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는 수도의 귀족가 자제들이 전부 몰려온 듯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나와 마리아가 입장했다는 집사의 외침조차 소음에 묻힐 정도로.
“후작가에서 개최해서 그런가, 사람이 엄청 많구만.”
“뭐, 공작가는 사실상 연회를 안 여니까요. 황실에서 주최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가장 격이 높은 연회에 참석하지 않을 사람은 적지 않을까요.”
마리아는 이런 자리가 익숙한 듯 지나가는 시종에게 음료를 받아 마시며 나를 이끌었다. 나는 술이나 음료를 딱히 좋아하지 않아 그저 마리아를 따라 안으로 향하고 있으니,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전하,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전하, 혹시 저번에 보내드린 선물은-”
“처음 뵙겠사옵니다. 저는 동부 로이스게라 출신의-”
누가 봐도 마리아에게 잘 보일 생각이 가득한 영애와 공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런 자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낭만과 가장 거리가 먼 단어를 꼽으라면 현실과 이성이 있었고, 정치는 현실을 대표하는 개념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꽈악.
“…전하?”
마리아가 내 팔을 붙잡아 끌어 팔짱을 끼기 전까지는.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끌렸다.
아, 젠장.
“…누구지?”
“저 문장은 처음 보는데.”
“얼굴도 처음인데? 혹시 저 공자님의 얼굴을 아는 사람 있니?”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뭐 하는 거야?!”
귓가에 작게 속삭이며 따져 물었다. 마리아는 모른 체하며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뭘 새삼스럽게 그래요. 제 파트너로 연회에 참가했으면서.”
“뭐…?”
잊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같은 마차에 타고 함께 저택에 들어왔었지. 그녀를 호위할 무렵에는 욕실 빼고는 다 따라다니던 탓에 거리감이 무뎌져 있었다.
안 그래도 성인식도 치르기 전에 싸돌아다닌 탓에 이런 사교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거리감이 망가진 사람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이 상황이 뭘 의미하는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잠깐만, 그럼 나는 아예 네 파트너로 찍힌 거야?”
“그렇죠?”
“내 의사는 어쩌고?!”
내 반응에 마리아는 나를 힐끗 노려보았다.
“제가 붙잡으려 하면 또 도망치려 할 게 뻔한데, 제가 뭘 믿고 당신의 의견을 물어봐요?”
“…음, 그래, 전과가 있었지.”
아니, 잠깐만, 이건 내가 도망가냐 마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 인생이 걸린 문제 아닌가?
생각해보니 이 상황, 조금만 삐끗해도 부마 엔딩으로 직행할 수 있는 중차대한 상황이었다.
내 낭만 판타지 라이프가 위기에 처했다!
곧장 따지려 들었으나, 마리아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빌, 당신이 또 도망가도록 둘 바에야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데 제 인생을 걸겠어요.”
“…….”
그렇게까지 말하면, 나는 또 할 말이 없었다.
…어라?
“네 인생을 건다니, 그게 무슨-”
“그럼, 저는 이만 영애들과 이야기를 나누러 가볼게요.”
“어? 어어-”
“당신도 간만에 지인들 만나서 이야기 좀 하고 계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내가 그녀의 말을 캐묻기 전에 마리아는 빠르게 팔짱을 풀고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누가 봐도 아름답게 꾸며진 미소와 휘어진 눈꼬리는 덤이었다.
“꺄아악!”
“들었어? 당신이래!”
“뭐야? 정말 전하의 이거인 거야?”
갑자기 터져 나온 이슈에 영애들이 호들갑을 떨며 마리아를 따라 사라졌다. 나는 공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자리에 남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부분은 놀라워하는 눈빛이었지만, 일부 나를 꿰뚫을 기세로 노려보는 이들이 있었다.
‘진짜 많이 능글맞아졌네.’
한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진 못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는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그녀와 미래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착각을 뿌려 사회적 인식을 통해 나를 붙잡을 생각이리라.
그녀 자신의 평판과 미래를 담보 삼으면서까지 내가 곁에 있기를 바라는데, 또 말도 없이 훌쩍 떠나는 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정말 이대로 정착할 생각은 없지만, 하다못해 설득하거나 그녀의 마음이 바뀌길 기다리는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겠지.
설마 정말로 내 미래와 그녀의 미래를 맞바꾸자고 생각할 리는 없을 테니까.
“크흠.”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이 시선을 어떻게든 치우는 게 문제였다. 눈동자를 굴리며 어떻게든 빠져나갈 틈이 있나 살폈다. 그러던 와중, 내 레이더에 목표가 포착됐다.
“오, 이게 누구야!”
과거 여행을 다니다 만난 자작가의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지의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났지만, 가문의 이름은 기억났다. 발데크였지, 아마?
“말렉! 오랜만에 보는구나.”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팔을 걸고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갔다. 여전히 내게 쏠리는 시선이 있긴 했지만, 내가 자리를 비키니 대부분의 사람은 다시 자기들끼리의 모임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관심 없다는 내 의사는 잘 전달된 모양이었다.
