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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무슨 고민이 있죠?”
     
   자명의 한숨 소리에 소녀가 슬쩍 허리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미약한 등불 빛 아래, 고요하게 잠든 사찰이 펼쳐졌다.
     
   그런 어둠 때문일까.
     
   무슨 이야기를 해도 허허로이 웃던 노인의 얼굴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여태 소녀를 찾아오던 불행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걱정해 주는 게냐?”
     
   자명 스님은 애써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지만, 소녀의 감각을 속일 순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요.”
     
   그야 여태 그 누구보다 불행한 삶을 살아온 소녀가 아니던가.
     
   제 손으로 부모를 죽이고, 가족을 불행에 빠뜨리고.
     
   기적을 베풀고 죽기는커녕 하나뿐인 친구의 몸을 빼앗아 살아가는 기생충.
     
   그런 소녀가 보기에 스님의 마음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음이 분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비록 수상쩍은 이교도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현세가 지옥처럼 느껴지는 건, 그녀와 같은 죄인들에게나 해당하는 일.
     
   소녀가 완전히 몸을 돌려 자명의 앞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얼마나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을까.
     
   “허허, 그래. 그럼, 이 노인의 고민을 좀 들어주겠느냐.”
     
   왠지 모르게 속을 꿰뚫어 보는 듯, 현기마저 느껴지는 소녀의 눈빛에 자명 스님이 먼저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우선, 좀 걷자꾸나.”
     
   원효사의 경치는 불교도들뿐만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까지 인기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산 위로 길게 이어진 산성과 하얗게 솟아오른 산봉우리.
     
   아래로는 빼곡한 나무와 폭포에서 시작된 계곡물이 졸졸 흘러간다.
     
   비록 조명이라고는 미약한 등불뿐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은은한 달빛으로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뒷짐 진 채 한참을 말없이 걷던 자명 스님이 나지막이 입을 연다.
     
   “아가, 각성자에 대해 알고 있느냐?”
   “각성자요?”
     
   소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처음 듣는 단어였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건 자명 스님이었다.
     
   분명… 아이를 처음 구해주었을 때 능력을 써서 도망치지 않았던가.
     
   이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각성했음에도 주변에서 그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리라.
     
     
   자명 스님이 아이의 앞으로 슬쩍 손을 뻗어 보인다.
     
   “보거라, 이게 각성한 사람들이 쓰는 능력이다.”
     
   주름진 손 위로 몽글몽글 녹색 빛무리가 비눗방울처럼 피어오른다.
     
   “와….”
     
   심지어 그냥 방울이 아니다.
     
   기적의 힘을 가진 소녀였기에 노인이 펼쳐낸 힘의 본질을 눈치챌 수 있었다.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자연에서 시작된 순회의 힘.
     
   그리고 그 근본은 자명 스님의 자애로움일 거다.
     
     
   순간.
     
   “아…!”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에 소녀가 저도 모르게 노인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아가?”
     
   아이가 보기에 그토록 신기한 힘이었던 걸까?
     
   자명 스님이 당황하면서도 허허 웃던 도중이었다.
     
   “…전에, 쓰러졌을 때. 그리고, 계곡에 빠졌을 때. 절 구해준 게 할아버지였나요?”
     
   소녀의 물음이 돌아왔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두 번뿐인 위기였지만,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때이니만큼 기억이 생생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따스한 힘을 불어넣어 고통을 없애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명이 짐짓 서운한 척했다.
     
   두 번의 만남 모두 아이의 의식이 있었을 텐데.
     
   그런 궁금증은 굳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에게 무슨 사정이 있으리라는 게 확실하니, 이런 문제는 천천히 다가가는 게 옳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적절한 거리 두기 덕분이었을까.
     
   “그… 그래서 지, 지금 고민 들어주고 있잖아요….”
     
   죄책감에 휩싸인 소녀가 모른 척,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향했던 행동들이 꽤 무례했단 걸 알고 있던 탓이다.
     
     
   “하하하, 그래. 그러니 나도 우리 아가의 의견을 좀 들어봐야겠다.”
     
