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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그래서? 설소영이랑 이다혜한테 무슨 말을 해서 빠져나왔다고?”

       “……아무 말도 안 했다고.”

       “어라? 아무 말도 안 해? 하준 선배. 선배는 제대로 들으셨죠?”

       “그야 당연히 들었지.”

         

         

       방금 내가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었는지 뻔히 알면서 신 나게 티키타카를 시전 중인 박하준과 차무식.

         

       아오, 제발 좀.

         

       그냥 잠시만 혼자 있게 다들 내 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

         

         

       “오, 그럼 한 번만 다시 들려주세요. 아무래도 얘 자기가 한 말을 갑자기 잊어버린 것 같아요.”

       “음… 분명 연상은 취향이 아니야라고 다급히 외쳤던 것 같은데.”

       “키야, 그럼 동갑은 괜찮다는 이 말이네.”

         

         

       나는 내 앞에서 신 나게 떠들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차무식 이 새끼 긴장한 거 맞냐?

         

       아무래도 나를 놀리면서 그것마저도 망각한 게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이다혜와 설소영에게는 박하준이 말했던 것처럼 연상은 취향이 아니라고 대답해놨다.

         

       그제서야 뭔가 기분이 풀린 듯 상황은 순식간에 종결되었지만, 설소영과 이다혜가 모르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전생까지 포함해서 따지고 보면 강예린도 내게 연하라는 것을…….

         

       뭐… 어차피 이 사실을 굳이 알릴 필요도, 알려줄 필요도 없겠지.

         

       [연극·영화부,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진행자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오후 7시 40분.

         

       이제 잠깐의 무대 소개 시간 뒤, 드디어 우리 동아리의 본선이 시작된다.

         

         

         

       ***

         

         

         

       쓰으읍…….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실제로 오르고 나니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긴 하다.

         

       무려 1200명이 만석을 가득 채운 오늘의 관객석.

         

       사람이 적다고 느껴지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지.

         

       한편으론 관객석보다는 심사위원 쪽도 신경 쓰였다.

         

       5명이 나란히 앉아있는 심사위원, 그리고 그 중앙에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백발의 한 노인.

         

       조완호.

         

       대한연극협회의 회장이 고작 청소년 연극제의 심사를 직접 보러 나올 줄이야…….

         

       음, 어지간히도 심심하셨던 모양이네.

         

       [먼저 이 동아리를 창설한 부장, 박하준 학생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연극·영화부는 올해 박하준 학생의 주도하에 창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혹시 연극부가 있는데 굳이 연극·영화부를 만든 목적이 뭔가요?]

         

       그때 진행자가 가장 먼저 박하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이에 박하준은 평소처럼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설마……

         

       진짜 그걸 이 자리에서 대놓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927 작가님이 다시 복귀하고 싶어질 정도로 가슴이 뜨거워질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오, 그럼 오늘 공연이 그에 부합하다고 생각하나요?]

       [네. 적어도 오늘 펼칠 연극, 꿈꾸는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걸 진짜 하네.

         

       지금처럼 박하준의 당당함은 가끔 존경심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박하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관객석 쪽을 쳐다봤다.

         

       2층은 조금 멀어서 사람들의 표정까지는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1층 쪽은 비교적 잘 보인다.

         

       때문에 나는 쓴 미소가 절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관객석에 앉아있는 사람 중 극히 일부는 내 정체를 알고 있고, 그렇기에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의아한 표정과 더불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알다시피 방금 박하준이 한 말에는 모순이 있지 않은가?

         

       927 작가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작품을 927 작가 스스로 만들고 있으니,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의아할 수밖에 없다.

         

       사실 당사자인 나조차도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서 있게 된 건지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되니까.

         

       이윽고, 차례대로 부원들에게 마이크가 돌아가고 마지막에 내가 잡는 그림이 되었다.

         

       [대본과 연출을 담당한다고 부담이 정말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특히 멤버가 멤버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을 것 같은데.]

         

       진행자가 내게 묻는다.

         

       부담.

         

       사실 그렇게까지 부담은 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선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평범한 학생이 이 역할을 맡았다면 아마 진행자가 묻는 것처럼 부담이 정말 많이 됐을 거다.

         

       뭐… 그러니까 대충 그런 느낌으로 답변해주면 되겠지.

         

       [하하. 말씀하신 대로 엄청 부담되고 떨리죠. 지금도 제 대본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을 많은 분들 앞에서 선보일 생각을 하니 조금 떨리네요.]

         

       헌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마이크에 대고 그 말을 내뱉자마자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부담?”

       “떨려?”

         

         

       뭔가 헛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연극·영화부의 부원들.

         

       아니, 이것들이?

         

       [그럼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일단 최대한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나는 진행자의 마지막 질문을 경청했다.

         

       원래라면 내 성격상 저 질문에 딱히 할 말이 없다고 답변했을 것이다.

         

       다만…….

         

         

       [예선 때 제가 부원들에게 공약을 하나 걸었거든요. 만약 본선에 올라가면 시작 전에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해주겠다고.]

