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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대관람차가 한 바퀴를 모두 도는데 몇 분 정도 걸릴까?

         

       내가 알기로 대략 15분 정도.

         

       경치 구경이라는 명목하에 나름 적당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지.

         

       물론 지금의 나랑은 거리가 먼 얘기였다.

         

       대관람차는 기본적으로 밀폐된 공간이다. 즉, 관람차 안에 탑승한 순간 15분 동안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오붓하게 둘이서만 대화하는 건 처음인 것 같네.”

         

         

       바로 내 정면에 마주 앉아 입을 열고 있는 설소영이랑 무려 단, 둘이서.

         

       나는 설소영의 말에 최대한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대화는 학교에서도 자주 나눴잖아. 일단은 옆자리니까.”

       “그래도 그때랑 다르게 주변에 듣는 귀가 없잖아?”

         

         

       듣는 귀가 없다라…….

         

       마치 지금처럼 남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을 수 있는 환경, 설소영은 뭔가 계속 이런 상황을 기다려온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기다려 온 게 아니라 직접 만든 것일지도 모르지.

         

       앞서 얘기했다시피 오늘 놀이공원에 오자는 제안을 가장 먼저 한 것도 설소영이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

         

       나는 다시 설소영을 쳐다봤다.

         

       그녀는 나를 보며 여전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음.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하긴, 어제 침대 위에 그 수첩을 놓고 간 것부터가 너무 인위적이었다.

         

       그나저나 만약 내가 그 수첩을 안 펼쳐봤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

         

       이 상황은 백 프로 내가 수첩을 펼쳐 볼 걸 예상해야만 가능할 텐데.

         

       나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고, 돌아오는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아는 너라면 당연히 의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어.”

         

         

       왜 꿈꾸는 아이들의 결말을 바꿨는지, 왜 일부러 수첩을 흘리고 갔을지를.

         

       그리고 아마 그러한 의문이 생긴 순간…….

         

         

       “변수를 싫어하는 당신이라면 조금이라도 그 의문을 해소할 만한 정보를 얻고 싶지 않았을까요?”

         

         

       당신.

         

       순간 나를 향한 설소영의 말투가 존댓말로 바뀌었다.

         

       그것은 마치 그녀 자신의 안에서 나를 누군가와 겹쳐서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아마도……

         

         

       ‘927 작가겠지.’

         

         

       설소영이 무언가를 적어 둔 수첩.

         

       그 안의 내용을 대충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수첩의 적힌 대부분의 내용이 그녀가 왜 나를 927 작가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이유였으니까.

         

       물론, 가장 앞부분인 첫 페이지는 조금 다른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곳에는 설소영이 지난 몇 년 동안 927 작가와 교류를 하면서 느낀, 927 작가의 특징 같은 것이 적혀있었다.

         

       패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금전 감각은 상당히 절약하는 경향.

         

       문자 대화법은 상당히 간결하고, 의외로 유행어를 잘 알고 있음.

         

       드라마를 사랑하고 그와 관련된 지식이 엄청남. 자신의 작품에 한해서 완벽주의 성향을 지니고 그 기준이 이상할 정도로 엄격함.

         

       그리고 정체를 밝히는 것을 극도로 꺼리거나, 목소리가 남자로 추정되는 것 등등.

         

       솔직히 틀린 내용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나 역시 설소영이 머리가 좋은 건 잘 알고 있다.

       근데 무슨 프로파일링 수준으로, 그 좋은 머리를 이상한 방향으로 쓰냐고…….

       덕분에 첫 페이지부터 뭔가 조금 무서워졌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의 내용부터는 내가 왜 927 작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상세히 적혀있었다.

         

         

       “입학식 날, 첫인사를 나눌 때부터 위화감을 느꼈어요.”

         

         

       이어서 설소영이 입을 열었다.

         

       첫인사라면 분명 설소영이 내 옆자리에 배정받은 순간의 일.

         

       그녀가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고, 나는 그 인사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은 죄밖에 없다.

         

       허나, 그녀는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는 조금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 제일 베스트는 당황한 표정으로 차무식 마냥 호들갑을 떨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목소리.”

         

         

       다음으로 그녀가 예시를 든 것은 바로 목소리.

         

       여기서 목소리는 2년 전의 NG 사태 때 통화를 나눈 것을 의미했다.

         

       분명 그때 목소리에 힘을 줬고, 아마 변성기 때문에 지금과는 목소리가 많이 다를 것이다.

         

       또한, 그때로부터 제법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설소영은 용캐도 그 차이를 눈치챈 모양.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대본도 여러 의미로 확신을 하는데 도움을 줬어요. 누구보다 당신의 작품에 많이 출연하고, 당신의 대본을 많이 읽은 사람이 저인데 어떻게 그걸 눈치 못 채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 내가 927 작가인 이유가 끝도 없이 나오는 것 같다.

         

       대본은 결말 부분을 작품성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일부로 수정했으니 어느 정도 인정인데, 돌이켜보면 내가 그 정도로 티 나게 행동했나 의심이 들 정도.

         

       그때였다.

