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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죽이실 건가요?”
     
   섬뜩한 목소리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야 게이트 사태가 터지고 한국이 과거에 비해 치안이 엉망이 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도 살인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각성자가 민간인을 폭행하는 것만으로도 난리가 날 테고, 살인 행각이 발각되었다간 모든 길드의 추적을 받을테니 알아서 사리는 것이었다.
     
   암암리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그걸 아이가 대놓고 ‘죽이실 건가요?’라고 묻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아이의 입으로 제 운명을 깨달은 중년인의 안색은 희게 질리고.
     
   소녀의 불운한 과거를 추측한 자명 스님이 터져 나오던 한숨을 삼킨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관심을 보이는 건, 청성 길드장뿐이었다.
     
     
   “왜 내가 저 인간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지?”
     
   제 반의반도 안 되는 소녀를 상대하면서조차 평소 같은 무뚝뚝한 물음.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울며 기겁할 행동이었음에도 소녀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네? 원래 저런 사람은 죽여서 처리하지 않나요?”
     
   아니.
     
   이건… 담담함을 넘어선 반응이다.
     
   마치 정말로 죽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생각에 청성 길드장은 한 가지 확인을 위해 대화를 이어갔다.
     
     
   “살인은 쉽지 않다. 사람을 죽이고 뒤처리하는 건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다.”
     
   소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똘망한 두 눈은 또래 아이들처럼 순진하게 빛나고.
     
   염색한 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청량한 머릿결이 사르르 흘러내린다.
     
   “어차피 지옥에 갈 사람이니까 녹여서 흘려보내면 되잖아요? 악마를 때려죽인다고 천사가 악마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천사 같은 외모와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그런가.
     
   청성 길드장은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광기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옳은 건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진정한 광기.
     
   흑과 백이 얼기설기 섞여 회색조차 되지 못한, 물과 기름이 섞인 그런 꼴.
     
   설득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중년인이 거의 기절해 가던 때, 청성 길드장의 시선이 자명 스님에게로 향한다.
     
   -“스님, 원래 이런 아이입니까?”
   -“안타깝지만 나도 아는 게 없네. 며칠 전 산에서 구조해 온 아이라서 말이네.”
     
   굳이 스님을 의심하는 듯 전음을 나눈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런 광기는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나지 않는다.’
     
   대단한 연쇄살인마조차 첫 살인 없이 탄생할 수 없으며, 한낱 상상으로 첫 살인을 현실적으로 구현해 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청성 길드장은 소녀가 실제 그와 같은 상황을 겪었음을 쉬이 추측해 냈다.
     
   사람을 죽이고, 녹여서 처리하는 수상쩍은 놈들이라….
     
   소녀를 바라보던 무감한 눈빛 위로 작은 연민이 더해졌다.
     
     
   중년인에겐 다행히도 이 살벌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하하, 꼬마야. 게임을 너무 많이 했나 보구나.”
     
   청성 길드장이 막 다른 질문을 하려던 때, 양복 차림새의 두툼한 남성이 다가왔다.
     
   그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 비서까지 대동한 채였다.
     
   “네? 게임…이 뭐예요…?”
   “뭐? 꼬마야,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니?”
     
   웃음이 절로 나오는 소녀의 반응에조차 청성 길드장은 슬쩍 미간을 찌푸린다.
     
   아까부터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걸 알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척이라니.
     
   정작 구청장은 고개를 갸웃대는 아이를 무시한 채 길드장에게 친한척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들 이게 얼마 만에 뵙는 건지! 오랜만의 강연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공명정대하기로 소문난 청성 길드장께서 그럴 리가 없지요? 암. 살인이라니요.”
   “쯧.”
     
   주둥이를 열심히도 털어대는구나.
     
   길드장이 자그마하게 혀를 찬다.
     
   안 그래도 그는 중년인을 게이트 너머로 던져버릴 생각 만반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의 은사나 다름없는 진명 스님에게 진상질을 부린 놈.
     
   심지어 더러운 의도가 있음을 보여주듯, 오랜만의 강연 일에 손님들까지 와있는 상황이니.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게 진명 스님과 아는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각성자의 민간인 폭력’ 따위로 상황을 제 입맛대로 끌고 갔을 게 뻔했다.
     
