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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유연정 국장의 말은 조금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차기작의 구상도 아직 안 해둔 마당에 3번째 작품은 많이 먼 얘기.

         

         

       “3번째 작품에 관해서는 아직 생각이 없어요.”

       “오케이. 그럼 3번째 작품도 저희한테 팔면 되겠네요.”

         

         

       뭐야.

         

       지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건가?

         

         

       “아니, 아직 별생각 없다니까요?”

       “그래요? 제 귀에는 할 마음만 든다면 언제든지 적을 수 있다는 뜻처럼 들리는데. 아닌가?”

         

         

       그리 말하며 씨익 웃고 있는 유연정 국장을 보니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슬슬 그녀가 왜 나와 만나고 싶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혹시 저를 부르신 이유가 전속 작가 계약과 관련된 얘기인가요?”

       “반은 빙고에요.”

       “그럼 번지수를 잘못 찾으신 것 같네요. 저는 전업 작가를 할 생각이 없으니까.”

       “왜요? 학업이 바빠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죠.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취미를 직업으로 가지면 많이 피곤해지니까요.”

         

         

       하지만, 내 완강한 거부에도 유연정 국장의 표정에는 변함없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의 입장에선 취미로도 충분해요.”

       “…네?”

       “얼마가 걸리든 전혀 상관없다는 얘기에요. 다만 당신의 대본을 사는 건 되도록 저희만 가능했으면 좋겠네요.”

       “그거 그냥 저를 독점하고 싶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요?”

       “정확해요, 독점. 저는 927 작가의 대본을 강하게 원하고, 만약 당신의 대본이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많이 화가 날 것 같거든요.”

         

         

       이 사람…….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저런 말을 잔잔하게 내뱉으니까 뭔가 진심으로 무섭다.

         

       나는 그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소신껏 발언했다.

         

         

       “그… 제가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는 거 아시죠?”

       “네, 그럼요. 그러니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친히 만들어 드릴 생각이에요.”

         

         

       ……이유를 만들어준다고?

         

         

       “대본을 판다면 가장 비싸게 값을 매겨 드릴 거고, 직접 촬영을 하고 싶다면 촬영장과 인력을 빌려주고, 원하는 배우가 있다면 마음대로 캐스팅하게 해 드릴게요.”

       “잠깐─”

       “어때요, 이 정도로도 부족해요? 그럼 학업 쪽으로 가야 하나…. 한국에서 상위 1프로만 다닐 수 있는 영광고등학교 알죠? 거기 이사장이 제 동생인데 꽂아 드릴 수도 있어요.”

       “일단 영광고등학교는 됐습니다.”

       “어머, 이번 건 즉답이네요?”

         

         

       당연하죠.

         

       거기 설소영을 포함한 주연들이 집결하는 곳이니까요.

         

       아마 사건이란 사건은 다 휘말릴걸요?

         

         

       “후…….”

         

         

       뭔가 얘기를 나눌수록 기가 다 빨리는 기분이지만, 어쨌든 유연정 국장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무엇을 해도 되니 나를 계속 스튜디오엔믹스에 붙잡아두고 싶다는 뜻이겠지.

         

       다만 내가 궁금한 건 왜였다.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붙잡고 싶을까 이유가 궁금했다.

         

         

       “그야 저는 927 작가님의 재능을 매우 높게 평가하니까요. 눈앞에 가치가 계속 상승할 것 같은 매물이 있는데 장사꾼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도 없잖아요?”

       “진심으로 제가 그 정도인가요?”

       “이미 당신이 풍기는 돈 냄새를 맡은 위인들도 제법 많아요. 어쩌면 당신 때문에 다들 드라마 보는 눈이 높아져 고생할 수도 있겠네요.”

         

         

       유연정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음.

         

       이렇게까지 대놓고 극찬을 받으니까 뭔가 기분이 묘한데.

         

       하긴 이쪽 세상의 드라마 작가들은 다들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스토리를 만들어 대니까…….

         

       내 드라마는 그 작품들에 비하면 확실히 선녀가 맞긴 하지.

         

         

       “일단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럼 이 자리에서 고민을 끝내시면 되겠네요.”

       “…예? 여기서요?”

         

         

       저 어질어질한 즉답을 들으니 문뜩 나 PD님과 용석이 형의 충고가 떠올랐다.

         

       유연진 국장은 마이페이스 성향이 워낙 강한 사람이어서 평범하게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 거라고.

         

         

       “저도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은 편이어서 말이에요. 이 방안에서라면 최대한 오래 참을 수 있을걸요? 아마도.”

         

         

       나를 무슨 사냥감 취급하는 저 눈빛을 보니 본능적으로 몸이 떨렸다.

         

       아무래도 이 방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저 사람이 판 덫에 제대로 걸린 모양.

         

       그리고 그날 나는 깨달았다.

         

       집착이 심한 여자는 많이 무섭다는 것을.

         

       그러니까 나는 무조건 이해심 넓은 여자랑 만날 거다.

         

         

       “자, 그럼 이제 차기작에 관한 얘기도 슬슬 나눠볼까요? 대충 어떤 스토리죠?”

       “차, 차기작 스토리요?”

       “그이랑 계약할 때 차기작을 저희 쪽에 판다고 자신 있게 말했잖아요. 그로부터 몇 달이나 지났는데 927 작가님 정도 되는 분이시면 지금쯤 대충 갈피를 잡고도 남았겠죠. 제 말 맞죠?”

         

         

       어… 음.

         

       나는 차마 그 기대감 넘치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국장님이 말하는 그 새끼 아직 시작조차 안 했다고 합니다.

