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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대한민속촌.

       한국의 전통문화와 민속적인 삶을 재현하고 있는 곳.

       특히 촬영 사용료가 무료이기도 했고, 자체 사극 세트장이 있을 정도로 자주 활용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창 붉은 실의 첫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분주하게 카메라를 세팅하는 촬영팀, 촬영에 들어가기 전 배우들의 마지막 점검을 하는 강예린, 마지막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

         

       그중에는 서은우 역시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은밀하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은빈 양의 표정이 좋아 보이는군요. 어떻게 따님과 대화를 잘 나누신 모양입니다.”

         

         

       나영진.

         

       그가 싱긋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이번에도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도망을 치든, 깽판을 치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습니까?”

       “뭐…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하하. 그로 인한 모든 책임은 또 작가님이 짊어지실 생각이겠군요.”

         

         

       과거의 추억이 떠오른 나영진.

         

       그때는 엄청 진지하게 받아들여만 했던 주제였고, 그렇기에 잔뜩 긴장하며 나누었던 대화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그의 분위기가 달랐다.

         

         

       “작가님. 너무 홀로 짊어지지 마십쇼.”

       “그 말은 나 PD님이 함께 짊어주신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그럼요. 은빈 양의 문제는 저와 작가님이 함께 머리를 맞대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겠죠. 누가 예전에 말했다시피 은빈 양으로 인해 드라마에 지장이 생기면 손해를 보는 건 저희 쪽이니까요.”

         

         

       태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나영진을 보며 서은우는 얼떨떨한 표정이 지어졌다.

       쓰으읍… 이 사람. 이렇게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나 PD님도 많이 달라지신 모양.

         

         

       ─#3.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그때였다.

         

       녹화에 들어가기 전에 분주하게 움직였던 현장이 촬영 감독의 시작 사인과 함께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붉은 실의 #1과 #2는 드라마의 배경과 설정에 대한 설명을 조연 인물이 등장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인 #3야 말로 주연 인물의 첫 등장과 극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다.

         

       붉은 실의 세상에는 ‘무녀’라는 것이 존재한다.

       악귀를 정화하고, 어떠한 저주도 풀어내고, 심지어 미래를 보는 것까지 가능한 신기한 이능을 가진 인물.

       특이하게도 이 무녀는 동시대에 딱 한 명만 태어날 수 있으며, 올곧은 마음을 가진 소녀만이 무녀가 될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렇기에 왕실에서는 무녀라는 존재를 귀중하게 여기고, 무녀가 사망하면 그 다음 무녀를 어떻게든 찾아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그중에는 무녀 선발이라는 특수한 행사가 있는데 무녀의 가능성이 있는 소녀들을 모아놓고, 그들을 무녀 후보라 칭하며 일단 극진 대접을 해준다.

         

       후에 진짜 무녀로 선택받았을 때, 왕실에 최대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그중에서 여주인공인 구월은 무녀 선발에 뽑힌 소녀 중 한 명…… 을 보필하게 된 일개 궁녀였다.

         

       #3의 시작은 무녀 선발에 뽑힌 한 소녀와 구월의 첫 만남으로 시작된다.

         

       구월이 궁에서 마주하게 된 소녀의 이름은 ‘홍빈’으로 유명한 양반가의 여식이었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예의 바르고, 마음씨가 착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적인 평가와 신분 덕분에 쉽게 무녀 후보라는 자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앞에서일 뿐.

         

         

       “그래. 네 이름이 뭐라고?”

       “구월이라고 합니다.”

       “얼굴은 그럭저럭 볼만하구나. 몸에서 천민 냄새가 조금 나는 것 같지만.”

         

         

       대사를 보며 알 수 있다시피 자신보다 아랫사람을 막 대한다.

         

       신분 사회이었기에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런 홍빈을 보필하게 된 구월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얼른 씻고 와도 되겠습니까?”

       “……?”

         

         

       구월은 조금 특이한 아이다.

       자신을 깔보고, 악의를 보이는 사람에게도 순수하게 미소 지어 보인다.

       그 해맑은 미소가 어느샌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구월… 아니, 서은빈은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어 보았다.

       정확하게는 카메라 너머의 있는 소중한 사람을 향해서.

