈들과 비슷하다는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못볼 걸 봤다는 듯 기겁하고 도망가면 상처 받는다.

       

       ‘…심심하군.’

       

       내겐 유희라 할 만한 게 없었다.

       판타지 세계라 해봐야 마법과 검을 휘두르는 중세 시대일 뿐.

       

       재미있는 오락 거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조금은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제아무리 지금은 철갑 같은 비늘을 두른 뱀이라곤 하나, 한 때는 인간이었으니까.

       

       인간의 마음을 잃어버린 건 아니었다.

       수많은 세월을 뱀으로 살며 가장 중요시 여긴 건,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었으니까.

       

       한 때는 고민하고 방랑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된 옛말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춘기 같은 고민 따위, 인외마경에서 이미 끝마쳤다.

       

       아무튼 그런 탓에 나는 여전히 인간으로써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인간이 당연하게 느끼는 감정들 또한 자연스레 느낀다.

       

       특히나 심심함과 외로움.

       그 두개가 무척이나 치명적이었다.

       

       내가 수천 년이나 잠을 자며 허송세월을 보낸 이유였다. 눈을 뜨며 보내기엔, 너무나 심심하고 지루했으니. 시간이 흐른다면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했지만…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여전히 심심하고, 지루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문명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

       

       근데 여태까지 만난 인간들의 반응을 생각 해보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았다. 두려움에 벌벌 떨며 혼비백산 도망치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그냥 동굴에나 있어야 겠군.’

       

       그리 생각하며 똬리를 틀 때였다.

       

       [그대가, 내 심복을 죽인 녀석인가?]

       

       동굴에 마왕이 찾아왔다.

       

       

       * * *

       

       

       이 세계는 인간계와 마계가 존재한다.

       

       인간계는 인간을 비롯한 여신이 창조한 생물들이 사는 곳이다. 인간, 엘프, 수인 등등. 흔하게 판타지 하면 거론되는 곳이 바로 인간계이다.

       

       반면에 마계는 마신이 창조한 생물들이 사는 곳이었다. 마물, 마수, 마족, 마왕 등등. 용사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들이 거주하는 곳이 바로 마계였다.

       

       처음엔 두 세상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태초에 여신과 마신이 만든 두 드래곤이 세계를 조율하고 있던 탓이었다.

       

       마족도 인간계를 넘보지 않았고, 인간도 마계를 넘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서 평화로히 살아가고 있었다.

       

       하나, 세계의 조율자였던 드래곤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그에 따라 두 세계를 가르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자, 마계는 점차 인간계에 발을 들였다.

       

       마계의 생물들은 투쟁적인 생물.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점점 더 강해지길 추구하는 생물들이었다.

       

       그에 따라 마계의 생물들은 일정 개체가 유난히 강해지는 사건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끝없는 세월이 흘러 마계를 완전히 통일시킨 생물이 나타났다.

       

       마계의 생물들은 경외를 담아, 그 존재를 ‘마왕魔王’이라 불렀다.

       

       마왕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서로 간의 싸움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불만이 터져나왔으나, 마왕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입으로 하는 불만은, 이길 자신 조차 없는 버러지들이 하는 짓이었으니까.

       

       물론 채찍만 주진 않았다.

       

       마왕은 마계의 생물들을 설득했다.

       

       이곳은 너무나 척박하지 않느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조차 자라지 않고, 대지에 피어나는 모든 동식물들이 마기에 썩어문드러진다.

       

       그렇기에 마물들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동족들을 잡아먹어야만 했다.

       

       굶주린 배를 채워야 했으므로.

       더욱더 강해져서, 더 많은 포식자들을 먹어치워야만 했으므로.

       

       마왕은 그의 힘으로 두 세계를 연결시켜, 인간계의 풍요로운 자원을 보여주었다.

       

       풍요로운 대지와,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

       

       마물들은 그곳을 일종의 ‘낙원’으로 보았고.

       

       마왕의 힘으로 연 포탈을 통해 인간계를 향한 침공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마왕의 계획대로 인간계 침공은 순조로히 이어졌다. 오랜 세월 평화에 찌든 인간계는 속수무책으로 마계에 의해 무너졌고, 점점 빼앗은 영토가 늘어나며 인간계의 정복이 머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용사勇士’라는 존재의 탄생이 변수였다.

       

       여신의 축복을 등에 업고 의기 양양해 하는 머저리들. 인간 종의 한계를 뛰어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용사는, 마왕에게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쓸어담고 싶다만….]

       

       빌어먹을 여신.

       

       썩어도 준치라는 건가?

       그년이 건 법칙 때문에 마왕은 저 포탈을 넘어설 수 없었다.

       

       적어도, 마왕에 준하는 용사가 태어나기 전 까지는.

