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60

       760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0)

         

       – 김상현

         

       — 우르릉!

         

       종말이 다가오는 세계. 

       

       이보다 현 상황을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온 세상에 불길한 기세가 뻗쳤고, 길가의 사슴들조차 겁에 질린 듯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이런! 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으아…! 갑자기 끝이라니!”

         

       묵성 요원도 은솔 양도 분노와 당황이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하겠지만, 말로는 쉬울지 몰라도 실제로는 어렵지.

         

       나부터가 온통 아찔해서 저절로 눈을 감고 말았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차 안에 보통 사람은 없었다.

       이 와중에도 묵성 요원은 계속 운전 중이지 않은가!

         

       “진정하자. 병신같은 호텔 욕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

       “마, 맞아요!”

       “어쨌든, 갑자기 지구가 폭발하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 그렇지?”

         

       묵성 요원의 의견에 나 역시 동의했다.

         

       “종말 이후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지옥 같은 환경이겠지만, 뭔가 있기는 있다는 뜻이지요.”

       “완전히 망하기 전에 하려던 일이나 계속하자.”

         

       하려던 일이란 여명의 아들을 부정하는 관리국 내 계파, 순수파와의 접촉을 뜻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긍정적인 게 있어요?”

       “… 관점을 바꿔보면, 순수파와 접촉은 더 쉬워졌습니다.”

         

       내 말을 들은 묵성 요원이 피식 웃었다.

         

       “하! 일리 있구나. 본래는 관리국 추격대와 거하게 한판 해야 했을 텐데, 이제 그럴 필요 없겠지.”

         

       파멸의 길에 들어선 세상.

       관리국에겐 더 이상 우리에게 추격대를 보낼 여력이 없다.

         

       “속도 더 낼 테니 벨트 꽉 매라.”

         

       — 부우웅!

         

       30분 정도 흐른 후, 아까 분위기 전환용으로 한 말이 진짜였음을 깨달았다.

       슬슬 휴스턴 근처인데도 추격대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리국이 정상이었다면, 지금쯤 요원 두엇은 나타나서 한바탕 했겠지.

         

       그리고, 세상은 시시각각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다.

         

       — 쏴아아!

         

       하늘을 덮은 먹구름 덕에 대낮인데도 어두워진 세상.

       언젠가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평범한 비가 아니었다.

         

       아주 끈적하고, 아주 비릿하고, 아주 붉은 빗방울.

         

       하늘에서 피가 내린다.

         

       — 끼이익!

         

       “이 자식! 중앙선에 차를 세우면 어쩌라는 거냐!”

       “할아버님, 그냥 무시해요.”

       “야, 도로 절반이 막혀있는데 어떻게 무시하냐?”

         

       덕분에 운전 난이도는 점점 높아졌다.

       도로의 운전자들이 넋 나간 듯 길가에 멈춰서 비명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뭔 놈의 사슴이 겁도 없이 도로로 오는 거야?”

       “… 이성을 잃은 것 같습니다.”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을 어린아이는 물론, 짐승들마저 깨달은 상황.

         

       차는 장애물을 피하고자 정해진 도로를 연거푸 벗어날 수밖에 없었고, 묵성 요원은 어쩔 수 없이 내게 계속 질문했다.

         

       “어느 쪽이냐?”

       “여기서는 직진이 낫겠 -”

       “으악! 야, 야, 저 앞으로는 못 가겠다. 어디로?”

       “그러면 저쪽, 담장을 넘어서 반대편으로 갑시다. 리버우드 스트릿 쪽도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넘쳐날 테니, 사람 많은 장소는 피합시다.”

         

       묵성 요원에게 설명하는 한편, 나도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느라 머리가 아팠다.

         

       목표는 순수파와의 접촉인데, 어디로 가야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 속에 답이 있다.

       순수파가 멋진 신세계를 관리하고 있으니, 멋진 신세계 인근에 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

         

       멋진 신세계에는 어떻게 해야 갈 수 있지?

       아리 양의 견해에 따르면, 멋진 신세계 자체는 세상과 겹쳐진 이계에 가깝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와 연결된 입구 자체는 지구 각지에 있는 듯하다.

         

       첫 번째 시도 당시의 기억을 되새겨보자.

         

       *

       “멋진 신세계?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기밀 사항일세.”

       “… 제가 알 자격은 없는 겁니까?”

         

       

         

       “좋아. 조니, 오늘 새벽 일정을 비우게.”

       *

         

       관리국은 새벽 약간의 시간만으로 내게 멋진 신세계를 보여주었지.

       휴스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멋진 신세계의 입구가 있다는 뜻.

         

       무엇보다도, 어렴풋이 떠오를락 말락 하는 기억의 파편들이 있었다.

