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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의 눈은 무언가 다르다.

       평범한 인간이, 혹은 그 어떤 생물이라도 보지 못할 특이한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보였기에 추측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왕녀의 심장에 스며든 아주 칙칙하고 새카만 무언가. 거대한 악의가 한없이 압축되고 뭉친 것만 같은 그것은, 매우 옅어 그의 육안으로도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그럼에도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일종의 저주겠군.’

       

       그것도 아주 지독한.

       

       이 사실을 왕녀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 또한 자신에게 저주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듯 보였고, 무엇보다 지금의 그로써는 해결 방법이 없었으니까.

       

       아무리 그가 요르문간드라 하나, 어디까지나 그 힘은 본신의 힘에 치중되어 있다.

       

       그 어떠한 저주도, 독도, 무기도 통하지 않지만.

       그것이 곧 다른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왕녀의 저주를 해주해줄 수 없었다.

       

       그것도 이미 수 년동안 끊임없이 왕녀의 생명을 갉아먹었기에, 그 저주는 이미 왕녀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섣불리 떼어내려 한다면 그녀 또한 멀쩡하지 못할 터였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 조차 모르나, 무언가 그녀를 치료할 방법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가능성이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그 중 그 무엇도 요르문간드가 능동적으로 행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모든 것은 왕녀의 선택이고, 그녀의 의지였기에.

       

       더욱이 그는, 이 사실을 왕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명확한 직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추측하고 있는 바를 왕녀에게 말해준 순간, 그것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

       

       그렇기에 요르문간드는 그녀를 방관했다.

       

       태풍을 맞고 있는 가녀린 꽃을 지켜만 보았다.

       

       그녀의 풀 뿌리를 뽑아 아늑한 우물 속에서 평생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시린 고통을 견뎌내고 그녀가 스스로 이겨내길 바랐기에.

       

       ‘부디 이 사실을, 그녀가 눈치 채주길.’

       

       그는 간절히 바랐다.

       

       

       * * *

       

       

       고결의 용사, 아스가르드.

       

       그는 트렐리니아 왕국에 왕녀의 소식을 전하고, 다시금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트렐리니아 왕국과 칼리바르고 왕국의 국경 사이, 수천 년 전부터 마계와의 전쟁이 이어져오던 전장으로.

       

       그리고 칼리바르고 왕국에 다다르면 다다를 수록, 아스가르드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고요하군.’

       

       숨막히는 침묵.

       이곳은 분명 전장이었다.

       

       끝도 없이 피가 튀고, 죽음과 살점이 휘날리는 곳.

       

       그렇기에 이런 침묵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야기하지 않았다.

       

       전장에 있어 침묵은 새로운 폭풍을 불러올 전조였기에.

       

       아스가르드는 두 눈에 오러를 씌운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 사방이 한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산에서 주변을 둘러봄에도, 이상한 점은 딱히 발견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고, 텅 빈 전장만이 남아있을 뿐.

       

       그렇기에, 더욱더 이상했다.

       

       눈에 오러를 더욱 집중해 불어넣는다.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시야가 붉게 물들고, 과도한 힘의 사용으로 눈이 뻑뻑했으나 그 보다 불길한 예감에 계속해서 두 눈에 힘을 주고 무언가를 찾을 때였다.

       

       “……!!”

       

       보였다.

       평화롭기만 한 산맥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검은 흐름이.

       

       용사는 그 실체를 따라, 그 기괴한 마법의 흐름을 역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았다.

       

       “저게… 무슨….”

       

       산맥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마물과 인간의 군세를.

       

       그리고 그 목적지는, 분명히….

       

       “…….”

       

       용사는 군세를 추척하기 시작했다.

       

       

       * * *

       

       

       칼 레디엄스.

       수 만에 이르는 마물과 인간의 군세 중앙에 선 그는,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흠, 좋구나.”

       

       가히 끝이 보이지 않는 군세가 그의 손아귀 안에서 완전히 통제된다. 그 사실은 칼 레디엄스에게 있어서 크나큰 희열이 되고 있었다.

       

       무려 군세가 수 만이었다.

       그 모두가 어지간한 마을 하나는 괴멸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군다나 그들은 몇 번이고 사선을 넘어온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다.

       

       설령 드래곤이라고는 하나, 이 군세를 뚫어내지는 못할 터.

       

       칼 레디엄스는 트렐리니아 왕국이 제게 복속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입꼬리가 찢어져라 웃었다.

       

       그리 멀지 않았다.

       그의 왕국이, 이 대륙에 떠오른 태양이 되기 까지.

       

       “전원, 정지!!”

       

       전장을 울리는 목소리.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동굴이 있었다.

       

       수백 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만한 거대한 동굴.

       

       그 앞에선 칼 레디엄스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정보는 확실한 거겠지?”

       

       [예, 저 안에 왕녀가 있습니다.]

       

       “모두 출격… 아니지. 직접 나와주시는 군.”

       

       칼 레디엄스는 점점 드러나는 존재의 모습에,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렇게 왕녀가 소중했나? 꼴에 제물이라고, 지키려 앞에 튀어나오는 꼴 하고…… 는….”

       

       

       ——스으윽.

