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길잡이는 수월하게 영입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있었다. 분명 법의 처벌을 받아서 우릴 돕게 된 건데, 이상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지하 수로는 워낙 깊은 곳에 있어서 환기가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이곳이 하수로로 쓰이는지라 악취도 심합니다. 그렇다고 향수를 쓰는 건 들키기 쉬워서 안 됩니다. 악취를 막아주는 마스크를 마련하셔야 할 겁니다.”
“현금은 들고 다녀도 의미 없습니다. 어차피 저쪽에서 거래는 금 조각으로만 이뤄지니까요.”
“이런 말이 의심스러우실 순 있겠지만, 갑옷을 입고 다니는 건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입니다. 들키는 순간 모두에게 노려지는 목표가 됩니다.”
스스로를 미아라고 소개한 종업원은 진지하게 우리가 준비해야 될 것을 알려주었다. 물론 나도 기본적인 것들은 알고 있긴 했지만, 오직 이곳만의 특징을 알고 있는 건 그녀이기 때문에 나도 귀담아들었다.
뭐, 의욕이 넘쳐서 나쁠 건 없으니까.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솔직히 그렇게 고민되진 않았다. 나와 마리아가 기사도 못 되는 사람들에게 당할 이유가 없었다. 그나마 걱정거리일 마리아도 요새 열심히 순간적으로 방어 마법을 사용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공격이 어렵지, 방어가 문제인 건 아니니까.
“이 정도면 충분한 거 맞아?”
“충분합니다.”
마침내 며칠을 묵을 준비를 모두 끝내고, 드디어 하수 시설로 진입하는 날이 다가왔다.
―――
“으윽.”
“냄새가 좀 심하긴 하네.”
주변을 주시하며 우리는 점점 아래로 향했다. 굉장히 거대한 시설이라기에 몇 미터씩 되는 거대한 시설을 기대했었지만, 하수로의 초입은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고대 제국의 미스터리 시설 같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딱 파리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하수도 같다고나 할까. 대도시의 하수처리를 담당하는 시설다운 스케일이긴 했지만….
뭔가 뭔가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야?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없는데?”
내 개인적인 감상이야 아무튼,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성국의 예측으로는 아마 여기서 몇 층 정도 더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미아가 안내하는 길은 아무리 봐도 내려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길이 맞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 막다른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혹시 얘가 우릴 속인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있을 때, 미아가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딸깍.
드르륵.
그리 힘을 많이 주지도 않았건만, 벽이 열리고 그 너머로 통로가 나왔다. 나도, 마리아도 눈을 깜빡이며 그 통로를 가만히 바라봤다.
“여기가 지하 수로, 아뇨, 저희 말로는 사우스포라고 부르는 도시로 가는 통로입니다.”
아니, 그건 알겠어.
기사단이 도저히 통로를 찾지 못해 의뢰를 걸었을 정도로 꽁꽁 숨겨진 장소였으니 비밀통로가 있을 것이라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1층에 바로 출입구가 있었다고…?”
이 새끼들 대체 무슨 배짱이야?
다른 곳도 아니고, 현재진행형으로 개보수가 이뤄지는 하수 시설이잖아. 그런데 바로 거기에 통로를 만들어 뒀다고?
“괜히 저 깊은 곳에 출입구를 만들어봐야 오가는 것만 불편할 뿐입니다. 저희가 몸만 오가는 것도 아니고, 상품도 옮겨야 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천장을 가리켰다.
“저 위가 바로 골목으로 이어집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저희 가게가 있던 곳이지요.”
미친놈들.
이 말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다.
“안 들킬 자신은 있던 거야?”
미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우스포가 세워진 지도 벌써 백 년이 훌쩍 넘었는데, 기사들은 여전히 감도 못 잡고 있지 않습니까?”
귀납적 추론이라는 건가.
하긴, 백 년 넘게 무탈했으면 들킬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긴 하다. 나도 내가 직접 찾은 게 아니라 길잡이를 고용해 찾은 거니까.
“그런데, 왜 너희 가게 근처에 있는 거지? 그럼 다른 조직 사람들이 오가며 습격을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조직마다 다들 다른 통로를 씁니다. 그 통로들은 저도 모릅니다.”
무슨 흰개미 집도 아니고, 도시 하나에 대체 얼마나 많은 조직이 기생하는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니 마리아가 물었다.
“저 아래에서 지금 올라올 사람이 있나?”
“없습니다. 저희는 이 통로의 사용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를 어기면,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죽입니다. 함부로 이용하다 통로가 들키면 곤란한 건 분명하니까요.”
마리아는 잠시 통로를 바라봤다. 나도 그녀의 옆에서 통로를 살폈다. 딱히 계단처럼 편의성을 위한 시설이 있진 않았다. 애초에 통로도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다. 좌우로 넓긴 했지만, 상하로는 허리를 살짝 숙여야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긴, 범죄조직이 통로를 만들 때 무슨 편의성을 생각하고 만들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이러면 곤란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망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다른 이들이 들어오진 않는다지만, 움직이기 어려운 환경 자체가 문제였다. 이래서야 나도 전투가 불가능했으니까.
