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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자명 스님이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혼나고 있다.
     
   심지어 나이도 한참 젊어 보이는 데 말이다.
     
     
   지하에서 여러 사람을 보아왔던 소녀는 저런 부류의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묻는 사람들은 더욱이.
     
   소녀에겐 그토록 무시무시하던 선각자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시주님, 일단 진정하시지요.”
     
   자명 스님의 평소 같은 나지막한 목소리.
     
   소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히 근처 바위 뒤로 몸을 숨긴다.
     
     
   저런 사람을 상대하는 건 피해야 한다.
     
   잘못 걸리면 또 ‘소원’이랍시고 이상한 요구를 해 올지도 모른다.
     
   사찰의 스님들이 이교도라 할지라도 그녀를 구해준 은인들이 아니던가.
     
   그들을 이용해 협박해 온다면 버틸 수 없으리라.
     
   그럼, 미아의 몸이 해를 입겠지.
     
   자명 스님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단 두려움이 더 컸다.
     
   그러나 소녀가 숨은 뒤로도 시민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손님을 불렀으면 주차장을 비워뒀어야지, 이건 뭐 똥개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어?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시주님. 저희 절은 차량 출입 금지입니다.”
     
   “출입 금지? 출입 금지인데 주차장은 왜 있어? 저 차는 또 뭐고!”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은 흉흉한 기색.
     
   자명 스님은 상대의 치켜 올라간 눈썹에조차 아랑곳하지 않았다.
     
   달그락.
     
   뒷짐 진 손으로 염주를 돌리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몸이 불편한 분들, 그리고 물품 운반을 위해 마련해 둔 주차장입니다.”
   “그래서, 차를 끌고 왔는데 그냥 내려가라고?”
     
   “예, 그러셔야 합니다.”
   “하…. 내가 여기 진관동 주민 자치 위원장이야!”
     
     
   제자리를 빙빙 돌듯 진전없는 대화.
     
   주민 자치 위원장?
     
   ‘장’이 붙었으니까 역시 어디 대단한 권력자인 거겠지?
     
   빨리 스님들에게 산속의 이변을 전해드려야 하는데.
     
   소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동시에 벌컥- 기어코 차에서 내려온 중년인이 스님의 앞으로 다가왔다.
     
   “참 나, 진짜. 뭔 강연이라고 해서 왔더니 손님 대우를 이따위로 해? 그쪽 이름이 뭐야?”
     
   차 안에 있을 때는 그나마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왈왈대는 게 전부였지만.
     
   “왜 대답을 안 해? 내가 저기, 동장이랑 어? 구청장이랑도 술 먹고 노래방까지 간 사이야!”
     
   차에서 내려오니 스님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댄다거나, 밀치는 등 차마 가만 보기 힘든 짓거리가 이어졌다.
     
     
   달그락, 달그락.
     
   자명 스님이 돌리던 염주가 부들거리며 떨린다.
     
   그 역시 많이 참고 있음이 분명했다.
     
   “차 하나 들여보내는 거로 사람을 이렇게 개 무시해? 내가 맘만 먹으면, 당신 어? 그 후원받겠다던 애새끼 조지는 건 일도 아니야!”
     
   눈을 감고, 귀를 막으려 하던 소녀였지만.
     
   차마 제 얘기가 나오는 것까진 흘려 넘길 수 없었다.
     
   이름이 나오진 않았어도 자명 스님이 매일 같이 ‘우리 천재 아가는 제대로 된 곳에서 교육받아야 한다!’라며 이야기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저런 모욕을 당하는 건 결국 소녀의 탓이라는 것.
     
     
   “아.”
     
   열심히 달려온 탓에 붉게 달아올라 있던 소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자명 스님을 바라보던 시선은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입술은 앙다문다.
     
   역시, 나는 이렇게 살아 있으면 안 됐는데.
     
   속죄를 다 하고 약속대로 죽었어야 했는데.
     
   엄마와 아빠, 미아도 그렇고.
     
   항상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엄청난 불운을 맞이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그리 놔두고 싶지 않다.
     
   지옥에 가는 건 나 혼자로 충분해.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스님한테 그,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곧장 두 쌍의 시선이 이어진다.
     
   소녀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자명의 놀람 가득한 눈빛.
     
   그리고.
     
   “꼴을 보니까 이 애가 그 ‘천재’ 각성자인가?”
     
   잘 걸렸다는 듯, 중년인이 스님을 놔두고 성큼성큼 걸어온다.
     