   그런 일이 앞으로 한 번으로 끝날 리 없었다.
     
   후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죽이는 게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이었다.
     
   소녀가 정곡을 찔러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대로 법정에 세우든, 군법으로 처리하든. 증언이 필요하면 말만 하십시오. 언제든 나서서 저자의 무도함을 낱낱이 고해줄 수 있습니다!”
     
   웃는 낯으로 연신 중년인을 옹호하려는 행동.
     
   멀리서 음습하게 지켜보던 때부터 느꼈지만, 왠지 그 역시 이번 사건에 엮여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길드장이라고 해도 한 지역구의 정치인을 맘대로 묻을 수는 없는 노릇.
     
   정 무리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 탓에 정부에 목줄이 메이는 건 원치 않았다.
     
   결국 진명 스님과 시선을 나눈 길드장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불퉁한 표정으로 서 있던 소녀가 중얼거린다.
     
   “…이렇게 죄를 지으면 언젠가 벌 받을 텐데.”
     
   움찔.
     
   중년인과 구청장이 동시에 어깨를 떨며 소녀를 노려본다.
     
   소녀는 그저 당연히, 지하에서 배운 대로 말한 것뿐이지만.
     
   듣는 이들로서는 저희를 저주하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야기였으니.
     
   “평생 불행하게 살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돌아가신 부모님도 못 만날 거예요….”
     
   이 역시 소녀는 제 이야기를 한 것이었지만.
     
   “쪼그만 한 것이 어른한테 할 말 못 할 말이 따로 있지! 어딜 그딴 망발을 지껄여!”
     
   결국 참다못한 구청장이 얼굴을 붉히며 목청을 높였다.
     
     
   안 그래도 길드장이 눈치챌까 불안해 죽겠는데.
     
   뭘 알지도 못할 꼬맹이가 속을 긁어대니 분노가 치밀었다.
     
   길드장이 쳐다보고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 스님과 꼬맹이 둘만 있는 상황이었더라면 ‘훈계’라도 해야 할 언행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한테는 신경 끄고, 슬슬 상황을 해결하는 게 어떻겠습니다.”
     
   ‘이런 젠장. 재수 옴 붙었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다 할 업적이 없어 슬슬 삼선이 불안해진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두문불출하던 자명 스님이 어떤 고아를 위해 모금 강연회를 연다더라.
     
   누가 보더라도 하늘이 내려준 기회가 아닌가?
     
   젊을 적 한 성격 하던 자명 스님이 각성자가 되고 나서 한물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굳이 고아를 언급한 걸 보니 책임져야 하는 사람도 있겠다, 살짝 긁어서 민간인 폭행이나 이런 걸로 엮어서 적당히 이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설마하니 그 바쁜 청성 길드장이 직접 찾아올 줄은….
     
     
   속으로 이를 갈던 구청장이 시선을 옮겨 소녀를 노려본다.
     
   웬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꼬맹이 때문에 일을 망쳐버렸다.
     
   지옥이니 악마니 하는 꼴이 지능이 온전치 못한 듯하고.
     
   벌써 머리를 염색하고 돌아다니는 꼴이 싹이 노란 애새끼임이 분명하다.
     
   ‘제깟 게 천재라고, 어디? 각성자 학교를 보내겠다고?’
     
   당장은 청성 길드장을 어찌할 수 없어 물러가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을 거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무뚝뚝한 인간이 언제고 애새끼 하나한테 신경 써줄 리 없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이다.
     
   자명 스님? 그가 가진 건 명망이지 권력과 재력이 아니다.
     
   다 죽어가는 노인네 하나 구워삶는 거야 간단하다.
     
     
   구청장이 어색하게 웃는 척 연기하며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이 일을 길드장께서 처리하실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예. 안 그래도 군법으로 처리할 생각이었습니다.”
     
   3대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 가진 군법, 즉결 처벌권.
     
   이 중년인처럼 일부러 각성자를 도발해 법정으로 끌고 가는 케이스가 더러 있던 만큼 무고죄의 형량이 상당히 무거워진 상황이었다.
     
   “대충… 175,200시간쯤 게이트 짐꾼으로 사회 봉사하는 걸로 충분합니다.”
     
   175,200시간?
     
