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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퍽-

         

       내게 고통은 나름 익숙한 것이었다.

         

       전생에 췌장암으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죽었으니까.

         

       하지만 현재 허리 쪽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당장이라도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걸 뽑을 생각은 없었다. 뽑았다간 그대로 골로 갈 테니까.

         

       퍽-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금 신기했다.

         

       설소영에게 부탁해 이다혜의 위치 추적을 부탁하고, 택시에 내린 이후로 폐가 터질 듯이 달렸고, 이다혜가 맞을 뻔한 칼을 대신 맞고, 그 칼이 꼽힌 채로 스토커에게 엘보우를 먹이고, 지금은……

         

       퍽-

         

         

       “컥!”

         

         

       바닥에 형편없이 쓰러져 있는 스토커 위에 올라타 스토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그래. 오늘 하루 내가 한 일을 되돌아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나는 싸움이란 걸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전생과 현생을 다 포함해서 누구랑 피 터지게 싸워본 경험도 없고.

         

       운동 같은 경우에는 그냥 몇 년 전부터 아는 형 따라 억지로(?) 헬스장에서 중량을 조금 과하게 친 것밖에 없다.

         

       단순하게 힘이랑 체격이 좋고, 수상할 정도로 대본을 잘 적는 고등학생.

         

       평범하지 않다면 평범하지 않긴 한데 그렇다고 흉기를 든 괴한이랑 대놓고 싸울만한 위인은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무모한 행동을 벌였다.

         

       단순히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조금 전, 잔뜩 몸을 떨고 있다는 이다혜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만약 내가 그 역에서 함께 전철을 탔더라면, 내가 진작에 그녀의 고백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더라면, 그리고……

         

         

       “크큭!”

         

         

       그때였다.

         

       나한테 움직임이 제압당한 상태에서 개처럼 맞고 있던 후드티의 남자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거냐?”

       “고작 청소년연극제에서 대본 한번 잘 썼다고 갑자기 유명해진 놈이 다혜랑 열애 중이라고? 딱히 어울리지도 않은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지랄을 떠니까 어이가 없잖아, 어이가! 난 무려 2년 동안 사랑했는데!”

         

         

       이미 흉기를 들고 이 사달을 낸 것부터 제정신이 아닐 것을 대충 예상했다.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증인 모양.

         

       그리고 묘하게 거슬리는 말이 한가지 있었다.

         

         

       “당신 눈에는 내가 딱히 이다혜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나 보구나.”

       “하! 당연한 소리를!”

       “그럼 예를 들어서, 당신을 제외하고 누구 정도는 와야 그 사실을 인정할 건데?”

         

         

       내 물음에 처음으로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후드티의 남자.

         

         

       “지금 무슨 소리를……”

       “927 작가 정도면 인정해줄 건가? 이다혜를 그리 좋아하면서 설마 927 작가를 모르지는 않겠지.”

       “…….”

         

         

       후드티의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내 진지한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927 작가 정도면 인정 못 해줄 것도 없겠지.”

         

         

       나는 남자의 물음에 잠시 침묵했다.

         

       ……그런가.

         

       이렇게 정신이 나간 사람도 927 작가 정도 되면 인기 아이돌인 이다혜와 이어지는 것을 인정하는 건가.

         

       물론 나를 놀리기 위한 의미가 다분할 것이다.

         

       그렇기에 저렇게 실실 쪼개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말이다.

         

       이 정신 나간 놈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럼 이 얘기는 끝났네. 내가 927 작가니까.”

       “……?”

         

         

       남자가 무슨 개소리라도 들은 듯, 전혀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굳이 지금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때 서야 이해할 테니까.

         

       그러니.

         

       퍽-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후드티의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

         

         

         

       서은우는 몸속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고통이 점점 무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927 작가로 밝힌 순간부터,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저 후드티의 남자를 때릴 뿐이었다.

         

       퍽-

         

       살과 살이 부딪치는 살벌한 소리가 서은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제 그가 제대로 느끼고 있는 감각 역시 이 소리뿐이었다.

         

       칼에 찔린 후로 시간이 조금 흘렀다. 그것은 현재 서은우의 상태 역시 멀쩡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서은우는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업보라는 생각으로, 좋지 않은 감정을 담은 단순한 화풀이.

