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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어두운 레어 속.

       가장 높은 곳에 고히 모셔져 있던 비늘이 꿈틀거린다.

       

       한없이 새카맣기만 하던 비늘.

       그것이 이리저리 꿈틀거리더니, 이윽고 자그마한 검은 뱀이 되었다.

       

       새파란 눈동자를 반짝이는 뱀은, 이윽고 유려한 몸동작으로 레어 밖을 빠져나왔다.

       

       

       * * *

       

       

       레힐리스는 하늘에 떠올라 가쁜 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그녀가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이라 해도,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을 동시에 쓰는 건 명백한 무리였다.

       

       마법을 최대 화력으로 사용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건, 이미 시전된 마법을 섬세하게 조정하고 다듬는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최강의 마법 중 하나인 메테오를 섬세하게 조정하는 일은, 단 한 방울의 물방울로 바위를 깎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메테오에 새겨진 속성은 파괴, 암석, 불, 중력.

       

       하나 같이 숲과는 극상성이었기에 더욱 힘든 일이었다.

       

       레힐리스는 가만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땅을 내려다 보았다. 아득히 깊게 파인 크레이터는, 메테오가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녔는지 가늠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연기가 사라진다.

       저 연기가 전부 사라지고, 놈이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방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놈은 기척이 무척이나 옅어 작정하고 숨는다면 알아차리기 힘들었으니까.

       

       공중에 가만히 떠서 소모한 마나를 보충한다.

       

       대자연의 정기가 점점 레힐리스에게 스며들며 잃어버린 마나를 빠르게 채워주고 있었다.

       

       연기가 걷힌다.

       사위를 새카맣게 뒤덮던 연기가 사라진 곳에 있는 곳은.

       

       [……!!]

       

       “죽는 줄…… 알았다, 이 새키야…!”

       

       온 몸의 피부 가죽이 벗겨지고, 뜨거운 화상으로 인해 근육이 새카맣게 탄 상태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놈이었다.

       

       녀석의 상태는 확실히 심각했다.

       안구 한 쪽은 완전히 손상되어 실명된 것처럼 보였고, 새카맣게 타버린 근육은 더 이상 제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놈은 살아 숨쉬고 있었다.

       

       […….]

       

       고고하던 레드 드래곤의 미간이 구겨진다.

       

       그녀는 본능적인 혐오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일반적인 생물이라면 진작에 죽었을 상처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발버둥치는 모습이 마치 인간이 아닌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놈이 들고 있던 마검은 이미 반토막이 나있었다.

       

       새빨간 사기를 흉흉하게 뿌리던 마검은 이제 옅은 빛만이 남았다.

       

       그것마저도 곧 사그라들 것처럼 한없이 옅었다.

       

       ———우우웅.

       

       저대로 두어도 죽겠지만.

       확실히 끝을 보아야 한다.

       

       레힐리스는 그런 직감을 무시하지 않은 채 다시 한 번 브레스를 끌어모았다.

       

       이미 소모되었던 그녀의 마나는 대자연의 정기를 받아 회복한 지 오래였다.

       

       모든 힘을 끌어쓴 브레스.

       점점 입 앞에 모여드는 새빨간 기운을, 녀석은 어째서인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하아… 하아…….”

       

       한없이 옅은 숨소리.

       

       레힐리스는 마지막으로 브레스를 쏘아냈다.

       

       [죽어라.]

       

       새빨간 광선이 패도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델티안을 향해 쏘아진다.

       

       그 붉은 기운이 자신의 앞에 도달하는 걸 느끼며, 델티안은 송곳니가 보이도록 웃었다.

       

       “흡수해라, 마검.”

       

       그가 나지막히 읊조린 순간.

       그를 향해 쇄도하던 패도적인 기운이 순식간에 마검에 응축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레힐리스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다 죽어가던 병자였다.

       그런데 죽음의 순간 순식간에 자신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해냈다.

       

       “네 놈을 긁은 마검이, 그동안 멍청하게 있었다고 생각하나?”

       

       그의 마검은, 피를 다룬다.

       그건 설령 사용자라도 다르지 않다.

