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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오해는 금방 풀렸다.

       

       한동안 새빨간 얼굴로 시선을 가누지 못하던 용사는, 이후 몇 번이나 더 용서를 구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돌아온 동굴.

       요르문간드와 왕녀의 사정을 듣던 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렐리니아 왕국이라… 제가 데려다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걷는다면 도착할 수 있을까.

       

       왕녀님을 데리고 간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원래 야영을 자주하던 아스가르드에게 문제는 아니었다.

       

       이 근방에 그가 상대하지 못할 마물도 존재하지 않았고 말이다.

       

       저, 요르문간드라는 존재를 제외한다면.

       

       때마침 그의 목적지도 트렐리니아 왕국이었으니, 엘리세르데를 데려다 주는 일 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으음…….”

       

       엘리세르데는 그에 고민했다.

       

       어째서일까?

       원래라면 그냥 돌아갔을 텐데….

       

       그녀는 고개를 들어 요르문간드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가만히 바라봐주는 푸른 눈동자.

       네 선택에 맞긴다는 듯한 그 눈동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엘리세르데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굳이 지금 왕국에 갈 필요는 없으니까. 대신 제 소식 좀 전해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용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세르데가 무슨 선택을 하든, 그건 온전히 그녀의 선택이었으므로.

       

       여기에 남겠다는 말이 이해가 되진 않았으나, 그녀가 어련히 알아서 하리라 생각했다.

       

       ‘딱히 해코지를 당할 일도 없으니.’

       

       아무렴.

       무려 요르문간드가 옆에 있는데 왕녀가 해코지를 당한다?

       

       그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순간 자신의 흑역사가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려 했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자신이 트렐리니아 왕국의 변방에 찾아온 이유를 상기했다.

       

       ‘전장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그렇기에 발걸음을 재촉하던 터였다.

       

       “저는 이만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용사가 떠나가고.

       

       동굴에는 또 다시 왕녀와 요르문간드만이 남았다.

       

       그렇게 같이 동굴 깊숙이 들어가자, 완전히 반파되어 넝마가 된 동굴이 둘을 반겼다.

       

       [아.]

       

       “아.”

       

       용사한테 이거 다 고치고 가라 했어야 했는데.

       

       기감을 넓혀보니 이미 쏜살처럼 도망가버린 용사.

       

       결국 요르문간드와 엘리세르데는 낑낑 거리며 무너진 동굴을 열심히 고쳐야만 했다.

       

       

       * * *

       

       

       시간이 흘러,

       어느새 왕녀가 동굴에 온 지도 한 달이 되었다.

       

       그 사이에 동굴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삭막하기만 한 호수 근처에 꽃들이 예쁘게 피었으며, 여러 과일이 자라는 나무도 빼곡히 자랐고, 왕녀가 누울 수 있는 침대도 생겼다.

       

       “후아…!”

       

       왕녀는 폭신한 침대 위에 몸을 던지며 몸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자 보드라운 이불의 감촉이 왕녀를 감쌌다. 어떻게 이 동굴에 침대가 있느냐 하면, 요르문간드의 등 위에 올라타서 침대를 사왔다.

       

       그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풍경이 슉슉 뒤바뀌는 것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이, 그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다.

       

       아무튼.

       그렇게 침대를 사온 동굴은 신이고 무적이었다.

       

       거기다 요르문간드가 가져다 준 발광석까지 침실 옆에 두니, 한없이 투박하기만 했던 이곳도 이제는 나름 그럴싸 해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수확은, 요 한 달 사이 요르문간드와 나름 친해졌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잘 때면 은근슬쩍 다가와 몸을 둥그렇게 마는 것도 그렇고, 서슴없이 말을 거는 것도 그렇고.

       

       그녀가 요르문간드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 그는 귀찮아 하면서도 열심히 대답해주었다.

       

       거기다 이름을 불러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단숨에 나타나주기까지.

       

       엘리세르데는 은근 요르문간드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물론 커다란 덩치와 어떤 마물이라도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오금을 지려버리는, 자신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강자였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말이 잘 통한다고 해야 할까.

       

       분명 짐승의 몸이라 사람은 잘 이해해주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는데, 놀라우리만큼 요르문간드는 연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잘 해주었다.

       

       거대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울퉁불퉁하던 동굴을 평탄화 해주고, 어둡기만 하던 동굴 이곳저곳에 발광석을 달아 밝게 해주었으니까.

       

       “가만 보면 사람 같단 말이야.”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엘리세르데는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요르문간드의 비늘을 부드럽게 쓸었다.

       

       마치 귀한 보석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

       

       한동안 그를 쓰다듬던 엘리세르데는, 문득 느껴지는 심장의 압박감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또… 심장이….”

       

       몇년 전.

       아버지도 모르게 성직자를 불러 체크한 몸 상태.

       

       그녀는 저주에 걸려있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생명을 갉아먹는 저주에.

       

       

       * * *

       

       

       칼리바르고의 국왕, 칼 레디엄스는 한 소식을 듣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흠, 트렐리니아 국왕이 자신의 딸을 드래곤에게 바쳤다? 그것도 제물로?”

       

       트렐리니아 왕국은 그의 왕국 바로 옆에 위치한 왕국이었다. 그렇기에 설령 왕가가 철저히 그 사실을 숨겼다고는 하나, 칼리바르고 왕국에게 숨길 정도는 되지 못했다.

       

       바로 옆에 위치한 국가였고, 또한 공주가 이동하면서 수많은 기사들이 함께 이동했기에.