         

       “상현 씨, 회의 때 이야기대로면, 멋진 신세계의 입구가 고층 빌딩에 있는 것 같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정확히 무슨 건물인지까진 모르겠는데, 최소 50층 이상의 -”

       “저거 아니냐?”

       “저거 아니에요?”

         

       검붉은 먹구름 아래에서 검푸른 광택을 뿜어내는 고층 빌딩이 시야에 들어왔다.

         

       “… 맞는 것 같습니다. 갑시다.”

         

       — 우르릉!

         

       파멸의 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으니, 그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

       – 박승엽

         

       밤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과 불길하기 그지없는 천둥.

       여기에 아무리 봐도 피처럼 느껴지는 빗방울이 더해지니, 지옥의 풍경이 따로 없었다.

         

       — 툭! 투두둑!

         

       하늘에서 묵직한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미로가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또 피가 떨어져!”

       “…”

       “이런 건 대체 무슨 원리일까? 먹구름이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한 거야?”

       “그럴 수도 있지.”

       “야! 너는 왜 이렇게 지리를 모르니?”

       “…”

       “아오! 평생 반포동에 살았다면서?”

       “내가 아는 반포동이랑 너무 다른데 어쩌라고.”

         

       미로를 데리고 정신없이 도망갈 때만 해도 지리를 헷갈릴 줄은 몰랐어.

       학교 근처 지리야 빠삭하니까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깨달은 사실.

         

       내가 아는 반포동은 멋진 신세계 속 가짜 세상이지, 현실의 반포동이 아니었어.

       음식점이나 빌라는 물론 처음 보는 아파트까지 여럿이니,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상황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흐아아악!”

       “관리국은 어, 어디 있는 거야? 이 새끼들! 평소에 잘난 척은 그렇게 했으면서!”

       “시, 신고했는데 전화를 안 받잖아!”

       “사, 살려주세요! 끄아아악!”

         

       이성을 잃고 날뛰는 일반인들을 보고 있으니, 짜증은 좀 낼지언정 별일 아니라는 분위기의 미로가 살짝 대단해 보였다.

         

       “이야…!”

       “뭐야?”

       “지금 보니까 너도 참가자긴 했구나.”

       “뭐?”

       “참가자 중에선 가장 멍청하지만, 보통 사람보다는 침착 -”

       “야! 너 또…! 에잇, 됐어. 이제 어떻게 하지? 그냥 무조건 숨어?”

       “어디 건물이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아?”

       “멍청아, 나한테 묻지 마!”

       “그럼 내가 말하는 대로 따를 거야?”

       “… 아니.”

         

       와… 지금 멤버 레전드네.

       어떻게 나랑 미로 둘이 남은 거지?

         

       평소 같으면, 우리 둘 다 동료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편이잖아.

         

       솔직히, 나는 내 판단을 그다지 믿지 않아.

       미로도 마찬가지로 본인 판단보다 가인 형이나 아리 누나 말을 더 신뢰한다.

         

       하지만, 이 자리에 가인 형이나 아리 누나는 없지.

         

       객관적으로 내가 미로보단 똑똑해.

       조금이라도 똑똑한 사람이 생각해서 계획을 짜야겠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

       “조금 전에 떠올린 계획인데 -”

       “…”

       “…”

         

       미로 너 원래 무슨 계획 말하는 포지션 아니잖아!

         

       설마… 아니지?

       나랑 있으니까 본인이 계획 짜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지?

         

       “… 너부터 말해봐.”

         

       내용 겹치면 바꿔야지.

         

       “… 상가에 가자. 나, 첫 시도 때 상가에서 이런저런 정보 알아냈어. 기억하지?”

       “…”

       “하! 기억할 리가 없지. 내가 실수했네. 상가에서 널 기억하는 사람들 몇 명 찾았다고 했잖아.”

       “기, 기억하지. 생각 중이었을 뿐이야.”

       “누구 찾았다고 했는지 기억나?”

       “야! 너 자꾸 퀴즈 낼래?”

       “어쨌든, 상가에 다시 가자. 널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면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상가에 숨을 수도 있을 거야.”

         

       여기까지 말한 후, 미로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물었다.

         

       “네 계획은 뭐야? 아~ 아~ 자세히 말 안 해도 돼. 어차피 내 생각대로 할 텐데, 무슨 생각인지 들어는 보려고.”

       “가인 형이 했던 말 생각하고 있었는데.”

       “…”

       “너 지금 가인 형 말 무시해?”

       “내,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다는 거야.”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

       “…”

       “와…! 얘 벌써 까먹었네. 진짜 페로가 그립다.”

       “야! 문제 내지 말라고!”

       “소연 -”

       “기, 기억났어! 소연이의 가장 큰 비밀 어쩌고 했었지?”

       “풋. 이제라도 떠올려서 다행이네.”

       “…”

       “저번에는 나에 관해 물어봤다고 했지? 이번에는 소연이에 관해 물어보자.”

