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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불쾌하다.

       

       쿠구구궁——.

       

       매우 불쾌했다.

       방금 마주한 사내는, 그만큼 내게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이 육신으로 오래 살아가면서, 인간의 눈으론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생물의 몸에서 흐르는 모든 신진대사와, 그 몸을 흐르는 이질적인 다른 기운들.

       

       이를 테면 마나, 오러 같은 기운들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생물을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나는 이미 녀석의 모든 정보를 아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혈액의 반응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지,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통해 무슨 행동을 할 지. 그 모든 게 훤히 눈에 보였다.

       

       또한 혀를 낼름 거릴 때마다.

       

       그 존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 지, 어떤 성품을 지녔는지 단편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내 앞에 다가온 사내의, 그것도 본체도 아닌 역겨운 분신에서 느껴지는 피비린내와 잔혹함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나의 적이라는 것을.

       그가 죽여온 인간만 해도, 아마 수백 년 동안 태어난 모든 인간들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을 터였다.

       

       고작 분신이었다.

       그 분신에 묻은 옅은 체취 만으로도 그런 역겨운 냄새가 났다.

       

       그렇다면, 그 본체는 얼마나 역겹고 끔찍한 괴물일까.

       

       그래서였다.

       저도 모르게 격을 방출한 것은.

       

       놈의 분신은 그것만으로 소멸했지만, 그렇기에 놈이 어디에 있는 지 찾아내지 못했다.

       

       [실책이군.]

       

       녀석의 모든 정보를 캐내어, 놈이 거주하는 곳으로 처들어가 사지를 찢어버렸어야 했는데.

       

       답지 않게 감정적이었다.

       이를 빠득 갈았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놈과 나는, 어떤 방식이든 다시 한 번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놈이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기억하는 순간일 터였다.

       

       

       * * *

       

       

       요르문간드가 분노에 찬 결과는 아주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갑작스레 전지역에 태풍이 불고, 비바람이 휘몰아치며 번개가 떨어져내렸다. 그럼에도 인명피해는 입히지 않은 채, 오직 마물과 마수만을 죽여버리는 자연재해는 무척이나 신묘했으나 왕의 시름은 깊어져만 갔다.

       

       “드래곤이라…….”

       

       왕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카만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이따금씩 번개가 칠 때마다 그 먹구름 속에서 거대한 드래곤의 형상이 보이는 듯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스가 잘못 본 것이라 간절히 여겼다.

       

       그저 당황스러워서.

       생각치도 못한 적을 만난 탓에 드래곤이라 착각한 것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제물을 보낸 것은, 혹시라도 한스의 말이 진실이라면 왕국에 초래할 재앙을 대비해서였다.

       

       왕은 언제나 국민을 생각한다.

       그의 판단 하나하나에 수많은 국민의 목숨이 달려있었다.

       

       그렇기에 혹시나 모를 자그마한 위험 요소 조차 남기지 않으려 동물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보군….”

       

       거대한 폭풍우와 비바람이 그를 증명했다.

       

       “역시나, 신화 속 이야기처럼 탐욕적이시군요.”

       

       드래곤이시여.

       어찌하여, 그 정도의 제물로 만족하시지 못하시는 겁니까.

       

       폭풍우와 비바람이 치는 이유가 단지 마왕을 마주한 까닭이었지만, 그걸 왕이 알 리는 없을 터였다.

       

       자연스레 그는 신화 속 이야기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신화 속 드래곤이 요구했던 ‘가장 중요한 제물’을.

       

       ‘가장 고귀하고 순결한 처녀라.’

       

       너무나 추상적이었다.

       

       가장 고귀한 기준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사람이 걸어온 길?

       그 사람이 품어온 성품?

       그 사람의 몸에서 흐르는 피?

       

       어느 것이 고귀한 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왕은 순간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한 소녀에 입술을 짓씹었다.

       

       “엘리세르데….”

       

       그의 하나 뿐인 딸이자.

       트렐리니아에서 가장 고귀한 아이를.

       

       엘리세르데를 바쳐야 한다고?

       

       오로지 신화 속 이야기만 믿고, 왕국을 보전하기 위해서?

       

       드래곤이 그걸로 만족한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지? 더욱더 딸 아이를 빌미로 무언가를 요구할 가능성은? 아니, 애초에 정말 신화 속 이야기가 맞는 걸까? 그 존재는 드래곤이 맞는 걸까?

       

       수많은 의문이 뇌리를 가득 메웠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꽈드득——

       

       거세게 움켜쥔 주먹에서 피가 흘렀으나,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자신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지 두려웠다.

       

       왕국과 딸아이.

       그 두개를 저울에 두는 건, 너무나 잔혹한 일이었다.

       

       한 아이의 아비로서도, 한 왕국의 왕으로서도.

       

       왕은 비바람과 폭풍우를 바라보며, 딸을 떠올렸다.

       

       한없이 밝게만 웃던 순수하고 착한 딸아이를.