   폭급한 기운에 소녀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린다.
     
   그러나 물러서진 않았다.
     
   고통은 익숙하다.
     
   정신적인 고통이든, 육체적인 고통이든.
     
   적어도 그녀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것보다 저 혼자 아픈 게 나을 테니.
     
     
   “허, 머리가 이게 뭐야? 스님들이 돈도 많네. 애새끼 염색도 해 주고?”
     
   소녀가 눈을 질끈 감고.
     
   중년인이 뻗은 손이 막 새파란 머리카락에 가까워지던 도중이었다.
     
   빠직-
     
   뭔가 부서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놈!”
     
   여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자명 스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얼마나 큰 목소리였는지 일순간 사찰 전체로 메아리가 울려 퍼질 정도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곳곳에서 시민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 놈?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중년인이 움찔 제자리에 멈춰 선다.
     
   다시금 자명 스님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의 얼굴은 잘 익은 문어처럼 붉어져 있었다.
     
   제가 여태 해 온 짓은 기억도 안 나는지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
     
   “이 미친 땡중 새끼가 어디 반말이야!”
     
   그는 다시 성큼성큼 자명 스님에게 다가가 손찌검하려는 듯, 한 손을 쭉 내밀었고.
     
   “아, 안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소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스님과 중년인의 사이를 가로막기 위해 몸을 날려 앞을 막으려 했는데.
     
   자명 스님 역시 가만히 참고 있지만은 않았다.
     
     
   “가만 듣다 보니, 머릿속에 마라가 들어섰구나!”
     
   왼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중년인의 손목을 덥석 부여잡는다.
     
   쓰다듬을 데도 없는 자그마한 소녀는 등 뒤로 숨기고.
     
   “어?! 잡아? 이거 폭행이야! 고소할 거라고!”
     
   중년인의 버럭거리는 고함에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참새를 쓰다듬듯 손바닥이 살며시 굽어 땅을 향한 자세인데.
     
   “폭행? 그래! 말 잘했다. 어딜 건드릴 게 없어서 애를 건드려! 부처께서 너 같은 마라 새끼들을 족치라고 만든 게, 바로 이 항마촉지인이다!”
     
   빠악-!
     
   그대로 자명 스님의 손바닥이 중년인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억!”
     
   목탁을 두드리던 때보다도 더 크고 맑은소리.
     
   여간 아픈 게 아닌지, 중년인이 바닥을 뒹굴며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고! 나 죽네! 여기 좀 보소! 땡중이 주먹을 휘두른다!”
   “…저 사람 뭐야?”
     
   안 그래도 자명 스님의 분노어린 외침에 이목이 쏠린 상황이었다.
     
   시민들의 웅성거림이 퍼져 나가자, 중년인이 슬그머니 입꼬리를 말아 웃었다.
     
   “너! 이 새끼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저 애새끼도 같이 고소할 거라고…!”
     
   그런데 정작 시민들의 목소리가 제게 적대적이란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야! 어떤 새끼가 우리 꼬맹이 건드려!”
     
   소란이 커지자, 해인 스님이 한 손에 거대한 국자를 들고 나타났다.
     
   평범한 사람 두 명을 붙여놓은 것만 같은 근육질의 거구.
     
   “어어! 지금 스님이 협박하는 거야?!”
     
   지레 겁에 질린 중년인이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여댔지만.
     
   “자명 스님이 화내실 정도면 어지간한 개새끼가 아닌가 보구먼.”
   “쯧쯧, 저 나이 먹고 저렇게 뒹굴고 싶을까. 부모 보기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
     
   그토록 자신감 넘치던 중년인도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면, 자명 스님의 평판과 이 사찰에 초대받아 온 이들에 대한 정보였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자명 스님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허허 별일 아니니 다들 볼일들 보시지요. 이 마라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오히려 조리실에 있던 해인 스님이 다급히 뛰쳐나온 이유부터가 그런 ‘손님’ 때문이었으니.
     
     
   “스님. 불청객입니까.”
     
   해인 스님이 중년인을 질질 끌고 나가기 직전.
     
   한 양복 차림의 사내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덥지도 않은지, 완벽하게 각 잡힌 양복 차림에 선글라스.
     
   그런 착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잘생긴 사내의 등장에 일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니, 자네는 왜 왔으면서 인사도 안 했나!”
     
   반대로 자명 스님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며 환하게 웃으며 사내를 맞이했다.
     
