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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시체처럼 잠들어 있던 소녀가 서서히 두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화악-
     
   눈이 시큰거릴 정도로 환한 빛에 미간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아….”
     
     
   하늘이다.
     
   지옥처럼 새까만 어둠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이다.
     
   눈이… 보인다.
     
     
   “아아….”
     
     
   나는 눈이 없는데.
     
   이게 보이면 안 되는 건데.
     
   바람결에 살랑이며 그림자를 흔드는 나무가 보인다.
     
   짹짹 노래 부르며 날아다니는 참새가 보인다.
     
   방울방울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 눈물을 닦아내는 새하얀 손등이 보인다.
     
   그리고 소년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던 소녀가 죽어버렸다.
     
   그가 죽인 것이다.
     
     
   “미아. 서미아.”
     
   웅얼웅얼.
     
   작은 목소리로 소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돌아온 시력처럼, 조금은 어눌하지만 멀쩡한 말이 튀어 나온다.
     
   언제나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던 가늘고 고운 목소리였다.
     
     
   역시나 꿈이 아닌 모양이다.
     
   미아의 소원으로 그녀의 몸을 빼앗아 버렸다는 게… 현실이었구나.
     
   후두둑,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흡-”
     
   애써 숨을 참아보지만, 훌쩍거리며 흘러나오는 눈물만큼은 어찌 막을 수가 없었다.
     
   소원의 대가로 두 눈을 바치고, 텅 비어버린 눈구멍에서 핏물이 줄줄 새어 나오던 때와 같았다.
     
   이 통증은….
     
   이 가슴이 쥐어짜이는 듯한 기분은.
     
   대체 어떤 소원의 대가로, 무엇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내가 살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미아가 희생된 걸까?
     
     
   소년은 저항하길 포기했다.
     
   상실은 인간이 저항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 모든 고통은 결국 그가 저지른 죗값일 뿐이다.
     
   소년을 감싸다 죽은 엄마, 아빠도 그렇고.
     
   괜히 그와 엮여 죽게 된 미아도 그렇고.
     
   모든 건 그의 잘못이다.
     
   그렇게 배웠다.
     
   모든 죄를 잊지 말고 속죄하며 살라고.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속죄하고, 부모님을 찾아 죽으려던 건데.
     
     
   -“죽지 마. 포기하지 말고, 이건 내 몸이니까 네 맘대로 쓰지 마. 이를 악물고 아껴줘. 나라고 생각하고 대하란 말이야.”
     
   미아의 소원이, 속삭임이 끊임없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이러면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잖아.
     
   그런데….
     
     
   “나, 이제 뭘 해야 해?”
     
   소년은 그저 멍했다.
     
   소매가 축축이 젖을 정도로 눈물을 쏟아낸 탓인지.
     
   그도 아니면 미아의 몸에 들어오며 어떤 문제가 생긴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응. 내가 죽지 않으면 미아도 살아 있는 거니까.”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괜찮을 거다.
     
   그래서 그냥 털썩, 제자리에 드러눕는다.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는 감정을 추슬러 보자.
     
     
   팔, 다리가 멀쩡하니까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사르르 풀어진다.
     
   포근한 느낌이 좋다.
     
   “미아도 같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헤헤….”
     
   풀의 촉감에, 손끝을 타고 오르는 개미의 간질거림에 어색한 웃음 짓는다.
     
     
   개미.
     
   이 작은 아이도 살아남기 위해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데.
     
   나는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가까이서 퍼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휘잉-! 바람과 함께 소녀의 팔 위로 착지한 참새가 개미를 쪼아 먹는다.
     
   으직, 꿀꺽.
     
   한 입이었다.
     
   “아하.”
     
   삶은 역시 부질없는 거구나.
     
   내가 살아남겠다고 뭘 해 봤자, 결국 더 큰 존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거구나.
     
     
   하기야 그랬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척 집에 넘겨지고.
     