       그리고 분명하게 보았다.

         

       거짓 없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빠의 얼굴이.

       그 미소를 보고 있으니 뭔가 힘이 난다.

         

       호흡은 일정했고, 이제 몸의 떨림도 목소리의 떨림도 더 이상 없었다.

       이 상태면 완벽하게 ‘구월’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어쩌면.

         

       아빠의 작품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겨울’을 연기했던 엄마처럼.

         

         

         

       ***

         

         

         

       “한 명은 9년 전, 붉은 실이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아역 시절 역으로 출연해 대박을 터트려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고─”

       “또, 한 명은 JYB의 지속적인 캐스팅 제안과 본인이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서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돌의 길을 걷게 되었죠. 결국 14살의 나이에 데뷔해 2년 만에 인기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요.”

       “하하. 이렇게 보면 위부터 시작해서 참 큰물에서 노는 가족이란 말이지.”

         

         

       차무식은 애써 쓴 미소를 지었다.

         

       현재 그는 한 중학생 소년의 부탁으로 카페에서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웬만하면 중학생의 고민 상담 같은 건 귀찮고, 꼰대 같이 훈수만 둘 것 같아서 잘 안 해주는 차무식. 하지만 친구 놈의 아들 부탁이라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그래서? 공부부터 시작해서 운동. 심지어 예체능까지 뭐든지 잘하고,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고 불리며 칭찬이란 칭찬은 달고 살았던 서준우는 도대체 어떤 길을 걷고 싶을까?”

       “…….”

       “삼촌은 이게 참 궁금한데 말이지.”

         

         

       차무식이 손깍지를 낀 손으로 자신의 턱을 받치며 물었다.

         

       이것이 오늘 고민 상담의 주제였다.

         

       삼남매 중 서은빈은 어머니인 설소영을 따라 배우로, 마찬가지로 서다빈은 이다혜를 따라 아이돌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준우는 본인의 진로를 확고하게 정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삼남매 중 가장 일찍 철이 들고, 모든 방면에서 재능이 뛰어난 서준우가 아직까지 본인의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니…….

         

       질문을 건넨 차무식은 서준우의 표정이 조금 어두운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쩌면 저 모습이 당연한 거다.

       아직 서준우는 16살, 쉽게 말해 이제 중학교 3학년생에 불과했다.

       즉, 지금 시점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빠른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말이다.

         

         

       ‘녀석의 주변을 돌아본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

         

         

       서준우의 부모님은 이미 저 나이 때에 엄청난 유명인이었다. 특히 아버지 쪽은 드라마 업계에 혁신을 불러오며, 말 그대로 세계를 뒤흔들었다.

         

       남매들 역시 정면돌파라는 방법을 택해 본인들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으니, 녀석의 입장에선 당연히 조급해질 수밖에 없겠지.

         

       물론 저 조급함의 원인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차무식은 알고 있었다.

         

         

       “종종 네가 노트북으로 어떤 글을 적는 모습을 봤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거 대본이냐?”

         

         

       차무식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서준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어디에서 들었을지 대충이나마 예상이 되었다.

         

         

       “아버지한테 들었군요.”

       “그래. 너희 아버지는 그런 쪽으로 나름 눈치가 빠른 놈이니까. 네가 가진 고민도 대충은 알고 있겠지.”

       “뭐… 당연히 그렇겠죠. 아버지는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니까요.”

         

         

       서준우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고, 그 반응을 본 차무식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거의 뭐 아버지가 아니라 종교구만?

         

       분명한 건 녀석이 자신의 아버지인 서은우를 엄청 존경하고, 동시에 동경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어쨌든 대본을 적고 있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그쪽에 마음이 가 있다는 거 아닌가?”

       “…….”

       “대답이 바로 튀어나오지 않은 걸 보면 맞나 보네.”

       “역시 삼촌은 못 속이겠네요. 어떻게 저를 그렇게 잘 알고 계시는지 궁금할 정도로요.”

       “그야 네가 그놈… 아니, 서은우랑 많이 닮았으니까.”

         

         

       정확하게는 지금이 아니라, 학생 시절의 서은우를 뜻하는 말이었다.

         

       눈앞의 서준우는 놀라울 정도로 녀석의 학창 시절과 닮았으니까.

