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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때로는 그저 때를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나를 묶는 사슬은, 내게 그 어떠한 속박도 주지 못했으나.

       

       그저 가만히 있었다.

       이걸로 놈이 방심하기만 한다면 충분했다.

       

       놈의 경계가 느슨해진 순간.

       

       안일해져, 스스로의 계획에 자신이 붙어서.

       

       그렇게 나라는 변수를 제외하는 순간.

       

       그 순간이, 네 파멸일 테니.

       

       

       * * *

       

       

       마왕의 오른 팔.

       

       켈리팍은 자신의 앞에 쓰러진 녀석을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 놈이 마왕님께서 말씀하신 놈인가.’

       

       거대한 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눕혀있는 모습이 꼴사납다. 이 따위 존재가 감히 마왕님의 분신을 죽이다니.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녀석이 아주 자그마한 격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인간이 스스로 자결하려 들었으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격을 더 드러냈다면, 혹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이 지체 됐다면 모두가 전멸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도 녀석을 완전히 봉인시킨 건 아니었다.

       

       사슬은 그저 구실일 뿐.

       비록 그 사슬에 수 천명에 달하는 인간의 수명과 영혼이 바쳐졌지만, 마왕님의 분신을 단순히 격으로 터트려버린 놈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터.

       

       몸을 꿈틀거리기만 해도 봉인은 부숴지다 못해 바스라질 터였다.

       

       그럼에도 놈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꺄악! 이거 놔!!”

       

       ——저 소녀 때문이겠지.

       

       그저 트렐리니아 왕국을 제물로 삼기 위한 말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녀석은 나를 죽일 수 없다.’

       

       켈리팍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저 소녀가 살아있는 이상, 저 커다란 뱀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저주의 시전자가 죽는 순간, 저주는 최후의 발악을 하며 소멸 되니까.’

       

       그게 저주의 특성이었다.

       시전자가 죽는 순간에 오히려 더욱 힘을 더하여 끔찍한 저주를 남긴다.

       

       만약 여기서 자신이 죽는다면, 이미 수명이 될 대로 빨려버린 왕녀 따위는 흔적 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려 죽어버릴 것이다.

       

       “하하!! 저 왕녀를 꽁꽁 묶어라!”

       

       어느새 정신이 돌아온 칼 레디엄스가 소리쳤다.

       

       그의 호탕한 웃음에 전군이 요르문간드가 격을 일부 드러낸 여파를 떨쳐내며 왕녀를 묶었다.

       

       “네놈이 왕녀인가!”

       

       “뭐야, 이 대머리야! 날 놔줘!”

       

       “…….”

       

       칼 레디엄스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던 엘리세르데의 눈에, 마침내 한 존재가 담겼다.

       

       “……아.”

       

       본인의 힘을 다 펼쳐내지 못한 채.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은 끔찍한 사슬에 묶여있는 한 존재를.

       

       “……요르문간드.”

       

       왕녀의 행동이 멈췄다.

       그녀는 가만히 요르문간드를 바라보았다.

       

       설마, 진 것일까?

       

       그 요르문간드가?

       

       아니다.

       요르문간드가 이 따위 놈들한테 패배할 리가 없다.

       

       저 따위 사슬은 몸부림 한 번으로 부숴버릴 수 있을 거야.

       

       그럼 어째서 가만히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을 품던 엘리세르데는, 요르문간드의 푸른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향하다, 답을 찾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자신의 가슴이었다. 정확히는 그 안에 있는 심장.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왕녀의 심장에 있는 저주를.

       

       그럼에도 섣불리 말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를 기다려준 것이었다. 그제서야, 왕녀는 어째서 요르문간드가 가만히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에…?”

       

       […….]

       

       왕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두근 거리는 심장이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이 저주의 시전자가 있다고. 그렇기에, 자신을 살리기 위해 가만히 있는 것이다. 설령 저주의 시전자를 죽인다 해도, 저주가 자연소멸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째서…?”

       

       나 따위는, 그냥 무시하면 될 텐데.

       

       엘리세르데는 그와 자신 사이에 거리감이 있다 생각했다.

       

       당연했다.

       그가 뱀이고,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제쳐두더라도.

       

       엘리세르데는 제물로 바쳐진 입장이었고, 요르문간드는 그런 그녀의 주인이었다.

       

       그렇기에 서로가 모르는 자그마한 벽이 존재했다. 요르문간드는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어주었으나, 그것이 곧 그가 자신에게 정을 주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바는 아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에게 정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엘리세르데 또한 자신의 저주를 말하지 않았다.

       

       괜히 그에게 짐을 얹어주기도 싫었으며, 설령 말했더라도 달라질 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요르문간드가.

       

       가만히 묶여만 있었다.

       오로지 엘리세르데, 제물로 바쳐진 자신 때문에.

       

       “그냥, 그냥 쓸어버려요…! 저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 없으니까!!”

       

       […….]

       

       그는 행동하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기만 할 뿐.

       

       엘리세르데는 입술을 짓씹었다.

       거세게 움켜쥔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무력하다.

