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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내가 쓴 미소를 지은 이유는 별거 없다.

         

       927 작가가 만든 대본이든 내가 입시 시험 때 적은 이야기 구성이든, 어쨌든 내가 둘 다 만들었으니까 비슷한 느낌이 들 수 있긴 하다.

         

       물론 이 부분은 박하준의 감이 예리한 거였다.

         

       전체적인 큰 틀만 아주 조금 비슷할 뿐, 드라마 대본과 이야기 구성은 엄연히 다른 분야.

       

       엄청 의식하고 보지 않은 이상 그 차이를 눈치챈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박하준 역시 비슷한 기분만 느꼈을 테고, 아무리 감이 좋다고 하더라도 내가 927 작가라는 생각까지 닿는 것은 힘든 얘기겠지.

         

         

       “그리고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이어서 박하준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나마 생각나는 사람이 강예린이라고 했지 녀석이 만든 대본은 아마 너한테 못 미칠 거라고 확신하거든.”

       “아까 이야기 구성을 설명하실 때도 그렇고 뭔가 박하준이라는 사람한테서 계속 칭찬만 들으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그만큼 내가 너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어? 그러니 나와 함께 그분의 가슴에 불을 지필 작품을 만들어보자! 나라면 분명 네가 쓴 대본을 충분히 소화해낼─”

       “거절할게요.”

       “……뭣?”

         

         

       내가 이리도 단호히 거절할 줄 전혀 예상 못 했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는 박하준.

         

         

       “그… 혹시 내가 잘 못 들은 건 아니지?”

         

         

       아무래도 이제는 자신의 귀까지 의심하는 모양.

         

       하지만 원작의 설정대로 박하준의 신체 능력이 괴물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분명하게 들었을 거다.

         

         

       “제대로 들으신 것 같은데요.”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긴 한데…… 혹시 이유라도 들어볼 수 있을까?”

       “솔직히 조금 부담돼서요. 어디 927 작가님의 가슴에 불을 지필 작품을 만드는 게 쉽습니까.”

         

         

       이건 사실 빈말이었고, 박하준이 만들려고 하는 동아리에 들어갈 이유가 딱히 내게 없어서였다.

         

       나 스스로를 복귀시키기 위해 나보고 대본을 쓰라니…… 이건 거의 뭐 허공에 삽질하는 거랑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근데 누가 보면 내가 영원히 복귀 안 하는 줄 알겠다. 물론 나도 내가 언제 복귀할지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어쨌든 대화는 끝난 것 같으니까 저는 이만 밥 먹으러 갑니다.”

       “그렇구나…….”

         

         

       뭔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박하준.

         

       조금이라도 더 설득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원작의 박하준은 자신의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지 다하는, 말 그대로 포기를 모르는 끈질긴 남자의 대명사였다.

         

       그런 남자가 이렇게 쉽게 나를 풀어준다?

         

       뭐…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한 어떤 작가님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이유를 댔는데, 억지로 붙잡는 건 아무래도 조금 그렇겠지.

         

       그렇게 나는 이것으로 박하준의 동아리 입부 제안 건이 완전히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확실히 배가 든든해야 대화가 더 잘 통하는 법이긴 하지.”

       “……예?”

         

         

       아무래도 그건 내 오산이었던 것 같다.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매점에서 뭐라도 사 올 테니까.”

       “어… 음. 일단 저는 급식 먹고 싶은데요?”

       “그럼 그것도 먹고 내가 주는 것도 먹어. 원래 우리 때는 한창 많이 먹을 때잖아?”

       “아니…. 그렇긴 한데…….”

         

         

       내가 거부하든 말든 어느샌가 매점을 향해 미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박하준.

         

       어쩌면……

         

       나는 이 드라마 속 세상의 주연인 박하준이라는 남자를 너무 얕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오래 기다렸지?”

         

         

       박하준이 해맑은 얼굴로 과자와 빵을 양손에 가득 담아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무언가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

       .

       .

         

         

         

       “야, 서은우.”

       “왜 불러.”

       “내가 우리 아빠 신문사에 제보 하나를 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냐?”

       “……어떤 제본데.”

       “음. 어떤 예고의 2학년에 인기 남배우가 재학 중인데 그 남배우가 1학년의 빵셔틀을 하는 걸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봤다니까? 어때? 이 정도 제보면 바로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지 않겠냐?”

         

         

       신문이고 나발이고, 요즘 내 주변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긴 하다.

         

         

       “근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세상에 누가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팬층까지 두터운 남배우를 빵셔틀로 쓰겠냐. 하루도 아니고, 무려 3일 연속으로.”

       “무식아 일단 좀 들어봐. 내가 알기로 그 남배우, 누가 억지로 빵셔틀을 시킨 게 아니라 스스로 자처했다니까?”

       “후… 뭐가 됐든지 간에 그냥 제정신이 나간 거지. 근데 여기서 더 웃긴 건 빵셔틀을 시킨 1학년이 남배우가 떠받치는 간식을 아주 야무지게 처먹더라니까? 그것도 내 눈앞에서 뻔뻔하게.”

       “아니 처먹었다는 표현까지는 너무 과격한 거 아니야? 그리고 먹을 걸 사줬으니까 예의상……”

         

         

       내가 어떻게든 반론을 하려던 그 순간, 차무식이 따가운 눈초리로 나를 째려봤다.

         

       쯧.

         

       이 새끼 나 놀리는데 아주 사탄이 들렸네, 사탄이 들렸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자면 조금 길다.

         

       그날 박하준에게서 동아리 입부를 거절한 이후로 그는 끈질기게 내게 계속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은우! 오늘은 맛X타 빵 확보해왔다!”