   친척 집에서 웬 시골 교회당으로 넘겨지고.
     
   끝내 조직의 지하로 넘어오는 데까지 소녀의 의지는 아주 작은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데.”
     
   나도 이 참새를 잡아먹어야 할까?
     
     
   소녀가 빤히 참새를 바라본다.
     
   선명한 노란 눈빛을 마주한 참새가 짹짹거리며 고개를 기울인다.
     
   “…따라 하는 거야?”
     
   소녀의 눈짓에 따라 좌로, 우로.
     
   “헉! 내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니지?”
     
   깜짝 놀라 어깨를 바르르 떨자, 참새 역시 몸을 바르르 떨며 지저귄다.
     
   짹짹-
     
   “으응. 그래도 역시 널 죽이진 못하겠다.”
     
   마치 대답 같았던 참새의 울음 때문일까.
     
   소녀는 나쁜 마음을 깨끗이 날려버렸다.
     
   대신 조심스레 손을 뻗어 땅 위를 발발 기어가던 개미를 주워 참새에게 내민다.
     
   짹짹-
     
   작은 참새가 주둥이만 뻗어 연달아 개미를 집어 먹는다.
     
   그러며 경계심이 옅어진 듯, 점차 소녀의 어깨 위로 가까이 다가왔다.
     
   배가 부른 듯 짹짹- 전보다 한층 우렁찬 울음에 나무 위에 앉아있던 다른 참새들까지 포르르 날아와 소녀의 팔 위로 내려앉는다.
     
     
   주먹만 한 덩치의 첫 번째 참새.
     
   아빠 참새 같으니까… 아참이라고 부르자.
     
   아참보다 조금 작은 두 번째 참새는 엄마 참새겠지?
     
   그러니 엄참이라고 부르자.
     
   마지막의 개미를 잡아먹고 배가 빵빵해진 자그마한 참새.
     
   새끼 참새 같으니까 새참이라고 부르자.
     
     
   “너희도 소원이 있을까?”
     
   소녀의 물음에 세 마리 참새가 약속한 듯, 동시에 고개를 기울인다.
     
   “프흐, 진짜 말 알아듣는 건 아니지? 다른 친구들은 더 안 데려와?”
     
   나무 위에는 아직 다른 참새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참새가 많았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아이들은 뭔가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지 지긋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저기 먹을 거라도 있는 거야?”
     
     
   어쩌면 말로만 듣던 해바라기밭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손도손 행복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있을지도.
     
   지하에서 봐왔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져서 돌아갔으니까.
     
   지하로 오지 않았던 사람들은 더욱 행복하겠지?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타앙-!
     
   “꺅!”
     
   요란한 소리가 천둥처럼 주변 공기를 울렸다.
     
   깜짝 놀란 소녀가 몸을 벌떡 일으키고.
     
   소녀의 팔에 앉아있던 참새들, 그리고 나무 위에 있던 참새들이 일순간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일까.
     
   동물 친구를 사귈 기회였는데.
     
   소녀가 멍하니 허공을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려 보지만, 참새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낯선 목소리가 웅웅대며 메아리친다.
     
     
   “이 개 같은 참새 새끼들이! 내가 오늘 늬들 다 잡아서 꼬치 만들 때까진 안 돌아간다! 암! 감히 누구 걸 훔쳐먹으려고!”
   “흐윽!”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
     
   그녀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손찌검하던 고모의 목소리가 꼭 저러했다.
     
   소녀의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고모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제 부모를 잡아먹은 새끼가! 넌 죽은 네 부모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뭘 잘했다고 하는 것도 없이 삼시세끼를 처먹어!”
     
   고모부.
     
   -“이게 다 …군이 저지른 원죄 때문입니다! 속죄하십시오!”
     
   전도자님.
     
   -“씨이발! 실수할 게 따로 있지! 속죄하고 싶다며?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며, 이 개 같은 애새끼야!”
     
