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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칼리팍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분명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 거대한 존재에게 잡아 먹혀서 흔적 조차 남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근데 이게 뭐지?

       자신은 어떤 이상한 공간에 있었다.

       

       한없이 새카맣고 눅눅하여 기분 나쁜 공간.

       

       그때.

       무언가 칼리팍의 발목을 붙잡았다.

       

       [뭐, 뭐냐!]

       

       그건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 일까?

       

       피부가 다 썩어문드러져 있었다.

       늙고 병약한 몸은 주름이 가득했으며, 피와 고름이 가득해 시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행색이었다.

       

       그러나, 움직였다.

       

       탁, 타닥.

       

       계속해서 무언가 그를 붙잡는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서있던 곳이 땅이 아니었음을 직감했다.

       

       그건 시체였다.

       죽어도 죽지 않는 시체로 이루어진 산.

       

       칼리팍은 경악하며 흑마법을 내질렀다.

       

       아니.

       

       […어째서?]

       

       내지르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에선 아무런 마법도 발동하지 않았다.

       

       숨막히는 정적.

       이윽고 시체가 켈리팍의 발목을 짓씹었다.

       

       분명 저런 나약한 것들의 이빨 따위, 단 한 치의 느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나약할 지언데.

       

       콰드득!

       

       [아아아악…!!]

       

       달랐다.

       완전히 달랐다.

       

       분명 나약한 깨물기라 생각했는데 수백 년을 패왕으로 살아온 그의 다리가 너덜너덜해졌다.

       

       아프다.

       이런 고통은 처음이다.

       

       놈은 그에 망설이지 않고 계속해서 몸을 타고 올라왔다.

       

       발목, 허벅지, 허리, 가슴, 머리.

       이윽고 켈리팍의 전신은 시체 모양새를 한 괴물들에게 씹고, 뜯어먹혔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아아아…! 차라리, 날 죽여라…!!]

       

       그는 죽지 않았다.

       끊임없이 신체가 재생성되며 끝없는 고통을 느꼈다.

       

       [아아…….]

       

       그 끝없는 절망의 소용돌이에서.

       켈리팍은 자신이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

       

       

       * * *

       

       

       “동상을 세워라!!”

       

       “어이, 요르문간드님은 그렇게 둥글둥글하게 생기지 않으셨다고!”

       

       트렐리니아 왕국.

       그곳에는 새로운 활기가 가득찼다.

       

       거리의 곳곳에는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동상이 세워졌으며,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 동상을 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트렐리니아 왕국에서.

       그의 존재를 보지 못한 이들은 없었기에.

       

       사건의 전말을 모두 들은 트렐리니아 왕국의 국민들은 진심으로 요르문간드에게 감사를 빌었다.

       

       그만큼이나 지금 요르문간드는, 트렐리니아 왕국의 새로운 종교였다.

       

       그를 주축으로 한 교회도 세워졌다.

       거대한 성전에 요르문간드가 해온 일들이 차곡차곡 적혀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 한 번에 대지가 날뛰고. 하늘이 갈라지며, 폭풍이 휘몰아치고, 천지가 그의 의지를 따른다는 신화 속 이야기 같은 위용담들이 성전에 적혀나갔다.

       

       그걸 주도하는 건 역시 엘리세르데였다.

       

       이제는 왕녀의 직위를 내려놓고, 오로지 요르문간드를 위한 신녀가 된 만큼 그 누구보다 교단을 세우는 것에 열성적이었다.

       

       [흠…….]

       

       요르문간드는 그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던 요르문간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저들이 보내오는 경외가, 숭배가, 존경이.

       그 모든 게 어우러져 자그마한 기운이 되어 요르문간드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신이 될 수 있는 자격 중 하나인, 신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신성을 깨우치자.

       그의 인지는 또 한 번 새로운 단계를 넘어섰다.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넘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계에 대해 더욱 정확히 파헤칠 수 있었다.

       

       [이상하구나.]

       

       단순한 판타지 세계라 생각했다.

       흔히들 소설에 많이 나오는, 용사와 마왕이 서로 대립하며 싸우는 판타지 속 세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넓어진 인지로 이 세계를 살펴보니, 아닌 모양이었다.

       

       단순한 서양 판타지가.

       

       [동서양 판타지라….]

       

       요르문간드는 하늘을 날아 자신이 느낀 기운이 존재하는 곳으로 향했다.

       

       한없이 강대한.

       신적 기운을 품고 있는 존재에게.

       

       

       * * *

       

       

       그는 어느날 존재했다.

       어느 순간부터, 어느 시점부터 탄생했느냐는 우스운 질문이었다.

       

       그는 모든 시점, 모든 세계에서 존재했기에.

       

       그렇기에 의문이었다.

       어째서, 자신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지?

       

       이곳은 이상한 세계였다.

       용사니, 마왕이니 하는 것들이 돌아다니며.

       

       웬 드래곤이라는 도마뱀이 어깨를 쭉 피고 다니는 이상한 곳이었다. 그가 보기엔, 제대로 성장 조차 하지 못한 가녀린 생물체였다.

       

       감히 그에게 덤비기에.

       조심히 타이르고 그를 보내줬다.