         

       사라지기 직전, 가인 형이 시나리오 이해를 보고 알려준 사실이 있다.

         

       내가 최초의 소원에 관한 기억을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

       자꾸 마지막 단계 앞에서 턱턱 막히는 이유.

         

       같은 이유로 두 번 실패하니까 답답했던 걸까?

       시나리오 이해 – 혹은 올빼미 -는 가인 형에게 구체적인 키워드를 알려주었다.

         

       소연이에게는 가장 큰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을 밝혀내지 못했기에 나는 결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

         

       …

         

       상가에 도착한 후, 미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 회차에서 심문했다는 사람을 찾아냈다.

         

       “저기다! 저 사람이야!”

       “바닥에 엎드려서 기도 중인 아저씨?”

       “응. 엄청 무서운가 보네. 야!”

         

       미로는 거침없이 달려가서 아저씨를 걷어찼는데, 겉으로 보면 10대 소녀가 50대 아저씨를 발로 차는 상황이라 황당했다.

       물론, 세상 꼬라지가 그런 상식 따질 상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야! 일어나! 일어나봐!”

       “하늘에계신아버지부디저김지호를버리지마옵시고평생토록믿고의지하였으니오늘제게은혜를베푸사-”

       “아 쫌! 니 아버지는 진작 죽어서 무덤에 묻혔잖아!”

       “눈앞의작은악마의미혹에흔들리지않게하시고하늘너머마귀의손길이날해치지못하게하시고은혜로운목소리를-”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말했다.

         

       “선생님.”

       “…”

         

       미로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나는 멋진 신세계에 잡혀가기 전에도 현실의 방배중학교 학생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그 시절 내 체육 선생님이었다는데, 솔직히 기억이 전혀 나질 않았다.

         

       “음, 체육 선생님 맞으시죠? 저 승엽인데요 -”

       “이, 이럴 수가!”

         

       하지만, 상대는 날 알아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몇 년이 흘렀는데…! 아아, 이 또한 마귀의 조화로구나! 하늘에계신아버지부디광명을내리시고-”

         

       날 보자마자 경악과 공포에 질린 체육 선생님.

       10년 전에 방배중학교 학생이었던 소년이 10년을 거슬러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귀신이나 악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

         

       어떻게 진정시킬지 고민했는데, 의외로 미로가 해결했다.

         

       “야! 나 관리국 사람이거든?”

         

       거짓말인 듯, 거짓말이 아닌 듯 미묘한 발언.

         

       재밌게도 상대는 미로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종말의 어둠을 뒤로한 채 나타난 초현실적인 외모의 소녀는 누가 봐도 평범함과 거리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냉동인간 알지? 냉동인간.”

       “드, 들어본 적 있습니다.”

       “승엽이 얘는 그동안 보호구역에서 냉동인간 상태였어. 그래서 예전 모습 그대로인 거야. 아, 지금은 내 조수.”

       “그, 그렇군요! 방금은 실례했습니다.”

         

       멋진 신세계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긴 설명 대신, ‘냉동인간’ 네 글자로 이해시키는 모습.

         

       와… 미로 얘 생각보다 똑똑한데?

       얘의 성장을 위해선 주변에 아리 누나나 가인 형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

         

       어쨌든, 이번엔 내가 말할 타이밍.

         

       “지금 상황, 무서우시겠지만 중요한 질문이니까 정확히 대답해 주세요.”

       “기, 기억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소연이라는 애 기억하시죠?”

         

       존재감 없는 날 기억할 정도였으니, 소연이처럼 예쁘고 유명한 애는 기억하겠지.

         

       “예?”

       “되게 예쁜 여자애였거든요. 나이는 저랑 똑같고, 갈색 머리카락에 눈이 되게 컸는데 -”

       “무슨 고백하는 거야?”

       “조용히 해. 어쨌든, 소연이에 대해서 아시는 것 전부 말해주세요.”

       “…”

         

       남자는 답이 없었다.

         

       “선생님? 지금 시간이 없는데 -”

         

       그의 표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야! 말 안 들려? 대답하라고 -”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 누구요? 유소연?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상현의 첫 번째 시도 당시 기억 : 726화
    미로가 상가에서 알아낸 정보들 : 730화
    다음화 보기


           


Escaping the Mystery Hotel

Escaping the Mystery Hotel

EMH 괴담 호텔 탈출기
Score 4.5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When Han Kain woke up, he and several other people were inside a mysterious hotel with different rules and different expectations.

Going into each hotel room threw them into other worlds and scenarios where they must brace death at times to escape or lift the curse of the individual rooms for a chance to bring everyone that died during the process back to life.

Using their blessings that were given at the time of entry, they have to weave their way through the rooms while sometimes sacrificing themselves for a higher likelihood of success.

* Very little horror; more of a thriller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