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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까무룩 의식을 잃었던 소녀가 정신을 되찾은 건 그로부터 몇 분 뒤였다.
     
     
   “이단….”
     
   웅얼웅얼.
     
   잠결에 저도 모르게 중얼대며 슬그머니 떠올린 눈.
     
   이게 과연 같은 인간의 눈인가 싶은 샛노란 시선이 사방을 훑자, 자명 스님은 곧장 수저를 들이민다.
     
   아직 소녀가 정신 차리지 못한 지금이 기회다.
     
   자그마한 코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음식 냄새가 퍼져 나갔다.
     
   “밥….”
     
   뜨끈한 흰쌀밥의 고소한 냄새와, 그 위에 얹어진 흰살생선의 짭조름한 냄새.
     
   꼬르르륵-!
     
   소녀의 배가 요동쳤다.
     
   여태 멀쩡한 밥을 먹은 적이 있던가?
     
   아니.
     
   걸핏하면 독버섯에, 상한 음식을 먹고 토하고 배탈 나기 일쑤였다.
     
     
   스으윽-
     
   몸을 일으킨 소녀가 생각할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앙- 수저를 집어삼킨다.
     
   “옳지. 천천히 먹거라.”
     
   자명 스님의 자장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소녀가 우물우물 밥을 씹기 시작한다.
     
   그렇게 꿀꺽.
     
   “헤……?”
     
   달다.
     
   너무 달고, 맛있어서 눈물이 찔끔 나오고 침이 가득 고인다.
     
   소녀는 뜨끈한 밥이 목을 넘어간 뒤에야 화들짝! 정신을 되찾았다.
     
     
   “독! 이, 이걸로 제게 뭘 요구하시려고 해도 안 할 거예요!”
     
   큰일이다!
     
   지하에서 맛있는 음식은 곧 무리한 부탁을 의미했다.
     
   소녀의 능력으로도 섣불리 손대기 힘든 정도의 부탁.
     
   그럴 때면 소원의 대가로 장기를 바치거나, 팔다리 같은 신체 부위가 통째로 날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미아의 몸으로 그런 무리한 부탁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소녀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려던 순간이었다.
     
     
   “이거론 부족하지 않으냐. 일어나거라. 가서 같이 밥을 먹자꾸나.”
     
   자명 스님의 이야기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벌컥 열리는 문.
     
   그 너머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냄새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어라…?
     
   공기가 이렇게 달고 맛있었나?
     
   이런 냄새는 난생처음이다.
     
   킁킁, 킁.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냄새를 따라 코를 움직인다.
     
   꿀꺽.
     
   침샘이 고장 난 듯, 미친 듯이 고이는 침에 물을 따로 마시지 않아도 될 정도다.
     
   참다못한 소녀가 슬그머니 자명을 바라본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마음이 꺾였다.
     
   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자그마한 소원쯤은 들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응.
     
   미아도 밥은 제때, 제대로 배부를 때까지 먹으라고 했잖아?
     
     
   전보다 경계심이 한층 꺾인 듯한 물음에 자명 스님이 허허 부드러운 웃음을 터뜨린다.
     
   “아가. 내 부탁은 아가가 밥을 먹는 것이란다.”
   “…네?”
     
   밥을 먹는 게 부탁이라고?
     
   소녀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 역시 난생처음 듣는 부탁이었다.
     
   “가자. 나도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겠구나. 같이 가서 먹자꾸나.”
     
   진심일까?
     
   이러고 지하로 끌려가는 건 아니겠지?
     
   계속해서 의심이 치밀지만, 소녀의 반응은 솔직했다.
     
   그 따스한 온기,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 소녀가 자명 스님의 뒤를 따라 걷는다.
     
   아직 경계심이 가득한 듯, 거리를 벌린 채 따라오는 모습이지만.
     
   자명 스님은 이조차 기꺼웠다.
     