       

       피의 본질을 바꿔버리고, 그 안에 흐르는 기운을 완전히 뒤바꿔버린다.

       

       그렇기에 마검이었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갉아먹으며 오로지 피만을 탐하니까.

       

       “마검이 네 피를 핥은 순간, 이미 네 패배였다.”

       

       아주 자그마한 상처.

       그 상처를 낸 순간 이미 마검은 녀석의 본질을 바꾸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그래도 이것 밖에 안 되는 건 놀랍다만….”

       

       원래라면 피를 삼킨 순간 침투한 기운이 녀석을 완전히 으스러뜨릴 터였다. 여태까지 긁어온 모든 사용자가 그러했고, 그 모두가 한 점의 수분도 남기지 않은 채 미라가 되어 죽었다.

       

       그런데 드래곤은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일반적인 생물이랑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이었다.

       

       생물이라기 보다는… 한 없이 푸른 대자연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까.

       

       그 탓에 본질이 완전히 바뀌진 않았다.

       대자연은 언제나 마기와 극상성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주 극히 일부.

       그것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마검은, 아주 자그마한 기운이라도 자신과 같다면 삼켜버리는 특성을 지녔으니까.

       

       극히 소량이었다.

       그녀의 브레스에 숨어들었던, 먼지 보다 자그마한 기운.

       

       하지만 아주 자그마한 성분이 섞이더라도, 더 이상 그건 순수한 기운이 아니었기에.

       

       설령 부러진 마검이라도 해도 자신과 같은 기운을 삼키는 건 손 쉬운 일이었다.

       

       [그게, 무슨….]

       

       “차라리 물리적으로 날 패죽였다면 몰랐을 텐데 말이야.”

       

       서서히.

       델티안의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역행하듯 근섬유가 다시 가닥가닥 이어붙고, 새카맣게 타들어갔던 피부가 돌아왔으며, 부러졌던 마검이 다시 원상복귀 되었다.

       

       그만큼이나 브레스에 담겨있던 기운이 압도적이었기에.

       

       그 기운을 역으로 이용하여 모든 상처를 회복한 델티안이 씨익 웃었다.

       

       “방심했구나.”

       

       […….]

       

       레힐리스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녀의 실착이었다.

       물론 처음 만난 것만으로 저 마검의 능력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을 터였으나, 결과는 그녀의 패배였다.

       

       그제야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피부 밑 혈관에서 꿈틀거리는 이질적인 기운을.

       

       그 기운은 천천히 자신을 좀먹고, 그녀의 본질을 뒤바꾸려 하고 있었다.

       

       […메테오.]

       

       시전되지 않았다.

       허공에 떠오른 푸른 마법진이 서서히 완성되어가다, 그 속에 섞인 검은 기운에 마법진이 뒤틀려 바스라져버렸다.

       

       “안 되지, 안 돼.”

       

       델티안은 씨익 웃었다.

       

       그래, 이걸 노렸다.

       

       단 한 번의 실수.

       아주 사소한 실수만으로 나는 또 한 번 승리했다.

       

       “그럼, 그대로 돌려주마.”

       

       델티안이 허공에 검을 들어올렸다.

       거대한 대검의 끝에서, 검붉은 기운이 서서히 몰려든다.

       

       그건 레힐리스가 쏘아낸 브레스와 본질적으로 달랐으나, 그럼에도 그 힘이 지닌 패도적인 기운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브레스보다 강했다.

       그가 압축하는 기운은, 오직 상대방의 죽음만을 바라는 의지로 가득했으므로.

       

       레힐리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패착이었다.

       자신은 마법도, 브레스도 쓸 수 없다.

       

       설령 육탄전으로 바꾼다 해도 달라질 건 없을 터였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마법과 브레스가 주 특기이지, 육탄전이 특기는 아니었으니까.

       

       도망가야 하나?

       레힐리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끝도 없이 이어진 숲.

       저 안에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있을까.

       

       만약 그녀가 피한다면 셀 수 조차 없을 동물들이 학살당할 터였다.

       

       […….]

       

       그녀의 눈에 각오가 실린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이 있었다. 성체가 된 드래곤이 자연스레 깨우치는 또 다른 언어.

       

       [만들어져라.]

