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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실수만 안 하면 심사위원들이 깜짝 놀랄 거다.

         

       나는 박하준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하면 심사위원들이 다른 의미로 놀라겠죠.”

       “에이,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멘트가 아닌 걸 알잖아.”

         

         

       긴장이라도 조금 풀라고 농담 한번 해봤는데 박하준이 내게 불만을 표현하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그를 째려볼 수밖에 없었다.

         

       리더라는 사람이 이런 중책을 갑자기 나한테 떠넘기곤 도망쳤으면서 바라는 게 참 많았다.

         

       덕분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다들 은연중에 내 말을 기대하는 느낌이어서 이대로 모른 척하면 단번에 분위기를 다운시킬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무대에 서본 적이 없는 나는 지금 저들이 느끼는 기분이 어떤지 잘 모른다. 애초에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모인 탓에 반응이 다들 제각각이기도 했고.

         

       누군가는 무대 경험이 없는 차무식처럼 긴장을 하고, 누군가는 박하준과 마찬가지로 평소와 같이 여유롭다.

         

       이런 엇갈리는 반응 속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정답일까.

         

       뭐… 사실은 정답을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정작 연극이 시작되면 잘해낼 사람들인데 뭘.

         

         

       “어차피 다들 잘하잖아요. 그냥 연습했던 대로만 하세요.”

       “…….”

         

         

       설마 그게 끝이라고?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대충 이런 반응이었다.

         

       ……알고 있다.

         

       이게 끝이면 재미없겠지.

         

         

       “방금 말이 영 별로였다면 본선에서 다시 해보죠 뭐.”

         

         

       그리고.

       

       서은우의 말을 들은 부원들은 하나같이 얕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그의 말은 마치 이미 본선에 가는 것을 확정하고 있는 말투였으니까.

         

         

         

         

       ***

         

         

         

       대한청소년연극제.

         

       대한연극협회의 주최로 열리는, 말 그대로 자라나는 연극 꿈나무들을 위한 축제.

         

       특히 올해는 작년보다 더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연극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연히 한빛예고가 있었다.

         

       유일하게 같은 지역, 두 개의 팀이 동시에 참여하는 학교이기도 하고 한쪽은 예전부터 제법 이름을 날려오던 동아리다.

         

       한빛예고 연극부.

         

       사실상 이쪽은 대한청소년연극제에서 얼굴을 자주 보이는 단골손님이다.

         

       본선은 거의 무조건 가는 편이고, 심지어 작년에 대한청소년연극제에서 금상을 받은 전적도 있다.

         

       그리고 작년에 금상을 받은 시나리오, 즉 이번에도 대본을 맡게 된 강예린이 대상을 목표로 아주 칼을 갈고 대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강예린은 이미 이쪽 업계에서 나름 유명한 유망주다.

         

       대한연극협회의 관계자들도 대부분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관련 업계에선 927 작가의 공백을 채워줄지도 모르는 차세대 작가로 평가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강예린이 이틀 전에 예선에서 선보인 연극은 심사위원들을 감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작년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시나리오와 강예린의 주도하에 한 치의 실수 없이 완벽하게 펼쳐지는 연출. 거기에다가 엄청난 연습량이 눈에 훤히 보이는 연기자들의 연기가 한데 어우러져 학생 수준을 넘어선 무대를 펼쳤다.

         

       그렇기에 대한연극협회의 내부 평가로는 이미 본선 진출이 거의 확정인 데다가, 본선에서 이 정도 수준의 연극을 펼친다면 대상은 이미 한빛예고의 연극부가 받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드디어… 그 학생들이 소속되어 있는 팀의 차례군요.”

         

         

       전혀 다른 의미로 심사위원들을 일제히 긴장시키는 팀이 한곳 있었다.

         

       인기 남배우 박하준이 부장을 맡고 있는 신생 동아리, 한빛예고의 연극·영화부.

         

       문제는 이 동아리에서 예의주시할 인물이 박하준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927 작가의 모든 작품에 주인공 역으로 출연해, 나이에 맞지 않은 엄청난 연기력을 선보이며 현재 최고의 관심과 인기를 자랑하는 여배우 설소영.

         

       홍련의 센터로 활동하며 설소영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현직 아이돌, 이다혜.

         

       이 화려하다 못해 이름만 들어도 억은 기본 단위로 깨질 것 같은 라인업이 한 고등학교 동아리에 모여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그만큼 심사위원들의 입장에서도 이들이 어떤 연극을 선사해줄지 기대할 수밖에 없었고, 한편으로는 조금 생각해볼 점도 있었다.

         

       대한청소년연극제의 심사 기준은 연출·시나리오를 합한 점수 50프로와 연기자들의 연기 점수 50프로를 합산해 총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아무리 연기자들이 배역의 특색에 맞게 연기를 잘하더라도, 연출과 시나리오 쪽의 퀄리티가 별로인 이상 높은 점수를 얻는 데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펼칠 무대의 시나리오와 연출 담당을 누가 맡았는지 시선이 자연스레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은우.

         

       아무리 이 학생을 대해 조사해봐도 딱히 나오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의문이 생긴다.

