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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신성 제국, 이에로스.

       

       유일한 종교 국가이자, 태양의 제국 에레스테브와 동등한 제국이라는 칭호를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신성 제국 이에로스의 이름값은 무척이나 거대했다. 하물며 종교를 기반으로 탄생한 제국이었다. 심지어 태초의 신이라 불리는 여신을 추종하는.

       

       그 위상이 낮을래야 낮을 수가 없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트렐리니아 왕국은 비상이 걸렸다. 단순히 사절단을 보내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절단에 성녀가 같이 왔다? 이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레스벨리고는 뻣뻣한 미소를 지은 채 성녀를 모신 방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긴장감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을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신성 제국의 성녀였다.

       

       가히 제국의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는 인물.

       막말로 교황 보다도 신의 선택을 직접 받은 성녀의 입지가 더 강하다는 걸 생각하면, 거기다 그 제국이 종교를 기반으로 탄생한 국가라는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성녀의 말 한 마디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 트렐리니아 왕국은 갑작스레 종교를 세웠으니.

       최초의 종교 국가인 이에로스에서 거슬릴 만도 했다.

       

       ‘절대…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가장 무서운 점은.

       이에로스에서 성녀까지 보낸 원인을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성녀는 무척이나 고귀한 존재이다.

       이에로스 내에서도 성녀는 모두의 추앙을 받는 존재이자, 함부로 모습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다.

       

       만약 그런 성녀가 이곳에 와서 잘못되기라도 한다?

       

       바로 전쟁 일어나는 것이다.

       하물며 그런 성녀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절단으로 보냈을까?

       

       성녀가 직접 나서야 할 정도의 중대사안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성녀의 가벼운 유희로 시작된 일이지만, 레스벨리고가 그걸 알아차릴 리는 없을 터였다.

       

       마침내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안녕하십니까. 트렐리니아 왕국의 국왕, 레스벨리고 트렐리니아입니다.”

       

       “반가워요. 성녀, 벨리아르 이에로스입니다.”

       

       처음 성녀를 본 인상은 고귀하다, 였다.

       새하얀 머리칼은 마치 가장 값비싼 백은을 얇은 실의 형태로 엮은 것 같았으며, 태양 한 점 비쳐본 적 없을 것 같은 새하얀 피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금빛으로 고요히 빛나는 눈동자.

       

       그 눈동자 속에는 여신을 뜻하는 태양이 문양처럼 새겨져 있었다.

       

       ‘여신님의 성흔…….’

       

       수십, 수백 명에 달하는 용사와 달리.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성흔.

       그걸 가지고 태어나는 것 만으로 신성 제국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성흔이었다.

       

       왕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떼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런 변두리 왕국까지 오시는 길이 험난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변두리라니요. 이곳이 변두리라면 세상에 변두리가 아닌 곳이 없겠군요.”

       

       성녀는 가볍게 웃었다.

       

       기품이 묻어나는 웃음.

       그렇기에 레스벨리고는 공포에 발발 떨었다.

       

       저 미소 뒤에 무슨 말이 튀어나올 지를 몰라서.

       

       그녀가 호의적인 지, 호의적이지 않은 지 조차 알 수 없었다.

       

       한없이 투명한 성녀의 표정 탓인지, 오히려 어떤 표정도 알 수 없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혹, 저희의 왕국에 방문하신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하, 물론이죠. 그리고 격식은 버리셔도 됩니다. 오히려 이런 자리는 제가 더 불편해서요.”

       

       성녀는 왕의 부담을 알아차린 듯 싱긋 웃었다.

       

       레스벨리고는 그 말에, 조금은 긴장을 풀면서도 끝까지 방심하지는 않았다.

       

       아직, 성녀가 이곳에 방문한 이유를 듣지 못했으니까.

       

       “아, 트렐리니아 왕국에 방문한 이유는 간단하답니다?”

       

       “무엇이죠?”

       

       “요르문간드… 트렐리니아 왕국에서 신으로 모시는 존재죠?”

       

       “예, 그렇습니다.”

       

       “요르문간드라는 존재가, 정말 신에 걸맞은 지. 그걸 알아보려고 왔답니다.”

       

       역시 요르문간드와 관련된 일이었나.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성녀의 말에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무슨 수로 요르문간드가 신에 걸맞은 존재인지 알아본다는 건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요르문간드는 그가 본 이들 중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였기에.

       

       문득 든 생각에 왕이 말문을 열었다.

       

       “만약… 요르문간드가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당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 그거야… 요르문간드라는 존재를 숭배하는 걸 멈추거나…….”

       

       아니면, 저희와 전쟁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

       

       성녀는 싱긋 웃었다.

       

       

       * * *

       

       

       응접실을 나가는 성녀.

       그 뒤를 묵묵히 지키던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정말 전쟁을 벌이시려는 겁니까?”

       

       “글쎄… 어떻게 되려나.”

       

       “저희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벨리아르는 제 뒤에 선 추기경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녀의 말 한 마디라면 전쟁도 불사할 기세가 여기까지 전해져온다. 그에 성녀는 진저리가 칠 지경이었다.

       

       ‘참, 도대체 뭐가 이리 규율이 많은 지.’

       

       함부로 나가지도 말라.