   혹시나 아이가 또다시 기절하진 않을까, 식당은 비워둔 지 한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식사 시간을 바꿔야 하는 스님들이었지만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그야 이처럼 작은 아이가 끼니조차 제대로 때우지 못했다는 데, 어른이 배려해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자, 네 음식이란다.”
     
   좌식 식탁 앞.
     
   자명 스님은 소녀의 앞으로 몇 개의 그릇을 끌어당겨 주었다.
     
   “…이, 이게 다 제 거?!”
     
   소녀는 기함했다.
     
   이건, 이건 너무 많지 않은가…?
     
   “허허허, 성장기에는 많이 먹어야 하는 법.”
     
   뭔가 이상할 정도였다.
     
     
   자명 스님의 앞에는 국과 밥, 그리고 파랗고 노랗고 하얀 풀떼기만 놓여 있는데.
     
   소녀의 앞에는 두 배 크기의 국과 밥, 그리고 기름기가 쫙 빠진 새하얀 생선 살이 곱게 발라져 있었다.
     
   그렇다.
     
   스님들이 저는 먹지도 못하는 생선을 돋보기안경까지 끼고 가시 하나까지 발라내 놓은 것이었다.
     
     
   이걸, 정말 내가 먹어도 될까?
     
   누가 봐도 정성 가득한 식탁.
     
   매번 개밥그릇에 섞여 나오던 식사를 생각해 보면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다.
     
   “어허, 어서 먹지 않고 뭐 하느냐. 이 노인이 굶어 죽길 기다리려고?”
   “아! 아니에요! 먹을게요!”
     
   아무리 그래도 노인을 굶어 죽게 둘 수는 없다!
     
   결국, 눈치만 살살 살피던 소녀가 조심스레 밥을 떠먹기 시작한다.
     
   생선 살에 눈이 가지만, 괜히 미안해서 맨밥만 떠 올린 첫 숟갈.
     
   그러나 그조차 감지덕지다.
     
   입 안을 덥히는 온기, 꼬들꼬들하고 고소한 향기에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다.
     
   이, 이교도들은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살았구나!
     
   어쩐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했어!
     
     
   훌쩍-
     
   괜히 코를 들이키며 갈색의 국을 한 모금 들이켠다.
     
   살짝 매콤하지만, 달짝지근하고 고소하기도 하다.
     
   “푹푹 퍼먹거라. 된장을 그리 홀짝대서야 뭔 맛이 나겠느냐.”
     
   결국 자명은 그 꼴을 가만두고 보지 않았다.
     
   푸욱-
     
   숟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 올린 밥 위로 손수 손가락만큼 커다란 새하얀 생선 살을 얹는다.
     
   “아- 하거라.”
   “아?”
     
   그렇게 밥을 소녀의 입 안에 쑤셔 넣자, 소녀의 볼이 빵빵하니 부풀어 오른다.
     
   “허허, 자. 이제 목이 막히지 않느냐. 그러면 국을 이렇게 들이켜면 된다.”
     
   자명은 곧장 시범 보이듯, 된장국을 들어 숭늉 마시듯 들이킨다.
     
   “우움, 움-”
     
   차마 씹지 않은 밥을 그냥 넘기지 못한 소녀가 자명을 따라 된장국을 들이켠다.
     
   꿀꺽-
     
   “헉…!”
     
   뜨겁다.
     
   그런데… 맛있다.
     
   이 국이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이게… 음식?!
     
   이교도들… 대단해…!
     
     
   소녀의 숟가락질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밥을 뜨고, 고기를 줍고.
     
   기계적일 정도로 반복적인 식사가 계속된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독!”
     
   소녀가 발작을 일으켰다.
     
   “독? 아가?”
     
   미치광이 땡중이 음식에 독을 섞은 탓은 아니었다.
     
   단지, 자명 스님이 떠올린 팽이버섯이 소녀의 눈에 띈 탓이었다.
     
   “독버섯이에요! 먹으면 안 돼요!”
     
   그간 저 하얀 버섯을 먹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아무리 이단에 정체 모를 수상한 노인이라 해도, 독을 먹게 둘 수는 없다!
     
