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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927.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와 보내오고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람.

         

       그리고.

         

       생전 문자 한번 먼저 안 보내온 사람이 다짜고짜 전화부터 걸어왔다.

         

       ……이유가 뭐지?

         

       며칠 동안 대화해본 이 사람은 절대 자신을 먼저 내보이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작가 이름을 가명을 쓰는 것도 그렇고, 스토리 작가면서 현장에 얼굴을 한 번도 내비친 적도 없다.

         

       사실 자신은 이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도 확실하게 모른다.

         

       물론 대화를 몇 번 나눠보면 남성의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심증이어서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설소영은 전화가 온 이유에 대해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봤다.

         

         

       “설마…….”

         

         

       내가 계속 NG를 낸 소식이 귀에 들어가신 건가?

         

       충분히 말은 된다.

         

       스토리 작가이시니까 촬영의 진도가 나아가지 않으면 당연히 답답하게 생각하시겠지.

         

       그럼 이 전화는……?

         

       설소영은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에 말이다.

         

       정말 만약에 이 사람이 내게 보내주는 신뢰마저 깨져버린다면.

         

       이제는 자신의 연기를 기대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진다면 그때는…….

         

         

       “…여보세요?”

         

         

       설소영은 떨리는 손으로 겨우 화면을 밀어 상대방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소영 씨. 927 작가입니다.”

         

         

       이건 분명 남성의 목소리.

         

       스토리 작가니까 제법 연배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당히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는 것 같았다.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 정도 디테일은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잠깐 통화 괜찮으시죠?”

         

         

       작가님이 물었다.

         

       설소영은 무슨 시한부 통보라도 받는 듯 힘없는 목소리로 ‘상관없어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오늘 몰래 현장을 방문했거든요. 덕분에 소영 씨 연기도 잠깐 볼 수 있었어요.”

       “…네?”

         

         

       폭탄과도 같은 발언에 순간 설소영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작가님이 내 연기를 봤다고……?

         

       설소영은 생각했다.

         

       927 작가님은 그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해주고 기대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작가님의 기대에 보답할만한 연기를 그의 앞에서 직접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오늘 자신의 연기가 어땠던가?

         

       솔직히 그렇게 NG를 줄줄이 냈는데 누가 봐도 좋게 말하기는 힘든 수준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 최악의 모습을 하필 작가님에게 모두 보여졌다.

         

       설소영의 입장에선 이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없었다.

         

       차라리 알몸을 그에게 보이는 것이 덜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그게……”

         

         

       머릿속이 너무나도 복잡한 나머지 설소영의 말이 점차 꼬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래.

         

       일단 죄송하다는 사과부터 먼저…….

         

         

       “소영 씨. 아무래도 제 생각이 틀렸던 것 같아요.”

         

         

       사과의 말을 꺼내려던 찰나, 작가님께서 그리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설명이 필요했다.

         

         

       “……뭐가 틀렸단 말이에요?”

       “음, 사실 저는 소영 씨에게 겨울 같은 배역을 쥐여주면 무조건 연기를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늘 소영 씨의 연기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가만히 927 작가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설소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바닥이 움푹 파일 정도였다.

         

       솔직히 그녀 역시 927 작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예상은 했다.

         

       허나, 그것이 예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짜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설소영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근데 괜찮아요. 소영 씨에겐 그게 당연한 거예요.”

         

         

       아니 근데 이 새끼… 가 아니라 이 사람이?

         

       위로의 말을 담으면서 은근슬쩍 긁는 것 같아서 순간 감정이 욱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울분으로 바뀌었다.

         

         

       “……뭐가 그렇게 당연한 건데요? 제가 연기 못 하는 거요? 그 정도는 저도 잘 알거든요! 근데 뭘 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요! 그리고 당신만큼은……”

         

         

       무조건 잘 할 수 있다며 내게 겨울 역을 쥐여준 당신만큼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잖아…….

         

       엄청난 배신감에 눈망울이 점점 촉촉해지는 게 느껴졌다.

         

       감정이 제대로 제어가 안 되서 이대로라면 속으로 생각했던 낯부끄러운 대사를 끝까지 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네. 그러니까 제가 다 책임질게요.”

         

         

       작가님의 단호한 대답에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갑자기 책임진다고?

         

       뭐를 책임진다는 거지?

         

         

       “소영 씨의 인생을요.”

       “네?”

         

       

       너무 당황스러워서 반사적으로 의문사가 튀어나왔다.

         

       뭐지… 나 방금 고백받은 건가…?

         

         

       “아, 약간의 오해를 불러올 뻔했네요. 소영 씨의 배우 인생을 책임져 준다는 뜻이었어요.”

