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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이번에 내가 구상한 연극의 대본.

         

       무대에 서게 될 인원은 총 7명이다.

         

       이것은 연극·영화부의 인원수를 고려하여 최대한 배역을 조정한 것이다.

         

       어차피 1시간 안팎의 연극에선 무대에 서는 인원이 많아 봤자 좋은 점이 딱히 없다.

         

       동선도 꼬이고, 극을 보는 시청자들도 인물들의 특징이나 관계 같은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쉽게 말해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극에 오르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어지러워진다는 의미다.

         

       물론 나름의 장점도 있다.

         

       그만큼 대사의 양과 등장 시간이 줄어들어 연기자들의 부담이 줄기야 하겠지.

         

       ……하지만 말이다.

         

       그딴 건 대본을 적은 내 입장에선 전혀 상관없는 얘기다.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떤 한 작품을 책임지는 제작자라면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연기자들을 혹사하는 것이라도 기꺼이.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렇게 혹사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뭐…….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주연 3인방을 맡을 사람들은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극을 전반적으로 이끌어가는 이들인 만큼 다른 배역들보다 등장 시간이랑 대사가 많은 건 당연하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극과 극을 넘나드는 감정선을 능숙하게 다룰 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만족할만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자신 있게 못 말하겠지.’

         

         

       문제는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려면 학생 수준의 연기력으로 실현이 힘들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모순이 한 가지 발생하게 된다.

         

       고등학교 수준의 대회에서 공연하기 위해 만든 대본이 학생 수준으로 힘들다? 이건 어떻게 보면 설계 미스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연극·영화부가 단순한 학생 수준의 동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떡 하니 학생 수준을 벗어난 베테랑들이 있지 않은가?

         

       베테랑.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고등학생과 베테랑이라는 단어는 거리가 상당히 멀지만, 그것과 어울리는 인물들이 우리 동아리에는 무려 셋이나 있다.

         

       애초에 그 세 명의 베테랑들에게 주연을 맡길 생각으로 대본을 설계했으니까 뭐…….

         

         

       “…….”

         

         

       내가 적은 대본을 처음 읽어 보는 연극·영화부의 부원들.

         

       다들 몰입해서 읽는 모양인지 한동안 부실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서은우. 정말 이거 네가 적은 거 맞아?”

         

         

       고요함을 깨고 차장 송가람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부실에서 한땀 한땀 열심히 적은 걸 직접 두 눈으로 봤으면서 뭘.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최대한 뻔뻔하게.

         

         

       “어때요? 재밌어요?”

       “허…….”

         

         

       송가람은 내 뻔뻔한 반응이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다 알면서 그걸 굳이 물어보냐?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참고로 다른 부원들도 송가람과 비슷비슷한 반응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한번 스윽- 쳐다보고는 어느샌가 얕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다들 슬슬 깨달았겠지.

         

       이 대본을 바탕으로 1달 동안 잘만 준비하면 상당히 재밌는 무대가 탄생할 거라는 것을.

         

         

       “아니… 대충 잘난 건 알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뭔가 더 괴리감이 느껴지네.”

         

         

       똑같이 옆자리에서 대본을 다 읽은 차무식이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뭐래 금수저가. 너는 남은 기간 동안 연기 연습이나 잘해.”

       “……?”

         

         

       순간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차무식.

         

         

       “그…… 서은우 씨? 방금 내 잘못 들었나?”

       “아니, 제대로 들은 것 같은데? 어쨌든 너 무조건 무대에 올릴 생각이니까 이 얘기는 이만 그만하자.”

       “야, 야! 계속해야지 뭘 그만해! 나 연기에 연자도 모르는 생초짜라고!!!”

       “음? 생초짜여서 오히려 더 좋은 배역이 있잖아.”

       “서, 설마 ‘하영도’ 역을 얘기하는 거냐?”

       “역시 동류끼리는 단번에 알아본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네. 맞아, 그냥 대놓고 너를 모티브로 만든 배역이니까 그냥 평소의 너처럼 연기하면 될 것 같아.”

       “그게 말처럼 쉽겠냐 이 미친 친구 놈아…….”

         

         

       내가 그리 단언하자 졸지에 연기 경험까지 쌓게 된 차무식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참고로 차무식이 말한 ‘하영도’는 극을 무겁게 치우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조연 역이다.

         

       그러니 연기를 그리 잘해야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어색하면 어색할수록 캐릭터의 맛이 살아나 보는 이를 미소 짓게 만들지도 모르지.

         

       딱 녀석에게 어울리는 배역 아닐까 싶은데…… 조금 걱정되는 점이 있긴 했다.

         

       저 녀석 나중에 연극이 성공적인 결과로 끝나면 막 자기 연기 잘하는 줄 알고 월클병 걸리는 거 아니냐?

         

       내 앞에서 그러면 진심으로 죽빵 마려울 것 같은데.

         

         

       “그럼 나는 ‘강태양’ 역인가?”

         

         

       그때 어느샌가 다가온 박하준이 내게 물었다.

         

       강태양.

