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이 그렇게 엄포를 놓은 것과 달리, 성국으로 가는 길 자체는 그리 험하지 않았다.
애초에 제국의 수도에서 성국으로 가는 길은 그리 험한 길이 아니었다. 제국이 특별히 신경 써 길을 잘 닦아두었다기보다는 그냥 성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대로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로 주변에서 강도가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갑자기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 정도야 6위계의 마법사와 소드 익스퍼트에게는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한 여정 위에서, 마리아는 마차 뒤 칸에 앉아 가만히 빌헬름을 바라봤다.
항상 두 다리로 걸어 다닌 탓인지, 그는 마차를 모는 데는 썩 소질이 있진 않았다. 그래도 기사라고 말을 모는 건 잘했지만, 여하간 그 탓에 마차가 좀 많이 통통 튀었다.
다만 마리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정도는 3위계 아래 단계의 마법으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그걸 얼마나 오래 지속 가능한가는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에잇, 이놈의 축생 놈이. 빌린 말만 아니면 확 잡아먹어 버렸을 텐데.”
귀족이 하는 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흉흉한 말에 마리아는 웃음을 흘렸다.
‘오랜만이네요. 이런 것도.’
옛날, 그러니까, 마리아와 그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때가 있었다. 아직 서로 말도 놓지 못하고 쭈뼛거릴 무렵, 그때도 서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이렇게 빌헬름 혼자 이상한 소리를 떠들곤 했었다.
“추억이네요.”
“응?”
“아뇨. 혼잣말이에요.”
그것도, 벌써 2년도 더 전의 이야기였다.
――
지금이야 마리아가 이래저래 칼같이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며 철혈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수도 바깥의 저택에 살 때만 해도 마리아는 굉장히 소심한 편에 속했다.
정확히는, 바깥으로 자신이 드러나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다.
괜한 우려는 아니었다. 마리아의 어머니가 병마로 돌아가시고, 그녀의 인생은 줄곧 험난했다.
아직 어렸던 마리아는 새 황후를 진짜 어머니로 여기진 못해도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했고, 황후도 처음에는 아직 어린 마리아를 그럭저럭 잘 받아들여 주었다.
하지만, 황후가 아들을 낳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들을 황제로 올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황후는, 아들의 모든 경쟁자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노린 것은, 이미 어느 정도 머리가 굵고 지지기반을 마련한 태자가 아닌 다른 자녀들이었다.
물론, 황후도 수도에서 황족을 죽였다간 소란이 일어날 거란 걸 잘 알았기에 우선 그들을 수도에서 쫓아내길 시도했다.
안타깝게도 아직 어렸던 마리아는 거기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하물며 유모조차 그리 배경이 탄탄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가장 먼저 수도 바깥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유모. 나만 두고 가지 마아….”
“죄송합니다…. 황녀 전하….”
그리고 유모 또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건강이 악화되어 수도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틸다, 황녀님을 부탁할게.”
“…알았어.”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유모와 친분이 있던 시녀장 마틸다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녀와 함께해온 시녀들 뿐이었다.
문제는, 그녀들만으로는 마리아를 지키기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나마 마리아의 외가가 호위를 제공하긴 했지만, 그들도 계승 순위가 높은 태자와 마리아 위의 형제자매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
마리아는 방치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황후의 마수는 머지않아 마리아가 도망친 저택에까지 도달했다.
“케흑!”
어느 날, 시녀 한 명이 원래 목록에 없던 케이크가 배달 온 것을 수상쩍게 여겨 맛을 봤다 쓰러졌다. 그녀는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그 이후로 마리아에게로 향하는 모든 음식이 철저하게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죽어!”
“아, 안 돼!”
“꺄아아악!”
산책을 위해 저택 주변을 돌아다니던 중, 미처 호위들이 파악하지 못한 틈을 파고든 암살자가 달려들었다. 이 무렵 이미 4위계를 달성했던 마리아가 바람을 뿜어내 암살자를 밀쳐냈지만, 반응이 늦어 그녀를 감싼 시녀를 구할 순 없었다.
그 이후로 마리아는 항상 저택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했다. 사람에게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된 것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마법 수련에 힘을 쓴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리아를 노리는 비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녀가 한 명씩 쓰러질수록, 저택의 묘비가 늘어날수록 마리아는 점점 더 말수를 잃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싸늘해져 갔다.
어느 순간, 시녀의 죽음을 마리아가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무렵, 마틸다와 시녀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목숨이야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들은 마리아에 대한 측은지심과 충성 때문에 따라온 이들이었기에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호위를 고용해야 해요.”
마틸다의 말에 시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반적인 암살 시도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암살자들에게 대응하려면, 실력도 뛰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녀들은 열심히 토론을 나눴지만, 그 모든 조건을 모아놓고 나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조건을 갖춘 용병이 과연 있을까요?”
“있긴 하겠지만….”
마틸다는 입술을 짓씹었다.
“돈이 안 될 것 같군요.”
현실의 문제가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으니 넘긴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었다.
그녀들은 조금이라도 그들이 기억하는 황녀의 모습이 남았으면 하는 마음에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적임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실력은 확실하고, 전방위적 대응이 가능하며, 값도 싼 용병, 아니, 귀족이 마침 제국을 떠돌고 있었다. 한 명이라는 게 문제긴 했지만, 오히려 개인을 케어한다는 방면으로는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막 이름값을 날리기 시작한 괴물사냥꾼, 빌이었다.
―――
사실, 마리아와 빌헬름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처럼 서로를 깊게 생각해주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가 정체를 숨긴 채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한동안 영애를 호위하게 된 빌헬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둘이 처음 만난 때, 빌헬름은 지금과 달리 마리아에게 존댓말을 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기가 좀 먹었다 싶으면 바로 말을 놔버리는 싸가지만 봐온 이들은 잘 상상하지 못하지만, 그도 돈 주고 의뢰를 받은 경우에는 존댓말을 했다.