   다급히 젓가락을 뻗은 소녀가 자명의 팽이버섯을 뺏어 툭- 식탁 위로 던졌다.
     
   바퀴벌레라도 보듯 혐오스러운 시선은 덤이었다.
     
     
   “허… 허허허허….”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처음 겪는 상황.
     
   자명 스님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참, 저렇게 귀엽고 순수한 아이가 어찌 그런 꼴로 있던 건지.
     
   “나를 걱정해 준 게냐?”
   “먹으면, 많이 아파요! 죽을지도 몰라요!”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였다.
     
   자명뿐만이 아니었다.
     
   “컥, 커헉…! 도, 독버섯을 먹었다고? 다, 당장 응급실로…”
   “지, 진정하세요! 무애 스님! 혈압으로 넘어가십니다!”
     
   소녀의 식사가 너무도 궁금했던 탓에 문 너머에 귀를 기대고 있던 스님들까지 깜짝 놀라 뒤로 까무러졌다.
     
   누군가는 소녀가 독버섯을 먹었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버섯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순수함에.
     
   정작 당사자인 소녀는 왜 이렇게 주변에서 컥컥대며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지 알지 못했다.
     
   설마… 다들 독버섯인 줄 모르고 먹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소녀가 안절부절못하며 손발을 꼼지락댄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색.
     
     
   자명은 그제야 겨우 웃음을 멈추고는 젓가락을 들어 올린다.
     
   “아가. 이건 독버섯이 아니란다.”
     
   그대로 보란 듯, 쓸쓸하게 식탁 위로 널브러진 팽이버섯을 주워 한입에 삼킨다.
     
   “허억!”
     
   그를 말리려 했던 것인지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채 굳어버린 소녀.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자명의 입 안에서 오도독거리는 버섯 씹는 소리가 이어진다.
     
   이러면 소원이라도 빌어서 독을 없애야 하는데…!
     
   움찔, 움찔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킬 듯 떨리는 소녀의 어깨.
     
   “보았지? 이건 식용 버섯이라 먹어도 괜찮은 것이야. 그리고, 모두가 고생해서 얻은 음식을 함부로 버리거나 남기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자명 스님은 그런 소녀의 속내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이 정도면 아이도 잘 알아들었겠지.
     
   뿌듯하게 웃으며 보란 듯 또 다른 팽이버섯을 떠먹기 시작한다.
     
     
   그쯤 되니 소녀는 팽이버섯이 독버섯이 아니라는 걸 믿는 대신, 자명에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음이라 생각했다.
     
   “역시 이교도….”
     
   보통 사특한 집단이 아닐 수 없다.
     
   독을 먹고도 멀쩡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며 으르렁대며 경계심을 한층 끌어올릴 뿐이었다.
     
   자명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들었다는 걸 증명하듯, 식사가 끝난 뒤 소녀의 밥그릇에는 여전히도 많은 국과 밥이 남아 있었다.
     
     
   “으음.”
     
   자명은 그 사실이 찝찝하면서도 기꺼웠다.
     
   음식을 남기는 건 죄이지만, 적어도 소녀가 배불리 먹었다는 건 다행이니.
     
   “아가, 다 먹었으면 산책하러 나가지 않으련?”
     
   애당초 밥을 과하게 준비했던 건 그 자신이었으니 아이를 탓할 일이 아니다.
     
   자명은 뭐라 하는 대신, 통통하니 배가 불러 오른 소녀를 불러일으켰다.
     
   치료 능력을 이용해 체하거나 속에 문제가 없도록 돕긴 하겠지만, 그건 차선책이다.
     
   밥을 배불리 먹었다면 소녀의 소화 능력을 위해서라도 몸을 움직이는 게 좋을 터.
     
   “…같이요?”
   “그래. 근처 경치가 꽤 볼만 할 거란다.”
     
   “부탁인가요?”
     