   관리자님.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던 때는 항상 그만한 폭력이 동반됐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나, 난 죽으면 안 되는데.
     
   계속되는 총소리와 고함, 욕설에 소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깨만 움찔거렸다.
     
     
   도망?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데?
     
   어차피 도망쳐도 소용없잖아.
     
   도망치다가 붙잡히면 더 크게 혼날 뿐인데.
     
   두 눈이 팽팽 돈다.
     
   미친 듯이 두근대는 심장에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어쩐지 정수리가 따끔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짹짹-!
     
   “아?”
     
   잘못 느낀 게 아니구나!
     
   어느새 돌아온 건지, 세 마리의 참새가 소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 이쪽으로 가라는 거야?”
     
   짹짹-!
     
   파란 머리카락이 낚싯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는데.
     
   “알았어!”
     
   소녀는 참새들의 다급한 날갯짓을 보고는 아이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타앙-!
     
   “옳지! 왕년 특등사수 어디 안 가지!”
     
   뒤에서부터 껄껄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퍽, 퍽 거리며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였다.
     
     
   소녀는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그새 작은 목숨이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삶에 대한 미련, 원망, 슬픔….
     
   그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끔찍한 살육이었다.
     
   지금이라도 멈춰서 능력을 쓰면, 저 사람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짹짹-!
     
   아참, 엄참, 새참 참새 가족의 재촉.
     
   그리고 제 몸을 아껴달라던 미아의 부탁이 떠오르자 도무지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나뭇가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나뭇잎을 밟고 미끄러져 데굴데굴 구르고.
     
   타앙! 타앙! 타앙!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헉, 헉, 허억….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거친 숨을 몰아쉰다.
     
   온몸이 피와 멍투성이에 끔찍한 통증이 느껴진다.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걸까.
     
   지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게 아니었던 건가?
     
     
   “역시, 내가 저 사람을 위해 소원을 빌었어야 했는데….”
     
   소녀가 본능적으로 중얼거리던 때였다.
     
   “아! 야! 이 미친 새끼야! 내 몸이 이게 뭐야!”
     
   소녀는 분명, 입을 다물고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너무나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아?”
     
   이건 미아의 목소리인데?
     
   “어디 있어?”
     
   휙,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다급히 고개를 돌려봐도 보이는 거라곤 참새 가족뿐이다.
     
     
   “헉! 서, 설마 네가 미아니?!”
     
   쿠궁! 소녀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이 작은 참새가 미아의 환생이었구나!
     
   “미아!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겨우 멎었던 눈물이 퐁퐁 솟아오른다.
     
   소녀는 제 어깨 위에 앉은 아참이를 조심스레 들어 머리를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손길에 참새가 고개를 까딱이며 새까만 눈동자를 게슴츠레 감는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너 돌았니? 어떻게 저 새 새끼랑 나를 착각할 수가 있어?!”
     
   어라, 아니었나?
     
   소녀가 고개를 좌로 기울이자, 아참이 역시 고개를 좌로 기운다.
     
   흠.
     
   아무리 봐도 똑똑한 게 평범한 동물은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미아의 성격이었으면 이렇게 말을 잘 들을 리가 없었겠구나.
     
   진실을 깨달은 소녀가 헤헤-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인다.
     
   참새가 머리카락을 얼마나 당겨댔는지 아직도 두피가 따끔거렸다.
     
     
   “하, 됐어. 초등학교도 못 나온 바보한테 내가 뭘 바라겠어. 그래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구른 건데?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었던 거야?”
     
   입이 제멋대로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머릿속에서 들리던 때와 달리 확실한 육성.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기분 나쁜 느낌은 아니다.
     
     
   “미아야… 이거 내 입인데?”
   “내 입이기도 하거든!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미아가, 몸속에서 살아 있었구나.
     
   그녀의 몸을 차지했지만, 정신은 남아 있던 거구나.
     
   뒤늦은 죄책감이 치민다.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으니.
     