   자명 스님은 막 씻고 나와 부들부들해진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런 각성자는 흔치 않단다. 이만한 힘을 얻은 건 그야말로 안배, 기적이라고 해야 하지.”
     
   아.
     
   맞다.
     
   지하의 교인들이 미아를 보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니 어쩌니.
     
   이만한 능력은 처음이라느니 떠들던 얘기가 떠올랐다.
     
   소녀가 이해했다는 듯 자그마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 아니겠느냐? 누군가는 원해도 얻지 못할 힘을 얻었으니, 이 힘을 이용해 어떻게든 중생들을 도와줘야 하는 법인데….”
     
   이야기하던 자명 스님이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회복의 힘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람을 살리는 것 역시 한계가 확실했다.
     
   전투에는 작은 도움도 주지 못했고.
     
   그 탓에 내 능력의 한계라며 불온한 현실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이 고민을 작은 아이에게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한 들 아이가 이해하긴 할까.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해지자, 고민 상담하던 것조차 잊고 자연스러운 한탄이 터져 나왔다.
     
   “…그저 내 힘이 너무 부족한 탓인 게지.”
     
   세상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속세에서 벗어난 종교인이라고 모른 척하고 있는 건 죄악이건만.
     
     
   그때.
     
   “하, 할아버지는 절 두 번이나 살려주셨잖아요.”
     
   소녀의 자그마한 대꾸가 돌아온다.
     
   “사람을 살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자명의 속내를 꿰뚫어 본 건 아니다.
     
   다만, 여태 소원으로 수많은 것을 이뤄줬던 소녀는 알고 있을 뿐이다.
     
   생명.
     
   그건 그 어떤 수를 사용하더라도 등가교환 할 수 없는 지고한 가치인 것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렇지. 그래서 더욱 내 힘을 써야 하는 법이지.”
     
   소녀의 이야기에 중얼거리던 자명 스님이 슬그머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도 밝고 날도 좋잖아요.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렇다.
     
   소녀의 말대로 달이 밝다.
     
   구름 한 점 없어 새까만 어둠 속을 부유하듯 떠 있는 동그란 빛무리.
     
   아아. 그런가.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며, 마음이 곧 세계를 만든다고 하셨느니. 달이 이렇게 밝게 빛나듯, 우리의 마음도 깨달음을 통해 밝아질 수 있느니라.”
     
   축 처져 있던 자명 스님의 어깨가 곧추 펴진다.
     
   80대의 노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건장한 어깨가 드러난다.
     
   “아가, 달을 더 가까이서 보자꾸나.”
     
   툭. 바닥에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두 팔을 움직여 소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히익!”
   “허허허! 달이 구름 사이에서 벗어나 빛나는 것처럼, 우리도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고 지혜의 빛을 밝힐 수 있는 법. 오늘 내게 아가를 보내주심은 네 지혜를 빌려 마음의 어둠을 물리치라는 말이렸다.”
     
   소녀의 자그마한 몸이 하늘 높이 떠오른다.
     
   “으아아!”
     
   처음에는 깜짝 놀라 바둥거리던 소녀.
     
   그러나 이내,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자명의 시원한 웃음에 슬그머니 힘을 푼다.
     
   휘익! 하늘로 올라가자, 방해물 하나 없이 환한 하늘이 온 시야에 가득 찬다.
     
   자명은 이젠 소녀가 아이라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고명한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듯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꺼내 물었다.
     
     
   “아가. 그럼 내가 어찌해야겠느냐. 이 힘을 어찌 이용해야 한 점의 후회가 없겠느냐?”
     
   어느덧 저도 모르는 새에 자명의 어깨 위에 올라앉게 된 소녀.
     
   자명과 같은 시야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긴 고민 없이 대답한다.
     
   “할아버지는 사람을 구하고 싶은 거죠?”
   “그렇지.”
     
   “그럼, 여태 구해주신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저처럼요.”
     
   움찔.
     
   자명이 제자리에 멈춰 섰을 때.
     
   소녀가 읏차-! 노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착지한다.
     
   삐끗해서 잠깐 비틀거리긴 했지만.
     