   왠지 싸한 느낌이 가득한 물음이었지만, 그렇다고 또 명령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
     
   자명이 그렇게 대답한 뒤에야 소녀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잠깐 문 앞에서 기다리려무나. 상을 정리하고 가마.”
   “네.”
     
   소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면야 차차 함께 살면서 해결해 주면 될 일.
     
     
   자명은 문 너머로 사라지는 아이를 확인한 뒤, 수양이 부족한 스님들을 불러들였다.
     
   “저, 저희가 있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쯧쯧, 밖에서 그리 난리들이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평소였다면 아무리 연로한 자명이라 하더라도 밥상 정리와 설거지는 스스로 했겠지만.
     
   소녀를 받아준 뒤, 스님들이 너무 방정맞게 구는 게 교육이 필요하단 판단이었다.
     
   “혹시 아가가 남긴 밥을 먹을…”
     
   자명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
     
   “제가! 제가 남긴 밥을 먹겠습니다.”
     
   비쩍 마른 도윤 스님이 발 벗고 앞장서 나섰다.
     
   이젠 떠나간 두 아이도 입이 짧아 매번 반찬을 남겼는데.
     
   다른 아이였지만, 같은 결과를 보자 괜히 코끝이 찡하니 울먹임을 참기 힘들었다.
     
   “남은… 밥상도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새빨개진 눈을 보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꼴.
     
   “허어….”
     
   자식을 잃고 힘들어하던 건 알고 있었다.
     
   수양하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소녀와의 만남이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으리라.
     
   평소였다면 공과 사를 구분하라며 일갈했을 자명 스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처리는 그에게 일임한다는 뜻이었다.
     
     
     
   *
     
     
     
   행복한 식사 시간이 지나고.
     
   소녀를 뒤따라 나가던 자명은 어두워진 산세에 왠지 모를 공허함에 사무쳤다.
     
   “…나도 아직 수양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로구나.”
     
   손녀라도 얻은 듯, 껄껄 웃으며 나누던 식사가 여태 애써 잊어왔던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간 그의 무능으로 소녀 같은 아이가 얼마나 많이 죽어갔을까.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이들이었을 텐데.
     
   역시, 절에서 나오는 일이 있더라도 이 능력을 어떻게든 이용했어야 하진 않았을까.
     
   능력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쓰지 않는 건, 결국 저 편하자는 이기, 안일함에 의한 것.
     
     
   “허어….”
     
   자명이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에 외로이 뜬 달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거리를 벌린 채 앞장서 걷던 소녀 역시 금세 이상을 눈치챘다.
     
   저 한숨….
     
   그리고 표정.
     
   소녀에게 소원을 부탁하러 오던 사람들이 보이던 반응이다.
     
   “…무슨 고민 있죠?”
     
   무언가 고민이 있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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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무룩 의식을 잃었던 소녀가 정신을 되찾은 건 그로부터 몇 분 뒤였다.

“이단….”

웅얼웅얼.

잠결에 저도 모르게 중얼대며 슬그머니 떠올린 눈.

이게 과연 같은 인간의 눈인가 싶은 샛노란 시선이 사방을 훑자, 자명 스님은 곧장 수저를 들이민다.

아직 소녀가 정신 차리지 못한 지금이 기회다.

자그마한 코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음식 냄새가 퍼져 나갔다.

“밥….”

뜨끈한 흰쌀밥의 고소한 냄새와, 그 위에 얹어진 흰살생선의 짭조름한 냄새.

꼬르르륵-!

소녀의 배가 요동쳤다.

여태 멀쩡한 밥을 먹은 적이 있던가?

아니.

걸핏하면 독버섯에, 상한 음식을 먹고 토하고 배탈 나기 일쑤였다.

스으윽-

몸을 일으킨 소녀가 생각할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앙- 수저를 집어삼킨다.

“옳지. 천천히 먹거라.”

자명 스님의 자장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소녀가 우물우물 밥을 씹기 시작한다.

그렇게 꿀꺽.

“헤……?”

달다.

너무 달고, 맛있어서 눈물이 찔끔 나오고 침이 가득 고인다.