         

       하하.

         

         

         

       ***

         

         

         

       서은우가 떠나고 유연정 국장의 방에 박용오 국장이 방문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눠보니 어땠어?”

         

         

       지정석에 앉아 서류를 읽고 있는 유연정을 보며 박용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927 작가? 진짜 중학생인 걸 보고 깜짝 놀랐어.”

       “아니, 그거 말고 자기 눈으로 봤을 때 어떤 사람 같냐고.”

       “어떤 사람? 글쎄…….”

         

         

       박용오의 물음에 유연정은 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927 작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차기작은 말씀드리기가 좀 그래요. 아직 좋은 영감이 잘 안 떠올라서요.’

       ‘좋은 영감? 그럼 첫 번째 작품도 어디서 영감을 받아온 건가요?’

       ‘유연정 국장님.’

         

         

       분명 시종일관 이쪽이 대화의 주도권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가 그어놓은 어떠한 선을 넘어버리니 곧바로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많은 걸 아시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진짜 제 대본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정색한 얼굴을 보이면서 경고의 의미가 담긴 말까지 친히 해주니 천하의 유연정도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유연정은 확실히 깨달았다.

         

       927이라는 작가는 절대 자신의 능력만으로 계속 붙잡아둘 수 있는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다만.

         

       마지막에 은우가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단순하게 창피하다라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연히 카페에 앉아 있는 설소영의 모습을 보고 뭔가에 홀린 듯이 대본이 써졌는데 만약 이 사실을 남들이 알게 된다고?

         

       오우… 이건 뭐 당사자에게 고백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게 미리 들킨 수준 아닌가?

         

       그 시점에선 대본을 안 주는 게 아니라 창피해서 못 주는 게 맞는 말이다.

         

         

       “후… 아무래도 다른 방책이 필요할 것 같아. 그를 우리 쪽에 붙잡아둘 만한 확실한 방책이.”

         

         

       하지만 그런 은우의 사정을 알 리가 없었기에 유연정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

         

         

         

       또각- 또각-

       

       

       한편. 

       

       설소영은 오늘도 어김없이 어느 장소에 방문했다.

         

       복도에 풍기는 소독제와 락스 섞인 특유의 냄새가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곳.

         

       ……이곳은 제일전자가 운영하는 병원의 복도였다.

         

         

       또각─

         

         

       그때 설소영의 발걸음이 어느 입원실 앞에서 멈춰 섰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문 옆에 붙어있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화영]

         

         

       방 주인의 이름을 확인한 설소영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열자 그곳에는 한 여성이 병원복을 입은 상태로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다.

         

       설소영은 그 여성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다가갔다.

         

       만약 은우가 지금 설소영의 짓고 있는 표정을 보았다면 진심으로 놀랐을 것이다.

         

       이 정도로 환한 설소영의 미소는 오직 이 여성의 앞에서만 자연스레 나오는 거니까.

         

         

       “엄마.”

         

         

       여성의 이름은 이화영.

         

       방금 설소영이 부른 것처럼 그녀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었다.

         

       이화영 역시 자신의 딸을 발견하고 얕은 미소를 지었다.

         

         

       “음? 오늘은 아빠랑 따로 왔네?”

       “일이 바쁘다며 먼저 가래요. 근데… 또 그거 보고 있었네요.”

         

         

       설소영이 입원실 안에 놓여 있는 티비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의 재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10화는 어제도 안 봤어요?”

       “그래. 근데 여주인공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계속 몰입이 되는 걸 어떡하니? 누구 딸인지 모르겠지만 얼굴도 참 예쁘고.”

         

         

       이화영의 칭찬에 설소영은 조금 쑥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평소처럼 자신 있게 대답했다.

         

         

       “누구긴요. 누가 봐도 잘난 엄마 딸이죠.”

       “하하. 잘 아네.”

         

         

       그 당당한 발언에 이화영이 피식 웃었다.

         

       그녀는 새삼 자신의 딸이 대견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첫 작품부터 대박을 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당연히 스토리가 재밌는 것도 한몫했지만, 딸의 연기력이 없었다면 그것도 다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지.’

         

         

       소영이가 뭐든 잘하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연기 부분에서 특출나게 재능을 빛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딸이 배우의 길을 걷는 이유는 줄곧 몸이 아픈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이화영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백제호텔을 운영하는 기업인인 이화영 여사는 조금 안 어울리지만, 드라마 감상이라는 소소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병약한 몸 때문에 병원에 방문할 일이 잦았다.

         

       그 때문에 입원할 때도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시간을 보낼 방법은 독서와 입원실 구석에 있는 티비를 시청하는 일밖에 없었다.

         

       이화영 여사가 드라마를 접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설소영 역시 그런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고, 문뜩 이화영 여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자신이 배우가 되어 드라마에 나온다면,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조금이나마 덜 외롭지 않을까요? 라고.

         

       딸의 어른스러운 생각을 들은 이화영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입장으로서 정말 기특한 생각이었지만 자신 때문에 딸이 진로를 섣불리 정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소영이는 누굴 닮았는지 고집이 참 강한 아이였다.

         

       결국 남편과 자신이 뭐라고 하든 배우의 길을 택했고, 심지어 티비에서 나오는 것처럼 결과로 증명해내니까 뭔가 할 말이 없어졌다.

         

         

       “음?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금처럼.

         

         

       “그냥. 오늘은 웬일로 그 사람 얘기를 안 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최근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생겼다.

         

         

       “아, 927 작가님이요?”

       “그래. 그 새끼… 가 아니라 그분. 요즘은 별말 없으시지?”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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