       나이에 맞지 않게 생각이 깊은 것도.

       또, 안고 있는 고민이 많은 것도.

         

       물론 얼굴은 이다혜 쪽 유전자를 잘 물려받아서 더럽게 잘생긴 편이긴 하지만. 아마 여러 여자 울릴 정도로.

         

         

       “힘내라고 그런 말까지 해주실 줄은 몰랐네요.”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에 서준우는 그닥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빈말이 아닌데? 내가 봤을 때는 진짜 많이 닮았어.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도전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너희 아버지랑 같은 길을.”

         

         

       이것이 차무식이 내린, 이번 고민 상담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서준우는 그 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뭐… 이해는 한다.

         

       서은빈과 서다빈도 어머니를 따라 그리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긴 하지만, 저쪽은 아예 경우가 다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927 작가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각본가를 목표로 한다는 것.

         

       그 앞길에는 분명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겠지. 또, 그 길의 끝이 어디일지도 모르고,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차무식은 927 작가의 아들인 서준우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녀석과 아주 많이 닮은 이 아이라면… 어쩌면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친구 놈의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딱, 한 가지였다.

         

         

       “준우야. 네가 올해 16살이지?”

       “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더럽게 청춘이잖아,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때가 아니면 살면서 언제 도전이란 걸 해보겠냐고!”

         

         

       갑작스러운 차무식의 급발진에 서준우가 곁눈질로 주변을 쳐다봤다.

       

       역시나 삼촌의 큰 목소리 때문인지 자신들의 테이블로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이마에 갑작스러운 통증이 밀려왔다.

         

       다짜고짜 삼촌이 딱밤을 날린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남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마음껏 해봐. 후회라는 건, 너 같은 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말이니까.”

       “……멋진 말이네요.”

       “그래. 나도 내가 멋진 거 알아. 그리고 앞으로 고민 상담은 나 말고 너희 아버지한테 해라. 오늘 나랑 상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진심으로 나한테 질투할 인간이니까. 동시에 너한테는 약간의 섭섭함을 느끼겠지.”

         

         

       서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차무식의 상담이 도움됐는지, 조금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마지막으로 학교 하나 추천 하나 해줄까?”

       “내년에 제가 진학할 고등학교를 추천해준다는 말이군요.”

       “그래. 이왕이면 한빛예술고등학교를 추천할게.”

       “한빛예술고등학교? 왜 굳이 거기죠?”

       “그야 나랑 너희 부모님들이 함께 다녔던 모교였으니까.”

         

         

       차무식은 그 말과 함께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 나랑 동아리 활동같이 안 할래?」

         

         

       녀석들과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고……

         

         

       「설마 천하의 강예린 선배님이 고작 1학년 신입생이 쓴 대본에 질까 봐 불안하신 건 아니죠?」

         

       「이다혜. 전에 물었었지? 김미소, 여러 의미로 뭔가 너랑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맞아. 은연중에 너를 떠올리면서 만든, 오직 너만을 위한 배역이야.」

         

       「여진 선배 잘못이 아니에요. 방금 펼친 연기는 오로지 제 독단이거든요. 잘못을 따질 거면 저한테 따져주세요.」

         

       「한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오던 놈에게 갑자기 설소영이 꼬이고, 이다혜가 꼬이고, 박하준 선배까지 꼬이고, 심지어 꿈꾸는 아이들 같은 대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적어내? 너 927 작가인 사실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 거지?」

         

       「그러니까 대충 영화라는 걸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 아니냐?」

         

         

       또, 많은 일을 겪기도 했고.

         

         

       「박하준 선배도 너 927 작가인 거 알고 있더라.」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는데 무식이 말을 들어보니 영 상황이 안 좋네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서은우로서는 도저히 지킬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정체를 공개했고, 그 사실에 대해 절대 후회는 안 합니다. 아마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죠.」

         

       「과거처럼 멈춰 서지 말고, 소중한 사람들과 그저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자 합니다.」

         

         

       또, 많이 웃고 울기도 했던 3년.

         

       그래…….

         

         

       “그곳이라면 분명 다양한 인연과 경험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때의 우리가 그랬었던 것처럼.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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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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