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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오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지겨운 일이다.

       

       그건 설령 불멸자의 정신을 지녔다 해도 달라질 게 아니다. 무려 수천 년이다. 인간의 삶으로 20년 남짓을 살았을 때도 꽤나 긴 삶이었는데, 그게 수천 년이 넘어가면 어떨까.

       

       더군다나 이곳은 즐길만한 거리도 없다.

       

       설령 있었다 해도 이런 몸으론 무리겠지.

       

       커다란 뱀의 몸으로 인간과 원만한 교류를 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무척이나 심심했다.

       미친 척 하고 동물을 하나 붙잡은 뒤 말을 걸어봤지만 역시나 벌벌 떨기만 할 뿐.

       

       후에 그나마 말이 통하긴 했지만, 이내 현타가 와서 그만뒀다.

       

       그 후로 인외마경이라 불리는 곳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떠났지만, 역시 그것도 수 년에 불과할 뿐.

       

       유희라 하기도 전에 인외마경 안에서 내가 모르는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즈음에서 나는 잠을 선택했다.

       적어도 이 지루한 시간을 훅훅 넘기기엔 잠이 최고가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건 정답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느리게만 가던 시간이, 잠을 잘 때마다 천년 단위로 훅훅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전 생의 기억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교류를 하던 삶.

       

       비록 그 기억은 지금의 세월에 비해 티끌에 부족했으나, 여전히 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건 인간성이라 믿는 내게 타인과의 교류는 무척이나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이 가축을 데리고 왔을 때.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낯 부끄럽지만, 나는 그게 일종의 숭배를 위한 제물이라 생각했다.

       

       그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숭배하는 건 누누히 일어나던 일이었으니까.

       

       나름 커다랗기도 하고.

       신비롭게 생겼으니 인간들이 숭배를 하는 것도 그럴만 하다 생각했다.

       

       ‘헌데 아니었을 줄이야.’

       

       단순한 숭배가 아니었다.

       

       그보다 간절한.

       비틀린 신에게 스스로의 안위를 바라는 일종의 뇌물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드래곤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니.

       

       흉폭하기만 하고 이름값도 못하는 머저리들로 말이다. 그렇다면 내게 제물을 건넨 것도 퍼즐이 맞춰진다. 드래곤은 무척이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생물이니까.

       

       인간들을 협박하고 제물을 요구하는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내게 제물을 바쳤던 게 아닐까.

       

       우리 왕국에 해코지를 하지 말아주세요, 하고.

       

       그게 숭배가 아닌,

       오로지 안위를 위한 제물이라면.

       

       그런 걸 받을 생각 따윈 없었다.

       

       물론 가축들은 무척이나 맛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빚을 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빚은 언제나 마음의 부채감을 남기는 법이니까.

       

       그럴 바에 도움을 받지 않는 게 나았다.

       

       도움을 받을 정도로 형편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그 여자를 돌려보내려 차갑게 굴었다.

       

       사실 인간을 제물로 보낸 것에서 머리가 차갑게 식은 것도 있었다. 설마 말로만 듣던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진짜 있었을 줄이야.

       

       하물며 그녀를 보내는 이들의 반응을 보면, 무척이나 귀하게 자랐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였다.

       그녀를 돌려보내려 한 것은.

       

       그런데…….

       

       “…….”

       

       무슨 일일까.

       

       돌려보내려 한 그녀가 다시 동굴 깊은 곳에 들어온 일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몸을 움찔 떨던 그녀는 다람쥐가 몸을 부풀리듯 당당히 말했다.

       

       “저, 여기서 하룻밤만 자고 갈게요. 날이 어두워서.”

       

       아.

       

       생각해보니 지금 밤이었지.

       나의 시야에는 밤도 낮처럼 훤해 차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여자들에게 지금 같은 밤은 위험하지. 더군다나 마물이 돌아다니는 숲이라면 더욱더 그러하고.

       

       나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똬리를 틀며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눈을 감자, 그녀는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꼬물꼬물 호숫가에 다가갔다.

       

       물소리가 들린다.

       

       간단한 고양이 세수를 마친 그녀는, 잠을 잘만한 곳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 거렸으나 이 척박한 동굴에서 인간이 누울 자리가 있을 리 있나.

       

       주변을 순찰하는 미어캣처럼 열심히 움직이던 고개가 축 처져 바닥을 향했다.

       

       결국 타협하기로 한 모양일까.

       

       작은 한숨을 내쉬며 호숫가 근처에 자란 나무에서 커다란 나뭇잎을 떼어, 바닥에 여러장 깔더니 풀썩 앉았다.

       

       여전히 딱딱할 테지만.

       그녀는 나름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어딘 가에서 풀을 이리저리 엮어 베개처럼 두툼하게 엮더니, 그녀의 몸보다 큰 커다란 나뭇잎을 이불 삼아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으면서도 감각으로 그 꽁트 같은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피식 웃으며 그녀의 곁에 똬리를 틀어줬다.

       

       호숫가 근처의 동굴은 매우 서늘할 테니.

       

       적어도 바람막이 정도는 되어줄 수 있겠지.

       

       [꽤나 고귀하게 자란 것 같았는데….]

       

       이런 낯선 동굴에서 잘도 잠을 잘 줄이야.

