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티라노는 스피노에게 진 시대의 패배자다]
[작성자: 랩터치킨(201.72)]
(스피노사우루스가 티라노의 목을 밟고 포효하는 사진)
나는 우연히 발견한 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끓어오르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댓글을 살펴봤다.
공룡알보관주머니: 그 말 취소해라
ㄴ왜그래용: 취.소
ㄴ공룡알보관주머니: 지금 장난하냐!
개추팡팡: 티라노 행님이 그럴 리가 없다
ㄴㅇㅇ(165.90): ㄹㅇ 점순이도 안 봤나?
ㄴㅇㅇ(171.191): 점순이는 티라노가 아니라 타르보고
ㄴ소El아: 점순이가 아니라 점박이임
그래도 아직 세상은 망하지 않았구나.
상식이란 게 있다면, 스피노 따위를 티라노와 비교하지 않을 거다.
이 글은 그냥 하급 어그로일 뿐이었다.
괜히 화를 내는 건 놈이 바라는 것이다. 상종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최선의 수다. 나는 다른 이들도 그것을 알아차리길 바라면서 댓글 하나를 달았다.
와이라노사우루스: 병먹금합시다 걍 티라노가 체급부터 개 터는데 무슨
이제 쓸데없이 관심을 주는 사람도 없을 거다.
저 사람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거다.
내가 이긴 거다.
ㄴ랩터치킨(201.72): [스피노가 티라노의 목을 밟고 포효하는 이모티콘]
ㄴ랩터치킨(201.72): 티라노가 개 터는데 무슨(개털림)
이 새끼가.
와이라노사우루스: 물고기나 먹는 범부 IP 강가에서 검거
ㄴ랩터치킨(201.72): 팔 장애 티라노는 물고기만 먹어도 걍 텀 ㅋㅋ
ㄴ와이라노사우루스: 어떻게 공룡 주식이 물고기 ㅋㅋㅋㅋ
ㄴ랩터치킨(201.72): 어떻게 라이벌이 트리케라톱스 ㅋㅋ
ㄴ와이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는 그냥 간식임
ㄴ랩터치킨(201.72): [둘이 함께 죽어 있는 화석 이모티콘]
ㄴ랩터치킨(201.72): 느그 라노 트리케라톱스 컷 ㅋㅋ
내가 이 새끼는 꼭 조지고 만다.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바다 위키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놈의 논리를 박살 낼 최적의 문장을 만들어냈다.
사실에 기반한 추론. 몸길이와 무게. 그리고 서로의 서식지와 습성을 바탕으로 티라노의 승률을 완벽히 계산했다.
거기에 적당히 반올림한 후 댓글을 단 순간이었다.
[이미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글이 삭제됐다.
나 뿐만 아니라, 정의가 아직 남아 있는 용감한 시민들의 댓글 폭격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간 모양이었다.
약간 찝찝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 녀석도 자신의 잘못을 알았으리라.
[제목: 티라노충 한 명 끝까지 반박못하고 튀었죠?]
[작성자: 랩터치킨(201.72)]
아니라고?
응 이번에도 댓글 길게 쓰려고 해봐~
그 전에 삭제하면 그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글 삭제하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이 좁밥새끼야 ㅋㅋㅋㅋㅋㅋ
뚜둑.
손가락을 풀었다.
그리고 분노의 5700자를 달려는 순간, 깨닫고 말았다.
놈의 수에 말려들었다는 걸.
여기서 분노하는 건 하수였다.
어차피 댓글이 달리기 전에 글이 삭제될 거다.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그리고 하나의 글을 썼다.
[제목: 뭘 할 수 있냐고?]
[작성자: 와이라노사우루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똑똑히 봐라
이것만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중세에서부터 내려온 전통.
거대한 짐마차와 더 거대한 드래곤이 금단의 사랑을 하는 내용의 춘화.
멋있는 기차.
그리고 더 멋있는 공룡.
그것들이 합쳐져서 탄생한 세기의 명작들.
나는 내가 수집한 금단의 지식을 갤러리에 풀었다.
Tag:dinosaur
Tag:dragon
Tag:train
Tag:car
Tag:unusual teeth
Tag:tail job
Tag:giant
그리고 그날, 갤러리가 폐쇄됐다.
후.
마음이 후련하다.
죄 없이 휩쓸린 이들도 있겠지만, 정의를 실현했다.
얼마나 후련한지 코에서 피가 흘렀다.
하긴, 꽤 오래 잠을 안 자긴 했다.
이제 슬슬….
온 세상이 두 개로 보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속이 메스꺼웠고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
…벌이라도 받는 걸까.
인터넷에 메이드복 입은 스피노사우루스 사진 몇 장 올렸다고?
쿵.
그대로 쓰러졌다.
다시는 몸을 일으킬 수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바닥을 짚으며 어떻게든 기어가려 애를 썼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했다.
손을 뻗었다.
그러나 내 손에 닿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손이 툭하고 떨어졌다.
안돼.
이렇게 죽어선 안 되는데.
신이시여.
불쌍한 어린 양이 이렇게 간청합니다.
살려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하드에 남은 메이드복 스피노와 스쿨미즈 테리지노를 지울 정도의 힘만 주십시오.
그렇게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다시 뜬 순간.
【그린 게코 LV1】
나는 게코 도마뱀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