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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레힐리스의 몸을 휘감은 마검의 영향은, 일종의 저주와 같았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끝끝내 보유자에게 큰 피해를 주는 저주.

       

       제아무리 드래곤이 그런 저주 부류에서 저항력이 높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놔둘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힘을 불어넣어 치료해주려 했던 건데….

       

       “아?”

       

       레힐리스는 멍하니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보드라웠다.

       일평생 몸을 감싸던 비늘과 달리 여리여리한 몸은, 누군가 툭 치기만 하더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감상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피부에서 느껴지는 자연을 느끼다가, 이내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났다.

       

       이런 식의 이족 보행은 익숙치 않았으나, 몇 번 몸을 움직여보니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흐음….”

       

       레힐리스는 제자리에서 콩콩 뛰어보았다.

       

       조금은 균형 잡기 어렵고, 드래곤의 육체에 비해 가벼운 것이 묘하게 맘에 든다. 물론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가끔씩은 써볼만한 몸이라고 해야 할까?

       

       그 어떤 공격도 뚫기 힘든 비늘에서, 이런 자그마한 바윗조각에도 상처날 것 같은 여린 피부가 무척이나 신기했다.

       

       어떻게 이런 피부를 지니고 사는 거지?

       

       조금이라도 긁힌다면 크게 다칠 것 같은데.

       

       레힐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을 발동시켜 보았다. 허공에 떠오르는 마법진은 그녀과 드래곤일 때와 매우 비슷했다. 그 총량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 대신 섬세함이 늘어났다고 해야 할까.

       

       드래곤의 육신으로는 불가능한 동작이 가능했기에, 마법을 조금 더 섬세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비티.”

       

       단순한 중력 마법.

       그래비티는 원래 어느 한 방향으로 대상을 끌어당기는 것 밖에 하지 못하는 능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하지만,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마법을 펼치자, 그녀와 마법 사이의 자그마한 수많은 실의 가닥들이 느껴졌다.

       

       그걸 섬세하게 연주하듯 움직이자, 바닥에 떨어져있던 돌멩이가 둥실둥실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곡예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

       

       레힐리스가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녀의 자그마한 손가락들이 허공을 유려하듯 수놓자, 수많은 돌멩이들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이윽고 그녀는 마법을 거두었다.

       하늘을 계속해서 날아다니던 돌멩이들이 일제히 바닥에 천천히 떨어져내렸다.

       

       분명 드래곤의 몸으로는 힘들었을 것이다.

       저 돌멩이가 부서지지 않도록 출력을 조절하는 것에 온신경을 써야 했을 테니까.

       

       더군다나 이건 무생물을 대상으로 해서 더욱 그러하다. 만약 상대가 조금만 발버둥 치고 강한 상대라면, 순식간에 마법이 풀려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더 섬세하게 가능할 뿐.

       전체적인 출력이 크게 줄어든 상태에서, 드래곤 때와 같은 위력을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가 주먹을 쥐었다 펴보며 감각을 찾는 동안.

       

       어디 선가 숨어있던 동물들이 나타나 레힐리스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본질은 같다는 걸 눈치채고 다가와 그녀의 몸에 머리를 비볐다.

       

       스윽, 스윽.

       

       “흐응…….”

       

       레힐리스는 사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피부에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

       그건 확실히 드래곤일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이건 괜찮네.

       

       그러면.

       레힐리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한다.

       

       여전히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푸른 눈의 자그마한 뱀을 향해서.

       

       그저 멀뚱멀뚱 바라보는 뱀.

       레힐리스는 저것이 요르문간드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저 그의 아주 자그마한 편린이 들어가, 위기 상황에 알아서 대처하게 만들어놓은 걸까?

       

       뭐.

       이 몸도 나쁘진 않았다.

       

       조금 더 이 몸에 대해 탐구한다면 다시 드래곤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고, 가끔은 이런 식의 일탈도 나쁘지 않았다.

       

       레힐리스는 가만히 멀뚱멀뚱 쳐다보는 뱀을 낚아 채 목에 둘렀다.

       

       매끈하고 시원한 감촉이 목에 전해져오는 걸 느끼며, 레힐리스는 자신의 신체 감각을 완전히 알아차리는 것에 집중했다.

       

       지금 당장 요르문간드를 찾을 필요는 없겠지.

       

       내가 스스로 탐구해보고, 정 불가능하다면 그를 찾아가자.

       

       그리 생각하며 레힐리스는 콧노래를 불렀다.

       

       

       * * *

       

       

       분신의 감각이 느껴진다.

       그건 아주 자그마한 그의 편린이었다.

       

       예전에 한 드래곤에게 건넨 편린.

       그 편린이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걸 느낀 요르문간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일은 해결한 모양이군.]

       

       편린이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니, 그가 직접 나설 필요까지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주 자그마한 편린을 건넨 건 호의였다.

       왜 드래곤인지 모를 정도로 순수한 마음을 지닌 그녀였기에, 다른 이들이 그녀를 노리리라 생각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습격을 받았다.

       요르문간드는 자신이 편린을 건네준 선택에 고개를 끄덕여싿.