소녀는 뜨끈한 밥이 목을 넘어간 뒤에야 화들짝! 정신을 되찾았다.

“독! 이, 이걸로 제게 뭘 요구하시려고 해도 안 할 거예요!”

큰일이다!

지하에서 맛있는 음식은 곧 무리한 부탁을 의미했다.

소녀의 능력으로도 섣불리 손대기 힘든 정도의 부탁.

그럴 때면 소원의 대가로 장기를 바치거나, 팔다리 같은 신체 부위가 통째로 날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미아의 몸으로 그런 무리한 부탁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소녀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려던 순간이었다.

“이거론 부족하지 않으냐. 일어나거라. 가서 같이 밥을 먹자꾸나.”

자명 스님의 이야기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벌컥 열리는 문.

그 너머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냄새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어라…?

공기가 이렇게 달고 맛있었나?

이런 냄새는 난생처음이다.

킁킁, 킁.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냄새를 따라 코를 움직인다.

꿀꺽.

침샘이 고장 난 듯, 미친 듯이 고이는 침에 물을 따로 마시지 않아도 될 정도다.

참다못한 소녀가 슬그머니 자명을 바라본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마음이 꺾였다.

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자그마한 소원쯤은 들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응.

미아도 밥은 제때, 제대로 배부를 때까지 먹으라고 했잖아?

전보다 경계심이 한층 꺾인 듯한 물음에 자명 스님이 허허 부드러운 웃음을 터뜨린다.

“아가. 내 부탁은 아가가 밥을 먹는 것이란다.”

“…네?”

밥을 먹는 게 부탁이라고?

소녀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 역시 난생처음 듣는 부탁이었다.

“가자. 나도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겠구나. 같이 가서 먹자꾸나.”

진심일까?

이러고 지하로 끌려가는 건 아니겠지?

계속해서 의심이 치밀지만, 소녀의 반응은 솔직했다.

그 따스한 온기,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 소녀가 자명 스님의 뒤를 따라 걷는다.

아직 경계심이 가득한 듯, 거리를 벌린 채 따라오는 모습이지만.

자명 스님은 이조차 기꺼웠다.

혹시나 아이가 또다시 기절하진 않을까, 식당은 비워둔 지 한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식사 시간을 바꿔야 하는 스님들이었지만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그야 이처럼 작은 아이가 끼니조차 제대로 때우지 못했다는 데, 어른이 배려해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자, 네 음식이란다.”

좌식 식탁 앞.

자명 스님은 소녀의 앞으로 몇 개의 그릇을 끌어당겨 주었다.

“…이, 이게 다 제 거?!”

소녀는 기함했다.

이건, 이건 너무 많지 않은가…?

“허허허, 성장기에는 많이 먹어야 하는 법.”

뭔가 이상할 정도였다.

자명 스님의 앞에는 국과 밥, 그리고 파랗고 노랗고 하얀 풀떼기만 놓여 있는데.

소녀의 앞에는 두 배 크기의 국과 밥, 그리고 기름기가 쫙 빠진 새하얀 생선 살이 곱게 발라져 있었다.

그렇다.

스님들이 저는 먹지도 못하는 생선을 돋보기안경까지 끼고 가시 하나까지 발라내 놓은 것이었다.

이걸, 정말 내가 먹어도 될까?

누가 봐도 정성 가득한 식탁.

매번 개밥그릇에 섞여 나오던 식사를 생각해 보면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다.

“어허, 어서 먹지 않고 뭐 하느냐. 이 노인이 굶어 죽길 기다리려고?”

“아! 아니에요! 먹을게요!”

아무리 그래도 노인을 굶어 죽게 둘 수는 없다!

결국, 눈치만 살살 살피던 소녀가 조심스레 밥을 떠먹기 시작한다.

생선 살에 눈이 가지만, 괜히 미안해서 맨밥만 떠 올린 첫 숟갈.

그러나 그조차 감지덕지다.

입 안을 덥히는 온기, 꼬들꼬들하고 고소한 향기에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다.

