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은 제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노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생각이었다.
리안이 흑마법사 미아의 실험실에서 잔혹한 실험을 당했다는 건 노아만 자세히 알지, 다른 아이들은 리안이 어떤 실험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들 리안이 자기희생적인 면모가 굉장히 강하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리안은 일상에서도 제 몸을 함부로 할 때가 많았다.
끓는 물의 온도를 측정하겠다고 냅다 손가락을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은 적도 있었고, 조리를 하던 중 몸에 상처가 생겨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과 놀다가 몸을 다쳐도 말하지 않고 꾹 참다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는 항상 맑게 웃고 있었지만, 속이 썩어 뭉그러져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들 웃으면서 3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리안이 아이들에게 오빠이자 형이었고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오빠니까, 형이니까, 아버지니까, 가족이니까.
그러니까 괜찮겠지.
그런 안일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배가 뻥 뚫린 리안이 돌아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결, 차갑게 식어가는 몸.
철없던 아이가 부모의 눈물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것처럼, 아이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절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어른”이, 소중한 “가족”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지한 것이다.
리안이 깨어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들의 불안감을 계속해서 치솟았고, 결국…
철컹.
노아가 리안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걸 막지 못했다.
***
“에휴…”
나는 침대에 축 늘어져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노아랑 싸워버렸어…’
솔직히 이걸 싸웠다고 보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싸웠다기보단… 혼났다는 쪽이 더 맞을 거다.
‘화 많이 난 거 같던데…어쩌지?’
딱히 노아에게 화가 나진 않았다. 항상 이성적이던 노아를 그 정도로 분노하고 걱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미안할 뿐이었다. 한편으론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래도 걱정 받으니까 뭔가 간질간질하네.’
이 말을 노아가 들으면 뚝배기가 깨질지도 모르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개그 세계에선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 걱정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뭔가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아 조금 들뜬다고 하면 -…
‘검으로 예쁘게 썰어질지도 모르니까 절대 말하지 말자.’
실없는 생각을 정리한 후, 노아와 화해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불이 전부 꺼진 어두운 방안, 노아는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이마를 올려놓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가슴을 압박하는 마도구와 붕대까지 풀어둔 상태라 가슴이 허벅지를 짓눌렀다.
[ 왜 또 동굴이가 됐어? ]
그런 노아에게 줄리아나가 날아와 말을 걸었다. 노아는 머리 위에 이불을 덮어쓴 채 탁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들어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제가 잘하고 있는 걸까요?”
[ 왜? 리안을 지키지 못해서 그래? ]
정곡을 쿡 찌르는 말에 노아가 입을 다물었다.
[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만약 네가 본관을 내버려 두고 별관으로 달려갔으면, 본관에 있던 녀석들 대다수가 몰살 당했을 거야. ]
“하지만…결국은 지키지 못했어요.”
[ 살아있잖아. 이제라도 지키면 돼. ]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요!”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높여 소리치곤, 본인이 더 놀라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소리질러서 죄송해요.”
[ 아니야. 속에 숨겨놓는 것보단 속 시원하게 말하는 게 낫지. ]
줄리아나가 노아의 옆에 앉아 고갯짓을 했다.
[ 마음 편하게 말해. 누구누구 씨처럼 힘들 때마다 숨겨놓지 말고. ]
줄리아나가 말하는 누구누구 씨는 리안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상처가 생겨도, 힘이 들어도 숨기기만 해서 속 터지게 하는 리안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노아는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전, 지금까지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리안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려고 노력했어요.”
[ 응, 열심히 했지. 잘하기도 했고. ]
“하지만 -..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리안을 도와주지 못했어요. 그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저는…”
[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
“하지만 제가 더 빨리 몬스터를 쓰러뜨렸다면 리안을.. 리안을 지키러 달려갈 수 있었을 거예요.”
뒤이어 ‘만약에’라는 가정이 물밑 듯이 밀려왔다.
만약에 내가 적을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만약에 리안을 본관에서 지내게 했다면.
만약에 본관을 더 잘 숨겨뒀더라면.
.
.
그런 말들이 자신을 상처입힐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었다.
줄리아나는 절망과 울음으로 물든 노아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행동이 ‘자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몇 번이고 상처 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벌을 주듯이.
[ 그렇다면 해결법은 하나네. ]
“예..?”