       자신의 무력함을 이토록 지독하리만치 실감한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 그에게 제물로 바쳐졌을 땐, 왕국을 위한 제물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왕국을 살릴 수 있다면 다행이라 여겼다.

       

       자신의 죽음이 안타까웠으나.

       어차피 저주로 인해 죽을 운명이라면, 그 죽음을 대가로 자신의 왕국을 살릴 수 있다면 다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탓에.

       요르문간드와 친해진 탓에.

       

       완전무결하던 요르문간드에게 틈이 생겼다.

       

       그 때문이었다.

       요르문간드가 패배한 것은.

       

       왕녀는 질끈 눈을 감았다.

       

       [눈물겨운 이별은 여기까지 하고, 가시죠.]

       

       증오스러운 목소리.

       

       엘리세르데가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으나, 마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릴 뿐.

       

       [끌고 가라.]

       

       

       * * *

       

       

       “…말도 안돼.”

       

       멀리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아스가르드는, 그 믿기지 않는 광경에 숨을 삼켰다.

       

       요르문간드가 제압됐다.

       그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칼리바르고의 왕 칼 레디엄스 옆에 마족이 서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건 심각한 조약의 위반이었다.

       

       인간계의 가장 위대한 제국이 마계와 전쟁하는 순간 세워둔 법률.

       

       절대,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계와 협력하지 말 것.

       

       그 조항을 어긴 것이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왕이, 마족과 합심하여 다른 왕국의 왕녀를 납치하면서까지.

       

       아스가르드는 그가 자의적 타살을 바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국이 버젓이 있는데 마계와 손을 잡을 리가 없었다.

       

       물론 요르문간드가 제압된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그가 마주한 요르문간드는, 드래곤 따위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가 마주한 드래곤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오랜 봉인이 풀려 나약한 드래곤이었지만. 그럼에도 용사의 모든 힘을 끌어쓴 아스가르드의 힘에 즉사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그런 드래곤도 요르문간드의 발톱 때만큼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고작 저 군세 따위로, 요르문간드를 제압하다니.

       

       “아니, 이유가 있었군.”

       

       돌아가는 상황으로 사태를 파악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엘리세르데를 이용해 협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엘리세르데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그마한 감옥에 끌려간다. 그들은 이내 요르문간드를 내버려두고 떠나가기 시작했다.

       

       어딘가로 향하는 걸까.

       그 끝을 살피던 아스가르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트렐리니아 왕국…….”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들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트렐리니아 왕국에 데려가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애초에 왕녀를 감옥에 구속해두다시피 데리고 왕국에 가는 것부터 목적이 불순해보이지만 말이다.

       

       “막아야 겠군.”

       

       할 수 있을 지는 모른다.

       하지만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에겐 빚이 있었으니까.

       

       그걸 위해 아스가르드는 몸을 던졌다.

       

       적의 한 가운데에서.

       

       ——콰아아아앙!!

       

       

       * * *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진다.

       

       찬란한 은빛의 유성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더니 거대한 폭풍으로 전군을 쓸어버렸다.

       

       “뭐, 뭐야!!”

       

       병사들 사이에서 혼란이 야기됐다.

       

       그건 선두에 섰던 칼 레디엄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구냐!”

       

       칼 레디엄스의 호통.

       그러자 흙먼지가 걷혀지며 한 사내의 신형이 드러났다.

       

       “용사.”

       

       짤막한 목소리와 함께 그가 검을 치켜들었다.

       

       “요, 용사…?”

       

       모두의 시선에 의문이 담겼다.

       

       용사라니?

       그런 사람이 왜 지금 여기 있단 말인가?

       

       “용사! 당장 비켜라!! 우리는 지금, 왕녀를 왕국에 데려다 주러 가고 있다!!”

       

       칼 레디엄스가 소리쳤다.

       하나, 용사는 차가운 눈동자로 가만히 그런 왕을 노려보았다.

       

       “왕녀를 데려다준다라… 그런 감옥에 넣어놓고 말인가?”

       

       “하하, 왕녀가 조금 사나워서 말이지. 아무래도 집에 가기 싫은 모양이야. 하지만, 그런 이를 돌려보내는 것도 이리 현명한 왕의 덕목이지. 그러니 비켜라, 가출한 왕녀를 왕국으로 데려다 줄 터이니.”

       

       “…….”

       

       용사가 침묵하자,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지나쳤다.

       

       아무리 그라도 용사를 죽이는 건 무리였으니까. 단순히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여신의 저주를 받게 된다.

       

       그게 딱히 신체적 피해를 야기하진 않지만, 인간계의 모든 생물에게 혐오를 끼치게 만드니.

       

       제아무리 그라고 해도 용사를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지나치는 순간.

       

       카아아앙——!!

       

       두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용사, 검을 거두어라.]

       

       “닥쳐라. 더러운 마계의 짐승과는 대화하지 않겠다.”

       

       새카만 마기와, 새하얀 오러가 충돌한다.

       

       그 두 기운이 충돌하는 것만으로 대지가 뒤집어지며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와, 모든 인간들을 밀쳐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죽여주마.”

       

       [할 수 있다면.]

       

       마족과 용사.

       

       피할 수 없는 숙적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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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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