         

       어째서 그들은 이 남학생에게 시나리오와 연출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겼을까?

         

         

       지이이이잉-

         

         

       그리고 이제는 그 의문에 관한 답을 확인해볼 시간이었다.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커튼이 무대 전체를 가리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연극을 시작하기 전, 각 팀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약 10분.

         

       아마 지금쯤 저 커튼의 뒤로 매우 분주하게 소품의 세팅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원래 본선에선 관객들도 있기에 예의상 커튼을 가리기 전, 연기자들과 스텝들이 무대 위에 다 같이 올라서 잠깐의 소개 타임을 갖긴 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는 본선의 얘기다.

         

       하루에 몇 팀씩이나 공연을 펼쳐야 하는 예선에선 소개 타임을 갖기 상당히 빡빡하니까.

         

       어쨌든 주어진 시간이 모두 끝나고, 무대의 커튼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다.

         

       준비 시간 동안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심사위원들 역시 다시 무대에 시선을 집중했다.

         

       파악-

         

       순간 공간 전체를 비추고 있던 조명이 일제히 암전되었다. 그 때문에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졌고, 그런 어둠 속에서 오직 무대 위만이 연극의 시작을 알리듯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대를 채우고 있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각자의 의자에 앉아있는 연기자들의 모습이었다.

         

       저것만 봐도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이 학교의 교실 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시작부터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이제부터 연극을 이끌어가야 할 연기자들이 하나같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마침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그리고 그 기이한 광경은…….

         

       꿈꾸는 아이들의 역사적인 첫 공연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익숙한 현상은 무엇일까?

         

       아마 조명의 암전이 아닐까 싶다.

         

       계속 밝았던 주변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조명은 주인공의 등장을 알리듯 오직 무대만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관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정면에 있는 무대로 향할 수밖에 없고,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점차 고요해진다.

         

       보통은 그다음으로 나레이션을 사용하거나, 활기차고 큰 목소리로 연기자가 대사를 말하며 관객들의 이목을 순식간에 집중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꿈꾸는 아이들의 시작 연출은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무대 뒤편의 어두운 공간에서 꿈꾸는 아이들의 첫 시작을 유심히 지켜봤다.

         

       이다혜를 제외하고 하나같이 책상에 엎드려 있는 6명의 학생들.

         

       당연히 이 연출이 그리 오래 이어질 일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관객들에게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

         

       왜 저 학생들은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을까? 왜 한 자리가 비어있고, 왜 이런 연출을 펼친 거지? 등등.

         

       다만.

         

       그것이 어떤 의문인지는 전혀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사소한 의문을 시작으로 관객들이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이야기에 점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극이 진행됨에 따라 의문이 해소되는 순간, 아마 관객들은 자연스레 깨닫게 되겠지.

         

       어느샌가 자신이 이 이야기에 잔뜩 몰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으으음!

         

         

       그때 가장 앞에 놓인 책상에서 학생 한 명이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박하준, 이번 꿈꾸는 아이들에선 ‘강태양’이라는 이름이 가진 학생이었다.

         

       보통 꿈꾸는 아이들의 모든 씬은 주연 3인방의 행동이나 대사로 시작한다.

         

       경험이 없는 조연들이 시작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지만, 연극이라는 것은 관객들의 앞에서 그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라이브로 공연을 펼치는 행위다.

         

       여기서 상호작용은 관객과 종종 눈을 마주하거나, 관객들과 직접 대화를 하듯이 능청스럽게 대사를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연기자는 연기 도중에 관객석 전체의 반응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부원 중에서 그것에 가장 능한 사람은 박하준이겠지.

         

       조금 당연한 소리지만, 무대 뒤편에서 관객석의 반응이나 분위기가 같은 것을 알아채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조금 어려운 요구를 했다.

         

       연출이 너무 길어져서 진부하지 않게끔, 사람들이 호기심을 막 품기 시작할 때쯤 첫 스타트를 알아서 끊어 달라고.

         

       아마 방금까지도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 계속 티 나지 않게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살폈을 것이다.

         

       애초에 그것을 위해서 그를 관객석과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했으니까.

         

       심지어 박하준의 스타트 타이밍은 지금처럼, 연습 때마다 너무나도 절묘했다.

         

       항상 그 타이밍이 조금씩 달라지면서도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이 예상의 영역인지 본능의 영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존재가 우리의 무대를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첫 씬은 잠에서 깨어난 강태양이 다른 학생들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태양은 친구들과 한명 한명, 사이좋게 안부의 대사를 주고받고 마지막에 쓸쓸하게 텅 비어있는 자리에 도달한다.

         

       그는 나지막하게 선 채로 책상 위를 바라보았고 그런 그를 보며 설소영, 문연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미소, 오랜만에 보고 싶다. 그지?

         

         

       강태양은 그녀의 말에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문연우와 강태양, 주연들끼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저 대화가 모두 끝나면 이제는 다음 씬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으… 재밌겠다.”

         

         

       마치 아이돌로서 무대에 서는 것처럼.

       

       무대에 서는 것을 즐기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해맑은 얼굴로 내 옆에 선 이다혜.

         

       이제 슬슬 이 연극의 진짜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였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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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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