   여자들에게 피부가 중요하다는 건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해….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도망치느라….”
     
   그런 그의 곧바른 사과에 미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낄 뿐이었다.
     
   자살하려던 게 아니라면 상관없다.
     
   “흥, 이런 건 상처도 아니지.”
     
   그리고 상처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아아- 녹색 기운이 몰려들더니 생채기와 멍이 사라지고, 뽀얀 살결이 되돌아온다.
     
   팔다리뿐만이 아니다.
     
   넘어지다가 돌에 박은 건지 배가 알싸하게 아팠는데.
     
   훌렁- 상의를 들어 올려 보자, 군살 하나 없는 복부 역시 깨끗이 나아 있었다.
     
   이게… 각성자 이미아의 능력?
     
   “미아야 너 대단…!”
     
   감탄한 그가 막 목소리를 높이던 때였다.
     
   “미친 새끼야! 남의 배는 왜 들여다봐! 변태야?!”
     
   팔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가슴께까지 들어 올려졌던 상의를 다급히 끌어 내렸다.
     
   그리고 와다다 잔소리가 시작됐다.
     
     
   “너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내 몸으로 이상한 짓 하지 마.”
   “이상한 짓?”
     
   “또 이렇게 다쳐도 가만히 안 있을 거고.”
   “…또?”
     
   “그리고… 아, 시간이 없네. 제일 중요한 건 밥 굶지 마. 밥! 무조건! 챙겨! 먹어! 알았지?”
     
   이렇게 예쁜 목소리가 있을까 싶던 미아의 목소리였는데, 귀가 아플 정도의 잔소리였다.
     
   하지만 미아의 의식이 온전하지는 못한 듯.
     
   “미아? 미아야?”
     
   그녀는 뜬금없이 나타났던 때처럼 아무 전조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하지만, 상처도 사라졌고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꿈이… 아니라는 거겠지.
     
   미아가 살아 있다면 그 역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너희는… 나랑 같이 있어 줄 거지…?”
     
   소녀가 조심스레 새참이를 손에 얹어 볼을 비볐다.
     
   짹짹-!
     
   새참이가 기겁하며 고개를 비틀지만, 도망치진 않는다.
     
   역시 똑똑한 아이구나.
     
     
   소녀는 벌떡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먹을 걸 찾으라고 했지?
     
   그런데,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주변을 뒤져보자.
     
   지하에서는 매번 알아서 밥을 가져다줬는데.
     
   저기 난 버섯은 먹어도 되는 걸까?
     
   잠시간 고민하던 소녀가 슬그머니 손을 뻗는다.
     
   하얗고 깨끗해 보이는 데다 크기도 커서 먹어도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다.
     
     
   툭-
     
   손끝으로 건드려 보자 말랑거리는 촉감이 느껴진다.
     
   얼마나 탱탱한지 건들 때마다 통통 튀어 오르는 게 꽤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먹어도 될 거다.
     
     
   투둑.
     
   소녀가 큼지막한 버섯 하나를 뜯어 들었다.
     
   짹짹! 째액!
     
   열심히 날아오느라 참새 가족도 배가 고파진 건지, 자꾸만 소녀의 손을 툭툭 건들며 버섯을 빼앗으려 든다.
     
   “안 돼. 나도 먹어야 해.”
     
   소녀는 참새들을 밀어내며 킁킁 버섯의 냄새를 확인했다.
     
   흙냄새가 난다.
     
   버섯을 씻을 데가 있을까?
     
   둘러봤지만, 물은 보이지 않는다.
     
   “음… 흙은 먹어도 문제없었으니까 괜찮겠지.”
     
   상의 셔츠에 대충 슥슥 닦자, 생각보다 더 새하얀 표면이 꽤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아앙-”
     
   냠.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우산처럼 생긴 머리 부분이 똑- 떼어졌고.
     