       

       되도록이면 그가 아는 사람은 죽지 않길 바랐으니까.

       

       요르문간드는 동굴에 똬리를 틀었다.

       

       그러다 문득.

       어째서인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세계의 일부가 비어버린 것만 같은 위화감.

       

       곧바로 감각을 집중해 알아내려 했으나, 그곳은 하늘에서도 가장 깊은 싱크홀.

       

       그가 감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위화감은 아주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여서, 요르문간드는 무심코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혹시 몰라 더욱 감각을 집중해 위화감의 원인을 찾으려 했으나, 역시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의 감각을 일정부분 그곳에 집중한 채로, 이 위화감을 흘러넘기려 했다.

       

       

       * * *

       

       

       그는 어느 순간 태어났다.

       어째서 자신이 눈을 뜬 거지?

       

       의문이었다.

       자신은 분명, 오딘을 죽이고 죽었을 텐데.

       

       이곳은 어디지?

       자신이 살던 곳과 완전히 다른 감각.

       

       그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한없이 새카만 무저갱에 불과했다.

       

       빛조차 통과하지 못해 매순간이 어둡기만 한 음침한 장소. 그곳에서 다시금 태어난 존재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지금의 자신은 약하다.

       하지만, 오딘을 잡아먹을 때의 기억은 여전하다.

       

       그, 펜리르는 무저갱의 생활에 익숙해져갔다.

       

       그가 처음으로 생물을 잡아먹은 것은, 그가 태어난 후 30초가 흘렀을 때였다. 마침 그의 주변을 지나던 거대한 트롤이 갓태어난 늑대 새끼를 죽이려 했으나, 미처 인지를 할 틈도 없이 몸이 순식간에 찢겨져 나가 펜리르에게 잡아먹혔다.

       

       펜리르가 생물을 씹어먹으면서 느끼는 것은 고양감이었다.

       

       무엇을 하더라도 실패하지 않을 것 같다는 고양감.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펜리르의 육신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근질이 보다 뚜렷해지며 빽빽해졌으니까.

       

       생물을 잡아먹으면 강해진다.

       그 규칙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로 펜리르는 닥치는 대로 무저갱의 생물들을 잡아먹었다. 수많은 생물들이 펜리르의 날카로운 이빨에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쓰러졌다. 제아무리 지금은 미처 성장하지 못한 나약한 육신이라 하나, 최고의 신 중 하나를 잡아먹은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펜리르에게 있어서 이들은 한없이 벌레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저 꿈틀거리기만 하는 벌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몸을 바닥에 대고 기어다니는 벌레 같은 존재.

       

       그렇기에 사냥은 매우 쉬웠다.

       펜리르는 점점 무저갱을 지배해나갔다.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 챈 무저갱의 생물들이 뭉쳐 펜리르에게 덤볐으나,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힘이나 다른 걸 떠나서.

       그들과 펜리르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본질적 차이가 존재했기에.

       

       그건 설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좁혀지지 않는 차이였다.

       

       무저갱은 매우 깊고, 매우 넓었다.

       

       적어도 수천 킬로미터.

       그렇기에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을 잡아먹는 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좋았다.

       이런 약자의 입장이 되어 치열하게 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시야 사각에서.

       거대한 드레이크가 움직인다.

       

       크기가 족히 십 수백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드레이크가, 촉수다발 같은 혀를 들이밀며 그에게 돌진한다.

       

       그 드레이크의 바로 옆에는 거대한 황소 형상의 생물이 새빨간 뿔을 그에게 들이밀며 돌진하고, 또 그 옆에서는 거대한 지네 형상의 괴물이 돌진한다.

       

       여러 번 호흡을 맞춰온 것만 같은 공격.

       드레이크가 산성 체액으로 펜리르의 시야를 가리고, 지네가 수십 개의 다리로 펜리르의 움직임을 봉인한 채, 그대로 거대한 황소가 뿔로 펜리를 들이 받는다.

       

       하지만.

       

       [느리구나.]

       

       그 모든 게.

       너무나 느렸다.

       

       너무나 느리고 뻔해서.

       눈을 감더라도 도저히 맞아줄 자신이 없었다.

       

       땅을 박찬다.

       순간 펜리르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지자, 지네와 황소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쿠웅!

       

       드레이크가 쓰러진 것을 간파한 것은 찰나였다. 육중하던 드레이크의 몸을 찰나의 순간 수십, 수백 번 할퀴고 씹어먹은 펜리르가 피를 닦아내며 다시금 돌진했다.

       

       지네와 황소.

       그 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펜리르에게 산채로 씹어먹혔다.

       

       꾸득, 꾸드득…….

       

       

       신체가 실시간으로 성장한다.

       그와 동시에 펜리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서 완전히 지웠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

       

       펜리르가 고개를 들어올린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지만, 출구로 보이는 곳을 가만히 쳐다보던 펜리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언젠가.

       

       [이 무저갱을 빠져나가, 모두 씹어먹어 주마.]

       

       이곳의 신은 어떤 맛일까.

       펜리르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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