       

       더욱이 칼리바르고 왕국이 트렐리니아 왕국을 주시하고 있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그런 칼리바르고에게, 이 일은 큰 차질을 남겼다.

       

       “그러면 그녀를 패로 쓰지 못하는데 말이지.”

       

       몇년 전.

       그의 왕국에서 마계와 협력하며 같이 벌인 사건이 있다.

       

       바로 트렐리니아 왕국의 왕녀에게 저주를 씌우는 일이었다. 마계에서만 유행하는 마법, 흑마법은 주로 악의와 증오를 담은 마법.

       

       그렇기에 그들의 마법은 하나같이 흉악하고 끔찍하기 마련이다.

       

       트렐리니아 왕족을 대상으로 행한 흑마법 또한, 사실상 저주에 가까웠다.

       

       저주에 걸린 이의 수명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이윽고 그것이 임계치를 넘긴다면 끔찍한 재앙으로 만들어버리는 저주였다.

       

       과연 수도 한복판에 괴수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어찌저찌 괴수를 처치한다고는 해도, 분명 트렐리니아 왕국은 큰 혼란에 빠질 터였다.

       

       고귀한 피를 삼킨 저주일 수록 더욱 강한 괴수를 탄생하게 만드는 저주였으니까.

       

       그래.

       말해 뭐할까.

       

       칼 레디엄스는 트렐리니아 왕국을 삼킬 작정이었다.

       

       “그 왕국만 내가 삼킨다면… 황제가 될 수 있다.”

       

       감히 제국을 세우겠다는 오만한 탐욕.

       

       오래 전부터 뿌리가 깊던 트렐리니아 왕국과는 달리, 칼리바르고 왕국은 건국된 지 오래되지 않은 왕국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왕국이 아니었다.

       

       그저 자그마한 마을이, 다른 외세를 침략하며 크기를 키우고 키워 만들어진 왕국.

       

       그곳이 바로 칼리바르고 왕국이었다.

       당연히 그런 행태는 주변의 다른 왕국들에게 견제를 받기 마련이었으나, 모두 짓밟았다.

       

       그의 왕국엔 압도적인 무력이 있었기에.

       

       불만인 왕국들은 모두 집어삼켰다.

       그렇게 몇 번이고 왕국을 집어삼키고, 침략하고, 약탈하고, 모든 걸 앗아갔다.

       

       그렇기에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그의 왕국은 피로 뒤덮인 왕국이었다.

       

       그를 씻어내기 위해선, 대륙의 가장 고귀한 제국이 되어야만 한다고, 칼 레디엄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마족과 결탁했다.

       그들의 흑마법을 빌어 사람을 괴수로 만드는 끔찍한 마법을 다른 누구에게도 아닌 왕족에게 걸었으며, 그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내고 있었다.

       

       만약 왕녀가 그 저주를 알아내면 어찌하느냐?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 저주를 위해 자국민 수백 명을 제물로 바쳤기에.

       

       감히 그에게 거스를 인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피로 씌워진 저주였다.

       설령 저주라는 걸 알아도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는 알지 못할 터였다.

       

       해주하려 해도 불가능했다.

       그 저주를 없애는 방법은, 적어도 인간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왕이 그 저주를 해주하려 더욱 발악하길 바랬다. 그 저주는 자신의 기운에 상응하는 기운을 받아들일 수록, 더욱더 자극하면 자극할 수록 더욱 지독하고 거세게 사용자의 수명을 갉아먹을 테니까.

       

       완벽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그 나약한 국왕이 자식을 버릴 리도 없다고 생각했고 말이지…….”

       

       그런데 오산이었나 보군.

       다른 무엇도 아닌 드래곤의 제물로 바쳤다니.

       

       “크흡….”

       

       우스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와 함께 다른 왕국을 치자는 소리에, 자신을 바라보는 자국민을 위해서라도 그런 짓은 저지르지 않을 거라던 양반이었다.

       

       그 쓸데없기 짝이 없는 눈빛을 본 순간부터 그의 왕국을 침략하자 생각했다.

       

       그랬기에 트렐리니아 왕국의 왕녀에게 저주를 걸고, 국방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다른 왕국을 겁박해 최전선으로 병력을 보내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데, 크핫! 자식을 제물로 바치다니.”

       

       그것도 존재할 지도 모르는 드래곤 따위에게!

       

       웃기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조금은 고심이 되었다.

       

       이러면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지도 몰랐으니까.

       

       앞으로 왕녀가 죽고, 저주가 끔찍한 괴수를 탄생하게 만들 날도 머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그 저주가 왕국을 벗어나면서 완전히 꼬였다.

       

       설령 드래곤에게 잡아먹혀도 저주는 발동될 테지만… 왕국의 깊숙한 곳이 아니라면 큰 소용은 없겠지.

       

       [아직, 그녀는 살아있습니다.]

       

       갑작스레 뒤에서 튀어나온 검은 피부의 인간.

       

       그러나 칼 레디엄스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로 왕국과 결탁한 마족이었기에.

       검은 피부와 흰자와 검은자가 뒤섞인 역안, 마치 상어처럼 입안 가득한 뾰족한 이빨과, 머리에 달린 염소의 뿔까지.

       

       그가 건넨 말에 칼 레디엄스는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드래곤이 왕녀를 죽인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왕녀를 귀환시켜야 한다.

       

       “병력을 파견해라.”

       

       오만한 드래곤을 찢어죽이고.

       

       왕녀를 구한다는 대의를 목적으로.

       

       [예.]

       

       마족은 그 누구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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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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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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