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의 힘과 함께, 우리는 손쉽게 미아의 조직, ‘검은 달’의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사업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지, 진짜입니다. 믿어주십쇼!”
대충 왜 그런지 짐작은 갔다.
갑자기 지상에서의 연락이 끊겼다는 건 모종의 이유로 단속을 당했다는 뜻이니, 한동안 활동이 어려우리라 예상하겠지.
타격이 좀 있다는 의미였다. 다만, 그게 당장 우리에게 유리하진 않았다.
“귀찮아지겠네요.”
마리아의 말대로였다. 바깥 사업을 접었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거기 투입한 인력이 돌아와 있다는 의미였다. 몰래 잠입해야 하는 입장에서 귀찮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유념해둬야 할 정도지 그것 때문에 될 일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호흡으로 2진법을 만들어 ‘보글’을 설치한 탓에 자아가 혼미해진 포로는 잘 묶어 들고 ‘검은 달’의 본부로 향했다. 정면으로 가는 건 당연히 걸리기 쉬운 짓이었으니 뒷문으로 향했다.
그들도 아마추어는 아니었기에 이쪽도 경비가 있긴 했지만, 미리 챙겨온 생체인식 잠금 해제 장치를 사용해 쉽게 뚫어낼 수 있었다.
“커헉!”
“크르륵….”
물론 인증키가 올바른 경로로 사용된 게 아니란 걸 깨달은 경비병들이 급히 백도어를 차단하려 했지만, HTML로 단련된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검을 휘둘러 쉽게 제압했다.
잘못된 응답을 뱉어내는 경비들은 마리아가 제압했다. 바닥에 얼음을 깔아버리니 알아서 자빠지더라고.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걸 보니 슬슬 마리아도 자신의 트라우마가 발작하지 않는 선에서 뭘 할 수 있는지 감을 잡아가는 것 같았다.
“모두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진 이들은 미아가 직접 처리했다. 죽였다는 건 아니고, 빠르게 재갈을 물리고 꽁꽁 묶어 상자에 꼭꼭 욱여넣었다. 저대로 두면 죽지 않을까 싶긴 한데, 미아가 괜찮다니 상관없겠지.
물론 보안을 뚫어주며 이미 효용을 다한 포로도 함께 넣어주었다.
그대로 우리는 내부로 향했다. 건물이 돌기둥을 깎아 내부를 만든 형식이라 발소리에 유의하면 소리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천천히 안으로 향하면서 만나는 이들을 하나씩 쓰러뜨리고 치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말단들이 머무는 곳을 지나 본격적으로 간부급들이 생활하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뭐…, 별로 다를 게 없네.”
“지상과는 달리 건물을 자유롭게 개축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돌기둥 내부라는 한계 탓인지, 내부는 아래층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덕에 내부를 돌아다니는 것도 쉬웠다.
“누구-, 컥.”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누굴 죽여야 할지 죽이지 말아야 할지를 쉽게 판가름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청부 살인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납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강도질과 인질극을 맡는 사람입니다.”
미아는 간부들과 자주 얼굴을 트고 다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지 만나는 사람마다 척척 구분해냈다.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들의 반응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미아, 네년이 감히 우리를 배신해!”
“언제부터 당신들이 충성심이 그렇게 강했다고.”
당연히 간부들은 미아를 볼 때마다 발작했지만, 그녀는 한마디 말로 그들을 깔아뭉개며 망설임 없이 판결을 내렸다.
의아한 점은, 그들 중에서 생존을 선고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왜 다들 중죄를 지은 이들밖에 없나요?”
그런 의문은 마리아 역시 느낀 모양이었다. 애초에 제국은 법치를 표방하는 국가기도 했으니 마리아의 입장에선 이런 즉결처분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니, 이 정도면 꽤 오래 참았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성국도 교리와 율법에 의거한 법치를 표방했으니 그녀의 의문은 굉장히 합당했다. 실제로 지금 우리는, 합법과 불법을 따지면 불법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그게 미아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을 도와야 한다는 건 아니었다. 나도 한 마디를 얹었다.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네 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른 걸로 처리될 거야. 그런데 만약 네 사익을 위해 계속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거면, 우리도 심사청에 이걸 알릴 수밖에 없어.”
미아는 우리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입을 틀어막힌 채 제압당한 간부를 넘어가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는 서류를 꺼내 마리아에게 건네주었다.
마리아는 그걸 한장 한장 빠르게 넘겨가며 살폈다. 서류를 확인하는 데 있어서는 이미 통달한 그녀였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확실히, 미아의 말대로긴 하네요.”