   “민원을 처리하러 가셨다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딱 봐도 심상찮은 사내.
     
   놀랍게도 이 사찰의 모두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처, 청성 길드장?!”
     
   대한민국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청성 길드의 길드장이자 저 자신도 S급 각성자인 이성환.
     
   일정으로 바쁠 그가 뜬금없이 사찰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쯤 되니 바닥을 뒹굴던 중년인조차 뭐가 잘못되어 감을 눈치챘지만.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게 제 시간을 뺏고 있던 모양입니다.”
     
   이미 늦은 깨달음이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이성환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중년인을 들어 올렸다.
     
   건물조차 손쉽게 들어 올린다는, S급 각성자의 염동력이었다.
     
   “이거 참, 면목이 없네. 우리 아가를 자랑하고 싶어서 너무 의욕을 냈나보이.”
   “아닙니다. 스님의 명성이 명성이니, 쓰레기나 퍼먹던 하이에나들이 몰려드는 거야 당연한 일입니다.”
     
   평소 중년인의 성격대로였다면 ‘각성자가 민간인을 상대로 능력을 써! 고소할 거야! 빌런으로 낙인찍히고 싶어!’ 등등.
     
   그간 유용하게도 써 오던 여러 패턴을 내뱉었겠지만.
     
   “이건 제가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
     
   상대는 청성 길드장.
     
   그런 수작질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힘이라면 정말 민간인 하나 따위는 묻어버려도 문제가 없을 터.
     
   당장 변명해야 한다.
     
     
   그러나 중년인은 입을 열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뱉으려 해봐도 무언가가 목구멍을 꽉 틀어막은 듯했다.
     
   설마…?
     
   “흠, 이 아이가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아이입니까.”
   “맞네. 귀엽지 않은가?”
     
   벌써 중년인에겐 관심이 사라졌다는 듯, 자명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길드장.
     
   그의 능력이 목구멍을 틀어막았음이 분명했다.
     
     
   아…….
     
   중년인은 그제야 후회했다.
     
   폭행이든 뭐든 자명 스님을 법정으로 불러오기만 한다면 평생 먹고살 돈을 준다기에 좋다고 나선 건데 설마 이날이 그의 제삿날이 될 줄이야.
     
   주르륵.
     
   중년인의 눈가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기….”
     
   그때였다.
     
   어느새 해인 스님의 품에 안겨 있던 소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빼 내밀었다.
     
   마치 캥거루 주머니 너머로 고개만 내미는 듯한 모습으로 길드장의 소매를 붙잡고는.
     
   “죽이실 건가요?”
     
   감정 하나 없는 눈으로 중년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의 물음이라 하기엔 너무나 섬뜩한 목소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내일 18시다음화 보기

자명 스님이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혼나고 있다.

심지어 나이도 한참 젊어 보이는 데 말이다.

지하에서 여러 사람을 보아왔던 소녀는 저런 부류의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묻는 사람들은 더욱이.

소녀에겐 그토록 무시무시하던 선각자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시주님, 일단 진정하시지요.”

자명 스님의 평소 같은 나지막한 목소리.

소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히 근처 바위 뒤로 몸을 숨긴다.

저런 사람을 상대하는 건 피해야 한다.

잘못 걸리면 또 ‘소원’이랍시고 이상한 요구를 해 올지도 모른다.

사찰의 스님들이 이교도라 할지라도 그녀를 구해준 은인들이 아니던가.

그들을 이용해 협박해 온다면 버틸 수 없으리라.

그럼, 미아의 몸이 해를 입겠지.

자명 스님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단 두려움이 더 컸다.

그러나 소녀가 숨은 뒤로도 시민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손님을 불렀으면 주차장을 비워뒀어야지, 이건 뭐 똥개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어?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시주님. 저희 절은 차량 출입 금지입니다.”

“출입 금지? 출입 금지인데 주차장은 왜 있어? 저 차는 또 뭐고!”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은 흉흉한 기색.

자명 스님은 상대의 치켜 올라간 눈썹에조차 아랑곳하지 않았다.

달그락.

뒷짐 진 손으로 염주를 돌리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몸이 불편한 분들, 그리고 물품 운반을 위해 마련해 둔 주차장입니다.”

“그래서, 차를 끌고 왔는데 그냥 내려가라고?”

“예, 그러셔야 합니다.”

“하…. 내가 여기 진관동 주민 자치 위원장이야!”

제자리를 빙빙 돌듯 진전없는 대화.