       경박한 웃음을 짓지 말라.

       다른 이들과 접촉 하지 말라.

       

       그녀가 성녀로 태어난 그 순간 부터.

       신성 제국이라는 거대한 우물은 오로지 그녀를 속박하려 들었다.

       

       성녀라는 존재가 그만큼 귀중하다는 뜻일까.

       

       겉으로는 성녀라는 존재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쥐어주는 것 같았으나, 실상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그 권력을 명목 삼아, 철저히 성녀를 통제하려 했다.

       

       지금도 그러했다.

       전쟁을 불사할 수도 있다는 뜻은, 그녀의 뜻이 아니었다.

       

       그저 신성 제국, 이에로스의 메뉴얼을 읊었을 뿐.

       

       ‘도대체 신이 뭐라고, 전쟁까지 벌이는 지.’

       

       교황이 들었다면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는다.

       

       사실, 성녀 벨리아르는 그다지 신에 대한 존경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잖아?

       그녀에게 내려지는 힘은 분명 신적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 외에 여신께서 자신에게 해준 것은 없었으니까.

       

       사실 그녀는 그다지 성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성녀라는 직책은 그 누구든 가지고 싶어 안달이난 직책이지만. 벨리아르의 꿈은 그냥 소박하게 오두막이나 짓고 언젠가 결혼할 사람과 오순도순 사는 것이었으니까.

       

       이런 거창한 직책 따위 받고 싶지 않았다.

       

       성녀라는 직책의 무게가.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오는 시선이.

       자신에게 해내야만 한다는 듯 바라보는 이들의 기대가.

       

       너무나 무거웠다.

       고작해야 한 소녀가 견디기에는, 너무나 무거워 깔려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 능력은.

       성녀로써의 능력은 그녀를 쓰러지지 않게 만들었다.

       

       “추기경, 저는 조금 쉬어야겠어요.”

       

       “예,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추기경을 물리고 그녀에게 배정된 귀빈실로 들어간 그녀는, 온몸을 가리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수녀복을 벗었다.

       

       새하얀 실크로 짜여진 옷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이윽고 속옷만을 입은 그녀의 몸에는.

       

       “…….”

       

       수없이 많은 흉터가 가득했다.

       

       차마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수많은 흉터.

       그 끔찍한 상처의 원인은, 모두 성녀 벨리아르.

       

       그녀 자신이었다.

       벨리아르는 가만히 자신의 흉터들을 바라보다가.

       

       책상 위에 있던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잉크가 묻은 새카만 침이, 날카롭게 빛난다.

       

       ——까앙!

       

       그 끝을 책상에 내려쳐 부숴서.

       익숙하다는 듯 자신의 팔뚝에 내리꽂는다.

       

       자신의 신체일 텐데도.

       아무런 가감도 없이 온힘을 다해서 찔렀다.

       

       당연하게도 팔에는 피가 흐르고,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그러나 성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나…….”

       

       벨리아르는 품에 넣어두었던 손수건으로 대충 상처를 닦아내고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런 결과가 돌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매번 실망하는 기분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째서…….”

       

       나를 성녀로 선택한 걸까.

       나는 성녀 따위, 전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런 무거운 직책이 싫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두렵고,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짓는 것이 부담스럽다.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하고, 언제나 추기경의 시선을 받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운 지 사람들은 알까?

       

       모르겠지.

       성녀가 조금이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성녀’의 행동에서 어긋난다면.

       

       어두운 지하실에서.

       자신이 잘못한 행동을 몇 번이고 세뇌당하듯, 그 행동이 잘못 되었다는 듯, ‘훈육’ 한다는 사실을.

       

       ‘체벌’을 떠올리던 벨리아르는, 본능적인 혐오감에 입을 틀어 막았다.

       

       신성 제국은.

       사람들이 아는 그런 청렴결백한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오로지 ‘규율’과 ‘성경’에 담긴 뜻만을 따르는.

       

       한없이 끔찍한 광신도의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벨리아르는.

       성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제약한다는 신성 제국의 쓰레기 같은 면모도 상당 부분을 차지 했지만.

       

       “어째서, 나를, 성녀로 선택한 거야….”

       

       성녀가 되면서.

       그녀는 자신의 감각을 잃어야만 했기에.

       

       상처는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뿐일까?

       자신이 침대에 누워있는 지, 일어서있는 지, 또 다시 자해를 하고 있는 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촉각은 그녀가 성녀가 된 날.

       이미 완전히 사라져버렸기에.

       

       그녀가 자해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고통을 주다보면.

       언젠가 아주 자그마한 감각이라도 느껴질까 싶어서.

       

       이따위 흉터를 치료하는 것도 일도 아니었지만, 그 또한 자해와 같은 연장선이었다.

       

       나의 몸에 새겨진 흉터들이.

       언젠가 나의 감각이 되돌아 왔을 때, 쓰라린 고통으로 가장 먼저 그 사실을 알려주길 바랬기에.

       

       “성녀 따위… 싫어….”

       

       이건 그녀의 발버둥이자.

       

       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대였다.

       

       이미 끝도 없이 좌절하고 후회했지만.

       

       그럼에도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

       

       성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시금 눈을 뜨면,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면서.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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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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