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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나름 자신 있나 보네.”

         

         

       박하준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내기 말하는 거예요?”

       “그래. 어지간하면 그런 쪽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느낌이었는데 의외여서.”

       “의외라기보다는 저쪽이 먼저 제 신경을 거슬리게 했으니 정당방위라고 볼 수 있죠.”

       “하하. 뭔가 한순간에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아서 무섭네. 앞으로 네가 집필할 때는 다들 긴장해야겠는걸.”

         

         

         

       ……음.

         

       굳이 긴장까지 해야 할 정도인가?

         

       사실 방금처럼 웬만큼 소란스러운 일이 아닌 이상 내가 이렇게 짜증 낼 일도 없다.

         

       어차피 이제 대본의 집필도 거의 막바지 단계이기도 하고, 애초에 학교 안에서 방해받지 않고 적을만한 장소도 거의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연극·영화부의 부실 정도면 나름 선녀라고 생각한다.

         

         

       “야, 박하준. 너는 네 후배가 너를 내기에 가볍게 팔아먹었는데 지금 웃음이 나오냐?”

       “악!”

         

         

       송가람이 해맑게 웃고 있는 박하준의 등짝을 한 대 내려쳤다.

         

       천하의 박하준에게 지금처럼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그녀가 유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행동한 거지?”

       “그럼요.”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강예린이 어느 정도 재능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는 나는 자세히 모른다.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은 연극부의 핵심 인력이자 학생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 정도이려나.

         

       하지만…….

         

         

       “만약 강예린 선배가 저보다 더 뛰어났으면, 하준 선배가 저 말고 그 사람을 쫓아다녔겠죠. 안 그래요?”

         

         

       나는 박하준을 쳐다봤다.

         

       그는 어째서인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반응을 보니 대충 내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사실 조금 전, 내기에 자신이 걸린 것을 그가 납득한 순간부터 이미 이 얘기는 의미 없는 소리였다.

         

       제3자가 다짜고짜 자신을 내기에 팔아먹었는데 세상에 누가 박하준처럼 가볍게 수긍하고 받아들이겠는가?

         

       그래. 정상인이라면…….

         

       ……정상인?

         

       나는 다시 박하준을 쳐다봤다.

         

       여전히 세상 태평한 그의 모습을 보니 뭔가 불길한 기분이 슬그머니 피오르기 시작한다.

         

       쓰으읍…….

         

       생각해보면 이 사람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긴 한데…… 괜찮겠지?

         

         

       “야, 서은우. 너 그런 쪽 취향이었냐?”

       “……?”

         

         

       그때 내 옆에 지금까지 조용히 앉아있었던 차무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평소처럼 장난이 아니라 진지한 얼굴이어서 뭔가 더 거슬린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네. 나는 내가 상당히 건전하고 정상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놈이 다짜고짜 한 학년 위의 선배랑 내기로 노예빵을 걸어?”

       “……노예빵 아니고 빵셔틀이라고.”

       “아오, 세간에선 그게 그거라고 부른다고.”

         

         

       진지하게 나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쨌든 오늘 대본 작업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다.

         

       누구 때문에 흐름이 뚝- 끊겨서 영 할 맛이 안 난다.

         

       그나저나…….

         

         

       “…….”

       “…….”

         

         

       설소영.

         

       이다혜.

         

       아까부터 수상할 정도로 나를 힐끔 쳐다보고 있는 두 명.

         

         

       “왜 무슨 할 말 있어?”

         

         

       내 물음에 먼저 대답한 것은 이다혜였다.

         

         

       “아니…… 그…… 나는 네 취향을 존중해.”

         

         

       어딘가 소심한 대답과 약간 붉어진 얼굴을 보니 이쪽도 차무식 녀석처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반대로 설소영 쪽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중에 참고할게.”

         

         

       ……?

         

       그걸 어디에 참고하려고?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중간고사 기간이 찾아왔다.

         

       입학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간고사라니…….

         

       어쨌든 이번 중간고사가 끝나게 되면 본격적으로 대한청소년연극제의 준비를 할 시간이다.

         

       참고로 그날 강예린이 찾아온 이후로 연극부와 연극·영화부의 대결 구도는 학교 내에서도 제법 큰 화제가 되었다.

         

       원래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법이니까 뭐…….

         

       그리고 과분한 관심과 더불어 소소한(?) 내기까지 걸려있으니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제법 피가 말릴 만하다.

         

       듣기로는 연극부는 중간고사 기간에도 틈틈이 대회 연습을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 도발 덕분인지 강예린이 제대로 칼을 갈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편, 우리 동아리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연습을 시작하자고 다 같이 합의를 봤다.

         

       너무 위기의식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대회전까지 시간이 딱히 부족한 것도 아니다.

         

       중간고사라는 큰 고비를 넘기면 기말 전까지 별다른 일정이 없다. 즉, 대회 연습을 할 시간은 차고 넘친다는 의미다.

         

       점심시간이랑 방과 후까지 알뜰하게 사용하면 아마 5월 말의 예선까지는 준비를 마칠 수 있겠지.

         

       며칠 동안 대본을 쓴다고 내가 고생했으니 이제는 연기자들과 스텝들이 고생할 차례다.

         

       음?

         

       그럼 이제 나는 동아리 활동 때 뭐하냐고?

         

       글쎄…….

         

       사실 대본이라는 큰일을 마쳤기에 나는 이미 내 역할을 다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설렁설렁 구경이나 하면서 농땡이를 부려도 전혀 상관없겠지만, 문뜩 내가 한빛예고에 온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젠가는 기획부터 촬영, 제작까지 모두 내가 직접 관여한 진짜 ‘나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였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회는 그것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것 같았다.