   멍하니 그게 며칠이지? 고민하던 구청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비서를 바라본다.
     
   스마트폰을 들어 두드리던 비서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어, 16시간씩 30년이네요.”
   “…그게 법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대체 봉사 최대가 24시간 기준 30년이고, 징역은 8년이라고 하네요.”
     
   즉, 길드장은 재판도 없이 무고죄의 최대 형량을 때려버린 것이었다.
     
   추후 법원에 심사받고, 정식 명령을 받아야 하긴 하지만.
     
   모욕받은 당사자의 명성이나, 청성 길드장의 힘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재빠르게 판단한 구청장이 속 좋은 사람처럼 허허 웃는 낯을 연기한다.
     
   “암. 그 정도는 돼야 앞으로 이렇게 겁 없이 덤벼들지 않을 겁니다. 역시 길드장이십니다.”
     
   물론, 빈 땅에 3대 길드를 세운 청성 길드장에겐 턱도 없는 수작질이었다.
     
   “물론 민간인을 다치게 둘 수야 없으니… 공정한 감시를 위해 A급 한 명을 붙여두겠습니다.”
     
     
   …어, 어라?
     
   아니 시발 A급 길드원이 남아돌아서 이딴 데 낭비하나?
     
   구청장은 입 밖으로 나올 뻔한 욕설을 틀어막느라 두 손을 들어 입을 가로막았다.
     
   A급 헌터라 하면 사실상 국가 단위로 관리되는 전략자산.
     
   개개인의 몸값만 해도 억 단위를 넘어가는 이들이었다.
     
   그런 전략자산을 한낱 민간인 하나 감시하는 데 쓰겠다고?
     
     
   이건 경고다.
     
   “그,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보단 과하게 대응하는 게 옳습니다.”
     
   함부로 주민 자치 위원장을 묻으려 한다거나, 이 사건을 길게 끌고 가려 한다면 다시금 개입하겠다는 경고.
     
   길드장의 무뚝뚝한 면을 바라본 구청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걸음을 물렸다.
     
   “이, 이런. 인사만 드리러 왔던 건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한 시간 뒤에 일정이 있지?”
     
   그러더니 스윽- 시선을 피해 비서를 바라보며 묻는다.
     
   청성 길드장에겐 보이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그렇다고 대답해!’라는 압박을 보낸다.
     
   “네, 바로 가시면 딱 맞게 도착하실 겁니다.”
   “그러니 아쉽지만,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비서의 대답이 돌아오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열심히 놀리는 발걸음.
     
     
   “쯧. 역시 가만히 놔둬선 안 되겠군.”
     
   길드장은 곧장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래, 나다. 지금부터 은평구청장을 감시해라. 자금의 흐름부터 시작해서 화장실에서 휴지 몇 장을 뽑아 쓰는지까지 놓치지 않고 보고하도록. 필요하다면 길드의 힘을 사용해도 좋다. 구청장이 우리가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편이 더 좋겠지.”
     
     
   스산한 목소리.
     
   그만큼이나 섬뜩한 내용.
     
   귀를 쫑긋 세우고는 은근슬쩍 길드장의 통화를 엿듣던 소녀가 다급히 탄성을 내뱉는다.
     
   “…아! ”
   “왜, 지금이라도 가서 잡아 와 주랴? 아직 그만한 힘은 있단다.”
     
   자명 스님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다.
     
   소녀의 시선은 청성 길드장에게로 향해 있었다.
     
     
   “저 그거 알아요! 그, 그… 관음증이라는 거죠! 아저씨 취향이 관음증이예요??”
   “…….”
     
   소녀의 이야기에 우뚝- 길드장의 행동이 굳는다.
     
   삐걱삐걱- 고장 난 기계처럼 동시에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보는 길드장과 자명 스님.
     
   “헤헤 스님을 도와주셨으니까, 저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소녀는 과거, 지하에 있을 적 불행한 손님에게 투시 능력을 안겨준 적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남의 팬티 속을 봐야만 가라앉는 병이 있다고 했지?
     
   이번만큼은 소원을 이용해 길드장을 도와줄 의욕 만반이었다.
     
   물론, 손톱이나 발톱, 머리카락처럼 재생하기 쉬운 제물에 한해서였다.
     