미아는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이고는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불법적인 일이 큰돈이 오간다 알지만, 그건 애초에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물량을 쳐낼 수 없기에 가격이 오른 거지 이런 장사를 통해서는 벌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습니다. 일종의 파이 뺏기 싸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결국, 조직 입장에서 돈이 되는 일은 지상에서 벌이는 사업입니다. 이쪽은 물량을 댈 수만 있다면 거래량 자체가 차원이 다르기에 얼마든지 비용이 올라가지요.”
“그건 나도 알지.”
애초에 장사라는 건 기본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기 마련이었다. 명품도 상품 각각은 비싸 보이지만, 결국 그걸 소비해줄 사람이 한정된 탓에 전체 매출에선 통상 브랜드를 이기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런 조직에서 돈이 되는 사업이 주로 누구 손에 들어가겠습니까?”
“아.”
“아.”
마리아도 나도 탄성을 터트렸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야 돈이 되는 일은 보스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져가겠지. 그리고 그런 이들이 실적을 이유로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할 거고. 결국 라인을 타지 못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런 일을 맡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지독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들이라고 출세욕이 없진 않을 테니, 그럼 다시 보스의 눈에 들기 위해 더 악랄하게, 더 지독하게 그들의 임무를 수행할 테고, 그럴수록 피해자는 늘어나고, 그럼 다시 남겨진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조직에 가입하겠지.
악순환의 사이클이 돌아가는 것이다.
“씁, 영 개운치가 않은데.”
결국, 그 말인즉 보스와 그 측근들이 있는 곳까지 가기 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간부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소란스럽게 바닥을 뚫으면서 올라갈 수도 없었다. 이 일은 비밀스럽게 진행되어야 했다. 못 해도 네 군데 이상의 통로를 확보하기 전에는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됐다.
아니, 끝까지 그럴 수 없었다. 성국의 기사단이 이곳을 급습하기 위해서는 들켰다는 신호를 줘서는 안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몇 개의 조직을 박살 내고 침묵시키는 게 고작이었다.
너무 많은 곳을 이렇게 들쑤실수록 들킬 확률이 올라갔고, 그럴수록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일이 어그러질 확률도 높아졌으니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가 더 늘기 전에 빠르게 의뢰를 달성하는 것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마리아가 내 심기를 알아차리곤 격려해주었다. 나는 혀를 한 번 차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알고는 있는데, 알면서도 당하는 꼴이라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이지.
“보스라는 놈을 잡아다 문책하는 수밖에.”
다시 방을 나섰다. 일부러 속도를 좀 높였다. 마리아와 미아는 잠자코 날 따라와 주었다. 최대한 빠르게 간부들을 제거해나가며 상층으로 올라갔다.
마리아의 말대로, 정말로 위로 올라갈수록 죽일만한 죄목은 없는 이들이 많아졌다. 보스가 묵는다는 층의 바로 아래에서는 처음으로 한 명도 죽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드디어 보스의 방에 도착했다.
우리는 최대한 소리를 죽여 움직였다.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주의하며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보스의 방 앞에 도착했다. 한 층 전체를 자신의 방으로 사용하는 사람답게, 방의 구조가 아래층과는 달랐다.
“다들 준비해.”
내 말에 마리아는 배리어 마법을 펼쳤다. 물론, 이번 마법은 마리아만을 보호했다. 아직 미아는 완전히 믿기엔 미심쩍어 마리아와 둘만 같이 둘 순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같이 들어가기엔, 이번엔 굳이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돌입해 싸울 작정이었다.
“작전은 숙지했지?”
“물론이에요.”
마리아는 두 가지의 마법을 준비했다. 라이트와 윈드였다. 지난번 라이트를 활용한 섬광탄 효과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이번에도 써먹기로 했다.
“내가 셋 세면, 바로 윈드로 문을 부수고 라이트를 터트려.”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셋, 둘, 하나!”
“윈드!”
우지끈!
바람이 밀어닥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져 나갔다.
“라이트!”
그와 동시에 빛이 터져나갔다. 눈을 감고 있던 나는, 눈꺼풀 너머로 하얀빛이 비친 순간 달려 나갔다. 검을 뽑아 들고 방으로 돌입해 보스의 위치를 눈으로 살폈다.
“뭐야…?”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찾나?”
곧장 뒤를 돌아선 내 눈에 보인 것은, 미아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얼굴을 가린 남자였다.
마리아는 경악 서린 눈동자로 내게 소리쳤다.
“빌…! 이 사람, 마법사야!”
내게는 그것이 계획이 단단히 틀어졌다는 말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