   우물우물 씹자 탱탱한 식감과 씁쓸한 맛이 일품이다.
     
   꿀꺽,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
     
   흙도 안 씹힌다.
     
   그래서 기둥 부분도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짹짹짹짹-! 째애액-!
     
   혼자만 먹느냐고 화내는 건지, 참새 가족이 머리를 쪼고 열심히 춤을 추며 불만을 표했다.
     
   “우웅, 나 다 먹고, 너희도 챙겨줄게. 기다려.”
     
     
   물론 버섯 하나로는 부족하다.
     
   미아가 무조건 밥을 챙겨 먹으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으니까.
     
   적어도 배가 부를 때까진 먹어야겠지.
     
     
   소녀는 해가 저무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열심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하얀 버섯을 주워 먹었다.
     
   “…으?”
     
   이상을 느낀 건, 해가 다 진 어두컴컴한 밤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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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처럼 잠들어 있던 소녀가 서서히 두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화악-

눈이 시큰거릴 정도로 환한 빛에 미간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아….”

하늘이다.

지옥처럼 새까만 어둠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이다.

눈이… 보인다.

“아아….”

나는 눈이 없는데.

이게 보이면 안 되는 건데.

바람결에 살랑이며 그림자를 흔드는 나무가 보인다.

짹짹 노래 부르며 날아다니는 참새가 보인다.

방울방울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 눈물을 닦아내는 새하얀 손등이 보인다.

그리고 소년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던 소녀가 죽어버렸다.

그가 죽인 것이다.

“미아. 서미아.”

웅얼웅얼.

작은 목소리로 소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돌아온 시력처럼, 조금은 어눌하지만 멀쩡한 말이 튀어 나온다.

언제나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던 가늘고 고운 목소리였다.

역시나 꿈이 아닌 모양이다.

미아의 소원으로 그녀의 몸을 빼앗아 버렸다는 게… 현실이었구나.

후두둑,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흡-”

애써 숨을 참아보지만, 훌쩍거리며 흘러나오는 눈물만큼은 어찌 막을 수가 없었다.

소원의 대가로 두 눈을 바치고, 텅 비어버린 눈구멍에서 핏물이 줄줄 새어 나오던 때와 같았다.

이 통증은….

이 가슴이 쥐어짜이는 듯한 기분은.

대체 어떤 소원의 대가로, 무엇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내가 살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미아가 희생된 걸까?

소년은 저항하길 포기했다.

상실은 인간이 저항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 모든 고통은 결국 그가 저지른 죗값일 뿐이다.

소년을 감싸다 죽은 엄마, 아빠도 그렇고.

괜히 그와 엮여 죽게 된 미아도 그렇고.

모든 건 그의 잘못이다.

그렇게 배웠다.

모든 죄를 잊지 말고 속죄하며 살라고.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속죄하고, 부모님을 찾아 죽으려던 건데.

-“죽지 마. 포기하지 말고, 이건 내 몸이니까 네 맘대로 쓰지 마. 이를 악물고 아껴줘. 나라고 생각하고 대하란 말이야.”

미아의 소원이, 속삭임이 끊임없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이러면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잖아.

그런데….

“나, 이제 뭘 해야 해?”

소년은 그저 멍했다.

소매가 축축이 젖을 정도로 눈물을 쏟아낸 탓인지.

그도 아니면 미아의 몸에 들어오며 어떤 문제가 생긴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응. 내가 죽지 않으면 미아도 살아 있는 거니까.”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괜찮을 거다.

그래서 그냥 털썩, 제자리에 드러눕는다.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는 감정을 추슬러 보자.

팔, 다리가 멀쩡하니까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사르르 풀어진다.

포근한 느낌이 좋다.

“미아도 같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헤헤….”

풀의 촉감에, 손끝을 타고 오르는 개미의 간질거림에 어색한 웃음 짓는다.

개미.

이 작은 아이도 살아남기 위해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데.