     
   정작 길드장은 성인 남성 하나를 사회적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 소녀의 언행에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확실히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겠어.’
     
   소녀가 입술을 벙긋거리던 때.
     
   또다시 무슨 상상도 못 할 이상한 이야기가 흘러나올까.
     
   길드장이 다급히 소녀를 향해 말했다.
     
   “흠, 혹시 공부 해 볼 생각이 있나?”
     
   자명 스님이 그토록 원하던 종류의 물음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낼 9시다음화 보기

“죽이실 건가요?”

섬뜩한 목소리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야 게이트 사태가 터지고 한국이 과거에 비해 치안이 엉망이 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도 살인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각성자가 민간인을 폭행하는 것만으로도 난리가 날 테고, 살인 행각이 발각되었다간 모든 길드의 추적을 받을테니 알아서 사리는 것이었다.

암암리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그걸 아이가 대놓고 ‘죽이실 건가요?’라고 묻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아이의 입으로 제 운명을 깨달은 중년인의 안색은 희게 질리고.

소녀의 불운한 과거를 추측한 자명 스님이 터져 나오던 한숨을 삼킨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관심을 보이는 건, 청성 길드장뿐이었다.

“왜 내가 저 인간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지?”

제 반의반도 안 되는 소녀를 상대하면서조차 평소 같은 무뚝뚝한 물음.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울며 기겁할 행동이었음에도 소녀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네? 원래 저런 사람은 죽여서 처리하지 않나요?”

아니.

이건… 담담함을 넘어선 반응이다.

마치 정말로 죽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생각에 청성 길드장은 한 가지 확인을 위해 대화를 이어갔다.

“살인은 쉽지 않다. 사람을 죽이고 뒤처리하는 건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다.”

소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똘망한 두 눈은 또래 아이들처럼 순진하게 빛나고.

염색한 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청량한 머릿결이 사르르 흘러내린다.

“어차피 지옥에 갈 사람이니까 녹여서 흘려보내면 되잖아요? 악마를 때려죽인다고 천사가 악마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천사 같은 외모와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그런가.

청성 길드장은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광기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옳은 건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진정한 광기.

흑과 백이 얼기설기 섞여 회색조차 되지 못한, 물과 기름이 섞인 그런 꼴.

설득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중년인이 거의 기절해 가던 때, 청성 길드장의 시선이 자명 스님에게로 향한다.

-“스님, 원래 이런 아이입니까?”

-“안타깝지만 나도 아는 게 없네. 며칠 전 산에서 구조해 온 아이라서 말이네.”

굳이 스님을 의심하는 듯 전음을 나눈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런 광기는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나지 않는다.’

대단한 연쇄살인마조차 첫 살인 없이 탄생할 수 없으며, 한낱 상상으로 첫 살인을 현실적으로 구현해 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청성 길드장은 소녀가 실제 그와 같은 상황을 겪었음을 쉬이 추측해 냈다.

사람을 죽이고, 녹여서 처리하는 수상쩍은 놈들이라….

소녀를 바라보던 무감한 눈빛 위로 작은 연민이 더해졌다.

중년인에겐 다행히도 이 살벌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하하, 꼬마야. 게임을 너무 많이 했나 보구나.”

청성 길드장이 막 다른 질문을 하려던 때, 양복 차림새의 두툼한 남성이 다가왔다.

그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 비서까지 대동한 채였다.

“네? 게임…이 뭐예요…?”

“뭐? 꼬마야,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니?”

웃음이 절로 나오는 소녀의 반응에조차 청성 길드장은 슬쩍 미간을 찌푸린다.

아까부터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걸 알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척이라니.

정작 구청장은 고개를 갸웃대는 아이를 무시한 채 길드장에게 친한척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들 이게 얼마 만에 뵙는 건지! 오랜만의 강연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공명정대하기로 소문난 청성 길드장께서 그럴 리가 없지요? 암. 살인이라니요.”

“쯧.”

주둥이를 열심히도 털어대는구나.

길드장이 자그마하게 혀를 찬다.

안 그래도 그는 중년인을 게이트 너머로 던져버릴 생각 만반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의 은사나 다름없는 진명 스님에게 진상질을 부린 놈.

