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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국장님.”

         

         

       잠깐의 폭풍이 지나가고 나영진 PD와 박용오 국장은 서로 진이 빠진 얼굴로 마주 앉았다.

         

         

       “하하하! 영진아 다 괜찮을 거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담당 PD가 너니까 더 괜찮겠지.”

       “그래도 여파가 상당할 겁니다. 작가님께서 원하신 마지막 세 번째 조건.”

       “끄응…….”

         

         

       박용오는 고개를 숙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그는 서은우가 제시한 조건 3가지를 모두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마지막 조건 때문이었다.

         

       앞의 두 조건은 흔쾌히 수락할 수 있는 간단한 조건이지만, 제일전자의 사장 딸 설소영을 여주인공을 써달라는 조건만큼은 조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드라마든 네임드 배우들을 주연으로 섭외하기 마련이다. 특히 구상 단계에서 스토리가 대박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더더욱.

         

       네임드 배우들은 특정 작품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홍보가 되고, 나름 검증된 연기력 덕분에 드라마 촬영 단계에서 꽤나 큰 수월함을 준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큰 이유는 보통 저렇다. 그래서 신인 배우들에겐 처음부터 주연 역보단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의 조연 역을 부여하는 편이다.

         

       하지만 드라마 출연 경험이 한 번도 없고, 심지어 연기력 부족으로 드라마 오디션을 두 번이나 떨어진 배우지망생을 다짜고짜 여주인공 역에 배정한다?

         

       이건 배우 쪽이나 제작사 쪽, 모두에게 영 좋지 않은 그림이 그려진다.

         

       ……아마 많은 루머가 만들어지겠지.

         

       대충 제일전자가 스튜디오엔믹스에 거액의 금액을 투자해 설소영을 데뷔시켰다는 비스무리한 소문이 세간에 열심히 떠돌 것이다.

         

         

       “나이도 문제입니다. 설소영 양은 방금 저희와 얘기를 나눈 서은우 군과 동갑인 중학생. 그나마 나이에 비해 제법 성숙한 얼굴인 게 천만다행입니다.”

       “그래. 그리고 그 얼굴은 배우나 연예인을 하지 않으면 아까운 얼굴이기도 하지.”

         

         

       박용오는 인터넷 기사에 실려있는 소녀의 얼굴을 보며 쓴 미소를 지었다.

         

         

       “영진아. 근데 다른 건 다 제쳐놓고 마지막에 그 학생이 말한 제안을 듣고 어떻게 거절하겠냐.”

       “…….”

         

         

       나영진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제안.

         

       마지막 3번째 조건을 듣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국장님과 자신을 보며 그는 어째서인지 씨익 웃었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아, 제가 원한 조건을 모두 받아주시면 다음 대본도 여기에 팔아 드릴게요. 물론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요.

         

         

       그 제안은 누가 봐도 완벽한 외통수였다. 그렇기에 박용오 국장은 마치 홀린 듯이 대본의 판매와 관련된 계약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서은우 군. 아무래도 보통 중학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하하! 머리가 비상하니 그런 굉장한 대본이 만들어진 거 아니겠어? 일단은 계속 지켜보자고. 어쩌면 우리에게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가 될 수도 있으니까.”

         

         

         

       ***

         

         

         

       서은우가 스튜디오엔믹스에 다녀가고 그로부터 얼마 뒤.

         

       언제나처럼 학교를 끝마친 설소영은 교문 앞에 대기 중인 검은 외제차에 탑승했다.

         

         

       “학교에서 별일 없으셨습니까. 소영 아가씨.”

         

         

       차 안에 들어서니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의 개인 운전기사인 차민석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설소영은 무심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알잖아요? 항상 너무 평범해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하. 그래도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습니까.”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평소대로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차민석.

         

       지이이이잉-

         

       그때였다.

         

       설소영의 교복 외투 주머니에 안에 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녀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화면에 적힌 번호를 확인했다.

         

         

       “……?”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번호가 휴대폰 화면에 찍혀있었다.

       설소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화면을 밀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스튜디오엔믹스의 기획제작 1팀에서 일하고 있는 나영진 PD라고 합니다. 혹시 설소영 학생 본인 맞으십니까?

         

         

       제법 익숙한 단어가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설소영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스튜디오엔믹스?

       그곳이라면 한국에서 제법 유명한 드라마 제작사 중 한 곳.

       근데 그런 곳의 PD가 다짜고짜 왜 전화를 걸어온 거지?

         

       설소영은 상황이 더더욱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을 나영진 PD라고 자칭한 사람에게 다급히 이유를 물었다.

         

         

       “…….”

         

         

       차민석은 백미러로 슬쩍 설소영의 모습을 확인했다. 뭔가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나누고 있는 그녀를 보며 조심스럽게 차의 시동을 껐다.

         

       그렇게 잠시 짧은 대화가 이어지고 설소영이 갑자기 귀에서 휴대폰을 완전히 뗐다. 아무래도 통화가 모두 끝난 모양이었다.

         

         

       “아가씨. 평소처럼 집으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차민석은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설소영에게 평소처럼 물었다.

         

         

       “…….”

         

         

       하지만 설소영은 그 물음에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방금의 통화 내용을 떠올리며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석 아저씨.”

         

         

       이윽고 고민을 마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스튜디오엔믹스 본사 건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당장.”

