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치카치카
드래곤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드래곤은 국가 하나를 몰살시킬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죠.’
맞는 말이다.
드래곤이 국가 하나를 무너뜨릴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X튜브에도 드래곤에 대한 영상이 남아있어, 사람들은 드래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훨씬 드래곤을 잘 알고 있다.
‘전부 가짜에 속고 있어.’
드래곤은 그런 전설속의 이야기와 동떨어진 존재다.
드래곤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주 귀여워 죽겠어. 우리 초련이!”
“샤아아-!”
상당히 귀엽다.
겉모습은 조금 큰 도마뱀과 다를바가 없지만.
하는 행동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사랑스럽다.
고된 일을 끝내고 돌아와도 힘이 넘쳐나는 기분이다.
나는 초련이의 배 쓰다듬기를 그만두고, 초련이를 두 손으로 번쩍- 들었다.
“샤아아~ 샤아아~”
초련이는 기분이 좋은지 행복한 울음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보고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초련이를 더 높이 들며 외쳤다.
“초련이 하늘 난다!”
“샤아아~”
“야호!”
“샤아아~”
귀여워 죽겠네.
진짜 딸은 아니지만, 딸이 생기면 이렇게 비행기를 태워주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초련이와 잠시 놀고 있자.
저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수련이를 발견했다.
“…”
녀석은 어째선지 나를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나는 잠시 망각하고 있던 현실로 돌아왔다.
‘이하준. 나이 23세. 무직. 현재 초련이와 놀며, 드래곤과 놀며 어린 아이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음.’
크아악-
조금 전의 내가 살짝 부끄러워졌다.
나는 아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수련이를 향해 약간의 해명을 해보았다.
“크흠, 초련이가 좋아해서 잠깐 그럴 수도 있지. 아빠 이상한 사람 아니다?”
“…”
“뭐 조금 어린 아이처럼 놀아줄 수도 있지…”
그러던 문득.
나 자신을 아주 객관적인 시선으로 돌아봤다.
‘아니지, 내가 왜 해명해야 돼?’
잘못한게 없는데 왜 해명을 해야 할까.
나는 인격을 말살하는 수련이의 눈빛에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수련아, 너도 재미있어 보였구나? 너도 하고 싶어? 그런 거야?”
“…”
“너도 비행기 타고 싶은 거지? 이리와! 이 아빠가 해줄게!”
“…샤아-”
수련이는 곧바로 몸을 돌려 저 멀리 도망쳤다.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빠른 속도였다.
나의 승리였다.
“훗, 내가 이겼다.“
“샤아아…”
초련이의 한심어린 시선이 나를 한차례 공격했다.
나는 애써 공격을 무시하며, 다시 초련이와 눈을 마주했다.
‘생김새는 딱 도마뱀이긴 한데.’
영락없는 도마뱀의 형태.
드래곤의 특성이다 싶은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초련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 갑자기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얘네들도 양치를 해야 하나?
“초련아, 잠깐 아- 한 번만 해보자. 아- 해봐.”
“샤아아아아아-“
“옳지. 말 잘듣네.”
초련이는 내 행동을 따라 입을 크게 벌렸다.
나는 그런 초련이의 입에 조심스레 코를 가져다 댔다.
킁킁-
“…”
“샤아아-?”
“…이빨을 닦는 편이 좋을 것 같네.”
드래곤도 이빨을 닦아야 하나 궁금했는데.
이빨을 닦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초련이가 상처를 받을까 말을 아끼고, 녀석을 곧바로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여분으로 남아있던 칫솔 세트를 꺼냈다.
“초련이는 초록색 쓰면 되겠다.”
“샤아아-?”
“다시 한 번 아- 해보자.”
“샤아아아아아-“
나는 초련이를 허리춤에 끼고, 치약을 짜낸 칫솔로 열심히 이빨을 닦아줬다.
치카치카-
태어난지 얼마 안 됐는데.
드래곤이라 그런지 이빨이 꽤나 튼튼했다.
팔면 가격이 얼마나 나갈지 궁금할 정도로 튼튼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팔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하다 생각할 수는 있잖아?
나는 순간 못된 생각을 한, 나 자신에게 해명했다.
나는 넓은 마음을 가졌기에, 나 자신을 쉽게 용서했다.
그렇게, 한 3분 정도 열심히 초련이의 이를 닦아주고.
이제는 입을 물로 헹굴 차례.
나는 세면대에 올려둔 윗면이 살짝 깨진 머그컵에 물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아 씨 수도 끊겼다.”
망했다.
어제까지 잘 나왔는데.
갑자기 수도가 끊기다니.
나는 허망함에 거울에 비춰진 나와 초련이를 보았다.
“샤아아아아-“
초련이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입안에는 거품이 한 가득이었다.
나는 급한대로 미지근한 생수병을 가져와 초련이의 입에 쏟아 부었다.
콸콸콸-
“마시지 말고 입을 헹궈야 해! 나처럼! 알겠지?”
우물우물- 퉤-
내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자, 초련이는 입을 헹구고 물을 무사히 내뱉었다.
다시 입냄새를 확인하니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되어 있었다.
드래곤도 인간과 똑같이 양치를 해야 된다는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
“손이 덜 가는 것만 빼면, 아기랑 다를바가 없네.”
“샤아아-?”