         

       동시에 눈앞의 남자가 더 이상 허튼짓과 개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제압하려는 의도였고, 그것은 남자가 완전히 기절한 상태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만…”

         

         

       그런 서은우의 귀에 조금 색다른 소리가 들렸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살벌한 소리가 아닌, 조금 따스한 울림.

         

       그리고 어째서인지 아까보다 몸이 조금 따뜻해진 것 같기도 하다.

         

       서은우는 주먹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만해. 이제 다 끝났어.”

         

         

       이다혜.

         

       그녀가 거의 애원의 가까운 말을 하며 서은우를 뒤에서 살포시 껴안고 있었다.

         

       서은우는 그제서야 후드티의 남자가 기절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온몸에 힘을 다 썼는지 곧바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

         

         

       그것을 이다혜가 겨우 붙잡아 지탱했고, 서은우의 머리가 이다혜의 품에 기대는 형태로 그들은 차가운 바닥에 앉게 되었다.

         

       한편, 이다혜는 너덜너덜해진 서은우의 모습을 보고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극적인 상황에서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고, 자신을 괴롭혔던 후드티의 남자를 상대로 분투하고, 결국에는 그날 청소년연극제에서 나눈 약속을 누구보다 멋있게 지켜주었다.

         

       어떻게 자신이 이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위해 그는 크게 다치고, 이제는 점점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가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다혜의 가슴을 크게 아프게 하였다.

         

       하지만…….

         

         

       “다혜야.”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이제는 친근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서은우.

         

       생각해 보면 아까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도 분명하게 이름으로 불렀다.

         

       전철에서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조금 섭섭하게 ‘이다혜’라고 불렀는데 어째서……?

       

         

       “왜…?”

         

         

       이다혜는 문뜩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서은우의 부름에 답했다.

         

       하지만 서은우는 어째서인지 피식 미소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아니, 그냥 푹신해서.”

         

         

       푹신하다고……?

         

       이다혜는 서은우의 의미심장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바로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그가 머리를 기대고 있던 부분이 바로 이다혜의 가슴 부분이었으니까.

         

         

       “뭐, 뭣?!”

         

         

       때문에 이다혜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위해 고생한 서은우의 머리를 밀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동시에 방금의 말은 자신의 죄책감을 조금 덜어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마워.”

         

         

       그렇기에 이다혜는 그저 고맙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상의 말로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

         

         

       “…….”

         

         

       이다혜의 진심이 가득 담긴 감사 인사를 들은 서은우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점점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서서히 한계를 느꼈다.

         

       아마 그녀와 더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자신이 깨어나고 나서의 일이겠지.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응. 뭐든지 말만 해.”

         

         

       서은우의 물음에 이다혜는 곧바로 즉답했다.

         

       그가 어떤 부탁을 해오든 지금의 이다혜는 뭐든 들어줄 마음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쪽이든, 불가능한 쪽이든.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 서은우가 할 부탁은 상당히 간단하면서도 얄궂은 부탁이었다.

         

         

       “……아까 뛰어오면서 어렴풋이 들었거든. 네가 스토커한테 크게 소리친 말.”

         

         

       이다혜가 스토커한테 크게 소리친 말이라고 한다면 그 말밖에 없다.

         

       서은우를 좋아한다, 그것도 엄청 좋아한다는 의미로 시원하게 저지른 말.

         

         

       “가만 생각해 보면 전철에서 헤어질 때도 제대로 못 들은 것 같아서.”

       “아…….”

         

         

       이다혜는 서은우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내뱉고 있는지 단번에 깨닫고, 쓴 미소를 지었다.

         

         

       “설마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

       “착각 아니야. 나 너 좋아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 많이.”

         

         

       이번에야말로 이다혜의 진심을 제대로 들으며 서은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도.”

         

         

       이다혜는 깜짝 놀라 순간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방금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들은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세엑-

         

         

       자신의 품에 안겨 고른 숨소리를 내는 서은우.

         

       아마 그 말과 함께 완전히 의식을 잃은 모양이었다.

         

         

       ─다혜야!!!

         

         

       그때 경찰과 함께 다급히 현장으로 달려오는 백준영 대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다혜는 조금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내리던 거센 빗줄기와 먹구름이 지나가고, 어느샌가 그 자리에는 맑은 하늘이 들어서고 있었다.

         

       ……조금 길었던 소나기가 드디어 끝난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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