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잖아.
갑자기 인면조가 왜 튀어나와.
여긴 무협 세계다. 공룡들이 오붓하게 무공이나 수련하는 곳이라고.
…무협지에서 공룡이 돌아다니는 게 더 이상한가?
인면조 정도야 나올 수도 있겠네.
자세를 바로 하고, 인면조를 살펴봤다.
놈은 날개를 움직이지도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인면조의 시선은 하늘을 빙글빙글 도는 앵무새를 향했다.
“새의 왕이다아아! 까아악!”
새의 왕.
그래.
놈은 그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거체였다.
한번 확인해 보자.
[감정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눈이 찌릿하고 아파온다.
역시 이 녀석도 감정할 수 없는 건가.
티타노보아가 진화한 히드라처럼, 놈도 일반적인 생명체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당소영의 말을 빌리자면 신수 정도 될까.
나도 어찌 보면 신수라고 칭할 수 있긴 한데 아직 부족하긴 하다.
“우오오오오오오!”
인면조가 크게 포효했다.
놈은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봤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얼굴이었다.
얼핏 우스꽝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얼굴.
흑색 깃털과도 같은 장식이 머리에서부터 목까지 나 있는 기괴한 생김새.
“우오오오!”
중압감이 내 몸을 짓눌렀다.
소름 돋는 시선이 내 몸에 고정되었다.
쩌저적.
놈의 기괴한 입이 괴상한 각도로 벌어졌다.
“너는….”
인면조가 말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얼굴을 달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까.
“생각…. 하느냐?”
하지만 유창하진 않았다.
억지로 인간의 말을 따라 하는 거 같은 기괴한 소리라고 해야 하나.
쇠를 손톱으로 긁는 듯한 불쾌한 목소리였다.
“우오오오오!”
또 한 번 지르는 포효 소리.
포효만 들어도 격이 다른 상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놈이 내게 적대감을 보인다면 살아서 나가기 힘들겠지.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바로 공격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 하고 있다는 거다.
“용린…. 있는 자여….”
용린.
놈은 내 몸을 뒤덮고 있는 이 비늘에 흥미가 있는 거 같았다.
적당히 대꾸하고 비늘 몇 장 뽑아준다면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방식으로 대답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용은… 새인가… 뱀인가…?”
내 생각과 조금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용은 새인가, 뱀인가.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어떤 의도로 내게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쉽사리 답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떠한 심상이 흘러들어왔다.
“공포의 용은… 뱀인가… 새인가….”
공포의 용.
커다란 공룡이 보인다.
그 공룡은 점차 작아지더니, 어느 순간 다른 생명체로 변하고 말았다.
놈이 내게 질문하는 건 바로 이거였다.
“공포의 용은 추악한 뱀인가, 아름다운 새인가.”
공룡은 파충류인가, 조류인가.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이미지가 점차 선명해졌다.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각하고, 말을 해버릴 거 같은 기분.
그래.
저 눈을 본 순간부터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인면조의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해야만 한다.
내 머릿속에 사고가 덧씌워지고 있었다.
이런 기분을 언제 느껴봤더라.
그래.
스피노사우루스의 심상을 봤을 때.
그때 느낀 기분이었다.
“용은… 뱀인가? 아니면… 새인가?”
날 만만하게 보고 있구나.
설마 공룡이 조류라도 된다는 거냐?
티라노사우루스가 깃털 달린 닭이라도 되는 거냐고.
[「%! 자■□ 」가 발동됩니다.]
쩌저저저적!
날 감싸고 있던 불온한 생각들이 깨졌다.
“까아아악! 도마뱀이 새의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아아아! 새의 왕을 도발했다아아!”
도발?
“그르르….”
도발은 그쪽이 먼저 걸어온 거고.
“주제를… 넘는구나….”
인면조는 불쾌하다는 듯이 날 노려봤다.
펄럭.
놈의 거대한 날개가 한 번 움직였다.
휘오오오옹!
엄청난 강도의 바람이 불어왔다.
카가각!
고작 날개를 움직였을 뿐인데 몸이 뒤로 날아갈 뻔했다.
발톱에 힘을 주어 겨우 버텨냈다.
역시 놈은 엄청나게 강하다.
나 같은 건 그냥 한 끼 식사에 불과하겠지.
“용린을 가진 석청…. 마지막으로 묻겠다…. 용은, 뱀이더냐 새더냐.”
인면조에게 맞서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도망을 치는 것도 불가능할 거다.
저 정도 괴조에게서 어떻게 도망갈 수 있겠나.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수는 놈의 말에 복종하는 것이다.
공룡은 파충류가 아니라 조류라고 인정한다면 살 수 있을 거다.
그래.
티라노사우루스가 사실 깃털이 잔뜩 달린 비겁한 스캐빈저라고 말한다면 목숨을 연명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추하게 살아 남아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까드드득.
[「역린 lv1」을 사용합니다.]
[「역발산기개세」를 일시적으로 획득합니다.]
때로는 목숨보다 중요한 신념이란 게 있는 법이다.
감히 공룡을 조류라고 폄하해?
“크르르르르르….”
애초에 사우루스부터 도마뱀을 뜻하는 단어다.
공룡이 파충류가 아닐 수가 없다.
진실이 어떻든 상관없다.
그것이 내가 믿는 길이고.
나의 신념이니까.
“추악한…. 뱀 여왕의…. 하수인이었단 말인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는 인면조.
놈의 공격에 대응할 준비를 했다.
기괴한 각도로 벌어지는 놈의 입.
끼기기기긱.
그리고 한 점으로 모이는 심후한 내공.
설마 저건….
콰가가가가가각!
어떤 물질이라도 뚫어버릴 파괴광선이 쏘아졌다.