이, 이교도들은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살았구나!

어쩐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했어!

훌쩍-

괜히 코를 들이키며 갈색의 국을 한 모금 들이켠다.

살짝 매콤하지만, 달짝지근하고 고소하기도 하다.

“푹푹 퍼먹거라. 된장을 그리 홀짝대서야 뭔 맛이 나겠느냐.”

결국 자명은 그 꼴을 가만두고 보지 않았다.

푸욱-

숟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 올린 밥 위로 손수 손가락만큼 커다란 새하얀 생선 살을 얹는다.

“아- 하거라.”

“아?”

그렇게 밥을 소녀의 입 안에 쑤셔 넣자, 소녀의 볼이 빵빵하니 부풀어 오른다.

“허허, 자. 이제 목이 막히지 않느냐. 그러면 국을 이렇게 들이켜면 된다.”

자명은 곧장 시범 보이듯, 된장국을 들어 숭늉 마시듯 들이킨다.

“우움, 움-”

차마 씹지 않은 밥을 그냥 넘기지 못한 소녀가 자명을 따라 된장국을 들이켠다.

꿀꺽-

“헉…!”

뜨겁다.

그런데… 맛있다.

이 국이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이게… 음식?!

이교도들… 대단해…!

소녀의 숟가락질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밥을 뜨고, 고기를 줍고.

기계적일 정도로 반복적인 식사가 계속된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독!”

소녀가 발작을 일으켰다.

“독? 아가?”

미치광이 땡중이 음식에 독을 섞은 탓은 아니었다.

단지, 자명 스님이 떠올린 팽이버섯이 소녀의 눈에 띈 탓이었다.

“독버섯이에요! 먹으면 안 돼요!”

그간 저 하얀 버섯을 먹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아무리 이단에 정체 모를 수상한 노인이라 해도, 독을 먹게 둘 수는 없다!

다급히 젓가락을 뻗은 소녀가 자명의 팽이버섯을 뺏어 툭- 식탁 위로 던졌다.

바퀴벌레라도 보듯 혐오스러운 시선은 덤이었다.

“허… 허허허허….”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처음 겪는 상황.

자명 스님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참, 저렇게 귀엽고 순수한 아이가 어찌 그런 꼴로 있던 건지.

“나를 걱정해 준 게냐?”

“먹으면, 많이 아파요! 죽을지도 몰라요!”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였다.

자명뿐만이 아니었다.

“컥, 커헉…! 도, 독버섯을 먹었다고? 다, 당장 응급실로…”

“지, 진정하세요! 무애 스님! 혈압으로 넘어가십니다!”

소녀의 식사가 너무도 궁금했던 탓에 문 너머에 귀를 기대고 있던 스님들까지 깜짝 놀라 뒤로 까무러졌다.

누군가는 소녀가 독버섯을 먹었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버섯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순수함에.

정작 당사자인 소녀는 왜 이렇게 주변에서 컥컥대며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지 알지 못했다.

설마… 다들 독버섯인 줄 모르고 먹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소녀가 안절부절못하며 손발을 꼼지락댄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색.

자명은 그제야 겨우 웃음을 멈추고는 젓가락을 들어 올린다.

“아가. 이건 독버섯이 아니란다.”

그대로 보란 듯, 쓸쓸하게 식탁 위로 널브러진 팽이버섯을 주워 한입에 삼킨다.

“허억!”

그를 말리려 했던 것인지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채 굳어버린 소녀.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자명의 입 안에서 오도독거리는 버섯 씹는 소리가 이어진다.

이러면 소원이라도 빌어서 독을 없애야 하는데…!

움찔, 움찔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킬 듯 떨리는 소녀의 어깨.

“보았지? 이건 식용 버섯이라 먹어도 괜찮은 것이야. 그리고, 모두가 고생해서 얻은 음식을 함부로 버리거나 남기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자명 스님은 그런 소녀의 속내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이 정도면 아이도 잘 알아들었겠지.

