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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서은우가 네가 없는 여름이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꿈’ 때문이었다.

         

       이다혜 스토커 사건의 여파로 무려 10일 이상 동안 정신을 잃었고, 그는 그동안 선명하게 어떠한 꿈을 꾸었다.

         

       어찌 보면 꿈이라기보다는 악몽에 가까웠다.

         

       꿈속에서 이다혜는 결국 죽게 되었고, 서은우는 그 사실에 죽을 만큼 엄청 괴로워했으니까.

         

       네가 없는 여름의 강하늘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녀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내렸고, 끝내 그것은 전하지 못했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맞이했다.

         

       당연히 그 괴로움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마음의 상처가 쉽게 아물 리도 없다.

         

       하지만 그런 서은우의 옆을 계속 지켜주었던, 너무나도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녀는 서은우의 옆을 지키고 있었고, 그렇기에 서은우는 영화가 서서히 엔딩에 접어들 때 그 사람의 손을 꼭 붙잡았다.

         

       설소영…….

         

       어두운 대강당 안에서도, 서은우의 눈에는 자신과 손을 맞잡은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설소영은 서은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처음처럼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서은우의 손을 부드럽게 꼭 맞잡아주었다.

         

       이는 꿈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설소영은 서은우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기도 했고, 자신보다 더 깊은 상처를 입은 서은우에게 위로의 말 자체가 되려 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부드럽게 손을 맞잡아주거나, 그저 아무 말 없이 꼭 껴안아 주었다.

         

       서로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계속 말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있어서도 말 그대로 따뜻한 구원이었으며, 만약 그녀마저도 없었더라면 서은우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꿈속에서의 일이더라도 서은우는 설소영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영화 ‘네가 없는 여름’에서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는 강하늘 역시 마찬가지로 구원이라는 것을 받았으면 했다.

         

       이대로 한여름이 죽고 오직 슬픔만이 남는 씁쓸한 결말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이라는 게 사소하든, 사소하지 않든 크게 상관없다.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크게 와 닿고, 그것을 계기로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니까.

         

       서은우는 설소영의 시선을 따라 다시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했다.

         

       영화는 이제 엔딩에 접어들었다.

         

       한여름의 어머니로부터 전해 받게 된, 한여름의 유언장이 담겨 있는 편지 봉투.

         

       강하늘은 그것을 보며 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왜 자신에게만 유언장을 남겼을까?

         

       분명하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만 전하지 못한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나 반 친구들한테는 거짓 없이 솔직하게 모두 다 털어놓았으면서…….

         

       질투라면 질투였고, 아쉽다면 아쉬웠다.

         

       그녀는 도대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아마 이 안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강하늘은 조심스럽게 편지 봉투를 뜯었고, 그 안에 반듯하게 접혀 있는 편지지를 천천히 펼쳤다.

         

       편지의 가장 위.

         

       즉, 시작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TO. 강하늘에게.

       아까까지 같이 있었는데 이렇게 편지를 쓰자니 뭔가 기분이 묘하네…….

         

       근데 조금 신기하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유언장을 적을 때는 시작부터 막막했는데 어째 너를 떠올리며 적으니까 술술 적히는 것 같아.

       왜 그런지 너는 알까? 나는 제대로 깨닫고 있는데.

         

         

       강하늘은 그것을 읽으며 뭔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물론 절대 기분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기분 탓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 역시 들었다.

         

       아직 밑에 적힌 내용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강하늘은 천천히 다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의 시작은 우연이었지. 근데 과연 우연이었을까?

       만약 네가 그날 노트에 적힌 내 글을 읽고, 그 사실을 내가 부정했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변함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너는 평범한 클래스 메이트, 나는 친구들한테 조금 인기가 많은 수다스러운 클래스 메이트로.

       그런데 왠지 모든 사실을 다 알게 된 너한테는 거짓말을 하기 싫더라고.

       왜냐하면, 내가 시한부인 사실이 너한테는 정말 하나도 와닿지 않아 보였으니까!

       그나마 양심적으로 약간의 연민 정도는 느꼈으려나? 이 나쁜 남자야.

         

         

       약간의 진심이 담긴 글을 읽으며 강하늘은 피식 웃었다.