   그대로 자세를 다잡고는 미아의 행동을 떠올리며 따라 한다.
     
   “미아라는 제 친구가 말하길, 미래보다 현실! 혼자 모든 걸 다 하는 건 욕심이라고 했어요.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고는 제가 너무 어른들의 일에 과하게 관여한 건 아닐까.
     
   도움도 안 되는 얘기를 한 건 아닐까.
     
   자명의 분노를 샀을까-
     
   “저, 저는 피곤해서 이만 돌아갈게요…!”
     
   돌아오는 대답은 듣지도 않고는 후다닥 사찰을 향해 도망쳐 버렸다.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소녀.
     
   그런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자명 스님이 염주를 돌리기 시작한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온 탓이다.
     
     
   소녀의 말은 한 치의 틀림이 없었다.
     
   자명은 사람이다.
     
   제 마음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사람.
     
   그런 주제에 모든 사람을 구한다니, 어쩐다니 하는 건 오만한 번뇌일 뿐이니.
     
   “번뇌에서 벗어나려다가 번뇌에 사로잡힌 게로구나.”
     
   여태 그가 구해 온 사람만 해도 두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다.
     
   그중에는 한국을 구해낸 각성자들도, 유명한 연예인이나 정치인들도.
     
   저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시주님들도 있었다.
     
   “여태 그 많은 목숨을 살려왔으면서, 무엇을 더 바랐는지.”
     
   여태까지처럼 차근차근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되거늘.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감싸 안으려 했구나.
     
     
   자명 스님의 얼굴 위로 밝디밝은 달빛이 비친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추호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깨달음을 얻어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맑아진 눈빛.
     
   그 누가 이런 자명을 보고 80대 노인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B급 회복 계열 각성자이던 그가 A급으로 올라선 순간이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자명의 머릿속엔 자그마한 푸른색 머리통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허허허, 우리 아가가 소부처였구나. 이 우매한 중생을 구하러 와 준 천재였어….”
     
   이런 기적을 혼자만 맛볼 수는 없다.
     
   이 아이야말로 불교계의….
     
   아니, 험난한 세상의 등불이 될 수 있으리.
     
   “아가! 우리 아가, 영재원에 나가볼 생각은 없느뇨!”
   “흐이익!!”
     
   기력을 되찾은 자명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소녀의 뒤를 쫓아 달렸다.
     
   기겁한 소녀가 도망가다가 콰당- 하고 넘어져 피를 본 뒤에야 겨우 멈출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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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고민이 있죠?”

자명의 한숨 소리에 소녀가 슬쩍 허리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미약한 등불 빛 아래, 고요하게 잠든 사찰이 펼쳐졌다.

그런 어둠 때문일까.

무슨 이야기를 해도 허허로이 웃던 노인의 얼굴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여태 소녀를 찾아오던 불행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걱정해 주는 게냐?”

자명 스님은 애써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지만, 소녀의 감각을 속일 순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요.”

그야 여태 그 누구보다 불행한 삶을 살아온 소녀가 아니던가.

제 손으로 부모를 죽이고, 가족을 불행에 빠뜨리고.

기적을 베풀고 죽기는커녕 하나뿐인 친구의 몸을 빼앗아 살아가는 기생충.

그런 소녀가 보기에 스님의 마음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음이 분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비록 수상쩍은 이교도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현세가 지옥처럼 느껴지는 건, 그녀와 같은 죄인들에게나 해당하는 일.

소녀가 완전히 몸을 돌려 자명의 앞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얼마나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을까.

“허허, 그래. 그럼, 이 노인의 고민을 좀 들어주겠느냐.”

왠지 모르게 속을 꿰뚫어 보는 듯, 현기마저 느껴지는 소녀의 눈빛에 자명 스님이 먼저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우선, 좀 걷자꾸나.”

원효사의 경치는 불교도들뿐만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까지 인기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산 위로 길게 이어진 산성과 하얗게 솟아오른 산봉우리.

아래로는 빼곡한 나무와 폭포에서 시작된 계곡물이 졸졸 흘러간다.