심지어 더러운 의도가 있음을 보여주듯, 오랜만의 강연 일에 손님들까지 와있는 상황이니.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게 진명 스님과 아는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각성자의 민간인 폭력’ 따위로 상황을 제 입맛대로 끌고 갔을 게 뻔했다.

그런 일이 앞으로 한 번으로 끝날 리 없었다.

후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죽이는 게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이었다.

소녀가 정곡을 찔러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대로 법정에 세우든, 군법으로 처리하든. 증언이 필요하면 말만 하십시오. 언제든 나서서 저자의 무도함을 낱낱이 고해줄 수 있습니다!”

웃는 낯으로 연신 중년인을 옹호하려는 행동.

멀리서 음습하게 지켜보던 때부터 느꼈지만, 왠지 그 역시 이번 사건에 엮여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길드장이라고 해도 한 지역구의 정치인을 맘대로 묻을 수는 없는 노릇.

정 무리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 탓에 정부에 목줄이 메이는 건 원치 않았다.

결국 진명 스님과 시선을 나눈 길드장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불퉁한 표정으로 서 있던 소녀가 중얼거린다.

“…이렇게 죄를 지으면 언젠가 벌 받을 텐데.”

움찔.

중년인과 구청장이 동시에 어깨를 떨며 소녀를 노려본다.

소녀는 그저 당연히, 지하에서 배운 대로 말한 것뿐이지만.

듣는 이들로서는 저희를 저주하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야기였으니.

“평생 불행하게 살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돌아가신 부모님도 못 만날 거예요….”

이 역시 소녀는 제 이야기를 한 것이었지만.

“쪼그만 한 것이 어른한테 할 말 못 할 말이 따로 있지! 어딜 그딴 망발을 지껄여!”

결국 참다못한 구청장이 얼굴을 붉히며 목청을 높였다.

안 그래도 길드장이 눈치챌까 불안해 죽겠는데.

뭘 알지도 못할 꼬맹이가 속을 긁어대니 분노가 치밀었다.

길드장이 쳐다보고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 스님과 꼬맹이 둘만 있는 상황이었더라면 ‘훈계’라도 해야 할 언행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한테는 신경 끄고, 슬슬 상황을 해결하는 게 어떻겠습니다.”

‘이런 젠장. 재수 옴 붙었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다 할 업적이 없어 슬슬 삼선이 불안해진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두문불출하던 자명 스님이 어떤 고아를 위해 모금 강연회를 연다더라.

누가 보더라도 하늘이 내려준 기회가 아닌가?

젊을 적 한 성격 하던 자명 스님이 각성자가 되고 나서 한물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굳이 고아를 언급한 걸 보니 책임져야 하는 사람도 있겠다, 살짝 긁어서 민간인 폭행이나 이런 걸로 엮어서 적당히 이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설마하니 그 바쁜 청성 길드장이 직접 찾아올 줄은….

속으로 이를 갈던 구청장이 시선을 옮겨 소녀를 노려본다.

웬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꼬맹이 때문에 일을 망쳐버렸다.

지옥이니 악마니 하는 꼴이 지능이 온전치 못한 듯하고.

벌써 머리를 염색하고 돌아다니는 꼴이 싹이 노란 애새끼임이 분명하다.

‘제깟 게 천재라고, 어디? 각성자 학교를 보내겠다고?’

당장은 청성 길드장을 어찌할 수 없어 물러가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을 거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무뚝뚝한 인간이 언제고 애새끼 하나한테 신경 써줄 리 없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이다.

자명 스님? 그가 가진 건 명망이지 권력과 재력이 아니다.

다 죽어가는 노인네 하나 구워삶는 거야 간단하다.

구청장이 어색하게 웃는 척 연기하며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이 일을 길드장께서 처리하실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예. 안 그래도 군법으로 처리할 생각이었습니다.”

3대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 가진 군법, 즉결 처벌권.

이 중년인처럼 일부러 각성자를 도발해 법정으로 끌고 가는 케이스가 더러 있던 만큼 무고죄의 형량이 상당히 무거워진 상황이었다.

“대충… 175,200시간쯤 게이트 짐꾼으로 사회 봉사하는 걸로 충분합니다.”

175,200시간?

멍하니 그게 며칠이지? 고민하던 구청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비서를 바라본다.

