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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아빠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말을 선언한 이후로 서은빈의 삶은 매우 바빠졌다.

         

       먼저 설소영에게 연기 지도를 받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사살 서은빈이 생각했을 때, 지도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이상한 요구를 해왔다.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딱 2번만 다 읽어보고, 그냥 자신이 느낀 그대로 구월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해보라고.

         

       당연히 태어나서 연기를 해본 적 없는 서은빈에게 조금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요구였지만, 그렇다고 최고의 여배우라고 불리는 엄마의 말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의심을 머릿속에서 없애고, 서은빈은 그저 엄마의 요구를 따를 뿐이었다.

         

       서은빈은 처음 대본을 완독했을 때, 구월이라는 캐릭터는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공 같이 느껴졌다. 자신보다는 서다빈과 조금 더 이미지가 가까운 그런 느낌.

         

       하지만 그 다음번 완독을 했을 때, 거기서 조금 더 색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구월은 철부지에 당돌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웃음과 정이 많고 사람을 대할 때 편견 따위는 전혀 가지지 않는다.

         

       어쩌면 ‘구월’이라는 캐릭터를 구상한 사람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기대하고, 상상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순수함과 상냥함이 평생을 편견과 차별을 받아온 상대에게 작은 희망이 되어줄지도 모르니 일이니까.

         

       서은빈은 자신이 느낀 구월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생에 처음 연기라는 것을 펼쳐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은 체감상 너무나도 빠르게 끝을 맺었다.

         

         

       “그게 우리 딸이 생각하는 구월이구나.”

       “많이 이상했어요…?”

         

         

       조금 자신 없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은빈을 보며 설소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혀. 오히려 처음치고는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서 놀란 쪽이랄까?”

       “진짜에요?”

         

         

       딸의 의문에 설소영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 말에 거짓은 없었고, 진심으로 놀라고 있기도 했다.

         

       그녀는 단지 이번 기회를 통해 어린 딸이 ‘이해’의 재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에 대한 이해.

         

       그 캐릭터가 어떤 성격이나 과거를 가졌는지, 평소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버릇은 또 무엇인지 등등.

         

       그런 의미에서 딸은 구월이라는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대로 몰입을 하고 있었다.

         

       손짓부터 시작해 표정, 눈빛, 몸짓, 목소리의 톤까지…….

         

       만약 남편이 방금 은빈이가 연기한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행복한 미소를 지었을까?

         

       또, 처음인데도 불구하고 저 정도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선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얼마나 놀란 표정을 지을까.

         

       분명한 건, 딸이 자신들의 재능을 잘 물려받은 천재라는 사실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사실을 서은빈이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밤.

       연기 테스트를 보았을 때 서은빈은 보았다.

       연기를 끝마친 자신을 보며 아빠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그 미소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대견함, 뿌듯함, 안도, 기대 등등.

         

       그것은 자신이 선보였던 연기가 너무나도 훌륭했다는 뜻이기도 했고, 동시에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붉은 실의 캐스팅과 관련된 얘기로 하러 갔을 때도 그랬다.

         

       아빠는 구월 역의 아역 배우로 자신 있게 나를 추천해주었다. 무조건 내가 잘해낼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와 함께.

         

       물론 아빠의 작품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자신에게 기대를 걸어주는 아빠의 모습을 곁에서 계속 보니 한 가지 새로운 목표가 생겨버렸다.

         

       아마 엄마가 아빠의 작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 기대감에 어떻게든 부응해주고 싶다고.

       테스트 때 자신을 향해 지어주었던 그 미소를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하지만 그러한 다짐과는 다르게 촬영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특히 촬영 당일 날에 가장 심해졌고, 서은빈은 오늘 하루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며 서서히 그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강예린을 포함한 스튜디오엔믹스의 제작진, 서은빈을 집중적으로 취재하기 위해 온 기자들, 붉은 실의 첫 촬영을 구경하러 온 유명인들까지.

         

       이들 모두에겐 하나같이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오늘 첫 촬영에서 연기를 선보일 서은빈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

         

       문제는 이 기대감이 보통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어린 서은빈을 보는 눈높이는 이미 서은우와 설소영을 기준으로 맞춰져 있었다. 쉽게 말해 평범하거나, 평범 이상으로 연기해도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저 화려하고.

       그저 완벽하게.

         

       사람들은 천재라는 단어에 딱 어울리는 모습을 서은빈이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서은빈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의 원인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마 사람들의 기대에 어떻게든 부응해야만 하는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분명한 건, 아직 어린 서은빈이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과도한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걱정될 수밖에 없지.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은 정말 어려운 길이니까.

         

         

       동시에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닫기도 했다. 며칠 전, 남매인 서준우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던 그 이유가.

         

       다만.

         

         

       ‘각오는 했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힘든 것 정도는 말 안 해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중요한 배역을 자신 있게 맡겨준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먹칠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까.

         

         

       ‘잠깐만…….’