나는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가까이서 퍼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휘잉-! 바람과 함께 소녀의 팔 위로 착지한 참새가 개미를 쪼아 먹는다.

으직, 꿀꺽.

한 입이었다.

“아하.”

삶은 역시 부질없는 거구나.

내가 살아남겠다고 뭘 해 봤자, 결국 더 큰 존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거구나.

하기야 그랬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척 집에 넘겨지고.

친척 집에서 웬 시골 교회당으로 넘겨지고.

끝내 조직의 지하로 넘어오는 데까지 소녀의 의지는 아주 작은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데.”

나도 이 참새를 잡아먹어야 할까?

소녀가 빤히 참새를 바라본다.

선명한 노란 눈빛을 마주한 참새가 짹짹거리며 고개를 기울인다.

“…따라 하는 거야?”

소녀의 눈짓에 따라 좌로, 우로.

“헉! 내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니지?”

깜짝 놀라 어깨를 바르르 떨자, 참새 역시 몸을 바르르 떨며 지저귄다.

짹짹-

“으응. 그래도 역시 널 죽이진 못하겠다.”

마치 대답 같았던 참새의 울음 때문일까.

소녀는 나쁜 마음을 깨끗이 날려버렸다.

대신 조심스레 손을 뻗어 땅 위를 발발 기어가던 개미를 주워 참새에게 내민다.

짹짹-

작은 참새가 주둥이만 뻗어 연달아 개미를 집어 먹는다.

그러며 경계심이 옅어진 듯, 점차 소녀의 어깨 위로 가까이 다가왔다.

배가 부른 듯 짹짹- 전보다 한층 우렁찬 울음에 나무 위에 앉아있던 다른 참새들까지 포르르 날아와 소녀의 팔 위로 내려앉는다.

주먹만 한 덩치의 첫 번째 참새.

아빠 참새 같으니까… 아참이라고 부르자.

아참보다 조금 작은 두 번째 참새는 엄마 참새겠지?

그러니 엄참이라고 부르자.

마지막의 개미를 잡아먹고 배가 빵빵해진 자그마한 참새.

새끼 참새 같으니까 새참이라고 부르자.

“너희도 소원이 있을까?”

소녀의 물음에 세 마리 참새가 약속한 듯, 동시에 고개를 기울인다.

“프흐, 진짜 말 알아듣는 건 아니지? 다른 친구들은 더 안 데려와?”

나무 위에는 아직 다른 참새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참새가 많았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아이들은 뭔가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지 지긋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저기 먹을 거라도 있는 거야?”

어쩌면 말로만 듣던 해바라기밭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손도손 행복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있을지도.

지하에서 봐왔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져서 돌아갔으니까.

지하로 오지 않았던 사람들은 더욱 행복하겠지?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타앙-!

“꺅!”

요란한 소리가 천둥처럼 주변 공기를 울렸다.

깜짝 놀란 소녀가 몸을 벌떡 일으키고.

소녀의 팔에 앉아있던 참새들, 그리고 나무 위에 있던 참새들이 일순간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일까.

동물 친구를 사귈 기회였는데.

소녀가 멍하니 허공을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려 보지만, 참새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낯선 목소리가 웅웅대며 메아리친다.

“이 개 같은 참새 새끼들이! 내가 오늘 늬들 다 잡아서 꼬치 만들 때까진 안 돌아간다! 암! 감히 누구 걸 훔쳐먹으려고!”

“흐윽!”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

그녀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손찌검하던 고모의 목소리가 꼭 저러했다.

소녀의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고모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제 부모를 잡아먹은 새끼가! 넌 죽은 네 부모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뭘 잘했다고 하는 것도 없이 삼시세끼를 처먹어!”

고모부.

-“이게 다 …군이 저지른 원죄 때문입니다! 속죄하십시오!”

전도자님.

-“씨이발! 실수할 게 따로 있지! 속죄하고 싶다며?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며, 이 개 같은 애새끼야!”