물주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건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온 전직 현대인에겐 때로는 신분제보다 중요하게 작동하는 도덕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 트라우마와 상처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언제 어디서나 시종일관 일관된 태도로 빌헬름을 대했다.
철저히 무시했다는 뜻이었다.
“…아하하, 아가씨께서 귀하게 자라신지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게 어색하시답니다.”
“아, 그렇습니까.”
다행히 시녀들의 사력을 다한 달래기로 한동안은 빌헬름의 불만을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는 없었다.
한 달이 지나갈 무렵, 그러니까, 대충 빌헬름이 암살 시도(주로 독살이었다)를 세 번쯤 쳐냈을 때, 마침내 빌헬름의 불만이 터졌다.
“야, 적당히 좀 하지?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나름 선제후 아들이거든?”
아직 이 세계 귀족으로서의 눈치가 썩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의 빌헬름이었기에, 그는 마리아가 누군지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다.
“…선제후의 아들?”
“그래, 내 풀네임이 빌헬름 폰 브란덴이다. 어디 나도 네 이름 좀 들어보자.”
마리아도 그 말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선제후의 아들쯤 되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고 돌아다닐 거라고 어떻게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당황스러운 눈치로 마틸다를 바라봤다.
물론 마리아는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신을 빌이라고만 소개하던 그도 계약서에는 풀네임을 적었다. 자기 계좌로 보수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마틸다도 마리아와 똑같이 놀랐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마리아에게 이를 전달하지 않았다.
이 일 자체가 그녀의 계획이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또래와 어울린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단단히 틀어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또래(당사자들은 또래라 생각하지 않겠지만, 원래 나이가 많아질수록 또래의 범위도 커지는 법이다)와의 사소한 감정싸움 한 번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녀의 계산이었다.
빌헬름은 계속된 무시에 단단히 뿔이 났는지 빨리 네 신분도 까라고 방방 뛰었다. 하지만 마틸다는 마리아의 시선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마리아의 신분은 노출될 수 없었다. 계획이 어그러진 건 아쉽지만, 그래도 또래와의 접촉이 계속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그날의 다툼은 마리아와 빌헬름 간의 간극을 더 벌릴 뿐이었다.
“…됐다. 이제 나도 신경 안 쓸란다. 딱 호위만 하고 떠야지. 나 참.”
빌헬름은 그렇게 말하며 턱을 괬다.
두 사람의 사이에 변화가 발생한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한동안 직접적으로 암살자를 파견하지는 않던 황후가 또다시 암살자를 고용해 마리아의 암살을 청부한 것이다.
물론, 암살자들의 실력이 소드 익스퍼트를 뚫고 마리아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진 않았었다.
하지만, 애초에 암살자는 정정당당하게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육성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리아와 빌헬름이 유일하게 떨어지는 타이밍을 노렸다.
그러니까, 두 사람 모두 잠자리에 드는 새벽 시간대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이미 오랜 시간 마리아를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온 시녀들은,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꺄아아악!”
벌떡.
야밤에 저택을 돌며 순찰하던 시녀의 비명에 빌헬름이 번쩍 눈을 떴다. 그는 곧장 문을 열고 나섰다. 이때도 두 사람의 방은 바로 옆으로 붙어 있었다. 다만, 별궁에서와는 달리 방음만큼은 확실히 된다는 차이점은 있었다.
그는 곧장 옆에 놓아둔 검을 챙기고 문을 열고 나섰다. 태도는 이런 좁은 공간에서 휘두르기엔 부적절했기에 일반적인 검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시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가 묻은 채로 마리아의 방문을 여는 암살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쥐새끼들이 어딜!”
깡!
그는 냅다 검을 휘둘렀다. 암살자 한 명이 검을 맞대려 했지만, 압도적인 소드 익스퍼트의 힘에 검째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젠장, 서둘러!”
암살자들이 신속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목표만 달성하면 도망칠 수 있다. 상대는 한 명이고, 목표는 코앞이었기에 그들은 충분히 황녀를 죽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대부분은 옳은 판단이었다.
그들의 답이 오답인 이유는, 한 번도 소드 익스퍼트를 만나보지 못한 탓에 그 전투 능력을 제대로 짐작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하, 참 내.”
자신이 무시받았다는 걸 깨달은 빌헬름은 콧김을 한 번 뿜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크악!”
“컥!”
“아아악!”
“이게, 무슨…!”
순식간에 암살자들의 목 여러 개가 하늘을 날았다. 그나마 암살자가 여러 갈래로 움직였기에 한 명이 간신히 마리아의 코앞까지 도착해 칼을 휘두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서걱!
다른 암살자들이 모두 목 없는 귀신이 되고, 마지막 암살자의 팔이 몸통과 분리됐다. 암살자란 종자가 얼마나 지독한지는 빌헬름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혹시 모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팔을 날리고 다른 손을 내질렀다. 물론 마력은 팔의 안팎으로 가득 담겨 있었다.
푸확!
“커…, 헉….”
빌헬름의 팔이 암살자의 가슴팍을 뚫고 나왔다.
암살자를 모두 사살했다. 그걸 확인한 빌헬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 할 때였다.
“히, 히끅.”
“…어?”
불길한 소리가 들려와 빌헬름이 암살자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
언제 깨어났는지, 마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빌헬름의 손을, 피와 살점이 묻은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촛불에 비친 것으로 보아도 마리아의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빌헬름은 저런 표정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저건 기절하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꼬르륵.”
“시, 시녀 안 계십니까?!”
마리아가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