예상하지 못한 ‘해결법’이라는 말에 노아가 고개를 휙 돌려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 네가 말했잖아. 조금만 더 빨리 몬스터를 해치우고 리안을 찾아갔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
줄리아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허공에 둥둥 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그럼 해결법은 간단하지. 더욱더 강해지면 돼. ]
“더…강해져?”
[ 그래. ]
“하지만…”
노아는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노아는 2년 전부터 벽에 가로막혀 성장이 멈춘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더 강해지면 되지!’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를 더욱 절망에 빠뜨릴 뿐이었다.
[ 벽에 가로막혀서 그러지? ]
“…!”
[ 해결 방법이 있어. ]
“방법이..있어요?”
[ 그래. ]
줄리아나는 진지한 얼굴로 노아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해. ]
“상관없어요.”
펄럭!
노아는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치워버린 후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더 강해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리안을 지켜줄 수만 있다면.
[ …좋아. ]
줄리아나가 제 본체가 묶여있는 책을 노아의 앞에 내려놓았다.
촤르르륵!
[ 내가 겪었던 시련을 이겨낸다면 넌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대신.. 죽을 수도 있겠지. ]
책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 안에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외부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아.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차근차근 나아가. ]
걱정이 섞인 줄리아나의 말에 노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스승님.”
[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 ]
환한 빛무리에 삼켜진 노아는 몸을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누워버렸다. 그녀의 정신만이 시련으로 넘어간 탓이다.
[ ‘노아 넌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
절망에 발이 묶여 발걸음을 멈춘 순간, 노아는 자기 손으로 벽을 만들어 그곳에 갇혀 영원히 헤매다 쓰러질 것이다.
줄리아나는 과거 그런 천재들을 수없이 봐왔었다.
[ ‘너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족쇄를 부숴버리고 더 높이 날아올라 그러면…’ ]
줄리아나가 돌연 음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 걱정되고 신경 쓰이는 남자를 곁에 꽁꽁 묶어두는 법을 알려줄게. ]
줄리아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 식은 언제가 좋으려나? ]
***
노아가 막 시련에 들어갈 그 시점.
잘그락.
“이걸 어쩌지?”
리안은 제 발목에 달린 족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발목에 족쇄까지 채워뒀음에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도구로 리안을 반쯤 감시하고 있기에 굳이 옆에 붙어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난리가 난 본부의 뒤처리를 위해 모두가 자리를 비운 탓이 컸다. 제스와 아이리스는 리안의 부탁으로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아마 세 시간 뒤쯤에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리안은 그 전에 노아를 만나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족쇄에 발목이 잡혀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걸 풀어야 사과를 하러 가든 말든 할 텐데…”
리안은 머릿속에 발목을 ‘또각!’하고 잘라낸 후 다시 붙이는 상상을 해봤다가, 피범벅인 침대 때문에 족쇄가 두 개가 되어버리는 엔딩이 떠올라 실행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괴이한 해결법이 많았지만, 실행으로 옮기면 난리가 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어쩌지? 노아가 오길 기다릴까?’
그리 생각하며 침대를 뒹굴자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리안의 방을 찾아왔다.
“들어와!”
신난 마음으로 그리 외치자.
끼이익…
문이 천천히 열리고 로브를 푹 눌러쓴 누군가가 느릿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탁.
‘…누구지?’
순간 ‘적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대는 수상한 기운을 물씬 풍겼다.
“아아…”
약간은 쉰 듯하지만 높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안님!”
“…?!”
너무 놀라면 말이 없어진다고. 리안이 딱 그런 상태였다.
타닷!
수상한 이는 순식간에 리안의 침대 옆으로 달려왔다.
펄럭, 그 반동으로 로브의 후드가 뒤로 휙 넘어갔다.
“어? 피아?”
“아아, 리안님!”
리안은 당황한 얼굴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피아를 바라보았다. 피아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그대로 상체를 앞으로 푹 숙여 ‘도게자’라고 불리는 자세로 몸을 납작 엎드렸다.
“…?”
피아는 무려 개그 주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개그 주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법 : 진짜 광기로 기선제압을 하자!
노아랑 피아가 헷갈리시는 분들이 많아서, 피아의 이름을 바꿀까 합니다.