         

         

       아주 잠깐이라도 괜찮으니까 이 답답함을 어딘가에서 조금만 진정시키고 싶었다.

         

       분명 이 상태면 촬영장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

         

         

       “하… 소영아. 잠깐 시간 될까?”

       “예린 선배?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방금 영상위원회에서 연락이 왔거든. 아무래도 오늘 민속촌에서의 촬영을 계획했던 것보다 두 시간 정도 줄여야 할 것 같아.”

         

         

       이유는 갑자기 늘어난 관광객들로 인한 안전상의 이유였다.

         

       민속촌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촬영은 법적 장치가 미비하므로, 주변 사람들의 양해에 의지해 촬영이 진행되는 때가 대부분이다.

         

       일시적으로 장소는 대여해줘도 통제는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하긴, 유명인들이 다짜고짜 민속촌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당연히 소문이 쫙 퍼졌겠지. 어쨌든 계획했던 것보다 한 씬 정도 촬영을 못 할 것 같은데… 어느 씬을 먼저 찍을지 배우랑 직접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아서.”

         

         

       첫날은 아역 배우들만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설소영을 포함한 다른 배우들 역시 촬영 계획이 되어있다.

         

       장소와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후에 사용할 씬을 미리 찍는 것이었다.

         

         

       “은빈이 쪽은요?”

       “그쪽은 계획대로 진행할 거야. 어차피 아역 배우들을 데리고 찍어야 하는 분량이 대략 6화 정도니까 최대한 빨리해치우는 편이 좋겠지. 그런 의미에서 은빈아, 한 15분만 여기서 혼자 기다릴 수 있겠어?”

       “15분이요?”

       “응. 15분 뒤에 메이크업 팀이 도착하거든. 화장이나 입을 옷에 관한 부분은 사전에 얘기가 끝났으니까 얌전히 누나들한테 몸만 맡기면 돼. 그리고 메이크업이 끝나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도 해두렴.”

         

         

       강예린의 설명에 서은빈은 이해했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설소영은 그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나중에 보자, 은빈아.”

         

         

       그 말을 들은 서은빈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얌전히 있을 수 있지? 라던가.

       최대한 빨리 돌아온다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도대체 엄마는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한 걸까?

         

       어쨌든 서은빈에게 있어서 좋은 상황이 찾아왔다.

         

       15분.

       그 안에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보자.

         

       하지만 15분 뒤에도 서은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결국 이 소식은 현재 시점에서 서은우의 귀까지 닿게 되었다.

         

         

         

       ***

         

         

         

       “아빠~”

         

         

       서은우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서다빈의 모습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그 뒤를 서준우와 이다혜가 함께하고 있었다.

         

       기자 회견이 시작되기 전, 이다혜는 서다빈이 기자 회견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그래서 기자 회견 동안 딸의 심심함을 풀어줄 겸, 바로 옆의 민속촌 체험을 하러 갔다. 겸사겸사 별생각 없어 보였던 서준우도 함께 데리고.

         

       이다혜의 이 행동은 어찌 보면 차무식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라는 남편에 대한 배려도 함께 있었다.

         

         

       “다혜야 고마워. 덕분에 무식이랑 편하게 얘기 나눴어.”

       “음? 나는 그냥 아이들이랑 신 나게 민속촌 체험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아내의 해맑은 미소를 본 서은우는 쓴 미소를 지었다.

         

       이런 건 조금 생색내도 되는데 말이지…….

         

       어쨌든 기자 회견도 끝났고, 슬슬 붉은 실의 첫 촬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은빈이의 메이크업도 거의 끝났을 터.

         

       서은우가 전통 의복을 입은 귀여운 딸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그때였다.

         

         

       “으, 은우야! 큰일 났다! 네 딸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어!”

         

         

       ……뭐?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려오자 서은우는 자신의 멀쩡한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형. 조금만 진정하고 상황 설명을 먼저 해줘. 뭐가 어떻게 된 일인데?”

         

         

       다만, 아이들의 앞에서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최대한 침착하게 조용석에게 상황 설명을 부탁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메이크업 팀이 서은빈이 있는 대기실에 도착했는데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이상함을 느낀 메이크업 팀이 곧바로 스텝 측에 이 사실을 알렸다.

         

       역시나 대기실 근처에서 서은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최대한 혼동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몇몇 관계자들의 귀에만 다급히 이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다.

         

         

       “나름 CCTV도 열심히 돌려보고 있는데 아직 은빈이가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한 모양이야.”

       “소영이는?”

       “운 나쁘게 그때 갑자기 일정 변경이 있어서 긴급회의가 열렸거든. 그래서 잠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어. 소영 양 역시 은빈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찾으러 나섰고.”

       “오케이.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았어. 예린 선배한테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전해주고.”

       “…뭐? 야, 야! 어디가?!”

       

         

       조용석의 다급함 외침을 가볍게 무시하고, 서은우는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어딘가에 아직 있을 딸을 찾기 위해서.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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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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