“그래, 너 말하는 거야. 초련아.”
나는 초련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초련이는 상쾌한지 입을 벌린 채로 작은 원룸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돌려 다음 상대를 찾아냈다.
“샤아악-!!”
가장 경계심이 강한 화련.
녀석은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가장 낯을 가리는 수련.
녀석은 식탁 아래에 숨어 있었다.
성향 차이는 극과 극.
내가 과연 녀석들을 잡아서 양치를 시킬 수 있을까?
‘되겠냐고.’
나는 드래곤의 아빠인만큼이나 현명한 사람이다.
녀석들을 양치시킨다는 생각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렇기에,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손가락에 치약을 짜, 녀석들을 향해 다가갔다.
“수련아. 냄새 안 나려면 이거 먹어야 한다.”
“…”
“명색에 드래곤인데. 입에서 냄새나면 큰일나지 않겠어?”
“…샤아-”
수련이는 손가락에 뭍은 치약을 낼름- 핥아갔다.
아주 신속하고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그 다음, 나는 가장 까탈스러운 화련을 향해 다가갔다.
“자, 화련아. 너도 이거 먹어.”
“샤아악-!”
역시 쉽지 않은 상대다.
화련은 내 손가락을 향해 하악질을 하며 치약을 거부했다.
이런 자존심이 강한 녀석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안 먹을 거야, 화련아?”
“샤아악-!”
“다른 애들은 다 먹었는데? 너는 안 먹을 거야? 다른 애들은 무서워 하지 않았는데. 설마 겁 먹은 거야?”
“샤, 샤아악-!”
좋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역시 자존심이 강한 상대에겐 이게 제격이란 말이지.’
내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아주 잘 알고 있거든.
내 경우에는 자존심만 강한 사람이긴 하지만.
아무튼.
화련이는 다른 애들도 다 했는데, 너는 안 할 거야?라는 물음에 서서히 답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내 손가락을 향해 조금씩 걸어왔다.
잠깐 내 눈치를 보며 경계하며, 결국 치약에 입을 가져다 댔다.
츄릅…이 아닌.
아그작-!
소리를 내면서.
“아악!! 이 도마뱀 자식이! 또 아빠를 못 알아보고 물어?!”
“샤아악-!!”
“또 안 봐준다 했지?! 너는 오늘 나한테 뒤졌어!”
잡히기만 해.
드래곤이든 뭐든 잡히면 혼쭐을 낼 테다.
나는 요리조리 도망치는 화련을 잡기 위해, 집안을 뛰어다녔다.
녀석은 드래곤이라 그런지 상식에서 벗어난 속도로 도망쳤다.
‘아오, 생긴 건 도마뱀인데. 왜 저렇게 빠른 거야?’
숨이 거칠어질 정도로 화련을 쫓아다니며, 한 가지 깨달은게 있다.
드래곤이 무엇인가에 대해.
귀엽다 말고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드래곤은 귀엽지만, 꿀밤을 한 대 때리고 싶은 존재라고.
“하아… 잡히기만… 해…”
“샤아악-!”
누가 이기나 해보자.
우리 두 사람의 술래잡기는 옆집이 조용히 하라 소리칠 때까지 지속됐다.
외부의 방해가 들어왔기 때문에 결과는 무승부.
“샤아악-! 샤아악-!”
화련이가 판정에 반발하긴 했지만, 나는 들어주지 않았다.
꼬우면 일찍 태어나던가.
아빠만의 권능이었다.
***
“일하고 올 테니까.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 한다?”
“…”
“수련이도 잘 쉬고 있어, 나 간다!”
쿵-!
이하준은 여느때와 똑같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나섰다.
항상 그를 배웅해주는 건, 수련의 역할이었다.
수련은 굳게 닫힌 철문을 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인간은 왜 밖을 나가는 걸까. 일이 뭐길래.
인간들은 직업이란 역할을 얻어, 역할에 따른 일을 수행한다.
그 일에 따라 수익이 발생하며, 수익을 통해 인간의 신분이 결정된다.
일보다 중요한 건 직업이요, 직업보다 중요한건 수익이요, 수익은 곧 신분이요.
수련은 인간 세상을 그런 냉소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보도들을 객관적인 눈으로 판단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
수련은 TV 앞에 앉아 고개를 들어 화면을 쳐다봤다.
-오늘도 똑같이 재미없는 화면이네.
어제와 똑같은 여자가 청량한 목소리를 뽐내며, 세상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수련은 평소처럼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졌다가, 금세 재미가 없어 지루함을 느꼈다.
-역시 똑같은 얘기 뿐이야. 이런 걸 계속 보다가는 바보가 되겠어.
무언가.
TV를 보는 것 말고 다른 걸 해봐야겠어.
예를 들어.
-인간을 흉내낸다던가. 폴리모프라고 했던가.
이 짧은 몸은 인간 세상에 어울리지 않아.
효율적이지 않은 몸이야.
수련은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자신이 인간이라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어떤 모습이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지.
한 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인간 형태를 머리에 그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 아니면 여자? 어떤 모습이 가장 나와 가깝지? 나는 어떤 존재지?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지?
수련은 자신을 향해 그런 질문들을 던져가며 자신에 대해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렸다.
-쉽지는 않네.
그래도.
수련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드래곤은 못하는게 없으니까.
느린 다르팽이입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