다행히도 그 고민은 마리아가 해결해 주었다.
우드득, 우득.
마리아의 손짓에 따라 흙이 움직였다. 마리아는 흙을 이리저리 움직여 세 명이 들어갈 만한 상자 비스무리한 걸 만들었다. 그리고는 겉을 얼음으로 감쌌다.
“이걸 타고 가죠.”
역시 마법은 무적이다. 마리아는 신이고.
―――
몇 분이나 되는 기나긴 롤러코스터 끝에, 우리는 마침내 바닥에 도달했다. 역시 마법의 도움이 있으니 손쉽게 바닥에 내려갈 수 있었다. 물론 벽에 부딪히기 전 마리아의 마법과 벽에 박은 검으로 속도를 줄였기에 착지도 안정적이었다.
“우웨에엑….”
“끄, 으흡.”
문제는, 저 두 사람이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는지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마리아는 내 앞이라고 어떻게든 참으로 했지만, 그게 참는다고 참아지나.
나는 굳이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았다.
어쩐지 우웩 하는 소리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지만, 아무튼 난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소리가 잠잠해졌다. 그제야 나는 뒤돌아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과 단정한 옷매무새를 갖추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한 건 그대로였지만.
“그래서, 저 문을 넘어가면 바로 너희 조직의 본진이야?”
“그건 아닙니다. 그랬다간 습격을 당했을 때 그대로 통로가 노출됩니다. 그래서 본진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파뒀지요.”
미아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문손잡이를 잡고 그녀는 우리에게 당부했다.
“여기서부터는 사우스포의 중심입니다. 두 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만, 장담컨데 여기 사는 이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은 여러분의 상상을 뛰어넘을 겁니다.”
그리고는 마리아를 가리키며 다시 당부했다.
“사모님께서는 특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밖에서는 몰라도, 이곳 사우스포에서는 아름다운 외모란 곧 저주입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 해도 언제 어디서 습격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항상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십시오.”
“사, 사모님…?”
“…혹시 미혼이십니까?”
“응….”
“…죄송합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지나가고, 헛기침을 한 미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행동거지를 꼭 조심하십시오. 절대 눈에 띄어선 안 되며, 돈이 많은 척을 해도 안 되고, 언제나 사방을 주의하십시오.”
“알았어.”
여전히 혼자 ‘사모님, 사모님….’을 되뇌는 마리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그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부를 마치고, 미아는 다시 정면을 향했다. 그녀는 손잡이를 잡은 채 내게 말했다.
“이 앞에는, 항상 통로를 지키는 병사들이 있습니다. 셋을 세고 문을 열 테니, 기사님께서는 바로 그들을 제압해주십시오.”
“문제없지.”
꽈악.
태도는 아쉽게도 너무 눈에 띄었기에 여기는 들고 올 수 없었다. 그 대신 삼아 황금방패 기사단에게 검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베는 건, 아무래도 속도에 있어 좀 불리했다.
대신 검을 치켜들어 찌를 준비를 했다.
“하나, 둘….”
다리에 힘을 넣고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미아가 손가락으로 병사가 서 있는 곳이라고 가리킨 곳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셋!”
“흡!”
푸푹!
문이 열림과 동시에 병사 둘이 쓰러졌다. 한 사람은 목에 구멍이 생긴 채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사람은 목에 검이 박힌 채 파들파들 떨었다. 정확히 목뼈를 끊었는지 둘 다 반항 한 번 못하고 숨이 멎었다.
“어, 어어―”
촤악!
다른 이들이 반응하기 전, 목에 박힌 칼을 크게 휘둘러 빼내 바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채 검을 빼내기도 전에 목을 베어내니 경비병 다섯 명 모두가 아무런 소리도, 경고도 남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정말 강하시군요.”
“기사쯤 되면 다들 이 정도는 할걸.”
미아의 감탄에 어깨를 으쓱였다.
허언이 아니었다. 물론 나만큼 속도가 빠르진 못하겠지만, 기사 정도면 마력도 못 쓰는 일반인들 상대하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었다. 반응하기도 전에 움직이는 정도까진 아니어도, 다들 상대가 허튼짓 하기 전에 침묵시키는 건 얼마든지 가능할 거다.
적어도 우리 집안 기사단은 그랬다. 황실은 그 정도는 거뜬해 보였고.
“…….”
어쩐지 조용해진 미아를 뒤로하고, 마리아가 통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함께 선 채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우린 한동안 말을 잃었다.
“…아주, 도시를 만들어놨네.”
마리아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과 천장을 잇는 몇 층 높이의 기둥들에 잔뜩 창문과 입구가 달린 지하도시의 광경이었다.
그 크기는, 적어도 대륙에서 손꼽히는 대도시 오소독스의 3분의 1은 되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