비록 조명이라고는 미약한 등불뿐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은은한 달빛으로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뒷짐 진 채 한참을 말없이 걷던 자명 스님이 나지막이 입을 연다.

“아가, 각성자에 대해 알고 있느냐?”

“각성자요?”

소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처음 듣는 단어였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건 자명 스님이었다.

분명… 아이를 처음 구해주었을 때 능력을 써서 도망치지 않았던가.

이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각성했음에도 주변에서 그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리라.

자명 스님이 아이의 앞으로 슬쩍 손을 뻗어 보인다.

“보거라, 이게 각성한 사람들이 쓰는 능력이다.”

주름진 손 위로 몽글몽글 녹색 빛무리가 비눗방울처럼 피어오른다.

“와….”

심지어 그냥 방울이 아니다.

기적의 힘을 가진 소녀였기에 노인이 펼쳐낸 힘의 본질을 눈치챌 수 있었다.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자연에서 시작된 순회의 힘.

그리고 그 근본은 자명 스님의 자애로움일 거다.

순간.

“아…!”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에 소녀가 저도 모르게 노인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아가?”

아이가 보기에 그토록 신기한 힘이었던 걸까?

자명 스님이 당황하면서도 허허 웃던 도중이었다.

“…전에, 쓰러졌을 때. 그리고, 계곡에 빠졌을 때. 절 구해준 게 할아버지였나요?”

소녀의 물음이 돌아왔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두 번뿐인 위기였지만,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때이니만큼 기억이 생생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따스한 힘을 불어넣어 고통을 없애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명이 짐짓 서운한 척했다.

두 번의 만남 모두 아이의 의식이 있었을 텐데.

그런 궁금증은 굳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에게 무슨 사정이 있으리라는 게 확실하니, 이런 문제는 천천히 다가가는 게 옳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적절한 거리 두기 덕분이었을까.

“그… 그래서 지, 지금 고민 들어주고 있잖아요….”

죄책감에 휩싸인 소녀가 모른 척,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향했던 행동들이 꽤 무례했단 걸 알고 있던 탓이다.

“하하하, 그래. 그러니 나도 우리 아가의 의견을 좀 들어봐야겠다.”

자명 스님은 막 씻고 나와 부들부들해진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런 각성자는 흔치 않단다. 이만한 힘을 얻은 건 그야말로 안배, 기적이라고 해야 하지.”

아.

맞다.

지하의 교인들이 미아를 보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니 어쩌니.

이만한 능력은 처음이라느니 떠들던 얘기가 떠올랐다.

소녀가 이해했다는 듯 자그마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 아니겠느냐? 누군가는 원해도 얻지 못할 힘을 얻었으니, 이 힘을 이용해 어떻게든 중생들을 도와줘야 하는 법인데….”

이야기하던 자명 스님이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회복의 힘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람을 살리는 것 역시 한계가 확실했다.

전투에는 작은 도움도 주지 못했고.

그 탓에 내 능력의 한계라며 불온한 현실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이 고민을 작은 아이에게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한 들 아이가 이해하긴 할까.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해지자, 고민 상담하던 것조차 잊고 자연스러운 한탄이 터져 나왔다.

“…그저 내 힘이 너무 부족한 탓인 게지.”

세상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속세에서 벗어난 종교인이라고 모른 척하고 있는 건 죄악이건만.

그때.

“하, 할아버지는 절 두 번이나 살려주셨잖아요.”

소녀의 자그마한 대꾸가 돌아온다.

“사람을 살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자명의 속내를 꿰뚫어 본 건 아니다.

다만, 여태 소원으로 수많은 것을 이뤄줬던 소녀는 알고 있을 뿐이다.

생명.

그건 그 어떤 수를 사용하더라도 등가교환 할 수 없는 지고한 가치인 것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렇지. 그래서 더욱 내 힘을 써야 하는 법이지.”

소녀의 이야기에 중얼거리던 자명 스님이 슬그머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도 밝고 날도 좋잖아요.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렇다.

소녀의 말대로 달이 밝다.

구름 한 점 없어 새까만 어둠 속을 부유하듯 떠 있는 동그란 빛무리.