맞으면 죽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했다.
질주, 꼬리 자르기, 소룡등천보, 벽호공.
그 모든 걸 조합해 저 공격을 피하고자했다.
쩌어어어어어엉!
놈의 파괴광선은 지면을 갈아버리면서 거대한 나무들을 무참히 박살 내버렸다.
어떻게든 직격타를 피할 순 있었다.
하지만.
[경고! HP가 부족합니다.]
스치기만 했는데도 온몸이 부서질 거 같은 격통이 느껴졌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팔다리가 무사하다는 점.
고통스럽지만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침착해야 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내게 남아 있는 마지막 한 수.
놈에게 치명상을 먹인다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다.
“과연…. 용린….”
스아아아….
인면조가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날아왔다.
아까와 같은 엄청난 위력의 기술은 연달아서 사용할 수 없겠지.
날 죽이기 위해선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조금만.
조금만 더.
[「역린 lv1」을 사용합니다.]
[「구음백골조」를 일시적으로 획득합니다.]
그때였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엄청난 크기의 익룡이 인면조를 향해 날아들었다.
【프테라노돈 lv23】
【상태】
「복수심」「분노」
__________________________
【프테라노돈】
몸무게는 50kg으로 가벼운 편이지만, 익장은 6.25~6.5m에 몸길이는 2.6m나 되는 거대한 익룡입니다.
날개 끝에 날린 갈고리와 같은 발톱은 절벽이나 나무에 잘 매달릴 수 있게 도움을 줍니다.
물새처럼 공중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는 사냥법을 선호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프테라노돈이었다.
“끄으…. 열등한 아룡…. 지긋지긋한 것들….”
프레라노돈 세 마리가 인면조에게 공격을 가했다.
놈의 파괴광선에 휩쓸린 걸까.
아니, 뭔가 다르다.
프테라노돈은 이런 식의 전투를 즐겨하지 않는다.
심지어 저 파괴광선을 봤다면 공격하지 않고 숨을 죽이거나 멀리 도망가는 걸 택해야 정상일 거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수치들….”
마치 이전부터 알고 있다는 듯.
분노 이상의 감정이 느껴졌다.
세 마리의 프테라노돈과 인면조의 전투가 시작됐다.
내가 끼어들고 싶어도 끼어들 수 없는 공중전이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이건 기회였다.
전략적인 후퇴를 할 수 있는 기회.
손에 모인 내공을 흩트린 후, 곧바로 방향을 돌렸다.
구음백골조로 마지막 도박을 하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운을 잡는 것도 실력이다.
고맙다. 프테라노돈.
나중에 익룡을 보더라도 한 번은 잡아먹지 않을게.
*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도망. 아니, 전략적 후퇴를 하는 데 성공했다.
[HP가 부족합니다.]
【고모도 LV9】
HP: 45/990
MP: 130/410
【칭호】
「거미에게 사랑받는 자」
「은룡굴의 주인」
「늪지대(하부)의 주인」
사지가 멀쩡히 달려 있긴 하지만, 몸 상태는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MP는 시간이 지나면서 알아서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HP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내가 잡은 공포새 두 마리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그걸 가지고 왔다면 HP도 회복되었을 텐데.
일단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내 몸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다.
HP를 회복하는 데는 총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내 칭호를 활용하는 것.
물가에 몸을 담그면 느리지만 HP가 회복된다.
하지만 이 주변에는 물가가 없었다.
일단 패스.
두 번째 방법은 레벨 업과 탈피를 노리는 거다.
레벨 업을 하기 위해선 강한 적을 잡아야 하는데, 지금 몸 상태로는 그러다가 내가 레벨 업의 재료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 방법은 무언가를 먹는 것.
레벨 업에 비해 효과가 달리지만, 그래도 배 안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면 HP를 회복할 수 있다.
아까 그냥 무시했던 벌레들이라도 마주친다면 바로 잡아먹었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이 근방에는 생명체가 없었다.
파괴광선의 여파로 모두 도망이라도 친 건가.
어떻게든 입에 뭘 집어넣어야 한다.
….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가까이에 뱀 한 마리가 있었다.
덩치가 제법 있는 거 같지만 그래도 뱀은 뱀일 뿐이다.
【볼파이톤 lv14】
볼파이톤.
생긴 것도 마음에 든다.
몸체가 오동통한 게, 먹을 부분이 많아 보이는 녀석이었다.
기척을 숨긴 후 놈을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놈은 아직 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 걸음 더.
또 한 걸음.
그리고 지금!
재빨리 뒷다리에 힘을 주어 놈을 향해 돌진했다.
“쉬리리릭!”
그 순간, 볼파이톤과 눈을 마주쳤다.
아직 거리는 좀 있는 상황.
놈의 칼 같은 반격이 날아올 게 분명하다.
티타노보아의 새끼처럼, 탄력 있는 꼬리로 사권을 펼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무조건 버틴 후 한 방에 처리한다.
앞발에 힘을 주고 그대로 휘두르려고 한 순간이었다.
“히에에엑!”
뱀은 그 상태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응?
가까스로 공격을 멈추고 놈의 행동을 살펴봤다.
왜 저러고 있는 거지?
혹시 내가 모르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걸까?
저 오동통한 뱀은 이젠 아주 혀를 밖으로 늘여놓고 있었다.
…설마 죽은 척하는 거야?
【볼파이톤 lv14】
【상태】
「죽은 척」「놀람」
아니, 내가 야생의 눈으로 볼 수 있긴 한데….
이게 없었어도 저게 연기라는 건 알 수 있을 거 같거든?
“히… 히에엑….”
그리고 죽은 척하면서 소리를 내면 어떻게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