         

         

       “927 작가님.”

         

         

       처음으로 내 또 다른 이름을 설소영이 언급했고, 그녀의 눈과 자연스레 시선이 마주쳤다.

         

       맑고, 한 치의 의심 없는 순수한 눈.

         

       ……알고 있다.

         

       여기서 내가 부정하지 않은 그 순간, 간접적으로 내가 927 작가라는 사실을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까지 설소영이 말한 것은 모두 다 심증에 불과하다.

         

       그녀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

         

         

       “아, 물증이라면 있어요. 제가 927 작가님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면 되겠죠.”

       “……뭐?”

       “번호가 완전히 다른 걸 보면 아마 휴대폰을 2개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여기서 그 사실을 부정하시면 뭐……”

         

         

       설소영이 말끝을 흐리며 무언가를 고민한다.

         

       확실히 지금 내가 소지하고 있는 휴대폰은 원래 서은우로서의 휴대폰. 현재 927 작가의 휴대폰은 짐 보관함이라는 곳에 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내가 그 사실을 완강하게 부정한다면 그녀의 입장에선 딱히 별다른 방법이……

         

         

       “조금 극단적이지만, 저희 부모님의 힘을 빌려 번호 추적이라도 해보려고요. 사실 지금까지 피해를 드릴 것 같아서 일부로 안 하고 있었거든요.”

         

         

       음.

         

       그냥 인정하자.

         

       생각해보면 이제 와서 딱히 부정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설소영에게 정체를 밝히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려왔다.

         

       어쩌면 그녀를 계속 ‘꽃같은 커플’이라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로 봐왔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어차피 운명대로 박하준과 이어지고 단순히 작가와 배우, 이 관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거라고 단정 지었다.

         

       그렇기에 괜히 그녀에게 이상한 마음을 품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거리를 뒀던 것 같다.

         

       허나, 나의 개입으로 인해 지금의 설소영은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을 알고 있다.

         

       더 이상 박하준과 이어질 일도 없으면, 원래 그에게로 향해야 했던 연심이 현재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설소영이 그토록 나와 만나고 싶어했던 것도.

       학교에서 나를 유심히 관찰한 것도.

       나를 위해 꿈꾸는 아이들의 결말을 바꾼 것도.

       연극 마지막 순간에 마치 내게 속삭이는 듯한 노래까지.

         

       그리고…….

         

         

       “혹시 아직 하나 더 남았는데 말해 드릴까요?”

       “……아직도 더 있다고?”

       “그럼요. 이게 가장 중요하고, 제가 당신을 927 작가라고 믿는 가장 중요한 이유거든요.”

         

         

       설소영이 옅은 눈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설소영에게 있어서 927 작가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그녀가 대회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를 떠올리며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그녀에게 있어서 927 작가는 말 그대로 ‘빛’이었다.

         

       배우의 길을 걷는데 도움을 주고, 처음 촬영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에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다.

         

       또한, 설소영은 927 작가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어머니의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을 도와준 것과 마약 사건에 연류되지 않게 도움을 준 것.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을 그로부터 받았고, 그는 어째서인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그래.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기에 설소영은 그를 너무나도 간절하게 만나보고 싶었고, 가장 먼저 그를 만난다면 일단 고맙다는 말부터 말하고 싶었다.

         

         

       “감.”

       “……감이라고?”

       “네. 그냥 여자의 직감이에요. 당신이 927 작가님이라고, 927 작가님일 수밖에 없다고, 927 작가님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정작, 지금처럼 눈앞에서 그를 마주하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고맙다는 말보다 지금까지 줄곧 참아 두었던 그 말들을 입으로 내뱉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러니 지금부터 자신의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말해볼 생각이었다.

         

       정말 많이 좋아한다고……

         

       그리고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것은…….

         

       설소영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진심을 가득 담은 고백이었다.

         

         

         

       ***

         

         

         

       당황스럽지 않다.

         

       분위기 적으로, 지금까지의 일을 토대로도 그녀가 내게 무슨 말을 내뱉을지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스럽다.

         

       누가 봐도 진심이 가득 담긴 고백을 바로 눈앞에서 받았는데 어떻게 당황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그녀의 고백을 끝으로 관람차 안에 깊은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즉, 이제는 내가 대답할 차례라는 뜻이다.

         

       그래. 어떠한 형태로든 그녀의 고백에 관한 대답을 해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

         

       그렇기에 나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굳이 지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에요. 그래도……”

         

         

       설소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뜩 이런 의문이 들었다.

         

       거리가 이렇게나 가까웠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그녀의 얼굴이 바로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본래 나와 설소영은 대관람차 안에서 서로 마주 보며 앉아있었기에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는 거리는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알아내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단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긴 설소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을 뿐이었으니까.

         

         

       “나중에는 꼭 대답해주셨으면 해요. 그러니 지금은 이걸로 그냥 넘어가 드릴게요.”

         

         

       설소영은 그 말과 동시에 천천히 눈을 감았고……

         

         

       쪽-

         

         

       나는 입술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그대로 사고가 정지되었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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