       

       그 탓에 드래곤이라는 것들이 수백 마리가 더 몰려왔으나.

       

       딱히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그 모든 걸 단숨에 때려눕히고, 조용히 살라며 보내줬다.

       

       그 후에도 드래곤이라는 것들이 용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다닐 때면, 친히 나서서 모든 이들에게 올바른 마음가짐을 심어주었다.

       

       그 후론 도마뱀들이 조용해졌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을 가만히 눈을 감으며 잠을 자기만 했다.

       

       비록 갑자기 탄생한 자그마한 뱀이 문득 떠오르긴 하였으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 세계는 무척이나 이상하여, 그런 녀석들이 탄생하는 것은 일상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

       

       거대한 기운이, 다가온다.

       한없이 방대한 바다를 넘어, 그 지평선의 끝에 도달하면 존재하는 거대한 섬으로 향한다.

       

       동쪽 지평선의 끝.

       언제나 해가 뜨는 지평선에 사는 용.

       

       사신四神.

       

       청룡靑龍.

       

       그가 눈을 떠 자신의 앞에 떠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용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카만 묵빛 비늘이 길게 이어지며, 기다란 몸체가 끝도 없이 하늘을 메우는 것은 마치 그와 같은 용과 흡사했다.

       

       하지만.

       

       ‘다르군.’

       

       명백히 달랐다.

       그와는 달리 머리에 사슴뿔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다른 용과는 달리 수염과 사자 갈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팔다리가 존재하지 않고 매끈한 몸체 역시, 그가 자신과 같은 용이 아닌 뱀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뱀인가?

       

       모르겠다.

       얼핏 외견만 본다면 커다란 뱀이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육체를 뛰어넘은 어마어마한 양의 격은.

       일반적인 뱀이라기엔 명확한 차이가 존재했다.

       

       ‘위험한 존재인가.’

       

       알 수 없다.

       아직 그를 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하지만 적어도 그에게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없이 고결하고 순수한 기운이, 그와 같은 사신에 걸맞는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머리가 높구나.]

       

       쿠구궁!

       

       천둥이 친다.

       청룡이 격을 방출하는 것과 동시에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가득 메웠으며, 잔잔하던 파도가 거세게 일렁이며 거대한 헤일처럼 바다가 일렁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더 위에 있다는 듯 저 뱀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자신은 용이었다.

       그 어떠한 이들도 자신을 내려다볼 수 없다.

       

       비록 낯선 세계에 끌려와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나, 감히 자신을 저렇게 내려다보는 이를 가만히 둘 만큼 그는 온건하지 않았다.

       

       청룡은 금방 저 뱀이 겁에 질려 땅에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그야 다른 누구도 아닌 용이었다.

       적어도 자신과 비슷한 생김새를 한 걸 보니, 그 결은 비슷할 터.

       

       그렇다면.

       그 어떠한 동족도 자신은 이길 수 없다.

       

       더군다나 여의주를 물지 조차 않은, 하찮기만 한 커다란 뱀이라면 더욱더.

       

       그는 뱀에게 주제를 알려주려 했다.

       감히 자신의 영토에 함부러 침범한 놈에게, 누가 하늘에 서있는 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하나.

       

       ‘……뭐냐.’

       

       청룡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그가 방출한 격은 압도적이었다.

       단순히 격을 방출한 것 만으로 바다가 일렁였으며, 하늘이 분노에 차 거대한 기류를 만들고 있었다.

       

       일반적인 생물이라면 그 격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존재를 잃었을 터였다.

       

       그런데…….

       놈은 멀쩡했다.

       

       오히려 무얼하고 있냐는 듯 가만히 내려다보는 눈동자에 분노가 일었다.

       

       감히.

       감히 하찮은 뱀 따위가.

       

       자신을 저런 눈으로 내려다보다니.

       

       청룡이 몸을 일으켜 하늘로 떠올랐다.

       

       입에 문 여의주에서 신묘한 힘이 나와, 그의 몸을 한 바퀴 두르고 금빛으로 물들게 하였다.

       

       브레스를 내뿜을 생각이었다.

       그저 격이 많기만 한 어리석은 뱀 따위, 이 정도의 공격에 제 주제를 알아차리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만.]

       

       [……!!]

       

       그가 격을 내뿜는 순간.

       청룡의 몸에 맴돌던 기운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오로지 청룡의 손아귀에 놓여있던 대자연이 순식간에 빼앗겼다.

       

       요동치던 하늘이 고요히 잠들었으며, 거대하게 파도치던 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모습이라.

       

       청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었다.

       

       방금 그가 내뿜은 격.

       그것은 분명 자신과 같은 신격이었기에.

       

       분명 그 신격의 양은 무척이나 적고, 미약했으나.

       

       그 신격에 압축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격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청룡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비록 그의 말에 따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와 싸운다면 자신도 죽음을 불사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자.

       거대한 뱀이 흥미롭다는 듯 청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청룡이라…….]

       

       이윽고 그 뱀이 입을 연 순간.

       

       [네놈도 여기에 끌려왔나?]

       

       [……!! 그걸 어떻게?]

       

       청룡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로 이 행성의 질량은 항성과 맞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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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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