(미아까지 나오면 기억상실 마법에 걸릴 수 있기에, 미아는 거의 등장시키지 않을 예정입니다. 등장하더라도 설명을 붙일 예정)
뭘로 바꿀지 고민중!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리안은 제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노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생각이었다.
리안이 흑마법사 미아의 실험실에서 잔혹한 실험을 당했다는 건 노아만 자세히 알지, 다른 아이들은 리안이 어떤 실험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들 리안이 자기희생적인 면모가 굉장히 강하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리안은 일상에서도 제 몸을 함부로 할 때가 많았다.
끓는 물의 온도를 측정하겠다고 냅다 손가락을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은 적도 있었고, 조리를 하던 중 몸에 상처가 생겨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과 놀다가 몸을 다쳐도 말하지 않고 꾹 참다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는 항상 맑게 웃고 있었지만, 속이 썩어 뭉그러져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들 웃으면서 3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리안이 아이들에게 오빠이자 형이었고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오빠니까, 형이니까, 아버지니까, 가족이니까.
그러니까 괜찮겠지.
그런 안일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배가 뻥 뚫린 리안이 돌아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결, 차갑게 식어가는 몸.
철없던 아이가 부모의 눈물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것처럼, 아이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절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어른”이, 소중한 “가족”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지한 것이다.
리안이 깨어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들의 불안감을 계속해서 치솟았고, 결국…
철컹.
노아가 리안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걸 막지 못했다.
***
“에휴…”
나는 침대에 축 늘어져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노아랑 싸워버렸어…’
솔직히 이걸 싸웠다고 보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싸웠다기보단… 혼났다는 쪽이 더 맞을 거다.
‘화 많이 난 거 같던데…어쩌지?’
딱히 노아에게 화가 나진 않았다. 항상 이성적이던 노아를 그 정도로 분노하고 걱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미안할 뿐이었다. 한편으론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래도 걱정 받으니까 뭔가 간질간질하네.’
이 말을 노아가 들으면 뚝배기가 깨질지도 모르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개그 세계에선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 걱정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뭔가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아 조금 들뜬다고 하면 -…
‘검으로 예쁘게 썰어질지도 모르니까 절대 말하지 말자.’
실없는 생각을 정리한 후, 노아와 화해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불이 전부 꺼진 어두운 방안, 노아는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이마를 올려놓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가슴을 압박하는 마도구와 붕대까지 풀어둔 상태라 가슴이 허벅지를 짓눌렀다.
[ 왜 또 동굴이가 됐어? ]
그런 노아에게 줄리아나가 날아와 말을 걸었다. 노아는 머리 위에 이불을 덮어쓴 채 탁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들어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제가 잘하고 있는 걸까요?”
[ 왜? 리안을 지키지 못해서 그래? ]
정곡을 쿡 찌르는 말에 노아가 입을 다물었다.
[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만약 네가 본관을 내버려 두고 별관으로 달려갔으면, 본관에 있던 녀석들 대다수가 몰살 당했을 거야. ]
“하지만…결국은 지키지 못했어요.”
[ 살아있잖아. 이제라도 지키면 돼. ]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요!”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높여 소리치곤, 본인이 더 놀라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소리질러서 죄송해요.”
[ 아니야. 속에 숨겨놓는 것보단 속 시원하게 말하는 게 낫지. ]
줄리아나가 노아의 옆에 앉아 고갯짓을 했다.
[ 마음 편하게 말해. 누구누구 씨처럼 힘들 때마다 숨겨놓지 말고. ]
줄리아나가 말하는 누구누구 씨는 리안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상처가 생겨도, 힘이 들어도 숨기기만 해서 속 터지게 하는 리안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노아는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전, 지금까지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리안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려고 노력했어요.”
[ 응, 열심히 했지. 잘하기도 했고. ]
“하지만 -..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리안을 도와주지 못했어요. 그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저는…”
[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
“하지만 제가 더 빨리 몬스터를 쓰러뜨렸다면 리안을.. 리안을 지키러 달려갈 수 있었을 거예요.”
뒤이어 ‘만약에’라는 가정이 물밑 듯이 밀려왔다.
만약에 내가 적을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만약에 리안을 본관에서 지내게 했다면.
만약에 본관을 더 잘 숨겨뒀더라면.
.
.
그런 말들이 자신을 상처입힐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었다.