         

       고등학교 수준이라 부담도 없고, 927 작가가 아닌 서은우라는 학생이 참여하는 것이기에 사실상 망쳐도 리스크가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아마 연출 쪽이랑 연기자들이 연기 연습을 할 때 각본가로서 약간의 지적 정도 하지 않을까 싶다.

         

         

       “후… 드디어 끝났네.”

         

         

       차무식이 질린 얼굴로 책상에 엎드렸다.

         

       한빛예고의 중간고사는 총 3일 동안 치러지고, 방금 모두 끝이 났다.

         

       참고로 중간고사 첫날에는 같은 전공의 학생끼리 모여 시험을 치르고, 남은 공용과목은 이틀 동안 반에서 치르게 된다.

         

       그때 차무식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첫날부터 난리였지? 문학비평 과목에 문제 오류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그것도 하필 927 작가님의 작품에 관한 문제에 오류가 있어서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쿨럭! 쿨럭!”

       “뭐야. 갑자기 왜 기침해? 감기야?”

       “아니…… 그냥 갑자기 뭔가 가슴 아픈 사연이 떠올라서.”

       “……그거랑 기침이랑 뭔 상관이야?”

         

         

       나는 차무식의 시선을 피해 얼른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말한 문학비평은 나한테 있어서 여러 의미로 어지러운 과목이었다.

         

       교과서에 무려 내 작품들이 실려있고, 시험 문제까지 출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허나, 출제자는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교과서에 실릴만한 작품을 만든 작가가 설마하니 아직 학생이고, 자신이 만든 작품의 의도에 관해 묻고 있는 시험 문제를 본인이 풀게 될지를.

         

       나도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 출제자라고 그걸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때문에 나는 싱글벙글한 마음으로 문학비평 과목의 시험에 임했다.

         

       중간고사의 시험 범위 안에는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이 있었고, 적어도 이것과 관련된 문제가 출제된다면 틀릴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왜나햐면…….

         

         

       ‘애초에 내가 원작자인데?’

         

         

       내가 직접 적은 대본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인데 설마 틀리겠는가?

         

       그렇기에 이왕이면 많이 출제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하지만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과 관련된 문제는 기대와는 다르게 고작 1문제밖에 출제되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927 작가의 첫 작품이라 나름 의미가 깊기도 하고, 워낙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작품이니 그만큼 TMI를 알아보거나 작품을 재탕한 학생이 많을 거다.

         

       사실상 보너스 문제라는 뜻.

         

       당연히 나 역시 답을 고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제된 문제는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에서 ‘커피’가 가진 의미와 거리가 먼 것을 고르는 것.

         

       커피는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에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온과 겨울의 접점, 과거의 추억, 굳이 말로 안 해도 자신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게 도와주는 장치, 비록 처음은 쓴맛이 나지만 끝 맛은 단 것처럼 해피 엔딩을 암시하는 것 등등.

         

       다만, 문제의 선택지에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내용 하나 있었다,

         

       1. ……

       2. ……

       3. 그 시대 귀족들의 취미

       4. ……

       5. ……

         

       바로 3번.

         

       그 시대 귀족들의 취미라…….

         

       역사적인 관점으로 보면 분명 맞는 말이긴 한데 작품적인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조금 거리가 먼 답이었다.

         

       어차피 나머지는 4개의 선택지는 다 내가 생각했던 내용 그대로였기에 자신 있게 3번을 골랐건만, 가채점 결과 전혀 생뚱맞은 1번이 답이었다.

         

       1번의 내용은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해석 중 하나인 해피 엔딩의 암시에 관한 것.

         

       아니, 누가 봐도 맞는 해석인데 굳이 3번을 두고 왜?

         

       도저히 답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그날 바로 문학비평의 담당 교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교과서 제대로 안 읽어 봤구나?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은 열린 결말이잖니. 그러니 결말이 어떤지는 오직 927 작가님밖에 모르겠지. 그러니 커피의 맛 가지고 결말을 확신하는 건 너무 일차원적인 접근이란다. 천하의 927 작가님이 그런 식으로 대충 결말 부를 암시하지는 않았을 거야.

         

         

       ……?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일차원적인 접근을 하라고 대충 만들어둔 장치 맞는데요?

         

       뭔가 이대로는 도저히 대화가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다급히 나 PD님에게 연락을 했다.

         

         

       -작가님 작품을 배경으로 출제된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말입니까?

       -네. 그래서 근본적인 원인인 교육부에 제대로 따지고 싶은데 조금 도와주세요.

       -살아있는 작가분의 작품을 교과서에 기재할 경우 종종 발생하는 일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굳이 작가님이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공동 제작사인 스튜디오엔믹스의 입장에서 작가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잘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믿었던 대로 나 PD님의 일 처리 속도는 매우 빨랐다.

         

       다음 날, 바로 관련 내용의 조사에 들어가고 공식적으로 교육부의 사과까지 얻어냈을 정도니까.

         

       그 결과 이번 중간고사의 출제된 문제 자체가 오류로 판단되어 모든 선택지가 정답 처리가 되어버리는 싱거운 결말을 맞이했다.

         

         

       “쩝. 어쨌든 이번 사건 이후로 927 작가님의 작품과 관련된 문제는 아예 안 나오겠네.”

       “차라리 다행이지. 이제 그 사람이 죽기 전까지 이런 소란은 안 일어날 테니까.”

       “확실히 민감한 부분이긴 하지……. 아, 맞다. 생각해보니까 너 오늘 그거 공개한다며?”

         

         

       나는 차무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내가 쓴 대본을 부원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동시에.

         

         

       “누구에게 맡겨야 하려나…….”

       “뭐를?”

       “주인공.”

         

         

       이왕이면 이번 연극의 주인공을 누구로 할지 확실하게 정할 생각이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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