       “배우… 인생이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소영 씨 아직 중학생이잖아요.”

       “그렇… 죠?”

       “심지어 이번이 첫 배역을 맡는 거고, 처음부터 여주인공 역. 근데 그런 무거운 짐을 떠넘긴 스토리 작가라는 놈은 그냥 책임감 없는 말만 늘어놓고 있잖아요. 아니, 진짜 미친 새끼인가?”

         

         

       갑자기 스스로를 욕하시는 작가님.

         

         

       “그건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그냥 미친 새끼 맞아요. 이건 소영 씨가 저한테 심한 욕을 박아도 무죄에요, 무죄.”

         

         

       공감 안 하면 진심으로 욕이라도 한번 박아보라고 할 것 같아서 얼떨결에 “마, 맞아요.”라고 대답해버렸다.

         

         

       “후… 처음 연기를 하는 사람한테 일류배우의 연기력을 기대하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그것도 이제 중학생인데.”

         

         

       소화기 너머로 스스로에 대해 한탄하는 한숨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그제야 겨우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시는 것 같았다.

         

         

       “소영 씨, 하나만 물어볼 게 있어요. 소영 씨는 연기를 왜 하고 싶나요?”

         

         

       연기를 왜 하고 싶냐… 라.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설소영은 그 물음에 대한 진지한 답을 고민했다.

         

       사실 그녀가 배우의 꿈을 꾸는 것은 그녀의 어머니인 이화영 여사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번 ‘어세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을 촬영하며 이유가 조금 달라졌다.

         

       설소영은 단순하게 연기를 하는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대본을 읽으며 인물을 분석하는 과정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것 자체가 뭔가 신기하고 재밌게 느껴졌다.

         

       다만, 이것이 무슨 느낌인지 말로 설명하기가 조금 어려웠기에 지금은 대충 ‘즐거워서.’라고만 대답했다.

         

         

       “확실히 뭐든지 본인이 재밌어야 할 맛이 나죠. 그럼 소영 씨, 이제부터 연기할 때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확 도망쳐 버려요.”

       “…도망치라고요?”

       “네. 도망을 쳐도 되고, 현장의 분위기든 촬영 감독이든 뭐든 마음에 안 들면 시원하게 깽판 쳐도 돼요. 대신 책임은 소영 씨가 아니라 제가 모두 질게요.”

         

         

       나 때문에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을 자신이 짊어지겠다.

         

       그는 진심으로 내게 그리 말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배우 인생을 책임져 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정말요?”

       “그럼요. 제가 소영 씨를 배우의 길로 끌어들였는데 어느 정도 책임은 져야죠. 정 못 미더우시면 계약서라도 쓸까요?”

       “둘이서 오붓하게 식사라도 하면서요?”

       “아… 그건 좀….”

         

         

       아까까지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사람이 고작 식사를 나누자는 한 마디에 곤란해하는 걸 보니 피식 웃음이 지어졌다.

         

       사실 지금의 설소영에게는 책임을 져주겠다는 듯 이런 거창한 말까지도 필요 없었다.

         

       단지.

         

       어떤 상황이 찾아오던 이 사람만큼은 절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변하지 않겠구나 라는 확신을 얻었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아니, 솔직히 과분할 정도로 고마웠다.

         

       없던 자신감도 절로 생길 정도로 든든했다.

         

       그러니.

         

         

       “고마워요. 덕분에 힘이 좀 나는 것 같아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과 그저 즐겁게 연기를 하는 것 뿐.

         

       

       “아, 작가님. 제 배우 인생을 책임지시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셨으니 먼저 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부탁이요?”

       “네. 당연히 들어주실 거죠?”

       “음… 일단 내용을 한번 들어보고요.”

         

         

       설소영은 설레는 얼굴로 부탁에 관한 내용을 말했다.

         

         

       “소영 씨가 원한다면 어쩔 수가 없네요. 솔직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927 작가는 그녀의 작은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현장에 다시 들어선 설소영이 다짜고짜 스텝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촬영 감독인 고동빈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 괜찮아요?”

       “네. 이제는 더 이상 NG를 안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요. 그거 말고 소영 씨 뺨이요. 많이 붉은데요?”

       “……뺨이요?”

         

         

       고동빈의 말 덕분에 설소영은 뺨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까 뺨을 강하게 때린 영향도 있긴 했지만, 사실 다른 이유도 조금 있었다.

         

       ……아마도.

         

         

       “메이크업 팀! 빨리 와서 소영 씨 화장 좀 다시 고쳐줘요. 그게 끝나면 슛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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