       

       그렇기에 마왕이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의 육신을 일부 떼어내어, 새로운 생물을 만드는 것은 가능했다. 강제로 자신의 세포를 강인한 마수에게 이식, 그리고 그를 통제하며 힘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그 개체는 인간계를 수월하게 망가뜨렸으나, 역시나.

       

       또 용사가 문제였다.

       

       [그래도 이제….]

       

       손을 까딱인다.

       

       슬슬, 저 포탈을.

       

       인간계를, 넘볼 수 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여신이 건 법칙은 무척이나 강력했지만, 수천 년의 세월동안 희석되고, 약화되어 이제는 그가 분석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여신년도 슬슬 손이 부족하겠지.]

       

       용사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고 살았던 인간에 불과하다.

       

       개중에 특출난 몇몇이 위험할 뿐, 그 외의 다른 용사 따위는 마계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왕이 법칙의 힘을 가늠하고 있을 때였다.

       

       [흠?]

       

       죽었다.

       그의 심복, 케르베로스가.

       

       거기까지였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제아무리 스스로의 세포를 불어넣어 강인하게 만들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그의 장기말에 불과하다. 고작 케르베로스 따위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터였다.

       

       [같군.]

       

       수 천년 전.

       그의 걸작, 악룡 켈리악시스를 죽인 힘과 같았다.

       

       [세월이 지나 죽은 줄 알았거늘.]

       

       제아무리 용사라 하더라도 태생적인 한계는 벗어날 수 없다. 그에게 주어진 수명을 아득히 넘어 수천 년을 살아갈 수는 없을 터.

       

       그렇기에 악룡을 죽인 이 또한 용사로 치부했고, 그가 죽었다 생각했거늘.

       

       아니었단 말인가?

       

       흥미가 생겼다.

       과연 그의 작품을 두 마리나 죽인 이는 누구일까.

       

       그는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잘랐다.

       그렇게 자른 손가락은 바닥에서 꿈틀 거리더니, 이내 마왕과 완벽이 동등한 모습으로 변했다.

       

       힘의 총량이 동등한 건 아니었다.

       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저 포탈을 넘지 못하겠지.

       

       그저 아주 조금.

       티끌도 미치지 못할 만큼 매우 작은 힘만을 가지게 했으나, 그 조차 포탈을 넘기에 매우 아슬아슬했다.

       

       수천 년 동안 법칙을 분석하고 해체한 게 아니었다면, 설령 분신이라 하더라도 포탈을 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주했다.

       

       거대한 동굴 속, 똬리를 튼 거대한 용을.

       

       [그대가, 내 심복을 죽인 녀석인가?]

       

       […….]

       

       푸른 눈이 마왕을 향한다.

       

       그 이질적이고 신비한 힘을 담은 눈동자에, 순간 몸이 움찔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마왕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내가… 겁을 먹었다고?’

       

       믿기 힘든 소리였다.

       

       하지만… 놈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할 수록, 본능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두려움은 분명 환상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힘을 억제한 분신이라도, 그의 하수인인 악룡과 케르베로스를 수백 번도 죽일 힘을 지니고 있는 분신이었다. 더군다나 필멸자의 한계를 넘어선 자신의 정신이 일부 담겨있는 분신이다. 그런데, 격을 마주한 것도 아닌 시선이 마주친 것 만으로 두려움을 느끼다니?

       

       마왕은 부정했다.

       그저 놈의 재주가 상대를 겁에 질리는 것에 그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썩은 악취가 나는군.]

       

       […뭐?]

       

       그 눈동자에 불쾌함이 담긴 순간.

       

       그리고, 그가 숨겨왔던 격을 아주 조금 드러낸 순간.

       

       

       [죽어라.]

       

       ‘……!!’

       

       그의, 존재 자체가, 소멸했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완벽하게.

       

       [쿨럭….]

       

       분신이 소멸했다.

       

       마왕은 그 여파로 피를 토해내며 씨익 웃었다.

       

       [인간계에 저런 존재가… 남아 있었을 줄이야.]

       

       처음이다.

       마왕이 태어난 이후로, 난생 처음으로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삶이 무료 그 자체였다.

       그 어떠한 생물도 그를 감히 넘볼 생각을 하지 못했으며, 평생 그 어떠한 생물 조차 그와 대등한 싸움은커녕 놀이 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용은 달랐다.

       

       비록 분신이라고는 하나, 격을 조금 드러낸 것만으로 그 분신을 완전히 소멸 시켰다.

       

       [최소 동등하거나, 미세하게 그 이상….]

       

       놀라웠다.

       이 내가, 승리를 점치지 못하다니.

       

       [하루라도 빨리 이 법칙을 깨부술 이유가 생겼구나.]

       

       마왕의 입이 찢어져라 벌려졌다.

       

       [기대되는 구나.]

       

       네놈을 씹어먹을 날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흑우님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연재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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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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