아아. 그런가.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며, 마음이 곧 세계를 만든다고 하셨느니. 달이 이렇게 밝게 빛나듯, 우리의 마음도 깨달음을 통해 밝아질 수 있느니라.”

축 처져 있던 자명 스님의 어깨가 곧추 펴진다.

80대의 노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건장한 어깨가 드러난다.

“아가, 달을 더 가까이서 보자꾸나.”

툭. 바닥에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두 팔을 움직여 소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히익!”

“허허허! 달이 구름 사이에서 벗어나 빛나는 것처럼, 우리도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고 지혜의 빛을 밝힐 수 있는 법. 오늘 내게 아가를 보내주심은 네 지혜를 빌려 마음의 어둠을 물리치라는 말이렸다.”

소녀의 자그마한 몸이 하늘 높이 떠오른다.

“으아아!”

처음에는 깜짝 놀라 바둥거리던 소녀.

그러나 이내,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자명의 시원한 웃음에 슬그머니 힘을 푼다.

휘익! 하늘로 올라가자, 방해물 하나 없이 환한 하늘이 온 시야에 가득 찬다.

자명은 이젠 소녀가 아이라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고명한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듯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꺼내 물었다.

“아가. 그럼 내가 어찌해야겠느냐. 이 힘을 어찌 이용해야 한 점의 후회가 없겠느냐?”

어느덧 저도 모르는 새에 자명의 어깨 위에 올라앉게 된 소녀.

자명과 같은 시야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긴 고민 없이 대답한다.

“할아버지는 사람을 구하고 싶은 거죠?”

“그렇지.”

“그럼, 여태 구해주신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저처럼요.”

움찔.

자명이 제자리에 멈춰 섰을 때.

소녀가 읏차-! 노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착지한다.

삐끗해서 잠깐 비틀거리긴 했지만.

그대로 자세를 다잡고는 미아의 행동을 떠올리며 따라 한다.

“미아라는 제 친구가 말하길, 미래보다 현실! 혼자 모든 걸 다 하는 건 욕심이라고 했어요.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고는 제가 너무 어른들의 일에 과하게 관여한 건 아닐까.

도움도 안 되는 얘기를 한 건 아닐까.

자명의 분노를 샀을까-

“저, 저는 피곤해서 이만 돌아갈게요…!”

돌아오는 대답은 듣지도 않고는 후다닥 사찰을 향해 도망쳐 버렸다.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소녀.

그런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자명 스님이 염주를 돌리기 시작한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온 탓이다.

소녀의 말은 한 치의 틀림이 없었다.

자명은 사람이다.

제 마음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사람.

그런 주제에 모든 사람을 구한다니, 어쩐다니 하는 건 오만한 번뇌일 뿐이니.

“번뇌에서 벗어나려다가 번뇌에 사로잡힌 게로구나.”

여태 그가 구해 온 사람만 해도 두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다.

그중에는 한국을 구해낸 각성자들도, 유명한 연예인이나 정치인들도.

저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시주님들도 있었다.

“여태 그 많은 목숨을 살려왔으면서, 무엇을 더 바랐는지.”

여태까지처럼 차근차근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되거늘.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감싸 안으려 했구나.

자명 스님의 얼굴 위로 밝디밝은 달빛이 비친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추호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깨달음을 얻어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맑아진 눈빛.

그 누가 이런 자명을 보고 80대 노인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B급 회복 계열 각성자이던 그가 A급으로 올라선 순간이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자명의 머릿속엔 자그마한 푸른색 머리통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허허허, 우리 아가가 소부처였구나. 이 우매한 중생을 구하러 와 준 천재였어….”

이런 기적을 혼자만 맛볼 수는 없다.

이 아이야말로 불교계의….

아니, 험난한 세상의 등불이 될 수 있으리.

“아가! 우리 아가, 영재원에 나가볼 생각은 없느뇨!”

“흐이익!!”

기력을 되찾은 자명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소녀의 뒤를 쫓아 달렸다.

기겁한 소녀가 도망가다가 콰당- 하고 넘어져 피를 본 뒤에야 겨우 멈출 정도였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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