       

       그 적응력 하나는 인정해줘야 할 것 같았다.

       

       [흠…….]

       

       언제나처럼 차갑기만 한 동굴 속에서.

       

       자그마한 숨소리가 색색 울려퍼진다.

       

       분명 그 숨결은 매우 미약했으나.

       어쩐지 따스한 온기를 품은 것 같아 오랜만에 만족 속에서 잠이 들었다.

       

       

       * * *

       

       

       “흠냐…….”

       

       엘리세르데는 몸을 뒤척이다, 발치에 채이는 나뭇잎의 감촉에 천천히 눈을 떴다.

       

       호숫가 근처에 만든 자그마한 그녀만의 간이 침낭. 커다란 나뭇잎으로 급조한 거지만 은근 폭신폭신하여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녀가 지내던 침대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초라하지만, 이런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다고 해야 할까.

       

       정원에서 풀들로 침대를 만들어 유모 몰래 잠을 자던 기억이 떠올라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윤기가 흐르는 새카만 벽을 손으로 짚어 자리에서 일어나 상쾌하게 기지개를 폈다가.

       

       [일어났느냐?]

       

       “흐약?!”

       

       갑작스레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다급히 고개를 들어올린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드래곤이었다.

       

       새카만 비늘과 푸른 눈동자.

       엘리세르데는 그제야 자신의 주변에 있는 벽이, 사실은 저 드래곤의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왜 몸을 둘둘 감싸고 있는 거지?

       

       설마, 나를 잡아먹을 생각인가?!

       

       [그럴 생각 없으니 안심하거라.]

       

       “크흠…….”

       

       [그나저나,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네?”

       

       [왕국까지 어떻게 돌아갈 생각이냐 물었다.]

       

       “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엘리세르데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랬다.

       이곳은 엄연히 마물이 거니는 숲.

       

       설령 낮이라 하더라도 평범한 여인 한 명이 돌아다닐 정도로 만만한 숲이 아니었다.

       

       게다가 왕국까지 거리고 상당히 멀었다.

       적어도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명료했다.

       

       그녀는 갇혔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드래곤과 함께.

       

       사실 별로 무시무시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엘리세르데는 그리 생각하며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눈동자.

       보면 볼 수록 빠져들 것만 같은 신비로운 눈동자가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자신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데. 그녀 따위 한 입에 삼켜버릴 정도로 강한 존재인데, 어째선지 그렇게 무서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저 드래곤이 자신을 해치치 않을 걸 알아서일까?

       

       아니, 드래곤이 맞기는 한 걸까?

       

       신화 속 드래곤은 성격이 매우 좋지 않게 묘사됐다.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마을을 멸망시켰고, 반짝이는 것을 광적으로 좋아하며, 매우 탐욕적이라 언제나 제 배를 불리려 원하는 건 뭐든지 빼앗았다.

       

       ‘하지만…….’

       

       그런 신화에 비하면 그는 매우 온화했다.

       

       비록 만난 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았지만, 딱히 탐욕적인 것 같지도 않았고.

       

       ‘은근한 배려도 있으니.’

       

       엘리세르데는 그가 자신을 둘러싼 이유가, 동굴 밖에서 오는 찬 바람을 막아주기 위해서란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서 멀어지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동굴 안으로 불어왔으니까.

       

       솔직히 첫인상은 엄청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옅어졌다.

       

       “혹시, 드래곤이신가요?”

       

       그래서 물어보았다.

       

       [아니, 나는 요르문간드다.]

       

       “요르문간드?”

       

       [흠… 뭐라 설명해야 할까. 일종의 커다란 뱀이지.]

       

       커다란 뱀이 감정 기복에 따라 천재지변을 일으켜? 게다가 용사인 한스 아저씨를 겁에 질린 똥개처럼 만들다니.

       

       뭔가 이상했지만.

       엘리세르데는 금방 수긍했다.

       

       아무렴.

       

       지옥에서 온 지옥견 케르베로스도 있고, 드래곤이 타락한 악룡도 있는데, 엄청 커다랗고 엄청 강한 뱀이라고 없을까.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튼, 드래곤은 아니란 거지?

       

       어쩐지.

       그 흉폭하던 드래곤과 비교된다 싶었긴 하다.

       

       의문이 해소됐다.

       

       그럼, 이걸로 왕국이 드래곤한테 위협당할 일은 사라졌고!

       

       남은 건——

       

       ———꼬르륵.

       

       “아.”

       

       동굴에 울려퍼지는 우렁찬 소리.

       

       엘리세르데의 새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크흠.]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지….

       

       그녀는 달아오른 얼굴에 손 부채질하며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지금은 다른 생각들 보다도, 이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엘리세르데는 호수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

       

       어떻게 물고기 한 마리 없지?

       

       고개를 휙휙 돌려본다.

       호수 주변의 풀을 제외하면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삭막한 동굴.

       

       뽈뽈뽈.

       

       보이는 생물이라곤 발치에 기어다니는 자그마한 개미 뿐.

       

       “저, 혹시 먹을 게…….”

       

       [흠, 인간이 먹을 건 딱히 없구나.]

       

       엘리세르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노란글자님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도록 노력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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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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