뿌듯하게 웃으며 보란 듯 또 다른 팽이버섯을 떠먹기 시작한다.

그쯤 되니 소녀는 팽이버섯이 독버섯이 아니라는 걸 믿는 대신, 자명에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음이라 생각했다.

“역시 이교도….”

보통 사특한 집단이 아닐 수 없다.

독을 먹고도 멀쩡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며 으르렁대며 경계심을 한층 끌어올릴 뿐이었다.

자명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들었다는 걸 증명하듯, 식사가 끝난 뒤 소녀의 밥그릇에는 여전히도 많은 국과 밥이 남아 있었다.

“으음.”

자명은 그 사실이 찝찝하면서도 기꺼웠다.

음식을 남기는 건 죄이지만, 적어도 소녀가 배불리 먹었다는 건 다행이니.

“아가, 다 먹었으면 산책하러 나가지 않으련?”

애당초 밥을 과하게 준비했던 건 그 자신이었으니 아이를 탓할 일이 아니다.

자명은 뭐라 하는 대신, 통통하니 배가 불러 오른 소녀를 불러일으켰다.

치료 능력을 이용해 체하거나 속에 문제가 없도록 돕긴 하겠지만, 그건 차선책이다.

밥을 배불리 먹었다면 소녀의 소화 능력을 위해서라도 몸을 움직이는 게 좋을 터.

“…같이요?”

“그래. 근처 경치가 꽤 볼만 할 거란다.”

“부탁인가요?”

왠지 싸한 느낌이 가득한 물음이었지만, 그렇다고 또 명령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

자명이 그렇게 대답한 뒤에야 소녀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잠깐 문 앞에서 기다리려무나. 상을 정리하고 가마.”

“네.”

소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면야 차차 함께 살면서 해결해 주면 될 일.

자명은 문 너머로 사라지는 아이를 확인한 뒤, 수양이 부족한 스님들을 불러들였다.

“저, 저희가 있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쯧쯧, 밖에서 그리 난리들이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평소였다면 아무리 연로한 자명이라 하더라도 밥상 정리와 설거지는 스스로 했겠지만.

소녀를 받아준 뒤, 스님들이 너무 방정맞게 구는 게 교육이 필요하단 판단이었다.

“혹시 아가가 남긴 밥을 먹을…”

자명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

“제가! 제가 남긴 밥을 먹겠습니다.”

비쩍 마른 도윤 스님이 발 벗고 앞장서 나섰다.

이젠 떠나간 두 아이도 입이 짧아 매번 반찬을 남겼는데.

다른 아이였지만, 같은 결과를 보자 괜히 코끝이 찡하니 울먹임을 참기 힘들었다.

“남은… 밥상도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새빨개진 눈을 보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꼴.

“허어….”

자식을 잃고 힘들어하던 건 알고 있었다.

수양하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소녀와의 만남이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으리라.

평소였다면 공과 사를 구분하라며 일갈했을 자명 스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처리는 그에게 일임한다는 뜻이었다.

*

행복한 식사 시간이 지나고.

소녀를 뒤따라 나가던 자명은 어두워진 산세에 왠지 모를 공허함에 사무쳤다.

“…나도 아직 수양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로구나.”

손녀라도 얻은 듯, 껄껄 웃으며 나누던 식사가 여태 애써 잊어왔던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간 그의 무능으로 소녀 같은 아이가 얼마나 많이 죽어갔을까.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이들이었을 텐데.

역시, 절에서 나오는 일이 있더라도 이 능력을 어떻게든 이용했어야 하진 않았을까.

능력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쓰지 않는 건, 결국 저 편하자는 이기, 안일함에 의한 것.

“허어….”

자명이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에 외로이 뜬 달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거리를 벌린 채 앞장서 걷던 소녀 역시 금세 이상을 눈치챘다.

저 한숨….

그리고 표정.

소녀에게 소원을 부탁하러 오던 사람들이 보이던 반응이다.

“…무슨 고민 있죠?”

무언가 고민이 있다는 뜻이리라.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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