         

       이번 연극의 주연 인물 3인방 중 한 명으로 사실상 남자 배역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만큼 연기를 하며 생각해야 할 부분도 많고, 조연들과 상호작용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앞에서 이끌어줘야 한다.

         

         

       “아마 선배가 그 역을 맡는 데에는 다들 이견은 없을걸요. 그나저나 대본에 관해 별말 없으신 걸 보니까 다행히 합격점은 넘어간 것 같네요.”

       “합격점이라…… 상당히 겸손한 표현이네.”

         

         

       박하준이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참고로 나는 말을 아낄 생각이었어. 원래 연기자는 연기력으로 보답해줘야 하는 법이거든.”

       “…….”

         

         

       뭔가 드라마에 나올법한 대사.

         

       누가 들어도 오글거리는 건 맞는데 인기 남배우인 박하준이 직접 말하니까 뭔가 느낌이 다르다.

         

       어쨌든 남자 쪽은 이런 식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배역이 다 정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여자 쪽 배역뿐.

         

       이번 연극 무대에는 3명의 여자부원이 올라야 한다.

         

       허나, 공교롭게도 연극·영화부는 생각보다 여자부원이 그리 많지 않다.

         

       설소영, 이다혜, 송가람, 그리고 송가람의 제안으로 거의 마지막에 합류하게 된 2학년의 한여진.

         

       이렇게 총 4명이다.

         

       여기서 한여진은 내가 대본을 맡게 된 것처럼 음향 쪽을 담당하기로 사전에 얘기가 된 모양이었다.

         

       즉, 어쩔 수 없이 남은 여자부원들이 모두 무대 위에 올라야 한다는 뜻.

         

         

       “나는 딱히 상관없어. 원래 남는 배역이 있으면 하고 싶은 쪽이었고.”

         

         

       역시 연기를 전공하는 연예과답게 송가람 쪽은 긍정적이었다. 심지어 2학년 중에서는 박하준 다음으로 성적이 우수한 차석이기에 기대해봐도 되겠지.

         

       그리고 다른 두 명은…….

         

       나는 조심스럽게 설소영과 이다혜 쪽을 쳐다봤다.

         

       이 둘은 부실 안의 소음 속에서도 여전히 내가 쓴 대본을 몰입한 상태로 읽고 있었다.

         

       뭔가 그 몰입을 깨면 안 될 것 같아 나를 포함한 다른 부원들은 섣불리 그들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후…….”

         

         

       이윽고, 이다혜가 먼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갑자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곤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나, ‘김미소’ 역 연기해보고 싶어.”

       “……이유는?”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 신뢰가 가는 대답이네.”

         

         

       이다혜의 근거 없는 대답을 들으니 저절로 쓴 미소가 지어진다.

         

       김미소…….

         

       내 대본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연극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다혜가 언급한 ‘김미소’라는 캐릭터.

         

       사실 이다혜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김미소의 배역을 맡고 싶다고 어필하는 것을 듣고 조금 놀랐다.

         

       은연중에 나 역시 그녀가 김미소를 연기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기라면 설소영이 훨씬 더 잘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어쩌면 그녀가 주인공을 맡는 것이 더 나은 그림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다혜가 ‘김미소’ 역을 맡는다면 나름의 장점이 있다.

         

       무대 위에 서면 자연스레 발휘되는 그녀 특유의 밝은 에너지. 나는 그것이 엄청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 밝음이 무대 위에서 커질수록…….

         

         

       ‘그녀가 무대에서 없어졌을 때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겠지.’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은 설소영도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연기할 때의 설소영의 존재감은 실로 엄청나니까.

         

       그것은 이다혜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관객들에게 빈자리를 느끼게 만들겠지.

         

       그렇기에 나는 나지막하게 설소영을 쳐다봤다.

         

       지금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 궁금했기에.

         

       설소영 역시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내 쪽을 쳐다봤고,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레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일단 먼저 입을 뗀 것은 나였다.

         

       이대로라면 뭔가 하루 종일 눈싸움만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어떻게 생각해?”

       “다혜가 김미소 역을 맡는 거?”

       “맞아.”

         

         

       이다혜가 김미소 역을 맡으면 설소영은 자연스레 ‘문연우’라는 역을 맡게 된다.

         

       앞서 말했던 강태양, 김미소, 문연우는 편의상 주연 3인방이라고 묶어서 표현했지만, 사실 문연우는 다른 2명에 비해 비중이 약간 적은 편이긴 하다.

         

       그런 의미에서 설소영이 ‘문연우’ 역을 맡는 그림이 조금 상상이 안 됐다.

         

       지금까지 내 작품에 항상 주인공으로 출연한 설소영.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가장 많은 분량의 대사를 외우고 말했으며, 가장 오랜 시간 화면에 모습을 비춘다.

         

       그만큼 설소영에게 주인공이란 포지션은 당연한 거였고, 어느 정도 김미소 역에 욕심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다혜 역시 그것을 깨달은 듯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설소영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나…….

         

         

       “나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문연우 역에 약간 흥미가 생겼거든.”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설소영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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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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