       

       처음에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저 어지간한 마수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놈이 점점 몸을 들이밀 수록, 놈의 흑단과 같은 비늘이 드러나고, 거대한 육체가 드러나고, 시퍼런 눈과 함께 그 몸체가 완전히 튀어나온 순간.

       

       

       -……….

       

       전장에는 숨 막히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그 존재는,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끝도 없이 커져 마치 자신이 하늘이라는 듯, 이 거대한 산맥의 주인이 오로지 자신이라는 듯 거대한 몸을 부풀리며 하찮은 벌레를 보듯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칼 레디엄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저게 뭐야….”

       

       저게, 드래곤이라고?

       

       말도 안 된다.

       저 정도 크기의 생물이 존재할 리 없다.

       

       그런데… 그렇다면 저 존재는 뭐지?

       

       시리도록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또한 수십 년을 전장에서 구르고 굴러온 베테랑이었다. 그렇기에 남의 살기를 받는 것은 익숙했다. 오히려 살기를 받을 수록 피가 끌어올라 더욱더 광분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저 압도적인 격.

       

       모든 걸 아래로 내려다보는 광오한 시선 앞에서는.

       

       설령, 그 조차.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너희구나.]

       

       마치 대지가 끓어오르는 듯한 울림.

       

       그 섬뜩한 울림에 대지가 거칠게 진동한다. 하늘에 점점 먹구름이 몰려오고, 메마른 하늘에서 거대한 벼락이 떨어져 그들의 군세를 불태우며, 거대한 폭풍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어느 새카맣게 변한 하늘에서.

       사무치도록 시린 푸른 눈동자 만이, 거대한 하늘에 달처럼 떠올라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 눈동자가 분노에 찬 그 순간.

       

       “아, 아아아아……!!”

       

       가만히 있던 병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를 바라보던 모든 마물, 마수, 인간, 마법사들이.

       

       동시에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그들의 격이, 사고가, 정신이.

       차마 저 거대한 존재를 담지 못해, 뇌가 터져버리려 하는 것이었다.

       

       그건 칼 레디엄스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냐…! 뭐냐고, 씨발!! 저, 게. 도대체 뭔데…!!!”

       

       눈에서 피가 흘렀다.

       격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전신의 근육이 얼어붙어 마비가 되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극도의 공포에 질려 사멸해버리는 것만 같았다.

       

       거세게 이를 깨문 탓에 이빨이 깨져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느낄 새 조차 없었다. 그 정도로 그의 모든 신체는, 저 드래곤에게 압도당해 있었다.

       

       

       저런 게, 생물일 리가 없다.

       

       

       저런 게, 실존할 리가 없다.

       

       

       저런 게, 드래곤일 리가 없다.

       

       존재 자체가 재앙이었다.

       감히 인간이라는 벌레가 막아낼 수 없는 천재지변.

       

       대지가 요동치고.

       거대한 화산이 터져 하늘에 재를 뿌리며, 어디선가 몰려온 해일이 병사를 휩쓸고, 사위를 가득 메우는 번개가 그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천벌天罰.

       

       그래, 천벌.

       그것은 광오한 인간에게, 하늘이 내리는 가장 큰 벌이자, 죄악이었다.

       

       아, 아아….

       칼 레디엄스의 정신이, 자아가, 사고가.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저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모든 정신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멈춰라.]

       

       낮게 울리는 소리.

       

       드래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마치 새카만 부정형 액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유리창을 쇠붙이로 갈아 비명을 지르는 듯한, 온 생물의 피와 살점이 죽음을 노래하는 듯한.

       

       그런 소리였다.

       

       [멈춰라, 드래곤.]

       

       푸른 눈동자가 마족을 향한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의 손아귀에는 어떠한 형상이 비치고 있었다.

       

       심장을 움켜쥔 채,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구는 엘리세르데의 형상이.

       

       [……!!]

       

       요르문간드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마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법을 발동해라!!]

       

       천둥 같은 마법이 담긴 목소리.

       그에 고통에 휩싸이던 이들이 모두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요르문간드를 향해 마법을 날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수명을 대가로 하는 봉인 마법.

       

       끔찍하리만치 사악한 기운으로 이루어진 사슬이 요르문간드를 향해 쏘아졌다.

       

       수십, 수백, 수천 개에 이르는 사슬.

       그 사슬을 날린 모든 마법사들은, 순식간에 새카만 해골만 남긴 채 사그라들어버렸다.

       

       마법사의 모든 수명과 영혼을 바친 봉인 마법.

       

       그건 제아무리 요르문간드라 해도, 무시할 만한 마법이 아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무시할 정도가 되지 않을 뿐.

       

       이 따위 사슬은 몸 한 번 발버둥치는 것으로 풀릴 정도로 나약했으나.

       

       [가만히 있어라.]

       

       마족의 손아귀에 펼쳐진 검은 저주.

       그 저주가 누구에게 이어져 있는 지를 확인한 요르문간드는, 가만히 그 사슬에 몸이 묶였다.

       

       ———쿠우웅!!

       

       거대한 거체가 땅바닥에 처박힌다.

       

       죽일듯 자신을 노려보는 그 푸른 눈동자 앞에서.

       

       마족은 입꼬리를 올렸다.

       

       [인간성을 지녔구나.]

       

       그것이, 네놈의 유일한 약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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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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