주민 자치 위원장?

‘장’이 붙었으니까 역시 어디 대단한 권력자인 거겠지?

빨리 스님들에게 산속의 이변을 전해드려야 하는데.

소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동시에 벌컥- 기어코 차에서 내려온 중년인이 스님의 앞으로 다가왔다.

“참 나, 진짜. 뭔 강연이라고 해서 왔더니 손님 대우를 이따위로 해? 그쪽 이름이 뭐야?”

차 안에 있을 때는 그나마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왈왈대는 게 전부였지만.

“왜 대답을 안 해? 내가 저기, 동장이랑 어? 구청장이랑도 술 먹고 노래방까지 간 사이야!”

차에서 내려오니 스님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댄다거나, 밀치는 등 차마 가만 보기 힘든 짓거리가 이어졌다.

달그락, 달그락.

자명 스님이 돌리던 염주가 부들거리며 떨린다.

그 역시 많이 참고 있음이 분명했다.

“차 하나 들여보내는 거로 사람을 이렇게 개 무시해? 내가 맘만 먹으면, 당신 어? 그 후원받겠다던 애새끼 조지는 건 일도 아니야!”

눈을 감고, 귀를 막으려 하던 소녀였지만.

차마 제 얘기가 나오는 것까진 흘려 넘길 수 없었다.

이름이 나오진 않았어도 자명 스님이 매일 같이 ‘우리 천재 아가는 제대로 된 곳에서 교육받아야 한다!’라며 이야기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저런 모욕을 당하는 건 결국 소녀의 탓이라는 것.

“아.”

열심히 달려온 탓에 붉게 달아올라 있던 소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자명 스님을 바라보던 시선은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입술은 앙다문다.

역시, 나는 이렇게 살아 있으면 안 됐는데.

속죄를 다 하고 약속대로 죽었어야 했는데.

엄마와 아빠, 미아도 그렇고.

항상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엄청난 불운을 맞이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그리 놔두고 싶지 않다.

지옥에 가는 건 나 혼자로 충분해.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스님한테 그,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곧장 두 쌍의 시선이 이어진다.

소녀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자명의 놀람 가득한 눈빛.

그리고.

“꼴을 보니까 이 애가 그 ‘천재’ 각성자인가?”

잘 걸렸다는 듯, 중년인이 스님을 놔두고 성큼성큼 걸어온다.

폭급한 기운에 소녀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린다.

그러나 물러서진 않았다.

고통은 익숙하다.

정신적인 고통이든, 육체적인 고통이든.

적어도 그녀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것보다 저 혼자 아픈 게 나을 테니.

“허, 머리가 이게 뭐야? 스님들이 돈도 많네. 애새끼 염색도 해 주고?”

소녀가 눈을 질끈 감고.

중년인이 뻗은 손이 막 새파란 머리카락에 가까워지던 도중이었다.

빠직-

뭔가 부서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놈!”

여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자명 스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얼마나 큰 목소리였는지 일순간 사찰 전체로 메아리가 울려 퍼질 정도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곳곳에서 시민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 놈?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중년인이 움찔 제자리에 멈춰 선다.

다시금 자명 스님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의 얼굴은 잘 익은 문어처럼 붉어져 있었다.

제가 여태 해 온 짓은 기억도 안 나는지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

“이 미친 땡중 새끼가 어디 반말이야!”

그는 다시 성큼성큼 자명 스님에게 다가가 손찌검하려는 듯, 한 손을 쭉 내밀었고.

“아, 안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소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스님과 중년인의 사이를 가로막기 위해 몸을 날려 앞을 막으려 했는데.

자명 스님 역시 가만히 참고 있지만은 않았다.

“가만 듣다 보니, 머릿속에 마라가 들어섰구나!”

왼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중년인의 손목을 덥석 부여잡는다.

쓰다듬을 데도 없는 자그마한 소녀는 등 뒤로 숨기고.

“어?! 잡아? 이거 폭행이야! 고소할 거라고!”

중년인의 버럭거리는 고함에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참새를 쓰다듬듯 손바닥이 살며시 굽어 땅을 향한 자세인데.

“폭행? 그래! 말 잘했다. 어딜 건드릴 게 없어서 애를 건드려! 부처께서 너 같은 마라 새끼들을 족치라고 만든 게, 바로 이 항마촉지인이다!”

빠악-!

그대로 자명 스님의 손바닥이 중년인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억!”

목탁을 두드리던 때보다도 더 크고 맑은소리.