         

         

       그때는 예선이어서 그냥 흐지부지하게 넘어갔지만, 모두 노력해서 본선에 올라온 만큼 그때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제가 굳이 무슨 안 덧붙여도 충분히 잘할 사람들이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무대를 즐기자는 마인드로 즐겁게 연극을 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여기 계신 관객분들도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연극을 즐기실 수 있을 거고, 하준 선배가 늘 말해왔던 것처럼……]

         

         

       그래.

         

       어쩌면 927 작가의 가슴에 불을 지필지도 모르지.

         

         

         

       ***

         

         

         

       무대 전체에 거대한 커튼이 펼쳐지고, 연극·영화부는 커튼의 뒤편에서 분주하게 소품을 세팅하고 있었다.

         

       처음에 학생들이 엎드려 있는 연출을 위한 책상과 의자, 조명과 배경의 세팅, 안개 효과 등등.

         

         

       “다들 이제 거의 전문가 수준이네…….”

         

         

       사실 세팅을 위해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0분이지만 이 작업에 숙달이 되면 지금처럼 시간이 조금 남게 된다.

         

       현재 시각은 7시 57분.

         

       미리 책상에 엎드려 있는 연출 때문에 59분쯤에 이다혜를 제외한 연기자들이 무대 위에 다 함께 올라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2분 동안 무엇을 하냐인데…….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딱 봐도 긴장감이 맴돌고 있는 분위기.

         

       다들 티는 내지 않고 있지만, 몸이 조금 얼어붙어 있었다.

         

       알고 있다.

         

       앞서 내가 부원들에게 즐기라곤 말했지만, 아마 그게 마음처럼 쉽진 않을 거다.

         

       특히 생방송 송출에 오늘 어떤 관객들이 왔는지 잘 알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겠지.

         

         

       “서은우.”

         

         

       그때 박하준이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지 가까이 다가왔다.

         

         

       “왜요?”

       “그냥 왠지 모르게 너한테 고맙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우웩, 오글거리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하하. 문뜩 이런 생각이 들어. 만약 네가 쓴 대본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대한청소년연극제의 본선에 설 수 있었을까.”

         

         

       안 어울리게 갑자기 감회에 젖어빠진 박하준.

         

       나는 그런 박하준의 등짝을 마치 송가람에 빙의한 것 마냥 시원하게 한 대 갈겼고, 경쾌한 소리가 무대 뒤편을 울렸다.

         

       덕분에 부원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한순간에 고정되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김빠지게 뭔 감회에 젖어있어요? 그런 건 끝나고 하세요.”

       “음. 맞는 말이긴 한데 조금 아프네. 그래도 확실히 원조에 비하면 약하긴 해.”

       “간만에 원조의 맛을 보고 싶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박하준.”

         

         

       어느샌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다가온 송가람.

         

       송가람이 다가온 것을 확인한 박하준이 질린 표정을 지으며 팔을 격하게 저었다.

         

       뭔가 오늘따라 수상한 박하준의 행동을 보며 나는 혹시 몰라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전의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느샌가 우릴 보며 얕은 미소를 짓고 있는 부원들.

         

       설마……

         

       아니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박하준을 보았고, 자연스레 시선이 마주친 그는 어째서인지 내게 한쪽 눈을 감으며 윙크를 했다.

         

       마치 자신의 의도를 잘 간파해 주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쓰으읍…….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무서울 정도로 자기가 뭘 해야 할지 잘 아는 사람이네.

         

       역시 주인공은 주인공이라는 건가?

         

         

       “다들 화이팅!”

         

         

       그렇게 잠깐의 해프닝이 지나가고, 내 옆에 서 있던 이다혜의 말을 끝으로 연기자들이 무대 위로 향했다. 그리고 예선 때처럼 오직 한 자리만을 비워놓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 책상에 엎드렸다.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다.

         

       무대를 가리고 있는 거대한 커튼이 모두 걷힌 그 순간,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연극이 드디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꿈꾸는 아이들의 시작을 끊는 것은 박하준, 즉 강태양이다.

         

       그가 무대를 돌아다니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던 학생들을 깨우고, 끝에는 설소영이 연기를 하고 있는 배역인 문연우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첫 번째 씬은 끝나게 된다.

         

       확실히 초반부, 김미소가 처음 등장하는 첫 번째 회상 씬까지는 사실상 박하준의 비중이 크기에 순조롭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참고로 초반부의 내용은 예선 때 설명했다시피 강태양이 김미소 덕분에 다시 꿈을 되찾게 된 이야기.

         

       그렇다면 중반부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어찌 보면 강태양이 꿈을 다시 되찾았을 때와 전체적인 구조는 비슷하다.

         

       주인공인 김미소가 조연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

         

       그 끝에는 결국 강태양이 느꼈던 것처럼 오직 환한 빛만이 그들의 앞을 비춰주고 있겠지.

         

       서은우는 김미소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오직 그 빛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선 때보다 더더욱, 오늘따라 특히나 더 빛나고 있는 김미소.

         

       무대 중앙에 선 이다혜를 보며 서은우는 어째서인지 얕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재 그는 두 번째 씬이 시작되기 전의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김미소의 첫 등장 장면이 시작되기 전, 무대를 향해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디딘 이다혜.

         

       서은우는 문뜩 그녀를 향해 어떤 말을 내뱉었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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