         

       

       지금처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양손 가득 매점에서 간식을 사 왔다.

         

       물론 이대로는 상대방의 노림수에 그대로 넘어갈 것 같아서 받기 싫다고 거절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책상에 억지로 그것을 떠넘기고 빠르게 퇴장하니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 겸사겸사 건설적인 대화도 한번 나눠볼까?”

         

         

       그때 박하준이 해맑게 웃으며, 오늘도 동아리 입부 건에 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근데 이거 어째 마감 일자에 가까워질수록 더 자주 찾아오는 것 같은데…….

         

       진심으로 이 기세면, 마감 마지막 날에는 아예 매점까지 사다 줄 것 같아서 이젠 조금 무서울 지경이다.

         

       ……한편.

         

         

       “먹을 거에 많이 약하구나.”

         

         

       자신의 책상에 얌전히 앉아서.

         

       줄곧 서은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설소영은 오늘도 무언가를 수첩에 적고 있었다.

         

       참고로.

         

       설소영이 그 수첩에 무엇을 적고, 무엇이 적혀있는지는 오직 그녀만의 비밀이다.

         

       허나 만약 호기심을 갖고 그녀의 수첩을 열어보는 자가 있다면, 뒷일은 알아서 감당해야 할 것이다.

         

       원래 소녀의 마음을 함부로 훔쳐본 죄목은 무거운 법이니까…….

         

         

       

       ***

         

         

         

       “진짜지?”

         

         

       동아리 입부 신청의 마감까지 앞으로 이틀을 남겨두고, 결국 나는 박하준의 집요함에 백기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네… 뭐. 딱히 별다른 흥미가 생기는 동아리도 없으니까요.”

         

         

       참고로 이 말은 진심이다.

         

       그나마 다른 선배로부터 제의가 오는 곳은 죄다 운동부뿐이고, 이 정도로 절실하게 나를 원하는 동아리는 이곳밖에 없었으니까.

         

         

       “대신 사전에 얘기했던 대로 어떤 식으로든 작품을 만들 때, 전적으로 제 의견에 따라준다는 조건을 지켜주세요.”

       “그거야 물론이지. 원래 이런 유의 동아리는 대본을 적는 자가 말 그대로 최고 권력자야.”

       “……그렇다고 부장이 할 일을 저한테 떠넘길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하하. 그건 명심해 둘게.”

         

         

       그래도 박하준이 만드는 동아리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긴 하다.

         

       지금처럼 해맑게 미소 짓고 있는 것만 보면 딱히 별생각 없어 보이는데 저 미소 뒤에는 아마 많은 생각과 의도가 숨겨져 있겠지.

         

       적어도 책임감은 차고 넘치는 인물이니 동아리를 이끌어가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아, 맞다. 이참에 다른 부원도 소개해 줄까?”

       “음? 다른 부원이 더 있어요?”

       “설마 내가 계속 너 따라다니면서 놀고만 있었겠어? 너를 포함한다는 가정하에 미리 정원을 채워두긴 했거든. 뭐… 내가 딱히 위아래로 인맥이 그리 넓은 게 아니라 같은 학년에서밖에 못 구했지만.”

         

         

       박하준의 설명을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샌가 2학년이 사용하고 있는 층에 도착했다.

         

       그중에서 우리가 들어선 곳은 2학년 4반의 팻말이 적힌 교실이었다.

         

         

       “소개할게. 여기는 무려 2학년 연예과의 차석, 송가람이야. 물론 내가 성적으론 연예과 수석이니까 당연히 얘보다 앞……”

       “박, 하, 준? 뒤에 말을 왜 굳이 덧붙이는 거야 이 새갸!”

       “악!”

         

         

       제법 친해 보이는 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박하준의 등짝에 스매쉬를 갈기는 여학생.

         

       어깨까지 오는 갈색 단발. 상당히 큰 키와 긴 다리 덕분에 비율이 상당히 좋게 느껴졌다.

         

       키는 대충 170 초반대 일려나?

         

       저 정도면 연예과가 아니라 아예 모델과로 전공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때 송가람이라는 여학생과 자연스레 시선이 마주쳤다.

         

         

       “네가 마르고 닳도록 말했던 그 서은우라는 애가 얘야?”

       “어. 앞으로 우리 동아리의 실질적인 권력자지. 얼굴도장 찍었으니까 이만 간다.”

         

         

       순식간에 나를 데리고 떠나는 박하준을 보며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짓는 송가람.

         

         

       “그… 둘이 제법 친해 보이네요?”

       “전공 시간에 자주 마주치니까 어쩌다 보니 친해졌어. 어쨌든 다음은 2반이다!”

         

         

       정신없이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현재 박하준이 속해있기도 한 2학년 2반.

         

         

         

       “어라? 박하준? 오늘도 1학년 교실에 가는 거 아니었어?”

       “오, 김태민. 마침 잘 됐다. 소개할게. 이쪽은 내 친구이자 같은 연예과인 김태민. 얘도 내가 만든 동아리에 함께 해주기로 했어.”

       “아무래도 얘기가 잘 끝났나 보네. 그럼 이 친구가 서은우?”

         

         

       박하준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김태민이 내게 친근하게 손 인사를 건넸다.

         

         

       “일단 앞서 소개했던 두 명 말고도 마감 기간까지 부원을 더 모집할 생각이야. 너도 연극·영화부에 따로 데려오거나 추천하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말해줘.”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박하준의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다시 1학년 교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나저나 따로 데려오거나 추천하고 싶은 학생이라…….

         

       차무식 녀석은 나랑 같은 동아리에 들어갈 거라고 예전부터 못을 박아둬서 사실상 반 확정일 테고…….

         

       쓰으읍…….

         

       더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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