       

       언령言霊.

       

       말하는 대로 세상을 바꾸는 힘.

       

       세상이 그녀의 의지대로 변한다. 녀석이 모으는 브레스를 끊는 건 불가능하다. 아직 언령의 숙련도가 낮아 대상을 간섭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자신을 뒤바꾸는 건 가능하다.

       

       그녀의 의지대로.

       마법진이 다시금 허공을 수놓았다.

       

       하나, 둘, 셋….

       

       한 두개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마법진이 하늘을 가득 수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마법이, 오로지 한 생명을 죽이기 위한 살기가 들어간 고위 마법이었다.

       

       “하.”

       

       델티안이 헛웃음을 뱉었다.

       

       저게 도대체 뭐야.

       허공을 수놓는 마법진들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그 하나하나가, 그 전에 쓰던 마법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새로운 기운.

       새로운 진법.

       

       그렇기에 마검이 해석할 시간이 부족했다.

       

       “숲을 지키는 건 포기하려는 거냐?”

       

       저 정도 마법이 떨어진다면, 분명 크나큰 출혈을 입을 터였다.

       

       하나, 레힐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놈을 죽인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거참, 현명한 현자 납셨군.”

       

       맞서면 죽는다.

       그걸 파악한 그가 숲으로 뛰어들려던 순간.

       

       ———샤아악!

       

       숲에서 나타난 자그마한 뱀이 그의 발을 물었다.

       

       델티안이 그걸 무시하고 숲으로 달려들려던 그 순간.

       

       ——우뚝.

       

       “……?!”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전신의 혈액을 비롯한, 모든 세포가 굳어버리는 것만 같은 감각이다.

       

       ‘빌어쳐먹을!! 마검!!’

       

       마검을 이용해 또 한 번 혈액의 성분을 뒤바꾸려 했으나, 마검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마검을 내려다 본 순간.

       그는 마검에게서 전해져오는 감정에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두려워… 하고 있어…?’

       

       감히 거슬러서는 안된다는 듯.

       그 어떠한 적이 존재하더라도 거리낌없이 피를 탐하던 마검이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그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하니 서있는 그 순간.

       

       [죽어라.]

       

       이미 마법은 완성되어 있었다.

       

       하늘을 수놓는 수없이 많은 마법들이, 오로지 한 사람을 노리고 쏘아졌다.

       

       ‘아.’

       

       그는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마지막임을.

       

       

       * * *

       

       

       [하아… 하아….]

       

       레힐리스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처음 써본 언령은, 그만큼 그녀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레힐리스는 완전히 소멸해버린 델티안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멈춰선 거지?]

       

       분명 숲으로 도망가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대로 굳어버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었다.

       

       물론 자신에겐 천운이었지만, 어째서 그가 굳어있었는 지 의문이 들었다.

       

       레힐리스가 바닥에서 착지한 순간.

       

       폴짝!

       

       어디선가 나타난 뱀이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요르문간드…?]

       

       푸른 눈이 인상적인 묵빛의 뱀.

       

       그건 매우 작지만, 분명 요르문간드의 형상이었다.

       

       어떻게 그가 여기 있는 거지?

       

       그리 생각하며 그를 본 순간, 레힐리시는 저 뱀이 요르문간드와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 요르문간드에 비하면, 한없이 격이 부족했으니까.

       

       레힐리스가 자그마한 뱀을 안아들려던 때.

       

       콱!

       

       [읏?!]

       

       자그마한 뱀이 레힐리스를 물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퍼엉!

       

       레힐리스를 뒤바꾸던 모든 마법과 기운들이 사라지는 걸 느끼며 순식간에 시야가 낮아졌다.

       

       “아야…… 어라?”

       

       고통을 호소하던 레힐리스는 자신의 몸에 흐르던 이질적인 기운이 사라진 걸 느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언가 달라진 목소리.

       그에 자연스레 레힐리스가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드래곤과는 다른 여린 피부.

       

       어딘가 낯선 목소리.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무엇으로 변했는 지 눈치챘다.

       

       “인간이… 됐어?”

       

       그녀는 가만히 눈을 꿈뻑거렸다.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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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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