         

       한여름의 말대로 강하늘은 처음에 그녀의 죽음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 사실로 위로나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한여름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는 서로가 이렇게 가까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네 모습을 보고 오히려 안심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어도 너는 그렇게 크게 슬퍼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음… 근데 내가 죽고, 이 유서를 읽고 있는 지금은 조금 다르려나? 그러면 조금 미안할 것 같은데. 헤헤.

         

       어쨌든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네 모습을 보고, 남은 생을 너랑 함께 보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결과적으로 우리 둘, 친해지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추억도 많이 쌓고 서로 잘 맞았으니까.

       잠깐만,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지?

       그러면 하늘에서도 원망할 거니까 부디 잘 생각하길 빌게.

         

       아, 그리고 내 막무가내로 함께하게 된 너는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

       생각보다 더 어둡고, 까칠하고, 눈치 없었지.

       근데 다정하다는 이 사실 하나만큼은 처음 생각했던 그대로더라고.

         

       분명한 건.

         

       나는 그런 너와 함께해서 진심으로 행복했어.

       어쩌면 평생 깨어나고 싶지 않은 달콤한 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덕분에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졌어.

       조금이라도, 하루라도 더 너랑 함께 있고 싶어졌어.

         

         

       서서히.

         

       강하늘이 쥐고 있던 편지지가 떨리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대강당 안에 어떠한 노래의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다혜가 직접 부른 네가 없는 여름의 엔딩 곡.

         

       골든 타임(Golden Time)이.

         

       이윽고, 엔딩곡에 맞춰 대강당 안에 관객들 역시 깨닫게 된다.

       

       한여름이 남기고 간 편지의 끝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한밤중에 놀이공원의 관람차 안에서 함께 본 불꽃놀이는 정말 예뻤지? (미안. 솔직히 말하면 너밖에 안 보였어)

       제주도에서 함께 올려다본 밤하늘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 (응.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것 같았지)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먼저 용기를 내서, 너와 입맞춤을 하는 순간이 있다면 분명 나는 환하게 웃을 거야. (환하게 웃었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어서 강하늘은 은연중에 들려오는 한여름의 목소리에 독백으로 대답했다.

         

         

       너한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분명 소중한 사람)

       내가 죽으면 조금이라도 날 떠올려 줄까? (반드시)

       조금 이기적인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는 걸 너도 알면서)

       그러니까 잊지 말아줘. (그래)

       진짜 약속해 준거다? (약속한 데도)

         

       고마워.

       역시 다정한 너라서 다행이야.

       근데 이 정도면 내 마음을 모두 전한 것 같은데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젠 눈치챘겠지?

       물론 네가 이 사실을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역시 너를……

         

       좋아해.

       정말 좋아해.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보고 싶을 정도로.

         

       내 마지막 버킷리스트 기억해?

       장난삼아 죽기 전에 진실 된 사랑이라는 걸 해보기라고 적었잖아.

       나는 그게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하늘아 네 덕분에 지금 이루어져 버렸네?

         

       그러니.

         

       고마워.

         

         

       ……마지막까지.

       

       참으로 한여름다운 말을 끝으로 강하늘은 유서를 모두 읽게 되었다.

         

       동시에.

         

       뚝- 뚝-

         

       강하늘의 눈물과 함께 편지지에 적힌 글씨가 천천히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조로 만든 눈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진짜였다.

         

       서은우는 연기에 재능이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눈물까지는 완벽하게는 제어하진 못한다.

         

       이것은 진심으로 서은우가 강하늘이 된 것처럼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며, 실제로 경험한 듯한 짙은 감정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관객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공감.

         

       아마 현재 강하늘이 느끼고 있는 감정, 그리고 자신이 꿈에서 느낀 그 감정에 깊은 공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서은우는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한여름이 남기고 간 유언장의 다음 장면, 약 15초 정도로 상영되는 몇 개월 후의 장면을 끝으로 영화 ‘네가 없는 여름’은 드디어 끝을 맞이했다.

         

       그렇게 서서히 대강당 안의 조명이 밝혀지기 시작했으며, 서은우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관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누군가는 혼이 빠진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누군가는 강하늘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다양한 감정이 대강당 안을 교차하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거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 장본인.

       

       서은우는 그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그리 나쁘지 않은 침묵이라고.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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