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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드래곤은 가장 고귀한 종족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신과 마신이 만든 태초의 종족이자, 모든 세계의 조율자.

       

       비록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드래곤의 위상이 떨어진 건 아니었다.

       

       적어도 몇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드래곤은 나름대로 어마어마한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대체로 그게 악명이라 그렇지.

       

       아무튼.

       그 중에서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레드 드래곤은, 당연히 그를 넘볼 상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레힐리스는 자신이 있었다.

       설령 그 어떤 생물이 덤벼와도 이길 자신이 말이다.

       

       근데 방금 그게 사라졌다.

       

       요르문간드, 청룡.

       

       그 둘이 격을 드러내는 것 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져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정말로 정신이 날아갔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거다.

       레힐리스 아트레이나, 그녀는 세상이 넓음을 깨달았다.

       

       [사, 살려만 주세요! 죄송합니다아!!]

       

       그렇기에 바로 머리 박았다.

       아직 그녀는 성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생을 살았다.

       

       유년기 동안 레어에서 벌벌 떨다가 드디어 성체가 되어 뭐라도 해보나 싶었는데, 곧바로 더 강한 괴물을 만나서 죽다니.

       

       그런 건 절대 싫어.

       드래곤의 고고함? 자존심?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

       그러니 레힐리스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바로 머리를 박을 수 있었다.

       

       ‘괴, 괴물이야…….’

       

       그녀는 눈 앞의 뱀을 보며 벌벌 떨었다.

       어째서인지 아까보다는 현전히 작아진 크기.

       

       하지만 그 모습도 레힐리스 보다 몇 배는 족히 더 컸다.

       

       ‘얼핏 보면 평범한데…….’

       

       따로 드러나는 위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존재가 너무 희미해서 요르문간드가 존재하는 지 아닌 지도 헷갈린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무서웠다.

       

       레힐리스는 요르문간드가 드러낸 격을 떠올렸다.

       

       단순히 조금 드러낸 것 만으로도 온몸이 벌벌 떨리는 위압. 거기다 단순한 격이 아닌 것만 같았다. 분명 생물이 살아오며 생겨난 업(業) 또한 감히 그녀와 비교 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것 외에도 무언가 신성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할까.

       

       단순한 격이랑은 궤를 달리하는 것만 같았다.

       

       [그만. 고개를 들어라.]

       

       [주, 죽이지 않으시는 건가요?]

       

       [애초에 죽일 생각도 없었다.]

       

       그 말에 레힐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요르문간드는 가만히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떠한 적대감도 없는 투명한 눈동자. 그제야 레힐리스는 안심한 채 동굴 구석에 조심히 웅크렸다.

       

       드래곤의 위엄 따위는 바닥에 내다 버린 것 같은 모습에 요르문간드가 어이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조금 찔려 레힐리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동굴이었다.

       무척이나 넓고, 왠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굴.

       

       거기다 동굴 한 가운데에 있는 석상은 무엇인가?

       

       마치 요르문간드를 본따 만든 것 같은 나무 석상이 동굴 한 가운데에 떡하니 있었다.

       

       레힐리스의 시선이 동상을 향하자, 요르문간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조금 과하게 크게 만들어주었구나.]

       

       숭배라.

       

       하긴.

       저 정도 되는 존재가 숭배도 못 받는 게 이상하지.

       

       레힐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에게도 그녀를 숭배하는 이들이 있었다.

       

       숲에 있는 다람쥐랑, 사슴, 토끼 등등.

       비록 그리 강하진 않지만, 나름 옆에 두고 있으면 보드라워서 나쁘지 않은 이들이다.

       

       아, 그러고 보니 사슴이 걱정할 텐데.

       

       레힐리스는 슬쩍 요르문간드를 쳐다봤다.

       

       물끄러미 보내는 시선.

       그 시선을 느낀 요르문간드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볼 일이 있으면 가보거라.]

       

       [네, 넵! 신세 져서 감사했습니다!]

       

       한없이 깍듯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는 레드 드래곤. 그 전의 오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모습이었다.

       

       [아, 이거 가져가거라.]

       

       그리 말하며 그는 묵빛의 비늘을 레힐리스에게 주었다. 은은한 광택이 도는 것이, 마치 흑요석을 보는 것만 같았다.

       

       레힐리스는 무심코 그 반짝임에 그걸 받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왜…….]

       

       [혹시 위험한 일 생기면 두드리거라.]

       

       [네엡….]

       

       레힐리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르문간드가 이 비늘에 무슨 수작을 부렸을까 두려웠지만, 생각해보니 그쯤 되는 존재가 수작을 부리려 한다면 자신 따위로는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 겸허히 비늘을 받았다.

       

       …반짝반짝 거리는 게 멋지기도 하고.

       

       레힐리스는 요르문간드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하늘을 날아 자신의 레어로 돌아갔다.

       

       이게 부디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길 빌면서.

       

       

       * * *

       

       

       신격을 얻으면서.

       새롭게 달라진 것들이 있다.

       

       우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더라도 겁을 먹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무심코 흘리던 격을 숨기는 법을 깨달았다고 할까?

       

       그 전에는 아무리 숨기더라도 미세하게 격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 미세한 격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나를 보고 겁에 질렸겠지.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물론 외형에서 오는 공포는 있겠지만, 그건 차차 풀어나가면 될 일이고.