“빌, 빌헬름 경.”
그저 얼굴 한 번 봤을 뿐 변변한 친분도 없는데 갑자기 내 친구 취급을 당한 말렉만 벌벌 떨 뿐이었다.
내가 위협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나 싶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도 인사만 하고 바로 제 방에 틀어박혔을 정도로 내향적인 성격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 한가운데로 내몰렸으니 충분히 그럴 만 한 것 같았다. 괜스레 미안해지네.
“음, 고맙다. 덕분에 난처한 상황을 모면했네.”
“아, 아닙니다. 제가 무슨….”
아무래도 이 친구를 여기서 더 붙들고 있는 건 못 할 짓인 것 같았다. 세상에, 팔다리 덜덜 떨리는 걸 보라지.
“나중에 고향 저택으로 귀한 거 하나 보내줄게.”
“네? 가, 감사합니다!”
적당히 손을 흔들며 그를 뒤로하고 연회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꽤 신기한 광경이었다. 물론 음식 자체야 지구에서 익숙하게 보던 것들과 비슷해서 크게 관심이 가진 않았지만, 저택이 마법과 각종 장치로 꾸며진 모습이나 사람들 돌아다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내 흥미를 이끌었다.
중간중간 아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특별히 친분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에 다들 자기들끼리 나름대로 무리를 이루고 있었기에 끼어들기엔 애매했다.
내 또래가 없어 잠시 의아하긴 했지만, 곧 이들이 성인식을 위해 모여든 이들이라는 것을 새삼 기억해냈다. 그럼 당연히 내 또래는 없겠지. 그 친구들은 이미 몇 년 전에 성인식을 치렀을 테니까.
내가 만난 이들 중 올해 성인식에 참가할만한 이들이 없나 한 번 떠올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리아를 제외하곤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마리아가 여기 참석한 건가?’
내 또래는 이미 다들 저마다 영지에서 자기 역할을 맡거나 독립을 준비 중일 때니까. 뭐, 나도 언젠가는 기사단장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 돌아가야 하긴 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어디서 시간을 때우느냐였다.
마리아는 아는 사람들을 만나라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나는 귀족들의 세계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는 우리 가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제국 귀족계에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와 별로 상관도 없었고.
변경백 작위를 맡고 있긴 했지만, 이것도 제국과 우리 가문의 연결고리를 상징하는 작위일 뿐이었다. 제국의 변경백이라지만,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국경 너머 이웃 나라가 아니라 저 너머 초원의 유목민이었다.
그렇다고 제국의 지원이 빵빵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우리가 수도에 잘 보여야 할 메리트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아버지도 내게 황제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했을 뿐, 다른 이들에게 잘 보이라고 하지는 않았었다. 아버지 본인부터가 딱히 주변 영지를 제외하면 제국 귀족들과 친분이 없기도 했고.
“뭐, 적당히 구석에 박혀 있으면 잘 모르겠지.”
연회장을 돌며 맛있어 보이는 음식 몇 개를 맛보고 정원 쪽으로 빠져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던 중 내 눈에 아마도 호위를 위해 따라온 기사들이 정원 외곽에 모여 시간을 때우는 모습이 보였다.
동종업자들이 모여있다니, 이건 못 참지.
곧바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싱글벙글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헉, 죄, 죄송합니다?”
가슴팍에 가문 문장을 새긴 브로치가 달린 것을 본 기사들이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갑자기 뭐 죄송할 게 있나 싶어서 살펴보니 모닥불을 피워두고 자기들끼리 육포라거나 이런저런 것들을 구워 먹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왜 이런 걸 먹고 있어? 너희는 밥 안 줬어?”
“예, 저희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아닌지라….”
이런 천인공노할 놈들을 봤나.
제아무리 초대받은 당사자가 아니라지만, 집에 손님이 왔는데 밥을 안 줘?
이제 알았다. 뷔르템부르크 후작가의 수준. 너희는 이제 내 안에서 스웨덴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다.
“잠깐 기다려봐.”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기사들도 대부분 작게나마 영지를 갖고 있는 귀족이었다.
우리 가족처럼 기사단에 소속되면 모든 것을 지원해주는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기사단이라 해도 장비는 모두 자력 조달하는 것이 이 시대의 평균이었다. 기사가 마력을 쓸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기사가 착용할 장비의 가격을 부담할 수 있는 이들은 영지를 가진 귀족이나 어지간히 규모가 있는 상인들 뿐이었다.
그리고 상인은 보통 그 돈으로 용병단을 고용하니, 기사의 대다수가 귀족 출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감안하면 이들도 나름 가문을 이을 순번만 아닐 뿐 대부분 귀족가의 자제들이란 뜻이고.
그건 곧 이들이 적어도 이 집안의 사용인들보다는 신분이 높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제대로 식사조차 대접받지 못한다면, 그건 이들보다 아득히 높은 사람이 명령을 내렸다는 경우의 수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범인은 뻔했다.
“욤, 또 나쁜 버릇이 도졌군.”