여간 아픈 게 아닌지, 중년인이 바닥을 뒹굴며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고! 나 죽네! 여기 좀 보소! 땡중이 주먹을 휘두른다!”

“…저 사람 뭐야?”

안 그래도 자명 스님의 분노어린 외침에 이목이 쏠린 상황이었다.

시민들의 웅성거림이 퍼져 나가자, 중년인이 슬그머니 입꼬리를 말아 웃었다.

“너! 이 새끼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저 애새끼도 같이 고소할 거라고…!”

그런데 정작 시민들의 목소리가 제게 적대적이란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야! 어떤 새끼가 우리 꼬맹이 건드려!”

소란이 커지자, 해인 스님이 한 손에 거대한 국자를 들고 나타났다.

평범한 사람 두 명을 붙여놓은 것만 같은 근육질의 거구.

“어어! 지금 스님이 협박하는 거야?!”

지레 겁에 질린 중년인이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여댔지만.

“자명 스님이 화내실 정도면 어지간한 개새끼가 아닌가 보구먼.”

“쯧쯧, 저 나이 먹고 저렇게 뒹굴고 싶을까. 부모 보기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

그토록 자신감 넘치던 중년인도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면, 자명 스님의 평판과 이 사찰에 초대받아 온 이들에 대한 정보였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자명 스님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허허 별일 아니니 다들 볼일들 보시지요. 이 마라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오히려 조리실에 있던 해인 스님이 다급히 뛰쳐나온 이유부터가 그런 ‘손님’ 때문이었으니.

“스님. 불청객입니까.”

해인 스님이 중년인을 질질 끌고 나가기 직전.

한 양복 차림의 사내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덥지도 않은지, 완벽하게 각 잡힌 양복 차림에 선글라스.

그런 착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잘생긴 사내의 등장에 일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니, 자네는 왜 왔으면서 인사도 안 했나!”

반대로 자명 스님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며 환하게 웃으며 사내를 맞이했다.

“민원을 처리하러 가셨다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딱 봐도 심상찮은 사내.

놀랍게도 이 사찰의 모두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처, 청성 길드장?!”

대한민국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청성 길드의 길드장이자 저 자신도 S급 각성자인 이성환.

일정으로 바쁠 그가 뜬금없이 사찰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쯤 되니 바닥을 뒹굴던 중년인조차 뭐가 잘못되어 감을 눈치챘지만.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게 제 시간을 뺏고 있던 모양입니다.”

이미 늦은 깨달음이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이성환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중년인을 들어 올렸다.

건물조차 손쉽게 들어 올린다는, S급 각성자의 염동력이었다.

“이거 참, 면목이 없네. 우리 아가를 자랑하고 싶어서 너무 의욕을 냈나보이.”

“아닙니다. 스님의 명성이 명성이니, 쓰레기나 퍼먹던 하이에나들이 몰려드는 거야 당연한 일입니다.”

평소 중년인의 성격대로였다면 ‘각성자가 민간인을 상대로 능력을 써! 고소할 거야! 빌런으로 낙인찍히고 싶어!’ 등등.

그간 유용하게도 써 오던 여러 패턴을 내뱉었겠지만.

“이건 제가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

상대는 청성 길드장.

그런 수작질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힘이라면 정말 민간인 하나 따위는 묻어버려도 문제가 없을 터.

당장 변명해야 한다.

그러나 중년인은 입을 열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뱉으려 해봐도 무언가가 목구멍을 꽉 틀어막은 듯했다.

설마…?

“흠, 이 아이가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아이입니까.”

“맞네. 귀엽지 않은가?”

벌써 중년인에겐 관심이 사라졌다는 듯, 자명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길드장.

그의 능력이 목구멍을 틀어막았음이 분명했다.

아…….

중년인은 그제야 후회했다.

폭행이든 뭐든 자명 스님을 법정으로 불러오기만 한다면 평생 먹고살 돈을 준다기에 좋다고 나선 건데 설마 이날이 그의 제삿날이 될 줄이야.

주르륵.

중년인의 눈가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기….”

그때였다.

어느새 해인 스님의 품에 안겨 있던 소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빼 내밀었다.

마치 캥거루 주머니 너머로 고개만 내미는 듯한 모습으로 길드장의 소매를 붙잡고는.

“죽이실 건가요?”

감정 하나 없는 눈으로 중년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의 물음이라 하기엔 너무나 섬뜩한 목소리였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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