줄리아나는 절망과 울음으로 물든 노아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행동이 ‘자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몇 번이고 상처 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벌을 주듯이.
[ 그렇다면 해결법은 하나네. ]
“예..?”
예상하지 못한 ‘해결법’이라는 말에 노아가 고개를 휙 돌려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 네가 말했잖아. 조금만 더 빨리 몬스터를 해치우고 리안을 찾아갔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
줄리아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허공에 둥둥 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그럼 해결법은 간단하지. 더욱더 강해지면 돼. ]
“더…강해져?”
[ 그래. ]
“하지만…”
노아는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노아는 2년 전부터 벽에 가로막혀 성장이 멈춘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더 강해지면 되지!’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를 더욱 절망에 빠뜨릴 뿐이었다.
[ 벽에 가로막혀서 그러지? ]
“…!”
[ 해결 방법이 있어. ]
“방법이..있어요?”
[ 그래. ]
줄리아나는 진지한 얼굴로 노아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해. ]
“상관없어요.”
펄럭!
노아는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치워버린 후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더 강해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리안을 지켜줄 수만 있다면.
[ …좋아. ]
줄리아나가 제 본체가 묶여있는 책을 노아의 앞에 내려놓았다.
촤르르륵!
[ 내가 겪었던 시련을 이겨낸다면 넌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대신.. 죽을 수도 있겠지. ]
책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 안에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외부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아.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차근차근 나아가. ]
걱정이 섞인 줄리아나의 말에 노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스승님.”
[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 ]
환한 빛무리에 삼켜진 노아는 몸을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누워버렸다. 그녀의 정신만이 시련으로 넘어간 탓이다.
[ ‘노아 넌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
절망에 발이 묶여 발걸음을 멈춘 순간, 노아는 자기 손으로 벽을 만들어 그곳에 갇혀 영원히 헤매다 쓰러질 것이다.
줄리아나는 과거 그런 천재들을 수없이 봐왔었다.
[ ‘너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족쇄를 부숴버리고 더 높이 날아올라 그러면…’ ]
줄리아나가 돌연 음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 걱정되고 신경 쓰이는 남자를 곁에 꽁꽁 묶어두는 법을 알려줄게. ]
줄리아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 식은 언제가 좋으려나? ]
***
노아가 막 시련에 들어갈 그 시점.
잘그락.
“이걸 어쩌지?”
리안은 제 발목에 달린 족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발목에 족쇄까지 채워뒀음에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도구로 리안을 반쯤 감시하고 있기에 굳이 옆에 붙어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난리가 난 본부의 뒤처리를 위해 모두가 자리를 비운 탓이 컸다. 제스와 아이리스는 리안의 부탁으로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아마 세 시간 뒤쯤에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리안은 그 전에 노아를 만나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족쇄에 발목이 잡혀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걸 풀어야 사과를 하러 가든 말든 할 텐데…”
리안은 머릿속에 발목을 ‘또각!’하고 잘라낸 후 다시 붙이는 상상을 해봤다가, 피범벅인 침대 때문에 족쇄가 두 개가 되어버리는 엔딩이 떠올라 실행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괴이한 해결법이 많았지만, 실행으로 옮기면 난리가 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어쩌지? 노아가 오길 기다릴까?’
그리 생각하며 침대를 뒹굴자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리안의 방을 찾아왔다.
“들어와!”
신난 마음으로 그리 외치자.
끼이익…
문이 천천히 열리고 로브를 푹 눌러쓴 누군가가 느릿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탁.
‘…누구지?’
순간 ‘적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대는 수상한 기운을 물씬 풍겼다.
“아아…”
약간은 쉰 듯하지만 높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안님!”
“…?!”
너무 놀라면 말이 없어진다고. 리안이 딱 그런 상태였다.
타닷!
수상한 이는 순식간에 리안의 침대 옆으로 달려왔다.
펄럭, 그 반동으로 로브의 후드가 뒤로 휙 넘어갔다.
“어? 피아?”
“아아, 리안님!”
리안은 당황한 얼굴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피아를 바라보았다. 피아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그대로 상체를 앞으로 푹 숙여 ‘도게자’라고 불리는 자세로 몸을 납작 엎드렸다.
“…?”
피아는 무려 개그 주민을 혼란에 빠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