이 연회의 주최자인 욤 폰 뷔르템부르크, 용의자는 그뿐이었다.
“이봐, 잠깐 나 좀 보자고.”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가 시종 한 명을 불러세웠다.
“저기 저 사람들 보이나?”
“예, 호위 기사들 말씀이시지요?”
“어, 쟤들 먹을 식사 좀 가져다줘.”
내 말에 시종의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께서 저분들에게는 음식을 대접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이들에게는 연회 음식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역시나, 그놈이 그럴 줄 알았다. 논리야 뻔했다. 호위를 하러 온 이들이 어찌 같이 주인과 연회를 즐길 수 있냐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특히 술의 경우 정신을 혼미하게 하니, 돌아가다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핑계도 댈 거고.
하지만 그거야 술만 안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저택 호위는 뷔르템부르크 가문 휘하의 기사단과 수도경비대가 어련히 알아서 할 테고.
하지만 내가 시종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건 신분 문제가 아니라 상하관계의 문제였다. 이들은 뷔르템부르크 가를 모시는 이들이지 나를 따르는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 맞는 방법이 다 있었다.
“저들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면 이걸 주마.”
시계를 끌러 시종이 들고 있는 쟁반 위에 올려두었다. 이건 마리아가 준 게 아니라 원래부터 내가 쓰던 물건이었다. 나름 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긴 하지만, 여행을 다닐 때 워낙 험하게 써서 여럿 망가졌기에 여분도 많아 줘도 상관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시종들에게는 다르겠지. 애초에 손목시계 자체가 엄청나게 비싼 시대였다. 보석까지 박혀 있으니 원자재의 가격 자체도 엄청났고.
시종 또한 귀족가에서 오래 일하며 쌓은 안목이 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시종들이 나와 기사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었다. 그들이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기에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나도 같은 기사로서 이 친구들이 푸대접받는 꼴을 보면 역시 기분이 별로란 말이지.
“가,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일 열심히 하고 너희 주군이나 잘 지켜주고.”
“예!”
우렁차게 답하는 기사들을 뒤로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정원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우던 중이었다.
“뭐야? 누가 얘들한테 먹을 걸 줬어?”
기분 나쁘게 찢어지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돌아보니 누가 봐도 간신배처럼 얍삽하게 생긴 빼빼 마른 귀족이 기사들 앞에서 땍땍거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음식을 전해준 시종들이 일렬로 선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다들 곁눈질로 내 손목시계를 받은 시종을 재촉했다. 그가 결국 주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시켰는데.”
그래서 내가 나섰다.
“내가 쟤들한테 밥 주라고 시켰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비실이(가칭)는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갑자기 확 움츠러들었다. 내 태도를 보고 아마 고위 귀족일 거라고 지레짐작한 모양이다. 전형적인 강약약강,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호, 혹시 어느 가문의 누구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호엔베른 가의 빌헬름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이 잘 모르는 가문명을 댔다. 애초에 내 이름도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다들 나를 괴물 사냥꾼 빌(간혹 빌리라 부르는 사파들이 있긴 하지만)이라고만 부른 탓에 내 풀네임이 퍼지진 않았으니까. 애초에 그게 내가 의도한 바기도 하고.
당연히 수도는 물론 사교계에서도 내 이름과 성을 들어본 적 없었을 테니, 비실이는 어깨를 쭉 펴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내게 따져 물었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로군요. 보아하니 이제 막 상경한 말단 귀족 같은데, 지금 뷔르템부르크 후작의 장남이신 욤 공자께서 명령하신 것에 이의를 제기하시는 겁니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하도 같잖은 명령이라 내가 시종 시켜서 밥 좀 줬다.”
“지, 지금 뭐라고-”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런데, 내가 소개를 했으면 너도 자기 출신을 밝히는 게 기본 예의 아닌가?”
비실이는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치켜들고 이름을 밝혔다.
“뷔르템부르크 후작가를 모시는 팔켄하우젠 자작가의 장남, 다니엘 팔켄하우젠입니다. 아버지께서 후작을 곁에서 모시듯, 욤 공자를 곁에서 모시고 있는 측근이지요. 이제 제가 누군지 좀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너는 자작가 아들이란 말이지?”
“예,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소개에도 불구하고 내 태도가 달라지지 않자, 다니엘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한 번 까딱여 턱 끝으로 저택을 가리켰다.
“네가 모시는 주군 불러와. 네 무례에 대해 따져야겠으니.”
내 말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깨달은 다니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 실례가 아니라면, 가문의 작위를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내 가슴께에 달린 브로치를 가리켰다.
“내 아버지께서는 브란덴의 변경백이시다.”
정확히는, 가문의 문장 위에 새겨진 황금 인장을.
우리 가문이, 수도에 아무런 기반이 없어도 변경백으로서 권력을 잘만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상징하는 바로 그 증표를.
“선제후시지.”
자고로 선제후 위에는 오직 황제와 왕 외에는 아무도 군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아펠리아 제국에 왕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너의 신분이 낮은 것일 뿐.
신분 낮은 다니엘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