스마트폰을 들어 두드리던 비서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어, 16시간씩 30년이네요.”

“…그게 법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대체 봉사 최대가 24시간 기준 30년이고, 징역은 8년이라고 하네요.”

즉, 길드장은 재판도 없이 무고죄의 최대 형량을 때려버린 것이었다.

추후 법원에 심사받고, 정식 명령을 받아야 하긴 하지만.

모욕받은 당사자의 명성이나, 청성 길드장의 힘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재빠르게 판단한 구청장이 속 좋은 사람처럼 허허 웃는 낯을 연기한다.

“암. 그 정도는 돼야 앞으로 이렇게 겁 없이 덤벼들지 않을 겁니다. 역시 길드장이십니다.”

물론, 빈 땅에 3대 길드를 세운 청성 길드장에겐 턱도 없는 수작질이었다.

“물론 민간인을 다치게 둘 수야 없으니… 공정한 감시를 위해 A급 한 명을 붙여두겠습니다.”

…어, 어라?

아니 시발 A급 길드원이 남아돌아서 이딴 데 낭비하나?

구청장은 입 밖으로 나올 뻔한 욕설을 틀어막느라 두 손을 들어 입을 가로막았다.

A급 헌터라 하면 사실상 국가 단위로 관리되는 전략자산.

개개인의 몸값만 해도 억 단위를 넘어가는 이들이었다.

그런 전략자산을 한낱 민간인 하나 감시하는 데 쓰겠다고?

이건 경고다.

“그,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보단 과하게 대응하는 게 옳습니다.”

함부로 주민 자치 위원장을 묻으려 한다거나, 이 사건을 길게 끌고 가려 한다면 다시금 개입하겠다는 경고.

길드장의 무뚝뚝한 면을 바라본 구청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걸음을 물렸다.

“이, 이런. 인사만 드리러 왔던 건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한 시간 뒤에 일정이 있지?”

그러더니 스윽- 시선을 피해 비서를 바라보며 묻는다.

청성 길드장에겐 보이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그렇다고 대답해!’라는 압박을 보낸다.

“네, 바로 가시면 딱 맞게 도착하실 겁니다.”

“그러니 아쉽지만,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비서의 대답이 돌아오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열심히 놀리는 발걸음.

“쯧. 역시 가만히 놔둬선 안 되겠군.”

길드장은 곧장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래, 나다. 지금부터 은평구청장을 감시해라. 자금의 흐름부터 시작해서 화장실에서 휴지 몇 장을 뽑아 쓰는지까지 놓치지 않고 보고하도록. 필요하다면 길드의 힘을 사용해도 좋다. 구청장이 우리가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편이 더 좋겠지.”

스산한 목소리.

그만큼이나 섬뜩한 내용.

귀를 쫑긋 세우고는 은근슬쩍 길드장의 통화를 엿듣던 소녀가 다급히 탄성을 내뱉는다.

“…아! ”

“왜, 지금이라도 가서 잡아 와 주랴? 아직 그만한 힘은 있단다.”

자명 스님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다.

소녀의 시선은 청성 길드장에게로 향해 있었다.

“저 그거 알아요! 그, 그… 관음증이라는 거죠! 아저씨 취향이 관음증이예요??”

“…….”

소녀의 이야기에 우뚝- 길드장의 행동이 굳는다.

삐걱삐걱- 고장 난 기계처럼 동시에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보는 길드장과 자명 스님.

“헤헤 스님을 도와주셨으니까, 저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소녀는 과거, 지하에 있을 적 불행한 손님에게 투시 능력을 안겨준 적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남의 팬티 속을 봐야만 가라앉는 병이 있다고 했지?

이번만큼은 소원을 이용해 길드장을 도와줄 의욕 만반이었다.

물론, 손톱이나 발톱, 머리카락처럼 재생하기 쉬운 제물에 한해서였다.

정작 길드장은 성인 남성 하나를 사회적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 소녀의 언행에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확실히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겠어.’

소녀가 입술을 벙긋거리던 때.

또다시 무슨 상상도 못 할 이상한 이야기가 흘러나올까.

길드장이 다급히 소녀를 향해 말했다.

“흠, 혹시 공부 해 볼 생각이 있나?”

자명 스님이 그토록 원하던 종류의 물음이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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