         

         

         

       ***

         

         

         

       그날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스튜디오엔믹스 본사에 방문한 설소영.

       본사 건물 앞에서 그녀를 반겨준 것은 역시나 조금 전 통화를 나눴던 나영진이었다.

         

         

       “방금 통화를 나눴던 나영진 PD입니다.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나영진은 이전에 은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예의상 명함부터 먼저 건넸다. 그러곤 설소영을 본사 건물 4층에 위치한 회의실로 안내했다.

         

       잠시 뒤, 나영진은 자연스럽게 마주 앉은 설소영에게 깔끔하게 정렬된 종이 뭉텅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설소영은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건네받아 종이에 적힌 글을 차례대로 읽기 시작했다.

         

       나영진은 글 읽기에 제대로 몰입한 설소영을 그저 조용히 지켜봤다.

         

         

       사그락-

         

         

       종이가 하나씩 넘어가면서 생긴 은은한 소리.

       그렇게 한 30분쯤 지났을까…….

       글을 읽고 있던 설소영이 천천히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끝까지 다 읽으셨습니까?”

         

         

       나영진의 물음에 설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종이, 아니 드라마 대본을 읽고 마치 여운이라도 남은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솔직히 이 드라마 대본은……

       설소영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까지 자신이 봐왔던 드라마는 애들 장난이 아니었을까?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렇기에 설소영의 머릿속은 아까보다 더욱 복잡해졌다.

         

       눈앞의 나영진 PD가 자신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새로운 드라마에 출연하는 여주인공역 캐스팅 제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드라마에 출연한 경험도 없고, 나이도 어린 자신을 갑자기 주연으로 쓴다고?

       그것도 이런 말도 안 되게 재밌는 드라마의 여주인공 「겨울」 역으로?

       이 정도면 아빠와 스튜디오엔믹스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소영 양. 혹시 저희의 제안이 의심스러우십니까?”

         

         

       반대로 나영진은 눈앞에 있는 소녀의 마음이 다 이해가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말이 안 되잖아요. 이런 엄청난 제안을 제게 한다는 것 자체가. 어째서죠?”

         

         

       설소영은 나영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유를 물었다.

         

       적어도 자신을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쓰고 싶은 이유와 근거를 들어보고 싶었다.

         

       드라마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설마 그럴싸한 이유도 없이 자신을 뽑을 일은 없지 않은가?

         

         

       “이유요?”

         

         

       허나…….

         

       자신의 진지한 물음에 나영진은 그저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저도 모르는데요? 소영 양이 여주인공으로 뽑힌 이유.”

         

         

       ……?

         

       설소영은 순간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드라마의 담당 PD가 눈앞의 나영진 PD 본인인데 그조차도 이유를 모른다고?

         

         

       꽈악─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얕보는 건가?

         

       솔직히 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기대감을 품고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오는 건 저딴 저급한 장난질.

       드라마 제작사 PD쯤 되는 인간이 제일전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자신을 건드려봤자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하아…….”

         

         

       설소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한 시간 낭비였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스팸 차단을 박을걸.

         

         

       “소영 양. 아쉽게도 저는 진짜 이유를 모릅니다.”

         

         

       그때였다.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설소영을 보며 나영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담당 PD님이 이유을 모르신다면 누가 알고 있다는 거죠? 그 말은 지금 PD님이 저를 얕보고 있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아요.”

         

         

       정색하며 말하는 설소영을 보며 나영진이 쓴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영진의 입장에서도 이 부분은 상당히 억울한 입장이었다.

         

       그날 가불기에 가까운 협박을 하면서까지 여기 있는 설소영을 추천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으니까.

         

       나영진은 설소영에게 그날에 있었던 일에 관해 설명했다.

         

         

       “……스토리 작가님께서 저를 강력하게 추천했다고요?”

       “예. 소영 양이 여주인공이 아니면 안 된다고 못을 박으시더군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소영 양을 만나 묻고 싶은 입장이었습니다. 소영 양이랑 927 작가님은 도대체 무슨 사이입니까?”

         

         

       혹시 몰라 나영진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떠봤다.

       그에 설소영은 깊은 생각에 잠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대충 저 반응만 봐도 그녀가 927 작가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는데요?”

         

         

       설소영이 다급히 물었다.

         

       이에 나영진은 상당히 곤란한 얼굴로 대답했다.

         

         

       “송구스럽지만 작가님과의 계약 사항에 이름과 나이, 성별, 사는 곳 등을 절대 누설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네? 왜 그런 쓸데없는 조항을…….”

       “그…… 927 작가님께서 본인 입으로 직접 대인기피증이 있으시다고 말씀하셔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대인기피증은 나영진이 방금 갓 지어낸 따끈따끈한 거짓말이지만, 은우가 되도록 익명을 원한 건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나이도 나이이고, 일상생활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자연스레 합의된 사항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PD님이 저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캐스팅 제안이 아니라 사실상 부탁에 가까운 모양이네요.”

       “크흠! 정확하십니다.”

       “흐음…… 그럼.”

         

         

       나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답하자 마치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설소영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럼 겨울 역의 캐스팅 제안 거절할래요.”

       “……예?”

         

         

       단호한 설소영의 대답에 나영진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어째선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곧바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요즘 따라 이런 안 좋은 예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은데…….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조금 정도는 고려해볼게요.”

         

         

       심지어 그것이 잘 빗나가지도 않는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나영진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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