       

       예전에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저도 모르게 자연이 동화하곤 했다. 화가 나면 천둥이 치고 폭풍이 모든 걸 휩쓸어버린다.

       

       그런 탓에 애를 먹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기후를 온전히 내가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테면 내가 원하는 곳에 비를 내릴 수 있다.

       

       가뭄인 곳에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있고, 물 한 방울 없는 사막 지대를 바다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기후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걸 넘어, 지형지물을 완전히 바꿔버린다니. 말 그대로 신적 능력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물며 신체 또한 완전히 성장했다.

       그 전에는 산맥을 휘감는 게 전부였다면, 이제는 행성을 휘감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실제로 행성을 휘감아버린다면 그 경로에 있는 모든 생물들이 죽기에, 크기를 커지게 만들어도 하늘에 떠다니거나 질량을 숨기지만.

       

       행성이 영역이란 말도 과장이 아니다.

       이 몸뚱이로 행성을 다 가릴 수 있는데, 그게 행성이 영역이란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물론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상하게도 이 행성에는 제약이 무척이나 많은 터라, 신적 존재가 되었다고 해서 아무런 제약도 없이 날뛰는 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신적 존재가 되어 제약이 더 많이 생기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대부분 가능케 했다.

       

       이를테면.

       

       [슬슬, 갚아줄 때가 되었구나.]

       

       수천 년간 인간계와 마계가 치루던 전쟁을 끝낸다던가 하는 일들을 말이다.

       

       [마왕.]

       

       

       * * *

       

       

       인간계와 마계가 전쟁하기 시작한 지 벌써 수천 년이 흘렀다.

       

       그동안 인간계와 마계는 끊임없이 서로에게 병력을 보내며, 오랜 세월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전선이 무척이나 큰 탓에, 위태로웠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서로가 끊임없이 전략을 구상하고, 오랜 전쟁 끝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며, 간신하게 밀리던 전장을 유지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이 전장은 마계가 언제나 앞서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계는 끊임없이 마물과 마수들이 ‘탄생’한다.

       

       마계를 가득 메운 마기가 시간이 흘러 어느 지형에 밀집되면, 그것이 뭉치고 뭉쳐 마물이나 마수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 탓에 마계의 병력은 끊임없이 보충되었다. 아무리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 하더라도 모든 마물을 처치할 수는 없었다.

       

       전선을 미는 것도 불가능했다.

       인간계와 마계가 이어진 포탈이 생긴 곳들은, 이미 엄청난 양의 마기로 오염되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가가는 것 만으로도 살점이 썩고 오염되어 마물로 다시금 탄생할 터였다.

       

       한 번 용사로 이루어진 파티가 포탈을 찾아 떠난 적이 있다.

       

       용사 20명과, 기사 300명, 마법사 300명, 성직자 50명으로 이루어진 파티.

       

       그들이 포탈을 발견하고, 그걸 넘어갔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소식은 거기서 끝.

       

       포탈을 넘어간 순간 모든 연락이 끊긴 채, 수십 년 동안 행방불명 되었다.

       

       그걸 계기로 더 이상 그 누구도 포탈에 다가가지 않는다. 포탈 너머에 무엇이 있는 지도 모르고, 지금은 그저 전선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벅찼기에.

       

       그런 수많은 전선 중 하나.

       

       전선, 아스케랄.

       그곳의 사령관이자 지휘의 용사인 아르게미악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선이… 심상치 않군.”

       

       최근.

       포탈로 넘어오는 마물들의 수가 줄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선에 끊임없이 머리를 박던 마물들이,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마물들에게 인류의 공포를 각인시킨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딴 희망적인 생각은 지우고.

       철저하고 냉혹하게 그 이유를 생각한다.

       

       자신의 실수 하나에 수십, 수백 만의 목숨이 걸렸기에.

       

       더 철저히 생각하고 분석한다.

       사소한 실수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생각한다.

       

       아르게미악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도를 펼쳤다.

       

       “정확히, 여기에서 사라졌다.”

       

       그는 아스케랄의 전선과 멀리 떨어진, 포탈과 가까운 숲, 케라스를 가리켰다.

       

       어느 순간부터 마물들이 이 곳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건 몹시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물들에게 존재하는 건 오직 끊임없는 살육 충동과 전투 뿐이라 생각했기에.

       

       아르게미악이 수십 년 간 전선을 유지하면서, 그는 단 한 번도 마물들이 후퇴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이상하군… 이상해.”

       

       원인을 찾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다.

       

       그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정보로 가장 이상적인 전략을 찾아내는 것이지, 벌어지지도 않은 사건을 예측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하고 있었을 때였다.

       

       콰앙——!

       

       문이 열리며, 한 기사가 다급히 들어왔다.

       

       “이봐, 내가 항상 노크를 하고 열라 하지 않았…….”

       

       “큰일 났습니다! 사령관님! 서쪽 숲, 아르텔에 마물들이 습격했습니다!!”

       

       “뭐?”

       

       “그 수는… 삼천 만…. 전무후무한 숫자 입니다….”

       

       “……당장 전 병력 모집.”

       

       서쪽 숲 아르텔은, 마물들이 나오던 포탈과 정 반대 방향.

       

       그렇기에 가장 방어가 취약한 곳이었다.

       

       아르게미악은 갑옷을 챙겨 입으며 문을 나섰다.

       

       “아무래도, 마계가 끝을 보려하는 모양이구나.”

       

       역사에 남겨질 거대한 전쟁이.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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