       

       “…….”

       

       눈을 감았다.

       심상이 고요하게 가라앉으며, 거세게 뛰던 심장이 차분해진다.

       

       이윽고 트렐리니아 왕국의 왕, 레스벨리고 트렐리니아는 선택을 마쳤다.

       

       “왕국군들을… 모집해야겠군.”

       

       왕국의 전력을 끌어모아 드래곤과 협상한다.

       

       그리고 그 협상이 결렬했을 때, 왕국의 모든 걸 걸고 드래곤과의 전쟁을 벌인다.

       

       그것이, 한 아이의 아비가 내린 결정이었다.

       

       “아버지.”

       

       “엘리… 세르데?”

       

       …그랬을 터였다.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에 왕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의 가장 소중한 딸, 엘리세르데 트렐리니아가 서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소녀는, 아비의 심장을 도려냈다.

       

       “제가 제물이 될 게요.”

       

       “엘리세르데!!”

       

       저 처연한 웃음.

       그것이 그의 심장을 몇 번이나 난도질한다.

       

       왕은, 아비는 난생처음으로 딸에게 호통쳤다.

       

       “네가 무슨 어떻게 그 소식을 들었는 지는 모르겠으나, 설령 이 육신이 수십 번 죽고 죽어도 너를 제물로 바칠 일은 없을 거다.”

       

       활발한 아이였다.

       어릴 적부터 다재다능하고, 명랑하고 발랄하며 언제나 맑은 웃음을 짓고 다니는 아이는 왕국의 보석이나 다름 없었다.

       

       모두의 사랑을 받아오며 자란 소중한 딸이었다.

       

       그런 아이를, 드래곤 따위에게 바치다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터였다.

       

       “그만 가거라.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

       

       “아버지, 정말 드래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하다. 트렐리니아 왕국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위대한 왕국이다.”

       

       “단순히 감정의 변화 만으로 천재지변을 요동치게 만드는 존재를요?”

       

       “…….”

       

       “아버지, 아버지는 정말 드래곤과 대화가 통하실 거라 생각하시나요?”

       

       “그야 당연…….”

       

       “수많은 왕국군을 끌고 가시리라 생각하시면서요?”

       

       왕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 또한 알고 있었다.

       수백의 가축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적인 드래곤은, 결코 무력으로 평화를 부르짖는다 해도 듣지 않을 터였다.

       

       더군다나 그의 왕국 곁에 있는 적국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해 병력을 모으는 순간, 군사가 자리를 비운 왕국은 순식간에 다른 왕국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 터였다.

       

       그렇게 드래곤을 잡았다면?

       그 과정에서 아무런 출혈 조차 없이 싸움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왕은 낙관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드래곤을 상대하는데는, 매우 치명적인 출혈을 입을 거란 사실을.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트렐리니아 왕국은… 외세를 막아내지 못하겠지.

       

       속이 끌어올랐다.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만 같은 기분에, 그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게 어찌하란 소리더냐!!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설령 드래곤을 잡는다 해도 아무런 출혈 조차 입지 않긴 힘들겠지. 그렇게 된다면 주변 왕국들이 침략할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찌, 어찌 아비가 된 자로서 딸 아이를 제물로 바치란 소리더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차마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아버지…….”

       

       엘리세르데의 부드러운 손길이.

       왕의 눈가에 스며든 눈물을 닦아냈다.

       

       이윽고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서더니, 우아한 동작으로 그에게 인사했다.

       

       하나 뿐인 아비가 아닌, 왕에게.

       

       자식이 아닌, 왕녀로서.

       

       “소녀는, 제물이 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안 된다…….”

       

       “그러니 ‘왕’이시여.”

       

       “엘리세르데……!!”

       

       “부디 저를.”

       

       왕국을 위한 제물로 바치소서.

       

       

       그리고 그날.

       

       왕은 아비로서의 자격을 잃었으며, 제물로 바쳐진 이의 소식을 들은 왕국은 내리는 비 보다도 더 많은 비를 흘려야만 했다.

       

       

       * * *

       

       

       요르문간드는 멍하니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소녀였다.

       신이 직접 본인의 모습을 본따 작품을 만든다면 저 소녀와 같은 모습일까.

       

       물론 멍하니 바라본 이유는 소녀가 아름다워서만은 아니었다.

       

       소녀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무릎을 꿇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수많은 기사들과 병사들로 보이는 이들, 그리고 시종과 하녀로 보이는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소녀와 자신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소녀를 볼 때는 슬픔과 비통함을, 자신을 바라 볼 때는 증오와 원망을 담아서.

       

       이 요상한 상황에 도저히 할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을 때였다.

       

       시종과 하녀, 왕국군들이 비참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다 뭐라 말을 붙일 새도 없이 떠나가고.

       

       홀로 남은 소녀는 처연히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드래곤님. 당신을 위한 제물, 엘리세르데입니다.”

       

       제물이요?

       

       저한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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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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