관리자님.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던 때는 항상 그만한 폭력이 동반됐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나, 난 죽으면 안 되는데.

계속되는 총소리와 고함, 욕설에 소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깨만 움찔거렸다.

도망?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데?

어차피 도망쳐도 소용없잖아.

도망치다가 붙잡히면 더 크게 혼날 뿐인데.

두 눈이 팽팽 돈다.

미친 듯이 두근대는 심장에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어쩐지 정수리가 따끔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짹짹-!

“아?”

잘못 느낀 게 아니구나!

어느새 돌아온 건지, 세 마리의 참새가 소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 이쪽으로 가라는 거야?”

짹짹-!

파란 머리카락이 낚싯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는데.

“알았어!”

소녀는 참새들의 다급한 날갯짓을 보고는 아이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타앙-!

“옳지! 왕년 특등사수 어디 안 가지!”

뒤에서부터 껄껄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퍽, 퍽 거리며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였다.

소녀는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그새 작은 목숨이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삶에 대한 미련, 원망, 슬픔….

그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끔찍한 살육이었다.

지금이라도 멈춰서 능력을 쓰면, 저 사람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짹짹-!

아참, 엄참, 새참 참새 가족의 재촉.

그리고 제 몸을 아껴달라던 미아의 부탁이 떠오르자 도무지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나뭇가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나뭇잎을 밟고 미끄러져 데굴데굴 구르고.

타앙! 타앙! 타앙!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헉, 헉, 허억….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거친 숨을 몰아쉰다.

온몸이 피와 멍투성이에 끔찍한 통증이 느껴진다.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걸까.

지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게 아니었던 건가?

“역시, 내가 저 사람을 위해 소원을 빌었어야 했는데….”

소녀가 본능적으로 중얼거리던 때였다.

“아! 야! 이 미친 새끼야! 내 몸이 이게 뭐야!”

소녀는 분명, 입을 다물고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너무나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아?”

이건 미아의 목소리인데?

“어디 있어?”

휙,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다급히 고개를 돌려봐도 보이는 거라곤 참새 가족뿐이다.

“헉! 서, 설마 네가 미아니?!”

쿠궁! 소녀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이 작은 참새가 미아의 환생이었구나!

“미아!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겨우 멎었던 눈물이 퐁퐁 솟아오른다.

소녀는 제 어깨 위에 앉은 아참이를 조심스레 들어 머리를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손길에 참새가 고개를 까딱이며 새까만 눈동자를 게슴츠레 감는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너 돌았니? 어떻게 저 새 새끼랑 나를 착각할 수가 있어?!”

어라, 아니었나?

소녀가 고개를 좌로 기울이자, 아참이 역시 고개를 좌로 기운다.

흠.

아무리 봐도 똑똑한 게 평범한 동물은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미아의 성격이었으면 이렇게 말을 잘 들을 리가 없었겠구나.

진실을 깨달은 소녀가 헤헤-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인다.

참새가 머리카락을 얼마나 당겨댔는지 아직도 두피가 따끔거렸다.

“하, 됐어. 초등학교도 못 나온 바보한테 내가 뭘 바라겠어. 그래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구른 건데?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었던 거야?”

입이 제멋대로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머릿속에서 들리던 때와 달리 확실한 육성.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기분 나쁜 느낌은 아니다.

“미아야… 이거 내 입인데?”

“내 입이기도 하거든!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미아가, 몸속에서 살아 있었구나.

그녀의 몸을 차지했지만, 정신은 남아 있던 거구나.

뒤늦은 죄책감이 치민다.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으니.

여자들에게 피부가 중요하다는 건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해….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도망치느라….”

그런 그의 곧바른 사과에 미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낄 뿐이었다.

자살하려던 게 아니라면 상관없다.

“흥, 이런 건 상처도 아니지.”

그리고 상처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아아- 녹색 기운이 몰려들더니 생채기와 멍이 사라지고, 뽀얀 살결이 되돌아온다.

팔다리뿐만이 아니다.

넘어지다가 돌에 박은 건지 배가 알싸하게 아팠는데.

훌렁- 상의를 들어 올려 보자, 군살 하나 없는 복부 역시 깨끗이 나아 있었다.

이게… 각성자 이미아의 능력?

“미아야 너 대단…!”

감탄한 그가 막 목소리를 높이던 때였다.

“미친 새끼야! 남의 배는 왜 들여다봐! 변태야?!”

팔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가슴께까지 들어 올려졌던 상의를 다급히 끌어 내렸다.

그리고 와다다 잔소리가 시작됐다.

“너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내 몸으로 이상한 짓 하지 마.”

“이상한 짓?”

“또 이렇게 다쳐도 가만히 안 있을 거고.”

“…또?”

“그리고… 아, 시간이 없네. 제일 중요한 건 밥 굶지 마. 밥! 무조건! 챙겨! 먹어! 알았지?”

이렇게 예쁜 목소리가 있을까 싶던 미아의 목소리였는데, 귀가 아플 정도의 잔소리였다.

하지만 미아의 의식이 온전하지는 못한 듯.

“미아? 미아야?”

그녀는 뜬금없이 나타났던 때처럼 아무 전조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하지만, 상처도 사라졌고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꿈이… 아니라는 거겠지.

미아가 살아 있다면 그 역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너희는… 나랑 같이 있어 줄 거지…?”

소녀가 조심스레 새참이를 손에 얹어 볼을 비볐다.

짹짹-!

새참이가 기겁하며 고개를 비틀지만, 도망치진 않는다.

역시 똑똑한 아이구나.

소녀는 벌떡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먹을 걸 찾으라고 했지?

그런데,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주변을 뒤져보자.

지하에서는 매번 알아서 밥을 가져다줬는데.

저기 난 버섯은 먹어도 되는 걸까?

잠시간 고민하던 소녀가 슬그머니 손을 뻗는다.

하얗고 깨끗해 보이는 데다 크기도 커서 먹어도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다.

툭-

손끝으로 건드려 보자 말랑거리는 촉감이 느껴진다.

얼마나 탱탱한지 건들 때마다 통통 튀어 오르는 게 꽤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먹어도 될 거다.

투둑.

소녀가 큼지막한 버섯 하나를 뜯어 들었다.

짹짹! 째액!

열심히 날아오느라 참새 가족도 배가 고파진 건지, 자꾸만 소녀의 손을 툭툭 건들며 버섯을 빼앗으려 든다.

“안 돼. 나도 먹어야 해.”

소녀는 참새들을 밀어내며 킁킁 버섯의 냄새를 확인했다.

흙냄새가 난다.

버섯을 씻을 데가 있을까?

둘러봤지만, 물은 보이지 않는다.

“음… 흙은 먹어도 문제없었으니까 괜찮겠지.”

상의 셔츠에 대충 슥슥 닦자, 생각보다 더 새하얀 표면이 꽤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아앙-”

냠.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우산처럼 생긴 머리 부분이 똑- 떼어졌고.

우물우물 씹자 탱탱한 식감과 씁쓸한 맛이 일품이다.

꿀꺽,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

흙도 안 씹힌다.

그래서 기둥 부분도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짹짹짹짹-! 째애액-!

혼자만 먹느냐고 화내는 건지, 참새 가족이 머리를 쪼고 열심히 춤을 추며 불만을 표했다.

“우웅, 나 다 먹고, 너희도 챙겨줄게. 기다려.”

물론 버섯 하나로는 부족하다.

미아가 무조건 밥을 챙겨 먹으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으니까.

적어도 배가 부를 때까진 먹어야겠지.

소녀는 해가 저무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열심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하얀 버섯을 주워 먹었다.

“…으?”

이상을 느낀 건, 해가 다 진 어두컴컴한 밤중이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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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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